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어 사전트의 숨겨진 영감 (번역)
Ignacio Darnaude 「John Singer Sargent’s Hidden Inspiration」
이 글은 당대 상류층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 초상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와 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뮤즈였던 토머스 맥켈러 사이에 얽힌,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피렌체에서 자란 사전트는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지만, 보스턴을 중심으로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사생활을 극도로 감추었던 인물로,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인터뷰나 일기도 남기지 않았으며 자서전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동성애자였다면, 당시 사회 분위기상 결코 이를 드러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친했던 소설가 헨리 제임스처럼 '골수 독신주의자'였던 사전트는 한때 오스카 와일드의 이웃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와일드의 재판이 남긴 그늘 속에서 살았는데, 이 재판은 예술가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전트는 대중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계산하며, 드러냄과 감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밀당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친밀하고 관능적이며, 관음증적인 시선이 담긴 남성 누드 드로잉 수십 점이 발견되면서 그의 비밀스러운 삶도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이 활자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81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4년 전,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한 큐레이터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모델 토머스 맥켈러(Thomas McKeller, 1890~1962)를 그린 사전트의 친필 서명 목탄 습작 9점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 놀라운 발견을 계기로 지난해 이 미술관에서는 《보스턴의 아폴로: 토머스 맥켈러와 존 싱어 사전트》라는 기념비적인 전시가 열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사전트의 대표작인 〈마담 X(Madame X)〉처럼 경이로운 초상화들이 익숙하지만,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맥켈러의 파격적인 누드 초상화는 미술관을 찾은 수많은 관람객이 사전트에게 품고 있던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1916년, 상류층 전담 초상화가라는 고정된 이미지에 지쳐 있던 사전트는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의 로툰다와 대계단에 들어설 벽화 작가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예술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이 벽화 작업을 통해 사전트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공공의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고, 고전과 종교, 신화를 아우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남긴 걸작들처럼, 관능적인 남성 누드를 묘사할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이 되어주었습니다.
당시 예순이었던 사전트는 자신이 묵던 고급 호텔에서 다부진 체격을 가진 26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엘리베이터 안내원 토머스 맥켈러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사전트는 그에게 "그대의 체격은 예술적 가치가 있다"며 모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고, 맥켈러는 그 후 사전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그의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맥켈러의 사진은 없지만, 그가 사전트의 벽화 속에서 한없이 하얀 대리석빛 피부를 가진 남신과 여신들로 탈바꿈하기 위해 누드 모델로 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에로스, 가니메데스, 그리고 곱슬거리는 금발을 가진 아폴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전시 도록에 나와 있듯 사전트의 벽화 속에서 맥켈러의 인종적 특징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사전트는 여러 벽화에 맥켈러 특유의 비대칭적인 왼쪽 젖꼭지를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그 모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
인종 차별(합법적인 분리 배척은 아니었을지라도)이 만연하던 당시 보스턴에서 유명 백인 화가와 흑인 모델의 관계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맥켈러는 사전트의 잔심부름도 도맡아 했는데, 한번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자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를 품에 안고 화가의 작업실까지 옮기기도 했습니다. 사전트는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그 흑인(darkey) 모델에게 내가 찾고 있다고 전해주게. 그 친구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겠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맥켈러는 사전트에게 거대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지만 하루에 고작 몇 달러밖에 받지 못한 반면, 사전트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4만 달러(약 5,300만 원)를 벽화 대가로 받았습니다. 화가와 모델 사이에 흐르는 이 껄끄러운 인종적 역학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맥켈러는 기숙사에서 흑인 학생들을 쫓아냈던 하버드 대학교 총장의 몸을 그릴 때도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벽화 작업을 하던 어느 시점, 사전트는 맥켈러를 모델로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림 속 맥켈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쿠션 위에 앉아 파격적인 자세(그는 파트타임 곡예사로도 활동했습니다)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리는 넓게 벌어져 성기가 시선의 중심에 놓이고, 두 손은 등 뒤로 묶인 듯한 모습입니다. 사전트는 맥켈러의 황금빛 갈색 피부와 근육, 목젖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선명하게 담아냈으며, 황홀경에 빠져 고개를 살짝 젖힌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이는 잠깐 그린 스케치나 가벼운 초상화가 아니며, 습작이라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고 완성도 또한 높습니다. 사전트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더욱 놀라운 이유로 신화나 서사적인 명분이 전혀 없다는 점을 꼽습니다. 벽화 속 그 어떤 장면과도 연결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전트가 초상화 의뢰를 일절 거절하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전트가 남긴 유일한 대형 누드화이자 그의 예술 커리어에서 가장 위대한 초상화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만약 모델이 백인이었다면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흑인 모델을 기용했기에 당시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일종의 '이국취향(exoticism)'으로 포장될 수 있었습니다. 사전트의 작품 중 가장 절절하고 아름다운 걸작이었음에도 그는 이를 대중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작업실에 자랑스럽게 걸어두었고, 그가 사망한 뒤 유족인 누이들은 이 그림을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이 그림은 1986년 보스턴 미술관이 인수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왔습니다.
사전트 연구의 권위자인 트레버 페어브라더(Trevor Fairbrother)는 이 그림을 보고 사전트가 동성애자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전트의 대외적인 커리어와 억압된 성적 지향 사이의 갈등이 그의 예술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핵심"이라며, "이 갈등은 수많은 전기 작가들이 그에게 붙인 '일에 수녀처럼 살다 간 독신주의자'라는 수식어보다 그의 작품을 훨씬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맡겼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자신과 인종이 다른 남성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었으며 특히 관광객의 성적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했던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들을 선호했습니다. 화가 자크 에밀 블랑슈(Jacques-Émile Blanche)는 "파리와 베네치아에서 사전트가 즐긴 동성애 생활은 그야말로 스캔들 자체였다. 그는 광적인 남색가였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맥켈러는 결혼을 했으나 자녀는 없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의 종질녀는 맥켈러가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던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을 떠나 보스턴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족 안에서조차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금기였다"고 회상했습니다.
맥켈러는 자신이 영감을 준 벽화의 제막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피부색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전트가 세상을 떠난 날, 그는 사전트의 에이전트에게 조의를 표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맥켈러의 유일한 인터뷰 기록에서 그는 "아틀라스 벽화에 나온 몸이 바로 내 몸이었다"며 자랑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사전트가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이 편지와 서류를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맥켈러가 단순한 모델이었는지 혹은 두 사람이 은밀한 연인 관계였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동성애 관계를 입증할 문서적 증거가 없어 사전트의 성적 지향은 오늘날까지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분명한 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벽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와 〈헤라클레스와 히드라〉는 동성애라는 정체성으로 고민하던 그의 내면적 투쟁을 담은 은유로 쉽게 해석될 수 있으며, 맥켈러를 그린 다정한 초상화는 그의 뮤즈에게 보낸 영원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러브레터로 남을 것입니다.
— The Gay & Lesbian Review (September-October 2021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