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Night Soil (번역)

Kristin Dombek 「Night Soil」

그 건축가의 아내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마침 도시 북쪽 외딴 막다른 골목에 ‘미드센추리 모던’ 양식의 보석 같은 매물이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부부는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덕에 정식으로 매물을 내놓기도 전에 사전 제안을 넣어 집을 매입할 수 있었다. 건축가 남편의 감각적인 리모델링을 거친 집은 다층 구조이면서도 탁 트인 개방감과 아늑함을 동시에 품게 되었다. 2층 높이로 시원하게 뻗은 현관에서부터 안쪽으로 이어지는 방들의 배치는 마치 인테리어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했고, 사방의 통창과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이이가 꿈꾸던 집이죠.” 거대한 목련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데크 위에서 아내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곳은 야외에 있으면서도 거실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 집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거실과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몇 명인지 가늠하기도 힘든 아이들이 데크를 가로질러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가, 이내 물기도 닦지 않은 채 다시 집 안으로 우르르 뛰어 들어갔다. 목련 나무 아래에서 칵테일 잔을 기울이던 어른들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건 그저 체면상 해본 잔소리일 뿐 다들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내는 내심 다른 집을 눈여겨보던 참이었다. 마침 매물로 새로 나온 집이었다. 코너에 위치해 사생활도 더 잘 보호되고 대지도 넓어 마당을 더 크게 쓸 수 있는 곳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힐끗 쳐다보자, 남편은 목련 나무 줄기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목련은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사방의 공기는 꽃이 풍기는 부드럽고 짙은 향기로 가득했다.

집 안의 온도는 바깥의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무관하게 통제되고 있었는데, 냉방 장치가 어찌나 조용한지 돌아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거대한 냉장고마저도 숨을 죽인 듯 고요해서, 문에 귀를 바짝 대고 나서야 겨우 희미한 모터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천장이 워낙 높아 머리 위 공간에는 아득한 해방감이 감돌았다. 집이 워낙 넓다 보니 다른 사람이 안에 같이 있어도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벽면마다 콘센트가 기본으로 한두 개씩 설치되어 있었고, 집안 어디서나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으며, 지저분한 쓰레기통은 눈에 띄지 않게 잘 숨겨져 있었다. 곳곳에 아름다운 미술품과 정교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거실 한구석 유리 테이블 위에는 차량 개조용 이동식 미니 주택(타이니 홈) 제작법에 관한 책들이 여덟에서 열 권가량 뜬금없이 쌓여 있었다.

“얼마든지 더 있다 가세요.” 그들의 환대에 수영장 파티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알고 보니 밴으로 이주하려는 생각은, 온 가족이 봉쇄 조치로 집에만 갇혀 지내며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던 록다운 시절부터 이 건축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였다. 그는 진심으로 밴을 갖고 싶어 했다. 이 아름다운 대저택에 살면서도 그는 줄곧 구글을 검색하며 가로 6피트, 세로 15피트 남짓한 그 좁은 공간에 살림살이를 어떻게 압축해 넣을지 고민해 왔다. 밴 양쪽 벽면에 시원한 통창을 내는 법부터 싱크대 깊이와 물탱크 용량, 태양광 패널 배치와 인버터 와트 수까지 계산하면서 말이다. 밴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실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뇌 속에 밴을 위한 새로운 신경 조직이 자라나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워낙 넓어서 사흘째 되는 날에도 길을 잃을 법한 대저택 안에서 어떤 꿈 하나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파티 셋째 날, 그는 작업실 제도대로 가더니 진행 중이던 오피스 빌딩 도면들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러고는 선반에서 제도용 벨럼지 한 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우리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만의 밴 개조 설계도였다.

우리가 머무는 내내, 우리가 집 삼아 살던 밴(van)은 저택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밴에 대해 별달리 묻지 않아도 서운하진 않았다. 밴 생활을 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우리 옷은 누더기처럼 해어져 있었고, 눈빛은 찌든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이 동네로 차를 몰고 오면서, 우리는 밴 안에서 자겠다고 고집하지 않는 쪽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었다. 우리만의 물건이 있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곳이었음에도 말이다. 차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 어떤지 잘 아는 데다, 이런 고급 주택가의 '주택소유주협회(HOA)' 규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먹고 자게 된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내 집이나 아파트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은 갈수록 멀어져만 갔고, 미래는 막막하기만 했다. 다들 대체 그 큰돈을 어떻게 구하는 걸까? 건축가와 부동산 중개업자는 남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수평이 딱 맞아떨어지는 바닥 위, 구름처럼 포근한 침대에서 모처럼 편안하게 잠을 청한 뒤 몸을 씻으러 들어간 수영장. 그들이 누리는 이 멋진 해수 풀장 역시 결국 타인의 간절한 염원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우리가 마침내 목련 나무 아래 테이블에 앉았을 때, 내 밴 동료나 나 중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 전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을 거예요. 주행 중에 엔진으로 메인 배터리를 대부분 충전해 두고, 숲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계절엔 200와트짜리 태양광 패널만 돌려도 충분히 보충되거든요."

건축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리 일행 중 다른 한 명이 말을 보탰다. "숲속에서는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게 생각보다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는 내 말을 잠시 곱씹더니 인버터 장치 같은 것에 대해 물어왔고, 우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대화가 잠시 끊겼다. 인터넷을 보며 꿈꾸던 완벽한 환상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면 늘 찾아오는, 이제는 아주 익숙한 정적이었다. 우리는 그 침묵을 깨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번에는 내가 목련 나무를 바라볼 차례였다. 위쪽 테라스에 가려져 뿌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는 마치 오랜 세월 서로 얽혀온 팔들처럼 여러 줄기가 한데 꼬여 올라가다가, 우리 머리 위에서 비로소 수많은 가지와 윤기 나는 짙은 녹색 잎사귀들로 무성하게 갈라져 있었다. 테라스 높이에서부터 가지가 뻗어 나간 곳까지 눈으로 줄기 하나를 끝까지 쫓아가 보려 했지만, 겉모양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 쉽지 않았다. 대화가 뚝 끊겼을 때, 사람들이 속으로 진짜 궁금해하는 건 따로 있었다. '대체 화장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것 말이다.

열 살 혹은 열한 살 무렵, 처음으로 집을 떠나 멀리 가본 적이 있다. 내가 살던 농장을 벗어나 남쪽 지방에 사는 이모네 집으로 놀러 가게 된 것이다. 겨우 몇 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모부는 내게 처음으로 커피를 몰래 몇 모금 맛보여 주셨고, 이모는 마스카라 바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모네 교회에 다니는 여자아이와 자전거도 타고, 말도 타고, 캠핑카에서 밤새 수다를 떨며 파자마 파티도 했다. 이모의 차를 타고 다시 북쪽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마치 새 삶을 얻은 것만 같았다. 훨씬 행복한 사람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다 와서 그랬는지, 현관 방충망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 집이 왠지 모르게 낯설고 냄새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그 누구도 환영하며 일어서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지옥에 있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오른쪽 문짝 옆 탁자 위에 새로 놓인 전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전등은 양피지 색의 빳빳하고 깔끔한 주름 잡힌 갓에, 부드러운 버터 빛이 감도는 매끄러운 달걀형 받침대가 달려 있었는데, 표면에는 입체적인 소용돌이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인테리어 잡지에나 나올 법한 모양새였다. 머릿속에 '도자기'라는 단어가 스쳤다. 전등갓에 달린 가격표에는 250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그 돈은 우리가 매달 할머니께 농가 월세로 내던 금액이었고, 어떤 달에는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해 버는 수입의 전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장애가 있으셨기 때문에 부족한 나머지는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던 형편이었다. 나는 매장에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 아름다운 전등을 보고 너무나 갖고 싶은 나머지 한 달 치 월세와 맞먹는 거금을 써버리는 모습을. 하지만 당장 쓸 현금이 있을 리 없었으니, 분명 신용카드를 긁었을 터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기억을 아주 자주 떠올린다. 기억 속에서 내 시선은 엄마의 눈빛에서 전등으로, 그리고 다시 계단을 따라 내 파란색 방으로 이어진다. 매미 소리가 극성인 무더운 밤, 나는 침대에 말가니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감정이 엄습했다. 굳이 말로 옮겨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아무도 날 아끼지 않으면 어쩌지? 다들 사람보다 물건을 더 소중히 여기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이 거대한 외로움은 몇 번이고 찾아와 몇 달씩 나를 괴롭혔고, 상담사들은 이를 '우울증'이라 진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우울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신이 앓았던 우울증도 이런 모양새였을까. 아니면 그저 바닥이 꺼지면서 미국이라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지하실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에 불과했던 걸까.

이튿날 엄마에게 전등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격표를 뒤집어 보여주며 나를 달랬다. 재고 정리 세일 때 겨우 35달러를 주고 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농가 지하실에 나만의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일종의 '꼬마 회계사'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가위로 할인 쿠폰을 오려 다음 장날에 쓸 봉투별로 차곡차곡 분류했고, 사칙연산을 해가며 집안의 세금 계산을 도왔다. 위층 내 방에 있을 때는 소설 『마녀의 산(Escape to Witch Mountain)』을 읽으며 염력으로 물건을 움직여 보려 애썼고, 『당신의 선택으로 만드는 모험(Choose Your Own Adventure)』 같은 게임북을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넘겨대며 마치 책장 사이에 하이퍼링크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시어스 백화점 카탈로그에 나온 속옷 모델들이 종이 밖으로 걸어 나와 내 방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시간의 주름(A Wrinkle in Time)』을 읽으며 머나먼 해안가 도시로 공간 이동을 하는 터무니없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시절 밴 차량은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유괴범들이 모는 차량은 유독 느리게 움직였다. 낯선 사람은 경계해야 했다. 나처럼 수많은 다른 아이들도 방 안에 겁에 질린 채 앉아, 프로페서 X나 요다처럼 눈을 질끈 감고 마음으로 물체를 움직이려 애썼을 거라 짐작한다. 집 밖에 있는 에어 조던을 집 안으로 들여와 발에 신기려고, 하이퍼컬러 티셔츠와 게스 청바지를 나타나게 하려고, 그리고 먹이를 줄 다마고치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그 어떤 세대가 이토록 많은 것을 원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원할 게 이토록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비디오 게임을 하도 많이 해서 모든 것이 게임처럼 움직이길 원했다. 단순히 MTV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길 원했고, 가고 싶은 곳과 되고 싶은 모습으로 통하는 포털을 만들 듯이 뮤지션과 모델들의 포스터를 벽에 도배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갈 무렵, 우리는 원하고 또 원하다가 결국 인터넷이라는 괴물을 싸질러 놓기에 이른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가 그곳에 정착했을 무렵만 해도, 온라인이란 갈망하는 대상의 접속을 알리는 녹색 점을 지켜보기 위해 드나들던 어떠한 장소였다. 그러나 곧 온라인은 우리를 물리적 공간인 현실 세계로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피카츄를 잡으러 저수지 인근 공원으로 향하게 하거나, 일렉트릭 슬라이드 춤을 추러 시내로 모이게 했다. 어느 바에서는 음악이 돌연 중단된 사이, 바 위에 나타난 발챙이를 잡겠다며 누군가 나를 밀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바텐더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다. 집에서 지켜보던 매니저가 재생 목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음악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윽고 다른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인터넷은 우리를 통해 발화하기 시작했으며, 그 메시지는 '깨어나라'는 것이었다. 이 모든 현상은 단지 인식의 소산에 불과하다. 빛은 관측 방식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존재한다. 드레스의 색채가 청색 또는 백색으로 인지되는 것 또한 관측자의 시각에 기인한다. 관측이 실재를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세계는 개별적 정신에 의해 구축되는바,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갈구하는가?

내가 바란 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매 순간 숨 가쁘게 일하지 않아도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집, 더 나아가 언젠가는 부모님도 끝내 가질 수 없었던 내 집을 마련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집세는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치솟았다. 돌파구를 찾으려 머리를 굴리며 이리저리 잔뜩 계산기를 두드려 보던 중, 중고 거래 사이트인 크레이그스리스트에서 노란색 미니 스쿨버스 매물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격은 딱 두 달 치 월세 수준이었고, 그것만 사면 앞으로는 기름값과 수리비 외엔 돈 들 일이 없어 보였다. 나는 곧장 바로 달려가 사랑하는 연인 B에게 그 광고를 보여주었다. 우리 둘 다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마침 친구 집에서 파티가 열릴 참이어서, 판매자에게는 다음 날 아침에 연락하기로 했다. 노트북을 챙겨 배낭 지퍼를 닫은 뒤 바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우리는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눈을 의심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놀랍게도 인터넷 속 화면에 떠 있던 그 노란색 미니 스쿨버스가 바로 앞 길가에 거짓말처럼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정말로 그걸 거기다 주차해 뒀을 리는 없었다.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염원이 그것을 나타나게 한 걸까? 그을린 피부에 플리스 재킷을 입은 호주인 커플이 버스 안에 직접 시공한 딱딱한 합판 표면들에 둘러싸인 채,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 보려 애썼다. 그이가 내내 얼마나 가까이 있을지 보였고, 그건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

이런 징조는 매일 오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호주인들에게 말했다. "아마 저희가 이 스쿨버스를 살 것 같아요. 확답은 내일 문자로 드릴게요."

"글쎄요," 남자가 말했다. "하룻밤 자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

파티에 도착한 우리는 낮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을 그려보았다. 편한 플리스 옷을 입고 친구들 아파트 앞에 차를 댄 뒤, 샤워할 때만 집 안으로 쏙 들어오는 삶을 말이다. 집주인 중 한 명인 S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우리는 그가 과거에 몇 년 동안 차박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그 기억을 꺼내어 주었다. 손님들이 더 도착하자 S는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러고는 양팔을 길게 뻗어 우리가 앉은 바 의자 맞은편의 주방 아일랜드 조리대에 몸을 기댄 채 입을 열었다. "그거 재밌지. 정말 끝내주는 시간일 거야. 다 쓰러져 가는 동네 구석진 곳을 돼지우리 같은 꼴로 기어 다니고, 며칠 동안 똑같은 옷을 입은 채 사방을 유랑하며 소소한 모험을 즐기는 건 참 멋진 일이지. 근데 하나만 물어보자. 너희 아침에 커피 마시고 나서 볼일 마려울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알기나 하냐고. 그런 걸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나 있었어? 매번 신호가 올 때마다 카페 찾아 삼만리 할 생각이야? 언제나 카페가 널려 있는 곳에만 머물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겨우 60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눈 마주치며 양동이에 대고 볼일을 볼 자신은 있고? 그게 정말 너희가 꿈꾸던 삶 맞아?"

다음 날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고 15분쯤 지났을 때 화장실로 향하던 나는 그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배설물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그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 사랑하는 사람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볼일을 보고 그 오물을 함께 치울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거부감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만약 당시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때까지 우리의 몸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혼을 담은 마법 같은 쾌락의 생성기였다고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의 몸이 결국 배설을 하고, 그리하여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면, 이는 우리가 써 내려온 사랑이라는 이야기의 종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아침, B 역시 화장실이 주는 안락함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버스를 포기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공동 작업들과 당장 눈앞에 닥친 일정과 의무들이 발목을 잡았고, 무엇보다 곁을 떠나기엔 너무나 소중한 우리만의 공동체 친구들이 눈에 밟혔다. 게다가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그가 음악을 만들고 내가 책을 쓰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어찌 됐든, 우리는 그 스쿨버스를 사지 않았다.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인류 문명을 규정짓는 핵심적인 난제였다. 티모시 모턴은 자크 라캉이 그렇게 썼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모턴은 인류 문명에 관한 그 부분에 동의하지 않으며,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축사 안의 알파카들이 줄을 서서, 그들이 공동으로 지정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석진 곳에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며 배설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얼마나 더 특별한지를 정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구 철학의 이러한 집착은 지극히 소모적이다. 그리고 치명적이다. 이는 대개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하며, 우리 중 일부가 타인보다 더 인간답다는 식의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어내는 수단일 뿐이다.

금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배설물은 퇴비화되어 비료로서 막대한 가치를 지니기 전까지, 수개월 동안 온갖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설령 금기가 이를 가로막지 않는 곳이라 해도, 그 오물을 누가 만지고 옮길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배설물을 어느 손으로 닦을지, 어느 방향을 향할지, 텐트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뜨릴지, 캠프 바람의 하류 어디쯤에 둘 것인지에 관해 정교한 규칙들을 만들어왔다. 이는 단순히 청결과 미학의 양식을 넘어, 오물을 어디에 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리적 구획과 우아한 해결책들을 탄생시켰다. 4천 년 전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었던 고대 대도시 모헨조다로에서는 집 벽 안에 화장실을 설치해 하수도로 바로 연결되게 했다. 수 세기 동안 황제가 통치하던 중국에서는 가정의 배설물을 수거해 들판에 뿌렸는데, 이를 “night soil”이라 불렀다. 반면 근대 초기의 유럽은 가히 더 야만적이었다. 1539년 파리에서 공포된 시령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용변을 보는 것을 금지하고 실내에서 해결하도록 명시했다. 이후 사람들은 집 안의 변통을 시내나 센강에 버려 하류로 흘려보냈는데, 이는 서구 특유의 사고방식, 즉 “하류로 떠나보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차박을 포기했을 당시, 나는 고대 도시 모헨조다로의 하수도나 인분을 거름으로 쓰던 역사 따위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파리의 행정 명령이나 대대로 이어져 온 수천 년 묵은 위생 금기들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면, 혹은 내 몸이 만들어낸 오물은 어딘가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믿도록 철저히 길들여진 나의 교육 배경을 의식하지 못했다면, 그리하여 그저 나라는 한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연인과의 낭만적인 사랑만을 꿈꿀 수 있었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새하얀 도자기 변기 위에 앉아 있었던 덕분이다. 수 리터의 물이 오물을 시원하게 쓸어 내린 뒤, 굽어진 배관 바닥에 손바닥만 한 양의 물을 남겨두어 온 동네의 오물이 뒤섞여 구르는 지하 하수구의 악취를 완벽히 차단해 주는 마법 같은 'U자 트랩' 덕분이었다. 이 U자 트랩을 거치고 나면, '배설'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담지 않아도 되도록 이름 붙여진 은밀한 방들—'엘 세르비시오(스페인어로 서비스)', '오테라이(일본어로 손 씻기)', '레스트룸(휴게소)', '쇼찰라이(힌디어로 정화의 장소)', '배쓰룸(욕실)', 'WC(워터 클로짓)'—안에서, 오물이라는 물질은 물론이고 그 냄새와 불쾌한 기억까지도 마치 존재한 적 없는 역사처럼 깔끔하게 지워진다. 철학자 티모시 모턴의 주장처럼, U자 트랩이 부리는 이 절묘한 속임수는 결국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오물이 '어딘가 먼 곳으로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는 거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셈이다.

잠시 후 목련 나무 아래 탁자에서 나는 건축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5갤런짜리 양동이를 이용한 퇴비식 변기가 있어요."

그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함께 밴에서 생활하는 동료가 말했다. "사실 웬만해서는 쓸 일이 없어요. 노지에서 화장실 문제 해결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가 전자를 말하고 내가 후자를 말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모르겠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B는 부모님을 뵙기로 했고, 나는 도시 남쪽에 있는 친구 J의 집에 가기로 했고 그 집 앞 길가에 주차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냈다는 사실을 J에게 알려야만 했다. 나는 목련 나무 아래에서 대화가 오가는 수영장 반대편 데크 모퉁이에서 J에게 전화를 걸어, 풀 파티로부터 J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세부 방안을 논의했다. J는 뜨거운 밴 안에서 이틀이나 사흘 정도 잠을 자고 나면 코로나 검사 결과가 충분히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음성이 나온다면, 밤에는 마스크를 쓴 채 실내로 들어가 에어컨이 가동되는 위층 침실에서 잠을 자도 좋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집 앞 테라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설령 음성이 나온다고 해도 난 그냥 밴에서 지내는 게 속 편해." 내가 말했다.

"그건 안 되지." J가 받아쳤다.

"나 진짜 밴 체질이라니까. 필요한 건 거기 다 있어."

"그렇겠지." J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집 아래층 화장실에는 새로 들여놓은 끝내주게 좋은 일본식 비데가 있는걸."

스쿨버스가 마치 인터넷 화면을 뚫고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보였던 그 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결국 밴을 장만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내가 살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벽지에서 온종일 간호가 필요한 처지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B는 부상을 입어 직장을 잃었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걸핏하면 침수가 됐다. 여기에 개인적인 사정들까지 겹치면서 우리 두 사람의 정신은 그야말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불과 몇 주 만에 우리는 대출을 받아 밴을 구입한 뒤 어머니의 헛간 안에 주차해 두었고, 생애 첫 신용카드를 긁어가며 차량 내부를 겨우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했다. 집 안에서 나는 어머니의 재활을 도우며, 농장을 정리하고 요양 시설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동시에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시간당 8달러에서 10달러 남짓한 급여를 주는 녹취록 타이핑 일감을 따내고자 전 세계 사람들과 경쟁하며 온라인으로 일하는 법을 익혀 나갔다. 어머니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을 때, B와 나는 농장 주변을 돌거나 시골길을 달리며 잠깐씩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전형적인 미국식 자동차 여행을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었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마치 꽉 쥔 주먹처럼 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사막을 본 적이 없었지만, 어느덧 그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사막은 결코 단조로운 베이지색 모노크롬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다채로운 색채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일몰의 장관은 어떠한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감히 사진으로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진정 모노크롬에 가까운 것은 오히려 숲이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도처가 대동소이한 장소였으며, 대형마트마다 설치된 동일한 형광등 조명의 화장실이 이를 방증했다. 우리는 그 주차장에 머물렀는데, 이는 더 이상 인터넷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물이나 햇빛과도 같아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며칠을 소비하며 찾아 헤매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주차가 무료인 국립 공원에는 인터넷이 전무했기에, 나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필사(transcribe)할 오디오 파일과 삼림 도로 지도를 내려받았다. 노트북을 충전하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패널에 햇빛이 비칠 수 있는 개활지를 찾아야 하며, 그러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삼림 속에 장기간 체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휴대폰 신호가 안 잡히면 날씨를 확인할 수 없으니, 하늘을 살피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산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서부 해안에서 B는 창고 내 아마존 반품 상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어느 산업 단지의 거리 위에서 나는 밴과 혼연일체가 된 채 마치 문어처럼 변해갔다. 한 손으로는 프로판 조절 손잡이에 손을 뻗고, 다른 손으로는 도마를 옮겨 싱크대 위에 놓았으며, 합판을 들어 올려 조리대로 삼고 위에 있는 케이블에 행주를 걸어두는 한편, 공회전하는 대형 트럭 소리와 전사 작업 중인 음성 파일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4개월 후 우리는 결별했고, 밴을 교대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기에 아포칼립스 조항, 즉 합의된 만남의 장소를 정해 두었다. 그해 겨울 어느 예술가 레지던시에서 사람들이 어디 출신인지 물었을 때,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인스타그램에 비친 화려한 모습도, 그 반대의 경우도 아니었으며, 자유와 해방의 꿈도, 비극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J가 초록색 립스틱을 바르고 플레이보이 티셔츠를 입은 채 레지던시에 도착했다. 내가 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자, J는 부모님이 스쿨버스에서 살았다고 답하며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블랙 팬서였던 J의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백인 히피인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해치백 차량에 기대어 있었다. J는 나보다 어렸지만 더 많은 정보를 가진 듯 보였다. J 역시 방랑의 세월을 보낸 바 있었다. 내가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눈 속을 걸으며 무언가 붕괴와 같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리고 내가 기본적인 배관 및 전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태양 에너지를 얻는 법을 아는 것, 그리고 J가 희망을 아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J는 십 대 시절 폭풍(the Storm)을 겪으며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조직화하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의 일이다. 나는 농장에서 밴 생활을 하며 면역력이 약한 어머니께 필요한 물건들을 문 밖에 놓아드리고, 테라스에서 어머니를 뵙곤 했다. 그곳은 이미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어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이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며, 병원이 가득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전염병은 마치 인식의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소셜 미디어를 끊었음에도 나는 휴대폰을 통해 세상을 마주했다. 친구들은 육아, 업무, 질병, 분노, 돌봄, 그리고 시위에 관한 문자들을 보내왔다. 머리 위를 지나는 헬리콥터, 통행금지령, 그리고 경찰들. 어느 주에 J는 자신의 동네에서 일곱 명이 사망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또 다른 주에는 뉴올리언스에 있는 아버지 쪽 친척들을 포함해 가족 중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기가 최루가스로 가득 차 집 밖을 나설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J는 실내에서 마치 군인처럼 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자신이 슬픔과 공포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나는 수개월 동안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J는 시위자들이 최루가스에 노출된 눈을 씻어낼 수 있도록 테라스에 우유를 몇 갤런씩 내다 놓고 있었다.

그해 여러 집의 현관과 뒷마당을 방문하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나라 사이를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 각 가정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저마다의 세계관 속에 고립된 채 자신들만의 의식을 만들어 냈으며, 불과 몇 마일 혹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지 않기로 결정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믿음과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괴리감 사이에는 ‘부재’라는 허구가 존재한다. 우리 사이를 오가는 유무형의 실체가 ‘서로를 인식하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의 고막이 세상 모든 풍경의 소리와 도처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 심지어 우리가 기억 저편으로 폐기하려 했던 것들의 비명에까지 공명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러하다. 우리의 신체가 상황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하고, 지인들이 우리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적들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보고 있지 않는 한, 그리하여 우리가 거대한 고독을 선택할 때 흘리는 그 눈물겨운 허위가 곧 ‘소외’의 본질이 아닌 한, 우리는 결코 그 허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풍경은 각기 다른 진동을 지닌다. 아무런 잡념 없이 만족감에 젖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북쪽으로 차를 몰던 중, 문득 나의 휴대전화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이 도청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안일해져 있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내용들을 검색하는 데 그것을 사용해 왔기에, 순간 극심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때 고속도로 변에 세워진 갈색 금속 표지판이 내가 현재 국가안보국(NSA)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캔자스를 횡단할 당시, 고속도로 옆으로 수천 마리의 가축이 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광대한 사육장이 나타나기 전부터 우리는 설명하기 힘든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광경을 목격하기도 전에 이미 그 공포의 진동을 감지했던 우리는 미주리 주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울며 질주했다. 만약 그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토록 거대한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임을 통감하며 말이다.

자신이 도시의 어느 구역에 있는지 알기 위해 굳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필 필요조차 없다. 어느 지역은 도로의 파인 구멍들이 모두 메워져 있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시선을 계속 길바닥에 고정해야만 한다. 길을 살피며 걸어야 하는 지역은 많은 것들이 더 비싸다. 화장실 이용료로 25센트를 지불해야 할 확률이 더 높으며, 이러한 곳에서는 식료품점의 선택지가 적고 때로는 식품 가격이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쇼핑카트 이용을 위해 25센트의 보증금을 맡겨야 할 수도 있다. 신용 대출 비용이 더 막대하고 임대료는 불균형적으로 높으며 인터넷 접속조차 더 어려운 이 구역이야말로 오히려 더 안전한 곳이다. 도로의 파인 구멍들이 수리된 지역은 차량 내 거주를 금지하는 시 조례가 더욱 엄격하게 집행되며,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도 더 높기 때문이다.

건축가와 부동산 중개업자의 집에 머무는 동안, 역사적으로 흑인 거주지였던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백인 동네인 인근 지역에서는 세금을 자신들끼리만 쓰기 위해 분리 독립하겠다는 제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미국의 많은 도시가 그러하듯, 이 도시 역시 재력가들이 고지대와 상류에 모여 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비록 U자형 트랩이 도입되면서 집집마다 모인 오물 수거함을 강에 직접 비우던 관습은 사라졌고 하수관도 강이 아닌 하수 처리장으로 연결되지만, 기상 이변으로 인한 범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 인근 수로로 오물이 넘쳐나게 되는데, 미국 본토 지형의 절반 가까이가 결국 동일한 유역으로 물을 뱉어내기 마련이다. 설령 북부 지역이 자신들만큼은 예외라고 고집할지라도, 그들의 오물은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으로 흘러내려 결국 매년 봄 제방 너머로 수위가 다시 차오르는 뉴올리언스에 도달하고 만다. 우리 중 누군가가 끝내 분리 독립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인간의 가장 사적인 행위가 남긴 결과물에서만큼은 우리는 이런 식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는 강물이 불어나는 곳에 산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렇지 않은 곳에 산다면 너무나 잊기 쉬운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이 실재하는지를 두고 온종일 논쟁을 벌일지라도, 집을 나서는 모든 이는 자신이 이 도시의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를 늘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6년 동안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어디서 어떻게 볼일을 볼 것인가는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평평한 지면을 찾는 일이었는데, 미국 전역을 통틀어 그러한 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포드 E-250 한 대가 호숫가 근처 우리 바로 앞쪽에 들어와 멈춰 섰다. 약 15도 경사면에 주차되었음에도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차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악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상적이었다. 차량에서의 생활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사진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진정한 숙면이라고 할 수 없다. 몸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밤새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잠에서 깨었을 때 예기치 못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기껏해야 얕은 잠에 불과하며, 며칠이 지나면 일종의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E-250 차량을 위쪽으로 몇 피트 옮기고 뒷바퀴 오른쪽 아래에 근처의 바윗덩어리를 괴어 놓았다면 거의 수평이 맞았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경사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하루 혹은 이틀 동안 그들이 밴 밖으로 나오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B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밖으로 나가 갈색 단발머리에 바랜 보라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창백한 안색의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B와 전력 시스템이나 무료 주차 공간을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밴 거주자 특유의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긴장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자신을 기본적으로 “숲속의 노움” 같은 존재라고 소개하며, 온종일 밴 안에서 일만 할 뿐 통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인을 초대했고, 이튿날 밤 모닥불 앞에서 호박색 에일을 들이켜며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흙탕에 밴이 빠졌던 경험 따위를 늘어놓던 중, 그 숲의 노움 같은 여인은 자신이 어떻게 밴에서 살게 되었는지 들려주었다. 팬데믹이 닥친 후 모든 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이어 근처의 쓰레기 수거함이, 급기야 공기 자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거리 아래쪽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 학자금 대출 상환액 때문에 감당조차 버거웠던 그 형편없는 콘도는 최루가스로 가득 차 있었고, 욕조에는 오수가 넘쳐났으며 변기에서는 오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7월경, 여인은 2,000달러를 주고 E-250을 구입해 자신과 패들보드를 위한 아늑한 보금자리를 그 안에 꾸몄다.

모닥불 가에서 보낸 그 밤은 참으로 다정하고도 정겨운 시간이었으며, 몇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여인에게 왜 하필 밴이었는지, 다른 방식은 고려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목소리를 낮추어 팬데믹이 닥치기 4년 전, 모든 것이 뒤바뀌었던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위해 투표하고 집으로 운전해 돌아가던 길에 다른 차량이 여인의 차를 들이받아 형체도 없이 찌그러뜨렸다고 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누군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여인은 큰 충격을 받았고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어서 여인은 경이로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사고 다음 날 깨어나 보니 제45대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거와 사고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여인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하나로 묶여버렸고, 삶의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뒤집히고 말았다. 그날은 역사의 분기점이었으며, 그 일 이후로 그 무엇도 여인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세상 전체가 비현실적으로 변해버렸을 때, 차라리 밴에서 생활하며 빚을 갚아 나가는 편이 나으리라는 판단이 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윽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듯 여인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불과 일주일 전 플로리다에서 매너티와 함께 패들보드를 타던 순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인은 어느 문학 잡지의 편집장이었고, 숲속에 밴을 대고 보낸 이틀 동안 그가 온통 몰두했던 일은 산더미처럼 쌓인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때 또 다른 엔진 소리가 숲속의 공터로 다가온다. 혹은 사막에서, 우리가 머무는 곳을 향해 덜컹거리며 다가오는 멀리 떨어진 차량의 아지랑이를 목격한다. 아, 이런. 누구일까? 그들은 휴가 중인(부유한) 이들인가, 아니면 그저 삶을 영위하는(가난한) 이들인가? 그들의 피부색은 어떠한가? 무장했는가? 그들은 선량한가?

이튿날이면 우리는 시속 10마일로 빨래판 같은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숲이나 사막으로 향할 것이고,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보며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저들은 휴가 중인가, 아니면 노숙 중인가? 무기를 소지했는가? 피부색은 어떠한가? 우리의 포드 트랜짓 카고 밴은 어떤 장소에서는 지저분하고 위협적이며, 분명 휴양객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얹은 하이탑 밴과 번호판을 본 다른 장소의 이들에게 우리는 천천히 진입하며 주변을 살피는 연안 지역의 엘리트 계층으로 비칠 것이다. 저 푸른 타프 아래에서 아예 살림을 차린 것인가? 꽤 오랫동안 머문 기색이다. 저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취할 작정인 걸까?

때로는 그곳에 있는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고, 음식과 맥주를 나누며, 일손을 돕고,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알고리즘과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지만, 결국 모두가 정부와 언론에 대해 불평할 방법을 찾아내며, 대화는 어느덧 모든 것이 언제부터 변했고 이토록 기이해졌는지, 그리고 반대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었는지를 혐오하는 문제로 흘러간다. 비록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었으나, 진단명과 대통령, 민주당과 날씨처럼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거대한 실체나 시뮬레이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모두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이제 함께 자리를 잡았으니, 다음 엔진 소리나 자갈길을 짓누르는 타이어 소리에 귀를 기울일 차례다. 그들은 너무 가까이 주차할 것인가? 그들은 가난하지만 실제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일까, 아니면 술에 취해 폭력적일까, 소란스러울까, 온라인에서 찾아내어 집착하며 긁어모은 온갖 장비를 갖추고 휴가를 즐기러 와 캠핑장을 젠트리피케이션하는 딜레탕트들일까, 아니면 우리가 휴가 중이 아니라 생활 중이라는 사실에 우리를 경계할까? 그들은 친절할까? 이런 식으로, 소위 대자연이라 불리는 그곳에서조차, 우리는 아메리카 합중국을 끊임없이 재창조한다.

그곳은 동네가 젠트리피케이션되기 전, J가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었던 아담한 2층 주택이었다. J는 몇 달 전 전화를 걸어와 지난여름 문자로 다 전하지 못했던 사정, 즉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집을 나서지 못했던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백신 임상 시험에 자원한 상태였는데, 모더나 측에서 이에 대해 외부로 발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는 것이다. 임상 시험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경찰에 붙잡히거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그랬노라고 했다. 나는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 집을 바라보다가, J에게 혹시 밴 안을 구경하고 싶은지 물었다. J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소파가 놓인 현관 포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목수였던 J의 남편이 오후에 와인 한 병을 비우고 까무룩 잠든 아내를 시원하게 해주려고 달아놓은 천장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포치에 걸린 무정부주의 깃발이 산들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가운데,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낮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 오후, J는 여덟 살 무렵 부모님을 따라 늪지 근처의 파티에 갔던 시절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한쪽에는 모닥불이 활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J는 어른들 틈에서 멀어져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게 되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질 즈음, 갑자기 발밑의 땅이 툭 꺼지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시커먼 진흙탕물이 J를 집어삼켰다. 수면이 머리 위를 완전히 덮어버렸고, J는 그렇게 죽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난 죽었었어.” J는 당시의 경험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 거대한 손이 J의 가녀린 손목을 움켜쥐었고, J의 아버지는 늪에서 J를 끌어올렸다.

그가 J를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J가 있지 않았을 그 현관에서, 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정말 상상이 가?" 우리는 J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가 느꼈을 그 공포는 거의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 가까워질수록 내 안의 무언가가 움츠러든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J는 방금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J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는 분명 제자리를 맴돌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고, 진흙탕이 움직이거나 거품이 이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그 몇 초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 것인가. 혹은 손전등을 비추어 J가 질식해가고 있는 바로 위에서 단단한 땅처럼 보이던 것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달려가 J를 구하기 위해 진흙 속으로 팔을 집어넣는 동안, 그 몇 초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 것인가.

내 피붙이나 다름없는 이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참담함, 나의 보살핌 아래 있던 이가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잔인한 공포는 어쩌면 사랑의 이면과도 같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가슴에 묻고 견뎌낼 수 있을까.

현관 포치에 앉아 J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모든 것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찰나의 순간이 있었음을, 그리하여 그를 결코 만나지 못했을 전혀 다른 삶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는 것은 실로 기묘하고도 경이로운 일이다. 임상 시험이 끝나고 J가 내게 전화를 걸어 자원했던 사실을 알렸을 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J는 그것이 딱히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저 그래야만 했다고. 팬데믹의 초입에 스스로 피험자가 되기로 결심한 행위가, 어쩌면 J에게는 진흙탕에 빠진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를 향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것과 같은 본능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만, J가 구하고자 했던 그 대상이 수억 명의 인류였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는 주거지를 상실하고, 이를 다시 확보하기 위한 자금 조달 수단마저 잃게 되는 과정이 기이할 정도로 쉽게 일어난다. 하층이나 중산층은 물론, 때로는 불리한 조건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떠안고 있는 상위 중산층일지라도 여러 악재가 동시에 겹치면 예외는 없다. 본인이나 부양가족의 의료 문제, 갑작스러운 임대료 인상, 몇 차례의 대출금 연체와 그에 따른 퇴거 조치, 그리고 예기치 못한 실직 같은 일들 말이다. 대개 한 가지 시련은 감내하고 두 가지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세 가지 악재가 연달아 겹치면 인간은 여지없이 낙오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단 몇 달만, 딱 1년만 버티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만약 차량 거주를 마지막 고육지책으로 삼는다면, 타인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공공연하게 생존하는 법이라는 험난한 학습 곡선을 넘어야만 한다. 차량 거주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법이기에, 이는 경찰이나 이웃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그리고 도처에 도사린 상대적인 위험 요소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이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위생 문제와 의복 관리의 곤란함, 구직 활동을 위한 인터넷과 전력의 부재는 물론, 각종 행정 절차를 통과하는 데 필수적인 예측 가능한 일정과 고정 주소지의 결여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궁여지책이 재기를 위한 관문이 아니라 끝없는 나락으로 통하는 통로에 불과하다면,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정신 건강상의 문제마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튿날, 모든 것을 처분하고 밴으로 이사할지를 두고 우리가 논쟁하던 날을 자주 반추하곤 한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상황이 더 나아졌을 수도 있었을지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선택이었으나, 동시에 선택이라 할 수도 없는—그저 사랑이었을 뿐인—결정이었다. 어머니 곁에서 보살펴드리기 위해, 한집에 살지는 않으면서도 그 주위를 맴돌기 위해 밴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고된 노동에 등이 휘어가던 B를 도시에서 벗어나게 하여 기타를 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 또한 그저 사랑이었다. 팬데믹이 닥쳤을 때, 병원들이 포화 상태가 되고 어머니가 겁에 질려 계실 무렵, 어느 농장에 차를 세우고 어머니께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드린 것은 결코 결단이 아니었다. 또한 몇 주 동안 사람 구경도 못한 친구들을 향해 차를 몰아 그들의 집 옆에 주차하고, 현관이나 뒷마당에 함께 앉아 있었던 것 역시 결단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갈색 소파 끝에 앉아 협상을 벌이는 내 모습과, 방 건너편 사무용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의자를 돌리고 있는 B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 당신은 더 행복해질까?"라고 묻는 소리를 듣고, B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어, 일이 어떻게 풀릴지 나도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아파트에서 강가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협상하고 논쟁하는 나 자신과 동행하며, 개입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서다. "하지 마. 소용없을 거야. 4개월 뒤면 너희는 헤어질 거고, 너는 그가 자신의 슬픈 사연을 품은 채 홀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따라 여행하도록 내버려 두게 될 거야. 곧 국유림이 폐쇄되고 캠핑장과 도시 및 고속도로변의 공공 화장실도 문을 닫을 거야. 너와 정치적 성향이 같은 사람들은 식료품을 닦기 시작하고 현관에서 정교한 소독 의식을 치를 텐데, 그런 차 안에서 네가 어떻게 그걸 감당하겠니? 수천 명, 나아가 수백만 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안, 가게에 가지 않으려고 통조림과 마른 국수로 연명하며 좁디좁은 공간에서 홀로 14일간의 격리를 반복해야 할 거야. 네가 어머니와 면역력이 약한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계속 찾아가기 위해 그토록 조심하는 그 역병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친척들과 현지인들이 사는 곳에서 말이야. 너는 네 의료보험(Medicaid)을 받아주지 않는 곳들을 주로 다니며 가스를 충전하고, 캠핑장 요금을 내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으며, 겨우 신호가 잡히는 곳에서 온라인으로 일해 캠핑장 자리 값보다 적은 돈을 벌게 될 거야. 그러다 연이율(APR)이 치솟고 월세도 오르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너도 빚더미에 앉아 보증금을 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게 될 거야. 서류상으로 네가 선량한 세입자임을 증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지. 나는 네게 화가 나. 너는 미국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신용카드 빚이 없다는 것과 머물 지붕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있잖아. 그런데 너는 지하실로 향하는 그 가파른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고도, 네가 늘 두려워했던 그 거대한 고독에 합류하지 않고도, 절반쯤 노숙자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백인이구나. 하지 마, 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너는 내 말을 믿지 않겠지. 이 모든 미래는 알고리즘이 네게 보내주지 않은, 불과 몇 블록 혹은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의 삶만큼이나 네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기억 속에서 너와 함께 몇 번이고 맴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너는 어머니를 향해 달려갈 것이고, B와 함께 그것을 하나의 모험으로 만들려 애쓸 테니까."

나는 지금 아파트에 머물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초기에는 이 공간이 태양의 궤적과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내부의 온도가 외부와 얼마나 무관하게 유지되는지에 당혹감을 느꼈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나는 전력이 언제나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기기들을 충전하기 위해 플러그를 꽂곤 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이 장소가 은폐를 위해 가설된 무대처럼 구축되었음을, 그리고 그 이면에 도사린 기괴한 기계 장치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물과 가스를 채집하여 건물 위로 끌어올리는 섬뜩한 뿌리 추출기들, 그리고 지표면 높이 솟은 거대한 금속 탑들 사이로 뻗어 나간 수액 주머니 같은 전선들이 보였다. 그 전선들은 수백만 년 전 서식했던 플랑크톤과 해양 생물들의 유해, 그리고 우리가 세계라 칭하는 지표 아래에서 석탄으로 구워진 숲들이 압력에 의해 변모하며 생성한 에너지를 발전소로부터 실어 나르고 있었다. 석유와 석탄이 형성되기까지는 수백만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으나, 건축물이라는 바이러스가 그 자원의 상당 부분을 채굴해 버리는 데에는 불과 한 세기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길어올 필요가 없었던 그 첫 샤워는 달랐다. 밴을 진흙탕에 빠뜨릴 법한 폭우에서나 보았던 수량과 속도로 쏟아지는 물이었다.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그 물은 나를 씻기고 부드럽게 감싸며 무한함을 속삭이다가 배수구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믿는다고 여기지 않는 구조물 안에 살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사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보살핌처럼 느껴지도록 조직되어 있었고, 이후 내가 용변을 보고 레버를 눌렀을 때 배관을 타고 씻겨 내려가는 것을 보며, 나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나마 '어딘가 먼 곳'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차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어느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에 대해서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이 불과 한 블록 거리에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산속 깊은 숲에서 역병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건조 식품을 신용카드로 잔뜩 긁어 사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상의 규칙들도 자꾸만 엉뚱한 방식으로 삐걱거렸다. 실내라면 나초를 오븐이나 브로일러에 구워 먹어야 마땅했으나, 나는 이를 망각한 채 깊이 고민하다가 마치 캠프파이어라도 피운 듯 가스레인지 위 프라이팬에 나초를 굽곤 했다. 아파트 안에 엄연히 샤워실이 있는데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샤워하는 걸 기억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아주 오랫동안 머물곤 했지만 말이다. 주 북부의 숲속을 친구들과 산책할 때면 방금 곰이 지나갔다는 냄새를 알아챌 수 있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의 충성심은 오롯이 곰에게, 그리고 예전에는 그 쪼아대는 입질로 나를 불안하게 했던 수영장의 작은 물고기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성별을 상실했다. 아무도 당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 성별이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하지만 도시로 나가는 순간, 다시금 “그녀, 그녀, 그녀”라는 수식어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매한가지였다. 과거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일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듯 역행하며 움직이며, 그저 생존하는 것. 이곳에서 감히 무언가를 쟁취하려 드는 것은 실로 외설적인 일이 될 터였다.

단 하나의 작은 방에 불과하나, 머리 위 천장까지는 아득한 공간이 펼쳐져 있으며 거리 쪽으로는 프랑스식 문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격자창들이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창가에 책상을 배치하고, 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인간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마도 낯선 이들이겠으나, 정작 이방인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직감한다.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야 마땅하리라. 차량 안에서의 삶에 대한 기억이 이미 이토록 희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나는 은둔하는 습성을 떨쳐내지 못하는 걸까?

창밖에는 B가 밴을 주차해 둔 채 머물고 있다. 친구와 줌(Zoom)으로 통화를 하던 중, 친구가 내가 왜 이토록 불안해 보이는지 묻는다. 나는 B가 나에게 끔찍한 문자들을 보내고 있다고, 세상 아무도 자기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집 안으로 들어와 씻으려 하지는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나는 B에게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문자를 보낸다. 곧바로 답장이 온다. “이 동네는 자유 국가야!” 그는 불과 40피트 거리에 있고, 나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는 두렵고 외로우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지쳐 있고 몹시 취약해진 상태다. 비록 이토록 가까이 살고 있음에도 우리 사이의 격차는 너무나도 거대하다. 그의 눈빛이 아무리 섬뜩할지라도 차라리 그가 이 안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내 친구가 B의 행동이 너무 심하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조언할 때, 나는 친구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나는 그가 왜 자제력을 잃어가는지 안다. 그러니까 내 말은—마치 욕설처럼 내뱉게 되는 말이지만—그는 노숙자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바는, 우리 사이에 그토록 거대한 상실을 초래할 만큼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함께 학문을 탐구하며 공유했던 그 지밀한 친밀함, 그리고 몰려오는 고난에 맞서기 위해 짜내었던 우리만의 독창적인 방식들 말이다. 이제 나는 이 안온한 내부에 유폐되어 있고, 그는 저 거친 외부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일전에 우리는 사막에 머물렀는데, 하루 이틀 정도 고열에 시달리더니 온몸에 가려운 발진이 돋고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응급실은 모두 만원이었고 내게는 보험조차 없었기에, B는 “글쎄, 우리끼리 해결해 봐야겠네”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 흉내를 내며 매일 인내심 있게 나를 진찰했고, 베이킹소다 반죽과 선풍기, 그리고 약 대신 작은 스모어를 활용한 치료법을 시행했다. 종기가 끔찍하고 고름이 가득 찬 악마의 눈처럼 변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조차, 그의 눈빛만 봐서는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조금 나아진 것 같네”라고 말해주었다. “회복하느라 애쓰고 있어.”

하지만 어느 날,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져 온몸의 살가죽을 전부 벗겨내고 싶을 만큼 괴로움이 나를 짓눌렀다. 우리는 거대한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벼랑 끝 바위 지대에 있었고, B는 나를 해가 잘 드는 바위 위에 똑바로 눕혔다. 그러고는 밴에서 물통을 가져와 대접에 물을 따르더니 내 머리를 뒤로 다정하게 젖혔다. “물에 집중해 봐.” 그가 말했다. 온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했으나, 내 머리 위로 아낌없이 쏟아지는 이 시원한 물줄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세상에는 오직 그 맑은 감각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어떠한 판단이나 수치심, 조바심도 없는 온전한 보살핌.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기색조차 없는 순수한 마음. 그리고 사회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만의 약을 발명해내고야 마는 그 지밀한 친밀함 말이다.

그 건축가가 밴 안으로 들어왔을 때, 혹여나 불쾌한 냄새라도 날까 서둘러 청소하던 기억과 그가 건축가 특유의 예리한 안목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모습, 그리고 우리가 훌륭하게 해냈다는 그의 찬사가 지녔던 무게가 여전히 생생하다. 또한 뉴욕주 북부의 어느 밤, J가 밴으로 찾아와 나와 함께 잠을 청했을 때, 우리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로 할지도 모를 기술들을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깊은 자부심을 느꼈는지 모른다. 폐자재로 쓸 만한 물건을 뚝딱 만들어내고, 급수 시스템과 가구의 쓰임새를 새로이 정립하며, 태양광으로 가전제품을 가동하는 그런 생존 기술들 말이다. J는 밴 안으로 들어서며 안도하는 기색이었으나, 퇴비 변기만큼은 차마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J는 밖으로 나가 어느 교회의 계단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이해했어.”

J는 작가였기에, 나는 J의 아버지가 늪에 빠진 그를 구해낸 일화를 글로 써도 괜찮을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일은 J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고, 오롯이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탄을 만났던 그날 밤 이야기 말이야?" J가 되물었다.

"뭐라고?"

"사탄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캠프파이어를 벗어나 혼자 걸어 들어갔을 때 말이야."

"그 얘긴 나한테 안 해줬잖아." 내가 말했다. "난 그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단 말이야. 솔직히 이 내용을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감도 안 와. 이건 네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는 통찰을 담은 글이란 말이지."

"그 말도 맞아. 그러니까 네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써도 돼." J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날 저 어둠 속으로 불러낸 건 분명 사탄이었어. 날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려 했던 게 틀림없다고."

그러니 어쩌면 당신은 훗날 미국의 어느 문학 작품 속에서, 이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대양을 떠돌고 있으며, 수감자들은 우리의 위선을 똑똑히 간파하고 있다. 학살당한 이들의 영혼이 우리를 망령처럼 뒤쫓기를 고대하기라도 하듯, 고래들은 요트를 습격한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구식 변기의 물을 내리며 소비했을 이천 갤런의 물보다, 인공지능이 끝없이 들이켜는 막대한 수자원과 서버 팜이 들어선 입지의 비정함에 더 깊은 경악을 느낀다. 티모시 모턴의 말을 빌리자면, 무책임하게 버려두어도 괜찮은 ‘저 멀리’라는 허구가 종말을 고한 이 시대에, 자기만족적 환각이 아닌 진정한 윤리적 계산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요즈음 나는 악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한다. 이와 더불어, J의 아버지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 모습 또한 여전히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내 피붙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위험에 처한 그를 향해 발을 내디디고 손을 뻗는 행위는 애초에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본능적이고도 숭고한 헌신이다. 거기에는 이성적인 사고나 신념이 개입하기 이전의, 즉 구체적인 방책이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실천적 책임감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듯이, 타인을 돌볼 때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슬픔을 회피하고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사랑이 부재하는 세계 속에서 그저 연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무한한 아파트 인터넷 속에서, 나는 시카고의 십 대들이 등교 전 차를 몰고 다니며 서행하는 밴을 추적하고, 번호판을 기록하고, 위치를 문자로 전송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는 다른 이들이 도착하여 목격하고, 촬영하고, 이름을 기록하고 전화번호를 문서화하며, 사람들이 끌려가기 전에 공개적으로 사실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는 뉴욕에서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바리케이드처럼 늘어선 과일 수레와 푸드 트럭들. 밴을 에워싼 인간 사슬들까지도.

그들에게서 우리는 외면하는 대신 오히려 마주하며 달려가는 사랑을 목도한다. 미국 성인의 5분의 1에 달하는 무급 간병인들, 단지 타인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스스로 빚을 지고, 공과금을 체납하며, 돈을 빌리면서도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마주함의 실체를 본다. 백신 임상 시험장으로 향하는 J와 현관에 놓여 있던 우유 상자들, 봉쇄 기간 중에도 길 위의 이들을 위해 열려 있는 화장실과 안전한 주차 공간의 지도를 만들었던 이들의 다정한 보살핌, 그리고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지 못해 고립되는 일이 없도록 아파트 건물 전체를 조직했던 M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마주하며 달려가는 사랑을 본다. 또한 며칠 전, 다른 이들이 사고를 구경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 때 쓰러진 보행자를 향해 무모하게도 4차선 도로로 뛰어든 B가 있었다. 그는 도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저 그 존재를 향해 온몸으로 달려가 달리는 차들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 산업 단지 주변을 천천히 자전거로 돌며 단속 승합차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을 감시하고, 3층 연립주택에서 “그들이 왔다”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현장을 촬영하고, 스페인어로 권리를 낭독하며 공권력의 횡포를 기록하고 추적하는 이들. 그들은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마주하며 달려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외면’이라는 안일한 허구에 맞서 서서, 이 거대한 고독에서 연대하여 벗어날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700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류 미비자, 비백인, 트랜스젠더, 노숙인, 학자금 대출 이용자, 그리고 메디케이드와 푸드 스탬프 수혜자들을 축출하려는 행정부에 항의할 때, 대통령이라는 자가 하는 짓이 어떻게 고작 왕관과 비행복 차림의 자신이 전투기를 몰고 시위대 위를 비행하며 길고 갈색의 끈적한 똥물을 그들에게 퍼붓는 모습이 담긴, 영화 '탑건'의 삽입곡 "Danger Zone"이 흐르는 AI 영상을 리트윗하는 것뿐이란 말인가?

글쎄, 차 안에서 유폐되어 지내던 당시에는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으나, 막상 이 주차장에 서니 모든 것이 이토록 선명히 떠오른다.

생리적인 배설을 참아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적절한 장소가 마땅치 않거나, 혹은 아침이 밝아 주차장을 가로질러 대형 마트 화장실의 시린 형광등 불빛 아래에 당도할 때까지 기다리고자 한다면, 수 시간 혹은 이틀 정도까지도 배변을 참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결합’이라 일컬으며, 마침내 이루어지는 그 행위를 ‘정점’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처럼 서로의 오물까지 함께 감당해내는 것은, 사랑이라는 서사의 파국이나 종결이 결코 아니다.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고, 상대방에게는 머리 위로 베개를 깊숙이 덮으라고 말하라.

우리는 배설을 위해 구덩이를 파는 방식을 고안해냈고, 이를 프래킹(fracking)이라 명명했다. 사막의 지표면은 가옥의 바닥만큼이나 견고할 수 있다. 그 위에 물을 붓고 삽으로 내리친 뒤, 다시 물을 붓고 내리치며 파내려가라. 이는 고된 노동이며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나,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은 실로 지대하다.

삼림 지대에서는 모든 수원으로부터 일흔 걸음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곰이나 등산객의 동태를 살피며 최소 6인치 깊이의 부드러운 흙에 배설용 구덩이를 파라. 물티슈를 사용하되, 이는 반드시 봉투에 담아 추후 폐기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들을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행위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본연에 충실한 감각을 선사한다.

어머니의 농장에서 나는 밴 내부에 직접 제작한 퇴비 변기에 볼일을 보는데, 피트모스와 나무 대팻밥으로 만든 덮개를 사용한다. 몇 주마다 한 번씩 정원에서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수 피트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그것을 묻으면, 6개월이 지나 그곳은 비옥한 토양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쨌든, 이것이 우리가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당신은 당신의 오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 Harper's Magazine (2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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