서평: 제프리 케인, 『Steve Jobs in Exile』 (번역)
Jeff Johnson 「Book review: Steve Jobs in Exile by Geoffrey Cain」
요약: 2026년 펭귄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된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의 저서 『Steve Jobs in Exile: 넥스트(NeXT)'의 비화와 미국적 비전가의 재탄생』(Steve Jobs in Exile: The Untold Story of NeXT and the Remaking of an American Visionary)은,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1985년 애플을 떠나 1997년 복귀하기까지의 삶과 커리어를 조명한다. 이 시기는 대부분 잡스가 직접 설립하고 훗날 애플에 인수된 또 다른 기업 '넥스트(NeXT)'에서 보낸 시절이다. 이 책에는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일화들이 가득하며, 온전히 헤아리기 힘든 잡스의 심리적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핵심적 통찰을 제시한다. 여러모로 신화를 깨뜨리는 책이다. 전 애플 CEO 존 스컬리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잡스가 다시 애플의 수장으로 복귀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은, 잘 닦인 탄탄대로를 달린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오아시스를 발견한 과정에 훨씬 가까웠다. 애플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Steve Jobs in Exile』를 강력히 추천한다.
저자 제프리 케인은 오랜 경력의 테크 전문 기자로, 『삼성 라이징(Samsung Rising)』과 『완벽한 경찰국가(The Perfect Police State)』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Steve Jobs in Exile』를 위해 잡스의 넥스트 공동 창업자들과 전 동료들을 중심으로 총 111명을 인터뷰했다. 출처와 관련해 케인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검증했다. 직접 진행한 인터뷰는 물론 카네기 멜런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컴퓨터 역사박물관의 소장 자료, 그리고 당시의 언론 보도와 컴퓨터 과학 학술지 논문들을 주로 참조했다. 팩트체커인 벤저민 칼린과 나는 세 차례에 걸친 사실 확인을 거쳤으며, 모든 미주와 주장을 검증하는 데 4개월을 쏟아부었다.
많은 사건이 일어난 지 25년에서 40년이나 흘렀기에, 기억이라는 요소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인터뷰는 통찰과 회고를 제공해주었지만, 기억 하나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메모, 서한, 이사회 회의록, 재무제표, 법원 기록, 영상 자료, 주주 명부, 사업자등록 서류 등의 물증으로 기억을 확인했고, 여러 관계자의 진술을 교차 검증했다. 기억이 신뢰하기 어렵거나 세월 탓에 왜곡된 것으로 보이면 과감히 제외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이러한 선언을 의심할 만한 구석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전형적인 서평가가 아니며, 이 글 역시 전형적인 서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나누고자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과 얻은 교훈이다. 작년에 패트릭 맥기(Patrick McGee)의 저서 『중국 속의 애플(Apple in China)』에 대한 서평을 쓰며 남겼던 글을 인용해 본다.
『중국 속의 애플』을 읽고 내가 얻은 개인적인 결론은, 책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도, 팀 쿡도, 궈타이밍(테리 궈)도, ‘블레비네이터’ 토니 블레빈스도, 그리고 중국 정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좋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 미래를 내다보고 사전에 계획된 마스터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예언자라도 되는 양 이들을 우상화하던 환상이 깨졌다는 뜻이다. 그들은 분명 눈앞에 찾아온 기회(대부분 뜻밖의 행운이었지만)의 일부를 낚아챌 만큼 똑똑하고 유능했지만, 동시에 참혹한 결과를 낳은 엄청난 오판들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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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이자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는 '도덕적 선(善)'이다. 이 강력한 권력자들에게서는 도덕과 윤리의식이 뚜렷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오로지 권력, 명예, 부를 향한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보다 힘없는 수많은 사람을 끊임없이 착취하며 권력을 지독하게 남용했다. 중국 내 애플 하청업체들의 끔찍한 노동 환경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악명을 떨쳤다. 반면 엔지니어링 업계 종사자 정도를 제외하면 덜 알려진 사실인데, 애플은 중국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 곁을 지키던 자사 직원들 역시 직급을 막론하고 그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부품 취급하며 착취했다. 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한 전쟁터에서 공급망에 속한 모든 사람, 심지어 애플의 엔지니어들조차 단순한 총알받이에 불과했다.
『Steve Jobs in Exile』의 서문과 후기는 묘한 대조를 이루며 책의 앞뒤를 감싸고 있다. 넥스트 공동 창업자인 댄들 르윈(Dan’l Lewin)이 쓴 서문은 때로 신랄하기 짝이 없어, 독자에게 충격적인 시작을 안겨준다.
“그는 가끔 집중력에 자기 자신이 휘둘리곤 했다. 넥스트 시절, 그는 엉뚱한 것들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회사의 존속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완벽주의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잡스는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웨이터든, 최고위 임원이든, 대학교 총장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의 까다롭고 수시로 바뀌는 기준을 들이댔다. 그는 남에게 너그러움을 베풀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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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중요한 비즈니스 및 유통 파트너십을 제 손으로 망쳤다. 넥스트는 늘 파산 직전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바뀌는 스티브의 기준에 휘둘리며 굴러갔다. 나를 포함한 창립 멤버 대다수가 그에게 질려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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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어린 아들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게 소중했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휴일이든 가족 생일이든 가리지 않고 리더십 팀에게 주말 대면 회의에 나오라고 요구하기 일쑤였다.”
르윈은 잡스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그가 쏟아낸 비판은 결코 쉽게 넘겨버릴 수 없다.
반면 픽사 공동 창업자인 에드 캣멀(Ed Catmull)이 쓴 후기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잡스의 '변화'를 강조한다. 마치 결말이 좋았으니 그 이전의 모든 과오가 용서된다는 투다. 하지만 캣멀은 르윈과 달리 잡스로부터 일종의 보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픽사에서 스티브의 역할은 여타 컴퓨터 회사 CEO와는 달랐다. 대체로 스티브는 우리의 창작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어려운 창작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 경영진 모임인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 회의에 아예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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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와의 협업 방식은 이상적이었다. 그는 우리의 작업을 믿어주었고 아낌없이 자금을 지원했으며, 대체로 간섭하지 않고 온전히 맡겨주었다.”
픽사는 잡스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인 넥스트가 따로 존재했기에 혜택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간섭할 넥스트가 없었다면, 잡스는 픽사를 들쑤시고 싶은 유혹에 훨씬 더 시달렸을 것이다. 어찌 됐든 픽사는 잡스가 꼭 안하무인 격의 괴팍한 폭군 노릇을 하지 않아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1991년, 잡스는 대통령 수출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기 위해 FBI의 신원 조사를 받았다. 이 FBI 문서는 공개되어 있다! 제프리 케인은 당시 잡스의 동료들이 FBI와 진행한 인터뷰를 이렇게 서술한다.
인터뷰에서 동료들은 ‘비전가’와 ‘망나니’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한 FBI 요원은 “복수의 인물이 잡스 씨의 정직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비틀 사람이라고 진술했다”라고 기록했다. 한 정보원은 FBI에 스티브가 ‘남을 잘 속이는 인물’이므로 “정직과 청렴이 필수 덕목이 아닌 고위 정무직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또 다른 인물은 스티브의 이중성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나르시시즘과 경박함 탓에 인간적인 삶은 낙제점이지만, 원대한 비전을 지녔으며 계획과 목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고위 정무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잡스는 1985년에 정계 입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존 F. 케네디나 로널드 레이건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거물 정치인이 되는 그림을 좋아했다. 심지어 정치 전략가인 팻 카델(Pat Caddell)과 스콧 밀러(Scott Miller)를 만나 상원의원 출마 가능성을 논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티브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민주당으로 나가야 할지, 공화당으로 나가야 할지 스스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유권자 등록조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조차 잡스를 거짓말쟁이에 나르시시스트라고 불렀다. 그는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온갖 심리전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타인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도록 만드는 조종의 달인이기도 했다. 미국 대선에 제3지대 후보로 출마했던 유명 억만장자이자, 덜 알려지긴 했지만 넥스트의 투자자이기도 했던 로스 페로(Ross Perot)마저 잡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느끼며 “내가 스티브 녀석한테 돈을 너무 낭비했어”라고 한탄했을 정도다.
어떤 이들은 잡스가 컴퓨터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여겼고, 그들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Steve Jobs in Exile』를 읽고 나면 그 주장을 믿기 힘들어진다. 잡스는 분명 자기 자신을 최우선에 두었고, 순전히 자기가 보기에 멋진 물건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사용자의 만족은 그저 잡스와 사용자의 취향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에 불과했다. 잡스는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다수의 기업 경영자(팀 쿡 같은)처럼 MBA 출신도 아니었기에 일반 사용자와 통하는 점이 꽤 많았다. 그는 그저 기술에 열광하는 마니아였고, 마니아의 시선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내린 수많은 선택은 사용자에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예컨대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를 생산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지은 공장에 집착하며, 스타트업치고는 엄청난 거금을 쏟아부었다. 넥스트의 고객(원래는 대학들이 대상이었다!)이 페라리 고객과 같은 구매 ‘경험’을 원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공장은 완공되지 않았는데도 숨이 멎을 만큼 근사했다. 매끄러운 흰색 벽, 갤러리풍의 환한 조명, 디자이너 소품, 특수 제작된 계단이 설치되었고, 로비는 스티브가 첫 두 버전의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뜯어고친 끝에 2만 달러짜리 검은색 가죽 의자들로 채워졌다. 공장 라인의 장비들은 최첨단에 화려했으며, 전부 동일한 톤의 회색으로 다시 도색되었다.
잡스는 자신의 사무실을 꾸미는 데도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낭비했다.
1988년 5월 무렵, 넥스트의 재정 상태에도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통장 잔고는 2,500만 달러였지만, 한 해를 버티려면 2,750만 달러가 필요했다. 수지를 맞추려면 연말까지 1만 6,000대를 팔아야 했다. 하지만 개발팀은 기계 한 대를 제대로 부팅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크고 호화로운 일을 벌이려는 스티브를 막지 못했다. 직원 수가 100명에 가까워지자, 스티브는 이사진인 팻(크레신)과 로스(페로)에게 회사 사옥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시포트 센터(Seaport Centre)라는, 개울과 정박지가 내려다보이는 신축 오피스 단지로 이전할 기회를 찾았다고 했다.
로스와 팻은 6개 동에 달하는 임대차 계약서를 검토했다. 첫해 임대료만 250만 달러에 육박했고, 입주자 인테리어 공사와 캠퍼스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수백만 달러가 추가로 들어갈 판이었다. 충격적인 액수였다. 넥스트가 사무실 공간에 쓰겠다고 제안한 돈은 웬만한 스타트업의 전체 투자 유치 금액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를 승인했다. 스티브가 제시한 성장 비전에 설득당한 것이다.
시포트 센터의 첫 입주자가 된 넥스트는 텅 빈 사무실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개발사로부터 넉넉한 지원금을 받았다. 철거 작업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였는데도, 스티브는 그 지원금을 순식간에 탕진했다.
랜들 E. 스트로스(Randall E. Stross)에 따르면, 스티브는 이미 설치되어 있던 엘리베이터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 전의 일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장비를 나르는 일이 악몽이 될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I. M. 페이(I. M. Pei) 건축사무소에 의뢰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 중력을 거스르는 웅장한 중앙 계단을 만들었다. 식당 공간에는 회색, 검은색, 흰색 대리석을 골라 깔았다. 공용 공간에는 2,200달러짜리 의자와 1만 달러짜리 소파를 배치하기로 했다. 모든 책상에는 스티브가 찾아낼 수 있는 최고급 전화기(대당 450달러)가 놓였다.
이 복잡한 인테리어 공사는 1년이 걸릴 예정이었다. 넥스트 건물 자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유도하도록 설계되었다. 복도는 엔지니어들이 필연적으로 마주치도록 배치되어, 이른바 ‘조직된 우연성(organized serendipity)’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스티브는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다니는 동선부터 이메일을 분류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최적화해야 할 레이아웃으로 보았다.
참고로 이 일화는 ‘조직된 우연성’이라는 똑같이 미심쩍은 사이비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된 ‘애플 파크(Apple Park)’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건물을 방문할 일조차 없는 사용자에게 도대체 무슨 이득이 된단 말인가? 사무실이 직원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줌으로써 사용자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잡스의 사치는 철저히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프로젝트에만 한정되었을 뿐, 직원들에게까지 베풀어지지 않았다.
스티브가 개인 사재 700만 달러를 넥스트의 종잣돈으로 털어 넣었기 때문에, 재무팀은 그가 애플 시절보다는 근검절약할 것이라 기대했다. 심지어 잡스는 직원들에게 절제와 통제의 필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잔 반스(Susan Barnes)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그는 몸에 밴 값비싼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라고 회고했다. 아낌없는 낭비, 디테일에 대한 집착, 타협 없는 안목 등 옛 버릇이 다시 도지면서 회사의 현금 소진 속도는 치솟았다. 스티브는 넥스트의 외적인 이미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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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화장실 타일 줄눈이 엉뚱한 색으로 시공되자, 스티브는 멀쩡한 새 타일을 다 뜯어내고 약 2만 달러를 들여 다시 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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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브는 직원들이 중고 매물을 수소문하는 대신 새 장비를 구매했다며 타박을 놓았다. “우리가 그런 사소한 데서 돈 아끼는 걸 멈췄는데, 그게 다 쌓이는 겁니다… 다들 스타트업다운 절박함이 안 보이네요”라고 질책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잡스는 지독한 위선자였다. 내가 보기에 그의 지출은 사용자를 위한 것도, 회사의 성공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여느 폭군들이 그러하듯, 그가 원했던 것은 단지 왕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궁전이었다.
엄청난 돈을 들인 넥스트 공장이 사람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 순수 자동화로 첫 메인보드를 생산해 냈을 때, 스티브는 “이것은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그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넥스트의 하드웨어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다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심지어 선례를 남기지도 못했다. 악명 높게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이폰의 조립은 중국의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정치적 소신도 없이 정치인이 되길 꿈꿨던 잡스는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댄들 르윈의 말마따나, 잡스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겠다는 평생의 꿈”을 품고 살았다.
잡스는 결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방향이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가 소수 의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스마트폰 혁명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주의력을 빼앗아 가는 동시에 집중 지속 시간을 토막 냈고, 드라마 스타 트렉의 에피소드 ‘더 게임(The Game)’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조그만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회성을 잃게 만들었다. 텔레비전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TV 역시 비슷한 비판을 받았고 어린 시절 나의 정신을 어느 정도 왜곡시켰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TV는 자리에 붙박여 있어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없었기에, 그 영향력과 폐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과거의 TV는 스마트폰과 달리 끝없는 자극과 중독의 온상인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스마트폰 혁명과 그에 수반된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는 세상에서 가장 질 나쁜 부류의 사람들을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잡스 역시 틀림없이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애당초 우리에게 새로운 기술이 꼭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정당한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인류는 스마트폰은커녕 개인용 컴퓨터 없이도 잘 살아남았고 번영을 누렸으니까. 나 역시 둘 다 없던 세상을 (간신히나마) 기억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는 들었다. 반면, 우리에게 그 새로운 기술이 ‘지금 당장’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거의 언제나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해야 마땅하다. 스티브 잡스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불필요하며 무의미한 마감 기한을 정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탈진시켰고, 어쩌면 잡스 자신도 그렇게 소진되다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것인지도 모른다.
1985년 12월, 넥스트 팀의 첫 워크숍 당시의 일화다(애플이 넥스트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음에도, 잡스는 법률적 조언을 무시하고 이 워크숍을 PBS 다큐멘터리 팀이 촬영하도록 허락했다).
이틀에 걸쳐 팀은 스티브가 제시한 프로젝트의 두 가지 가이드라인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첫째, 대학 관계자들과의 대화에 맞춰 컴퓨터 가격을 3,000달러 이하로 책정할 것. 둘째, 1987년 봄까지는 무조건 제품을 출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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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티브가 논쟁을 종식했다. 개발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운영체제를 포함한 컴퓨터 한 대를 완성하는 데 18개월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결정은 끝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이 팀에 강요한 두 가지 가이드라인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갉아먹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머릿속에서는 절대로 자기 탓이 아니었다.
넥스트 공장의 일정이 불가피하게 지연되자, 스티브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탓하는 대신 린다(윌킨, 제조 담당 부사장)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는 1987년 1월에 그녀를 해고했다. 그리고 고용 계약에 따라, 로스의 투자로 넥스트의 기업 가치가 치솟았음에도 린다의 주식을 원래 가격인 주당 50센트에 강제로 되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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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컴퓨터 내부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했다. 칩 설계자들이 최종 회로 배치에 가까워질 때마다 스티브는 마음을 바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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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빅 데이브와 리틀 데이브(엔지니어들의 별명)를 전 직원 앞으로 불러내 모욕을 주었다. “당신들이 회사를 말아먹을 작정이야!” 스티브는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넥스트는 마감 기한도 맞추지 못했고, 가격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시장에서도 외면당했다. 다시 말해, 컴퓨터 한 대를 만들기 위해 넥스트 팀이 감내했던 개인적인 희생—살인적인 초과 근무, 소홀해진 가정, 메말라버린 사생활, 극심한 스트레스와 인격 모독—은 모두 허사였다. 10년 뒤인 1997년 애플이 넥스트의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도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1987년에 컴퓨터를 그토록 무리하게 출시해야 할 타당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괜한 조급증을 조장했던 스티브였지만, 회사가 망할 것이라던 그의 호통조차 틀린 예측이었다.
진지하게 묻고 싶다. 어째서 기술이 수면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인간에게는 잠이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라는 비유를 들며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역설했지만, 기술과 ‘수면’의 교차로는 어디로 갔는가? 최소한 잡스에게는 잠과 자신의 기술적 변덕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수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신제품 발표회를 사흘 앞두고 음향 엔지니어 줄리어스 스미스(Julius Smith)는 심각한 곤경에 처했다. 그는 여름 내내 넥스트 오디오 소프트웨어의 밑바닥 오류들을 잡느라 두더지 잡기 게임을 벌여왔다. 데모 시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새벽 1시, 눈이 충혈된 채 절망에 빠진 줄리어스는 복도에서 스티브와 버드(트리블)를 마주쳤다. “그냥 CD를 틀면 안 될까요?” 그는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스티브가 그를 서늘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이거 제대로 해결 못 하면, 당신 대가 끊길 줄 알아.”
[…]
출시 전날 밤, 스티브와 프레젠테이션 팀은 빔프로젝터에 띄울 녹색의 정확한 음영을 두고 새벽 2시까지 언쟁을 벌였다. 그들이 고심 끝에 고른 색상은 발표 중에 쓰일 수많은 배경색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티브는 완벽하게 원하는 색을 구현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들은 어두컴컴한 회의실에 앉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도 안 되는 미세한 RGB 값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씨름해야 했다.
2026년 오늘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해야 할까? 우리 중 누구도 본 적 없는 1988년 제품 시연회에서—그마저도 제품이 채 준비되기도 전에 잡스가 일정을 잡아버린 행사에서—프레젠테이션 배경의 초록색 톤을 완벽하게 맞췄다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스티브의 입장이었다면 직원들을 잠자리에 들게 했을 것이다. 설령 그 때문에 오늘날 아이폰이나 맥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아이폰과 맥이 발명되기 전 그랬던 것처럼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