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시나리오 수정 전문가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은 방법 (번역)

How a Script Doctor Found His Own Voice — The New Yorker (2023.12.25)

By Patrick Radden Keefe

스콧 프랭크가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 배리는 작은 세스나 경비행기를 한 대 샀다. 주말이면 부자는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197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 로스개토스에서의 일이다. 팬암(Pan Am) 항공사의 조종사였던 배리는, 훗날 스콧이 회고했듯 특정 직업군에서는 "공포가 곧 친구"라고 믿는 이였다. 고도가 2마일에 이르면 배리는 어김없이 입을 열었다. "스콧, 지금 당장 아빠가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네가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한다면, 어디로 내릴 거니?"

스콧은 숲 사이로 빈터가 있는지 지평선을 훑었다. 아버지가 설정한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시한폭탄 같은 압박 속에 소년의 심장은 요동쳤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아이에게 이 즉흥적인 비행 훈련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결국 그는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지 않았다. 대신 할리우드에서 가장 다작하며 성공을 거둔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프랭크는 이야기의 시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하면 단 몇 번의 능숙한 터치로 캐릭터를 소개하고, 관객이 그 인물의 운명에 즉각 몰입하게 만들 것인가? 그는 오프닝 장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수개월을 온전히 쏟아붓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장기는 결말에서도 빛을 발한다. 90년대 중반, 그는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아웃 오브 사이트(Out of Sight)>를 각색하고 있었다. 원작은 디트로이트 외곽의 한 저택에서 절정에 달한다. 연방 보안관 카렌 시스코(영화에서는 제니퍼 로페즈 분)가 자신이 사랑하는 탈옥수 잭 폴리(조지 클루니 분)의 다리를 쏘고 그를 체포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 버전에서는 클루니가 감옥으로 돌아가고 로페즈가 단순히 귀가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었다. 프랭크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필요했다. 싸구려 감상이 아니라, 레너드 특유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냉소적인 톤을 유지하는 그런 희망 말이다. 그래서 그는 코다(Coda, 종결부)를 새로 만들어냈다. 클루니는 교도소 호송차 뒷좌석에 묶여 있고 로페즈는 앞좌석에 앉아 있다. 그녀는 최소한 그를 플로리다 교도소까지 배웅할 수는 있다. 바로 그때, 체스판 위에 새로운 말이 예고 없이 등장한다.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또 다른 수감자가 합류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헤지라'다.

폴리: 헤지라? 그게 대체 무슨 이름이야?
헤지라: 헤지라란 서기 622년 마호메트가 메카를 떠나 피신한 사건을 뜻하지.
폴리: 피신이라고?
헤지라: 레번워스 교도소 동료들이 지어준 이름이야.
폴리: 레번워스에 있었나 보군?
헤지라: 한동안 그랬지.
폴리: 그게 무슨 뜻이야?
헤지라: 때가 되어 떠났다는 뜻이지.
폴리: 탈옥했단 소리야?
헤지라: 난 '바람직하지 못한 장소로부터의 탈출'이라 부르는 걸 선호해.
폴리: (흥미를 보이며) 그래, 잡히기까지 얼마나 걸렸는데?
헤지라: 그때 말인가?
폴리: 다른 때도 있었다는 거야?
헤지라: 그래, 그게 아홉 번째였지.
폴리: (정말 흥미롭다는 듯) 아홉 번째라고?

헤지라는 원래 전날 밤 플로리다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웬일인지 '여성 보안관'이 자신을 폴리와 합석시키길 원했다고 말한다. 화면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로페즈의 얼굴을 비춘다. "어쩌면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나 보군." 클루니가 중얼거린다. "플로리다까지는 먼 길이니까."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단 2분 남짓한 이 장면을 통해 프랭크는 완벽한 착륙에 성공한다.

시나리오 집필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1925년, <시민 케인>의 허먼 맹키위치는 극작가 친구 벤 헥트를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유인하려 전보를 보냈다. "이곳엔 낚아챌 돈이 수백만 달러나 널려 있는데, 경쟁자라곤 멍청이들뿐이라네." 그는 덧붙였다. "이 사실이 소문나게 하진 말게." 오늘날 수많은 책과 세미나, 팟캐스트가 예비 작가들에게 조언을 쏟아낸다. 마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양 말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라는 형식은 악명 높을 만큼 까다롭다. 영화 한 편을 쓰는 것과 그것이 제작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이 훌륭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프랭크의 지적처럼, 망작을 쓰는 것 역시 수작을 쓰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정해진 형식에 맞춘 시나리오 한 페이지는 화면상의 1분과 맞먹는다. 따라서 모든 장면은 하이쿠처럼 간결하고도 명확해야 한다. 프랭크는 시나리오를 "독특하고 기묘한 장르"라고 정의한다. 연극 대본보다 엄격하며, 템포는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휘두르는 도구 대부분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금지된다. 장황한 인물 묘사도, 화려한 비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프랭크는 오히려 소설이 더 쉽다고 느낀다. 그에게 시나리오란 "정밀 과학에 더 가까운 영역"이다.

시나리오 없이는 할리우드 영화를 단 한 편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소설가나 시인과는 달리,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소중한 창작물을 결국 수많은 타인에게 넘겨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본을 고치는 것이다. 업계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작가라 할지라도 이 직업은 종종 스스로를 미완의 존재이자 부속품처럼 느끼게 만든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존 그레고리 던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길 열망하는 것은 '부조종사'가 되길 꿈꾸는 것과 같다고 일갈한 바 있다. 프랭크는 이 비유를 각별히 아끼는데, 단순히 그에게 비행과 얽힌 과거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는 시나리오 집필이 엄연한 예술의 한 형태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자신이 몸담은 거대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세계에서 시나리오는 '쓰여지는' 것이라기보다 '구축되는'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작가들은 왜 이토록 굴욕적인 직업에 자신을 내던지는 걸까?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돈의 유혹이 존재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강력한 자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걸작 소설들이 작가들이 할리우드에서 헤매는 동안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문학적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 MGM 스튜디오의 책상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으나, 그가 쓴 평범한 대본들은 단 한 번도 영화화되지 못했다. 빌리 와일더는 이를 두고 피츠제럴드가 마치 "배관 공사를 하려고 고용된 위대한 조각가" 같다고 조롱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올해 초 미국작가조합(WGA)이 파업에 돌입했을 때, 한 가지 뼈아픈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조합원 1만 1,500명 중 대다수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부정기적인 고용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현역 작가’, 즉 시나리오 집필만으로 생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이들은 이미 그 자체로 선택받은 소수 집단에 속한다. 설령 성공을 맛본다 해도 그 영광은 찰나에 그치기 일쑤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스콧 프랭크는 지난 40년간 수준 높은 작품을 꾸준히 내놓으며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극소수의 미국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다. 1988년, 고등학교에 잠입한 형사 이야기를 다룬 졸작 <플레인 크로즈>로 데뷔한 이래,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15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표작으로는 <겟 쇼티>,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리와 나>, <로건> 등이 있으며, 여러 스트리밍 시리즈도 집필했다. 특히 2020년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퀸스 갬빗>은 그가 각본과 제작은 물론 연출까지 도맡아 완성한 역작이다.

프랭크는 철저히 상업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독립 영화계에 발을 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HBO 시리즈 <라스트 오브 어스>와 <체르노빌>을 집필한 크레이그 메이진은 "옛 시절의 노련한 희극 배우들처럼, 스콧은 관객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핀다"라며 그를 "역대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역시 프랭크의 결과물을 보면 할리우드의 황금기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그는 형식주의자다.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나 동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모습이기도 하다. 프랭크는 대다수 작가가 끝내 이해하지 못해 '독창성'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리는 고전적인 서사 구조를 완벽히 꿰뚫고 있다. 그의 각본을 읽다 보면 1930년대나 40년대의 감각이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낀다."

프랭크의 IMDb 프로필만 봐서는 그가 영화계에 기여한 진정한 저력을 온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섭외 1순위로 꼽히는 '스크립트 닥터(각본 수정 전문가)'로서, 그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부업을 병행해 왔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은 대사를 더 맛깔나게 다듬거나,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고, 꼬여버린 3막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그를 급히 호출하곤 한다. 대개 크레디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는 이러한 작업의 대가로 그가 받는 보수는 본인조차 "제정신이 아닌 수준"이라 인정할 정도인데, 주당 무려 30만 달러에 달한다. 보통 작업은 몇 주간 이어지며, 그는 지금까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박물관이 살아있다>, <언페이스풀>, <링>, <그래비티> 등 대략 60여 편의 영화를 손봤다. 이는 현역 시나리오 작가 중 단연 독보적인 수치일 것이다. 그는 "엑스맨 시리즈도 꽤 많이 작업했다"면서 "제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으며, 프랭크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대다수 작가에게는 꿈같은 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창작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쏟아붓는 일은 때로 의욕을 꺾어놓기도 한다. <아웃 오브 사이트>를 연출한 절친한 친구 스티븐 소더버그는 프랭크를 '복복술사'라고 묘사했다. 프랭크가 영화 속 캐릭터에 완벽히 동화되어 그들만의 고유한 말투로 매끄러운 대사를 써 내려가듯, 감독이나 전임 작가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데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세 곳의 스튜디오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제작자 니나 제이콥슨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스콧은 제작 과정에 자신을 완전히 녹여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진단하고 감독과 협력해 결과물을 내놓는 면에서 그는 실패 없는 선택지죠." 그녀는 기존의 스타일 안에서 해법을 찾아내는 프랭크의 능력을 두고 '카멜레온'이라 칭하며, "각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거의 매번 그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는 경영진이나 제작자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제이콥슨은 이런 재능이 자칫 "평생 남의 영화나 고쳐주며 경력을 보낼 수도 있다"는 위험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프랭크가 캐릭터를 설정할 때 가장 매력적으로 꼽는 두 가지 자질은 실력과 유머 감각이다. 은행 강도든 체스 선수든, 혹은 우주비행사든 자기 분야에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위트를 잃지 않는 것 말이다. 그 자신 또한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았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경고했다. "내 작업은 미학적인 혁신을 일으키기보다 '탄탄하다'거나 '믿음직하다'는 형용사를 끌어내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는 에런 소킨이나 니콜 홀로프세너 같은 동료 작가들과 달리, 자신에게는 인장처럼 남을 만한 독특한 문체나 개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2년 영국 영화 TV 예술 아카데미(BAFTA)의 각본 강연에 초청받았을 때, 그는 청중 앞에서 "나는 일종의 돈벌이 작가(hack)입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프랭크는 60대에 접어든 자신의 삶을 다룬 인물 평전이 독자에게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지금 내 삶은 매우 만족스럽고 딱히 괴로울 것도 없어요. 나를 괴롭히던 마음속 악마들조차 이제는 지루해할 정도니까요"라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가 수많은 각본 수정 작업을 맡아온 이유는 거절을 못 하는 특유의 강박적 친절함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카페 클루니에서 여러 차례 점심을 함께했다. 그곳은 할리우드를 떠나온 영화인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드는 식당이다.

프랭크는 유순한 인상에 부드럽고 어두운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검은 머리칼과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에는 희끗희끗하게 흰머리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오랜 친구인 배우 겸 감독 조디 포스터는 그를 두고 "예순셋의 나이에도 여전히 열네 살 소년 같은 면이 있다. 웃음도 참 많은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어둡고 극단적인 폭력성이 분출되는 그의 작품 세계와, 정작 본인은 눈을 반짝이며 활기 넘치는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는 사실 사이의 괴리를 언급하곤 한다.

개념 미술가인 아내 제니퍼와는 결혼한 지 35년이 되었으며,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사교적·직업적 소용돌이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그곳의 독소로부터는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패서디나에서 세 자녀를 키웠다. 10년 전 프랭크 부부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카페 클루니 모퉁이에 있는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나보다 앞서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얼간이처럼, 나도 여름이면 마사스 비니어드에서 시간을 보낸다"라며 "주말마다 커네티컷으로 향하는 그 얼간이가 바로 나"라고 농담조로 덧붙였다. 다소 자학적인 어조를 섞어, 그는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수많은 일을 맡았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목부터 '페이첵(급료)'인 영화의 각본을 수정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프랭크가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들 사이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지닌 상상력의 경이로운 생산성 덕분이다. 소더버그는 이를 두고 "프랭크에게서는 아이디어가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고 표현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야기를 곧잘 지어냈던 그는 때때로 그 허구를 마치 사실인 양 주변에 늘어놓기도 했다. 한번은 가정 폭력을 다룬 그의 작문 내용에 놀란 교사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자 아버지 배리 프랭크는 한 손에는 비행 매뉴얼을, 다른 한 손에는 소설책을 들고 나타나 아들에게 물었다. "스콧,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허구란다. 너는 이 둘의 차이를 알고 있니?" 그날 이후 스콧은 이야기를 쓸 때마다 원고 맨 윗부분에 '허구'라고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가 열한 살 무렵이었을까. 어머니를 따라 식료품점에 갔던 그는 계산대 옆 회전 서가에 꽂힌 문고판 서적들을 훑어보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의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이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나리오가 출판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흥행한 영화라 할지라도 그 대본이 문학적 가치를 지녔다고 여기는 풍토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나리오의 형식을 완벽히 구축한 거장 윌리엄 골드먼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마라톤 맨>,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집필한 그의 문체는 거칠면서도 대화하듯 생동감이 넘쳤다. 마치 방금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이 벅찬 숨을 몰아쉬며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장면 전환(Cut to)'이라는 지시어가 그토록 기백 넘치게 구사된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열다섯 살 무렵, 산호세의 센추리 극장에서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를 관람하던 프랭크는 평생 잊지 못할 전율을 느꼈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은행 강도가 "애티카! 애티카!"라고 절규하듯 외치자, 객석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 구호를 연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랭크는 지금도 그날의 경험을 일종의 종교적 각성처럼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영화를 향한 아들의 관심을 미덥지 않게 여겼다. 조종사였던 배리는 "조종사도 글은 쓸 수 있다"라며, 스콧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되 시나리오 집필은 주말에나 취미로 즐기길 권했다. 그럼에도 1980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의 스콧은 생애 첫 시나리오인 <꼬마 천재 테이트(Little Man Tate)>를 써 내려갔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일곱 살 천재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였다. 극 초반, 한 살배기 프레드 테이트가 식당에서 "코퍼(Koffer)"라고 옹알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내 아이가 쓰던 접시에 새겨진 제조사 이름을 발견하고는 전율한다. 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여느 할리우드 각본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제작까지 수년이 걸렸다. 마침내 1991년, 조디 포스터가 주연과 연출을 맡아 영화로 세상에 나왔다. 포스터 역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신동 출신으로, 열두 살 나이에 <택시 드라이버>에서 어린 매춘부 역을 맡아 당혹스러울 만큼 확신에 찬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녀는 프랭크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 속에 담긴 '자전적인 향기'에 깊이 공명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프랭크 역시 일종의 신동이었다는 점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신참 제작자로 일하던 린제이 도란은 <꼬마 천재 테이트>의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접시 장면을 읽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도란은 "나도 모르게 손이 전화기로 뻗어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대체 이 친구가 누구지? 싶었죠." 이후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제작 부사장으로 임명된 도란은 프랭크에게 정식 계약과 함께 스튜디오 내 개인 집무실을 내주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성공 신화가 그렇듯 프랭크 역시 바텐더로 일하던 무명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하지만 <마이클 클레이튼>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또 다른 다작 작가 토니 길로이는 프랭크가 업계에 발을 들인 속도는 가히 즉각적이었다고 꼬집었다. 길로이는 "바텐더 생활은 아마 12분 정도나 했을 것"이라며 농담조로 덧붙였다.

파라마운트의 작가 집무실 층은 과거 F. 스콧 피츠제럴드가 MGM에서 고군분투하며 머물던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사랑했다. 그는 도란과 함께 히치콕 스타일의 고딕풍 스릴러 <환생(Dead Again)>을 기획했고, 이 작품은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과 주연을 맡고 엠마 톰슨이 함께 출연했다. 극 중 한 인물이 가위로 상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훗날 조던 필 감독은 2019년 공포 영화 <어스(Us)>를 내놓으며 '살인 도구로서의 가위'라는 모티프를 <환생>에서 빌려왔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1991년 개봉한 <환생>은 흥행에 성공했다. 프랭크의 아내 제니퍼의 지인들은 그런 섬뜩한 각본을 쓴 사람과 한 방을 쓰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진 않는지 진지하게 묻곤 했다. 특히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은 앤디 가르시아의 연기였다. 암 수술을 받고도 담배를 끊지 못한 골초 환자를 연기한 그는, 목에 뚫린 기도 절개관에 담배를 직접 꽂아 연기를 들이마신다. 도란은 <환생>이야말로 "유머러스하고 신비로우며 냉소적이지만, 한편으론 희망을 품고 있는 스콧 프랭크라는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이 독특한 분위기를 일컬어 '필름 블랑(film blan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프랭크는 영화를 보다가도 관객들이 언제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날지 종종 예측하곤 한다. 극이 시작되고 30분쯤 지나 전개가 느슨해질 무렵,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게 "그런데, 당신은 왜 경찰이 되고 싶었던 거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그는 관객들이 일종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노골적인 설명조'의 각본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며, 바로 그때를 잠시 자리를 비워도 안전한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주어진 난제 중 하나는 소설이라면 독자에게 직접 서술했을 필수 정보들을 어떻게 캐릭터의 입을 빌려 자연스럽게 밀어넣느냐 하는 점이다. 프랭크는 장황한 설명을 최대한 피하려 애쓰며,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때는 그 장면에 반드시 의외성을 심어 놓는다. 그의 각본에서 정보 전달은 대개 독특한 장소에서 등장하는 별난 조연들의 몫이다. 영화 <환생>에서는 피 칠갑이 된 앞치마를 두른 로빈 윌리엄스가 정육점에서 주인공들에게 극의 핵심인 환생에 대해 늘어놓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톰 크루즈가 몰래 잠입한 온실에서 익살스러울 만큼 무뚝뚝한 식물학자가 통제 국가의 비밀을 털어놓는 식이다. 이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매는 데 있어 '예측 불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무언가 놓칠지 모른다는 확신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겟 쇼티>와 <아웃 오브 사이트>를 제작한 스테이시 셰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나 캐릭터 중 어느 하나를 잘해내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스콧처럼 둘 다 탁월하게 해내는 작가는 정말 드물죠.' 그럼에도 프랭크에게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캐릭터다. 그는 미리 짜놓은 개요(outline)를 멀리하며, GPS 없이 길을 찾듯 각본의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충분히 생명력을 얻은 캐릭터들이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이야기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마련이다. 이야기에 맞춰 캐릭터를 끼워 맞추는 대신, 캐릭터의 결에 따라 이야기를 벼려 나가다 보면 프랭크 자신조차 결과에 놀랄 때가 많다. 그의 딸 스텔라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일하고 있는 그를 찾아가 보면, 그는 혼잣말로 대사를 웅얼거리고 있다. 집필이 유독 잘 풀리는 날이면, 그는 스스로의 문장에 만족한 듯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프랭크는 이야기 구조를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기에 타인의 시나리오를 고치는 일을 식은 죽 먹기처럼 여긴다. 그는 "내 글이 아닐 때 각본은 비로소 투명하게 그 속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는 빌리 와일더의 금언, 즉 "3막에 문제가 있다면 진짜 원인은 1막에 있다"는 말을 신봉한다. 대개 스튜디오 경영진은 영화의 전개가 빨라야 한다는 이유로 초반부를 뭉텅이로 잘라내곤 한다. 하지만 오프닝이 생략되면 관객은 캐릭터에 몰입할 기회를 잃고, 결국 그들의 운명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게 된다. 이런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은 "지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는 알지만, 정작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 상태에 빠진다고 프랭크는 분석한다.

그가 인공지능이 시나리오 작가를 대체할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스콧 프랭크 같은 이들의 결과물을 수집해 조합한 뒤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제법 완벽할지 모른다. 하지만 허구의 인물이 겪는 일에 관객이 진심으로 동요하게 만드는 작업은 차원이 다른 마법이 필요하다. 가령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톰 크루즈의 캐릭터는 본질적으로 파시스트에 가깝다.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예비 범죄자를 잡아넣는 미래의 '프리크라임' 부대 소속 경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랭크는 그를 납치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로 그려냈다. 그 상실감을 극복하려 범죄를 영원히 박멸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인물로 말이다. 서류상의 직업적 명분만 따진다면 결코 동정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우리는 결국 그에게 마음을 열고 만다.

각본 수정 작업에 들어갈 때면 프랭크는 대개 속도를 올리며, 종종 엄청난 시간 압박 속에 놓이곤 한다. 제작자 니나 제이콥슨은 영화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제작 돌입을 불과 몇 주 앞두고 프랭크가 투입되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그 과정을 "달리는 열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동시에 열차 앞에 새 철로를 까는 격"이었다고 묘사했다. 반면 프랭크가 직접 기획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하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인다. 그는 언제나 첫 장면부터 시작한다. <퀸스 갬빗>의 제작자 윌리엄 호버그는 훗날 이 시리즈의 오프닝이 된 장면을 프랭크가 처음 제안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호텔 방 안입니다. 한 소녀가 커튼을 홱 젖히죠. 침대에는 누군가 누워 있지만 정체는 알 수 없어요. 소녀는 숙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호텔을 가로질러 넓은 홀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체스 대회장인 겁니다!'" 이는 시리즈의 원작인 월터 테비스의 1983년판 소설 도입부와는 달랐으며, 사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호버그는 프랭크가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냈고, "그 장면 하나가 드라마 전체의 정체성을 단번에 세웠다"고 평했다.

소설 각색은 프랭크의 전공 분야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 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작품을 다루는 일은 언제나 위험부담이 크다. <환생>의 성공 이후 프랭크는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겟 쇼티>의 각색 작업을 맡았다.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기 전, 그는 MGM 구내식당에서 레너드와 점심을 함께했다. 레너드는 생전에 '글쓰기 10계명'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는 "인물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말 것"과 "장소나 사물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지 말 것"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소설은 잘 쓴 시나리오처럼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이 넘쳤기에, 언뜻 영화로 옮기기 매우 수월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점심 식사 내내 레너드는 자신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에 대해 끔찍한 일화들을 쏟아냈다. 젊은 시나리오 작가였던 프랭크는 대선배 소설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며 레너드가 "즐겁게 해보게"라는 인사를 건넸을 때, 프랭크는 이미 속이 뒤집힐 정도로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데 충실한 각색물은 대개 형편없는 영화가 되곤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프랭크는 테드 탤리가 쓴 <양들의 침묵> 각본을 유독 높게 평가하는데, 이 작품은 영리하게 가지치기를 했을 뿐 토머스 해리스의 원작 소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나이트는 책이 '산'이라면 훌륭한 각색물은 그 산을 그린 '그림'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림은 대상인 산만큼 입체적일 수는 없겠지만, 산의 본질을 담아낸 생생한 인상을 전해준다는 의미다.

프랭크는 <겟 쇼티>를 처음 읽었을 때 초록색 형광펜을 들고 영화에 쓸 만한 대목에 밑줄을 그어 나갔다. 책장을 다 넘겼을 때 소설 전체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각색 작업을 할 때 그는 늘 어떤 시점에 다다른다. 이 소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그 핵심 개념을 정하고 나면 그는 이를 중심으로 각본을 구축해 나가며, 그 외의 모든 요소는 과감히 쳐내 버린다.

프랭크가 천착하는 주요 테마 중 하나는 '자기 혁신'이다. 그는 대실 해밋의 소설 <말타의 매>에서 1941년 영화판에는 빠졌던 유명한 장 하나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사건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하드보일드 탐정 샘 스페이드는 본줄거리와 무관해 보이는 플릿크래프트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타코마에 살던 이 남자는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 위에서 떨어진 빔에 맞아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다.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플릿크래프트는 가족을 버리고 마을을 떠나며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묘미는 결말에 있다. 수년간 방랑하던 그가 스포캔이라는 도시에 다시 나타났을 때, 결국 새로운 아내와 아이를 곁에 둔 채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되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밋의 열성 팬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대목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 프랭크에게 플릿크래프트의 우화는 '단 한 번의 순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드는 방식을 상징한다. 그가 세운 제작사 이름 역시 '플릿크래프트(Flitcraft, Ltd.)'다.

<겟 쇼티>의 주인공 칠리 파머는 고리대금업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의 꿈은 영화 제작자다. 프랭크는 레너드의 소설을 각색하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작품 전체가 '말'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너드의 소설은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책의 절반 가까이를 읽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칠리는 전형적인 '플릿크래프트'형 인물이었고, 프랭크는 이런 캐릭터를 그리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레너드의 원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칠리를 열혈 영화 팬으로 설정했다. 범죄자 특유의 영리한 생존 본능과 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희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한 장면에서 칠리(존 트라볼타 분)는 주차장에서 베어(드라마 <소프라노스>로 뜨기 전의 제임스 갠돌피니 분)라는 덩치 큰 해결사와 맞닥뜨린다. 할리우드 스턴트맨 출신인 베어는 번번이 칠리를 두들겨 패려 하지만, 매번 칠리에게 역공을 당한다. 이번에도 칠리의 니킥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베어가 바닥을 뒹굴며 거친 숨을 내뱉고 있을 때, 칠리는 느닷없이 화제를 돌린다.

칠리: 그래서... 영화에는 얼마나 출연했나?
베어: 예순 편 정도.
칠리: 정말? 어떤 작품들에 나왔는데?

배리 소넨펠드가 연출한 1995년작 <겟 쇼티>는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원작자 레너드조차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나중에 제작자 셰어에게 "스콧 프랭크가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내 소설의 주제가 무엇인지 나조차 알지 못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자 당시 프랭크의 에이전트는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앞으로 10년은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격려 차원에서 건넨 말이었지만, 프랭크는 오히려 깊은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아내 제니퍼와의 사이에는 어린 두 자녀가 있었고 셋째도 태어날 예정이었다. 밤마다 패서디나 동네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돌아오던 그는 환하게 불이 켜진 창문 너머로 가족들을 바라보며 문득 자문했다. '만약 내 아이디어가 바닥나면 어쩌지?' 창의성이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가들은 열정이 식어버리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거나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프랭크는 '서너 번 연속으로 실패해서' 커리어가 완전히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는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 정말 큰일 났구나!'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예술과 상업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고뇌한다. 남편 존 그레고리 던과 함께 <니들 파크의 공포>, <스타 탄생> 등의 각본을 쓴 조안 디디온은 "그 영화가 누구의 것인지 이해하려면 시나리오가 아니라 계약서를 보라"는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프랭크는 자기 직업이 지닌 상업적 속성을 달관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커리어 초기,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윌리엄 골드먼과 친분을 쌓았고 골드먼은 그를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그런 거장 골드먼조차 자신이 쓴 각본의 절반은 제작조차 되지 못했다며 한탄하곤 했다. 프랭크가 보기에 할리우드에서 위대한 예술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대개 '제작 지연'이라는 연옥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시나리오를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더는 손댈 곳 없이 완벽하다는 판단에 거절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영화들의 제목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 그 영화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창작자로서 가장 큰 충만함을 느꼈던 경험 중 일부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맡았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제작자 셰어가 <아웃 오브 사이트>의 각색을 의뢰했을 때 프랭크는 망설였다. 엘모어 레너드를 화나게 하지 않고 영화 한 편을 겨우 마친 마당에, 다시 한번 운을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 넓은 집을 사야 했고, "앞으로 10년"이라던 에이전트의 예언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을 맡기로 했다.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각본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섹시한 문체를 고스란히 살려내며 프랭크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겟 쇼티>에서 주인공 칠리가 읊조리듯, "때로는 머리에 총구가 겨눠졌을 때 최고의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다. 프랭크가 새 집값을 대기 위해 쓴 그 시나리오는 결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아웃 오브 Sight> 이후, 그에게는 각본 수정 요청이 쇄도했다. 프랭크는 이런 종류의 작업에 관해 일종의 비공식적인 함구령을 따르는 편이지만, 거듭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의뢰받는 일의 90%는 캐릭터를 다듬는 작업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그는 성경 구절을 읊조리는 저격수 같은 병사들에게 입체감을 불어넣어, 그들이 고향에 두고 온 이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링>에서는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주인공과 아들의 관계를 구축했고, <그래비티>에서는 산드라 블록이 맡은 우주비행사 캐릭터에게 '우주 밖의 삶'을 부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는 존 리스고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유인원 시저와 유대감을 쌓고 알츠하이머병이 치료되었다가 다시 정신적 쇠퇴를 겪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프랭크는 정작 자신의 프로젝트는 뒤로 미뤄두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수정 작업을 함께해 온 동료 크레이그 메이진은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기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일에는 매우 취약하고 두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작품이 잘 안 풀리면 오롯이 내 탓이니까요. 반면 수정 작업은 다릅니다. 엄청난 보수가 보장되고,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영웅 대접을 받죠. 시간은 촉박하고 작가는 그저 작품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때때로 제작자들은 각본이 나오기도 전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 달 뒤에 시나리오 하나가 들어오는데, 당신이 그걸 좀 손봐줘야겠어."

프랭크는 이러한 작업 덕분에 평소 존경하던 수많은 감독과 협업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몇 년 전에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하려다 무산된 <스카페이스> 리메이크작의 각본을 수정하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작품에서는 작업량이 워낙 방대했던 터라 공식적으로 시나리오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업계의 수많은 지인이 프랭크의 거절 못 하는 성격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가 또 다른 의뢰를 수락할 때마다 아내 제니퍼는 "대체 왜 자꾸 알았다고 하는 거예요?"라며 되묻곤 했다.

할리우드의 한 유명 제작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스콧 프랭크라는 이름은 각본 수정 시스템이 지닌 위험성을 보여주는 경고장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제2의 윌리엄 골드먼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 정작 자기만의 오리지널 작품 대신 주 단위로 쏟아지는 수정 작업에만 매달리고 있었으니까요." 프랭크에게 이러한 비판에 대해 묻자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제 커리어는 아마도 '용기 부족'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겁니다. 두려움 때문에 향후 3년 치 일정을 미리 꽉 채워놓곤 했거든요." 불안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는 삶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쉰 살에 접어들 무렵, 프랭크의 내면에서는 정체 모를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플릿크래프트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삶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찬찬히 되짚어보던 프랭크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세스나기를 타고 비행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 30년의 세월 중 상당 기간 동안, 자신은 그저 "내려앉을 자리만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해 어느 날, 나는 프랭크가 새로운 리미티드 시리즈인 <무슈 스페이드>를 연출하고 있는 프랑스 남부를 찾았다. 10월 초입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여름처럼 뜨거웠다. 몽펠리에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외딴 농가에 도착하자, 야구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프랭크가 배우 클라이브 오웬과 함께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 시리즈는 기존 작품을 각색한 것은 아니지만, 성격은 그와 비슷하다. 몇 년 전 프랭크는 샘 스페이드라는 캐릭터의 저작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타의 매>를 제외하면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대실 해밋의 작품은 단 몇 편뿐이었지만, 프랭크는 이 유명한 탐정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기회를 포착했다.

사실 그는 평소 가장 아끼는 소설 중 하나인 해밋의 또 다른 작품 <붉은 수확>의 판권을 확보하려 애쓰던 중이었다. 그는 평소 젊은 작가들에게 시나리오의 속도감과 경제성을 배우고 싶다면 그 어떤 교본보다 <붉은 수확>을 읽으라고 권할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페이드 캐릭터의 권리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깐, 이게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 바로 중년의 삶이야." 스페이드가 더 이상 탐정이 아니라, 프랑스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면 어떨까? 프랭크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거지. 그러다 그 평온함이 산산조각 나기 직전의 상황을 그리는 거야"라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는 협업을 위해 HBO 드라마 <오즈>를 만든 베테랑 작가 톰 폰타나에게 연락했다. 폰타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스콧이 그러더군요. '<말타의 매>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는 샘 스페이드 이야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답했죠. '당장 합류하지.'"

프랑스 현지 스태프들이 촬영 장소인 창고 주변에서 조명을 조절하는 동안, 프랭크는 배우 클라이브 오웬과 대화를 나누었다. 멜빵을 매고 허리선이 높은 수트를 입은 오웬의 모습은 샘 스페이드의 전형으로 불리는 험프리 보가트를 떠올리게 했다. 비록 오웬의 키가 보가트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지만 말이다. 해밋의 열성 팬이기도 한 오웬은 스페이드를 연기할 기회가 왔을 때, 정작 그 캐릭터를 유명하게 만든 마초적 우상화를 해체하고 그를 낯선 환경에 놓인 평범한 사내로 묘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내게 웃어 보였다. 프랭크가 쓴 첫 장면에서 스페이드는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채 검사대 위에 엎드려 있다. 익살스러운 프랑스 의사는 그의 전립선을 검사하며 이제는 담배를 끊을 때라고 충고한다. 프랭크가 자신이 아끼는 영웅에게 안겨준 이 굴욕적인 상황에 껄껄 웃으며, 오웬은 특유의 묵직한 바리톤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중절모도 안 쓰고, 총도 없고, 담배도 못 피우죠. 이 배역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겁니다. 나 완전히 속았어요!"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접이식 의자를 집어 들고 그늘진 곳으로 옮겨 앉더니, 다시 대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프랭크는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그러하듯 스스로의 삶을 완전히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러 변화가 잇따라 일어났다. 아내 제니퍼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뒤, 그는 "엄청난 양"의 심리 치료를 받았다. 불안 증세를 다스리기 위해 오랫동안 거부해 온 졸로프트를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두려움이 창작 과정의 필수적인 동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료를 미뤄왔었지만,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소설 <셰이커>를 집필하기도 했다. LA에서 타겟을 제거하려던 계획이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뒤틀려버린 타락한 킬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15년 크노프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집필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카타르시스였다. 프랭크는 "그 작업의 목적 중 하나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타인의 목소리들, 즉 내가 협업을 즐겼던 그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지워내는 것이었다"라며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아마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각본 수정 작업을 중단하기로 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고백했다. "아주 오랫동안 나의 정체성은 내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정의되었습니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을 예술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 아주 합당해 보였죠.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스페이드처럼 프랭크 역시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오히려 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산업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대형 스튜디오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단독 스릴러나 드라마 제작을 사실상 포기했다. 프랭크는 자신의 명성을 쌓아 올렸던 영화들이 오늘날이라면 결코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수많은 재능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현실과 타협하며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자신의 재능을 허비하는 길을 택했다. 프랭크 또한 엑스맨 시리즈인 <더 울버린>과 <로건>의 각본을 썼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을 맡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고, <로건>의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그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본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 그는 본격적인 액션 장면이 시작되기 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덧붙였다.

"만약 당신이 정교하게 짜인 안무, 중력을 무시하는 액션, 도시 전체를 때려 부수는 CG 범벅의 난장판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무언가 몸 위로 떨어지면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 우리 이야기 속 인물이 운 나쁘게 지붕에서 떨어지거나 창밖으로 튕겨 나간다면, 다시 튀어 오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프랭크가 감독 제임스 맨골드와 함께 집필한 이 각본은 장르의 고정관념을 수없이 거부했기에 도리어 흥미로운 결과물이 되었다. 필름 누아르와 서부극의 문법이 뒤섞인 이 영화는, 한마디로 '칼날이 돋아나는 셰인(<셰인>의 주인공)'과 같았다. 프랭크는 이 시나리오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제작자 스테이시 셰어는 이렇게 평했다. "스콧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런 영화는 평생이라도 쓸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로건>을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만들어냈고, 그 대단한 아카데미 후보 지명까지 이끌어냈죠. 스콧이 정말 남다른 점은, 그 성공 이후 다시는 그런 작업을 반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로건>이 개봉한 2017년 무렵, 프랭크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발견했다.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지난 20년 동안 프랭크는 메인주에 거주하는 연구원 미미 먼슨과 협업해 왔다. 전담 연구원을 두었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엘모어 레너드에게서 영감을 얻은 그는, 집필하고 싶은 광범위한 분야를 탐구하거나 마감 직전 아주 구체적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먼슨을 고용했다. 먼슨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가끔 이런 식으로 요청하곤 해요. '병세가 아주 심각한 군인이 한 명 필요해. 그런데 반드시 죽는 병이어서는 안 되고, 죽을지도 모르는 병이어야 해. 게다가 심리적인 요인이 가미되어 사람들이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지. 그러다 나중에는 씻은 듯이 나아야 하고. 이 설정들, 45분 안에 정리해서 보내줘.'"

서부극 애호가인 프랭크는 오래전부터 직접 서부 영화를 써보고 싶어 했다. 마침 뉴욕을 방문 중이던 연구원 먼슨이 '스트랜드' 서점에서 서부 개척 시대 여성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일기들을 찾아냈고, 여기서 영감을 얻은 프랭크는 곧장 각본 작업에 착수했다. 뉴멕시코의 어느 광산 마을에서 사고로 남자들이 몰살당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그 땅에는 신이 없다Godless>는 그렇게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 시나리오에 열광했다. 폭력적이면서도 서정적이었고, 프랭크 특유의 전복적 서사가 곳곳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외딴 목장의 주민들이 멀리서 다가오는 형체를 보고 습격을 대비하지만 알고 보니 아픈 아이를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어머니였다거나, 풋내기 보안관 조수가 권총을 휘두르며 허세를 부리는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엄청난 사격 실력자였다는 식의 반전들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십여 명의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방대하고 야심 찬 서사였고, 코믹스 원작이나 장난감 판매와는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었다. 할리우드가 철저히 기피하는 전형적인 유형의 영화였던 셈이다. 할리우드 전역에서 퇴짜를 맞은 프랭크는 결국 넷플릭스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6부작이라는 더 넓은 캔버스를 제안받았다(제작 도중 한 회차가 추가되어 최종적으로는 7부작이 되었다). 2017년 공개된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리미티드 시리즈'가 스트리밍 플랫폼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할리우드 생태계가 지닌 기묘한 특징 중 하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무력하고 언제든 교체 가능한 가련한 존재로 취급받는 데 반해, TV 드라마의 세계에서는 작가가 곧 왕이라는 점이다. 프랭크는 <그 땅에는 신이 없다>의 모든 에피소드를 직접 썼고, 쇼러너로서 영화 현장에서는 작가가 좀처럼 누리기 힘든 절대적인 창작 권한을 행사했다. 심지어 모든 회차의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

지난 10여 년간 프랭크는 일종의 '작가주의 감독(Auteur)'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도 연출에 대해 언급하곤 했으나, 늘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규칙적인 작가의 삶이 주는 가정적인 평온함에 안주했고,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감독이 되면 가족 관계에 무리가 생길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이 창조하는 캐릭터들처럼, 프랭크 역시 종종 본심과는 다른 핑계를 대곤 했다. 아내 제니퍼는 그가 가족을 구실로 삼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당시를 떠올리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이는 입버릇처럼 '아이들 때문에 감독은 못 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아이들 핑계 대며 뒤로 숨지 마세요.'"

프랭크가 서른 무렵 쓴 스릴러 <룩아웃>은 뇌 손상을 입은 고교 아이스하키 스타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포섭되어 은행 털이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샘 멘데스, 데이비드 핀처, 마이클 만 같은 거장들이 연출을 검토했으나 끝내 성사되지는 않았다. 결국 2005년, 프랭크는 직접 메가폰을 잡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셉 고든 레빗과 제프 다니엘스를 캐스팅해 매니토바에서 촬영을 마쳤다. 완성된 영화는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린 수작이었지만, 프랭크는 감독으로서의 숙련도가 작가로서의 역량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소더버그는 프랭크와 '매우 직설적인' 대화를 나누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네. '자네는 이제 막 연출을 경험한 작가일 뿐이지, 아직 감독은 아니야. 자네가 쓴 글을 영상으로 기록했을 뿐인데, 그건 진정한 연출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네.'"

이 점에 관해 프랭크에게 묻자, 그는 소더버그가 그런 말을 했던 게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또한 그 대화가 있은 후 한동안 두 사람이 말을 섞지 않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프랭크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남은 듯한 목소리로, 그 영화가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첫 장편 영화상을 받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소더버그는 프랭크를 너무나 아꼈기에 차마 입에도 없는 빈말을 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랭크가 결국에는 '그 경지'에 도달해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런 조언조차 건네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장으로부터 이런 혹독한 평가를 들었다면,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작가의 영역으로 안주하고 싶은 유혹이 컸을 터다. 그러나 프랭크는 물러서지 않고 두 번째 연출작에 도전했다. 로런스 블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잔혹한 형사물, <무덤 사이를 걸어서A Walk Among the Tombstones>였다. 2012년 이 영화를 작업하던 중 그는 다시 한번 자기 불신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영화의 흐름이 하나로 매끄럽게 엮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황 상태에 빠져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프랭크는 결국 자존심을 꺾고 소더버그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두 사람이 완전히 남남으로 지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소더버그가 영화 <컨테이전>을 편집할 당시 피드백을 요청하자, 프랭크 역시 지지 않고 독설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소더버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영화를 보더니 스콧이 그러더군요. ‘문제가 산더미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오네.’” 프랭크가 제안한 처방은 가혹했다. 서사 구조를 아예 새로 짜서 러닝타임을 45분이나 덜어낸 90분짜리 영화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소더버그는 그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 그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나를 몰아붙일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는 데 꼭 필요하고도 유익한 단계가 되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 40여 편을 만든 소더버그는 프랭크가 시나리오를 파헤치듯, 연출과 편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단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프랭크가 편집한 <무덤 사이를 걸어서>를 본 소더버그는 “자신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편집”이라고 일갈했다. 프랭크는 앨런 J. 파큘라 스타일의 70년대식 스릴러를 꿈꿨지만, 정작 결과물은 불안감에 모든 시퀀스를 여러 판본으로 짜깁기한 상태였다. 프랭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면마다 각기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소더버그는 일정을 모두 비우고 프랭크와 함께 영화를 재편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을 훑으며 프랭크가 당초 의도했던 영화의 본모습을 발굴해 나갔다. 3주에 걸친 이 작업을 통해 프랭크는 “감독이 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촬영 현장에서 마주한 프랭크는 기분 좋은 활기가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몹시 지쳐 보였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선호하는 그와 달리, 프랑스 현지 스태프들은 현장의 즉흥성을 즐기는 편이었다. 프랭크는 "이 사람들은 사전 준비라는 걸 안 한다"고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공포스러울 정도다. 너무나 천하태평이다." 배우 클라이브 오웬의 말에 따르면, 프랭크는 톰 폰타나와 함께 모든 에피소드를 직접 집필한 덕분에 각 장면에서 뽑아내야 할 결과물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테이크를 여러 번 가지 않는다"고 했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을 막고 일정이 뒤처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촬영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오웬은 이를 두고 배우들 입장에선 "현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곧바로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을 위해 조명을 조절하는 사이, 프랭크는 작가 겸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이 일에서 가장 힘든 점은 실망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장면을 머릿속에 그린 그대로 찍기에는 예산이 늘 부족하거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거나, 완벽한 장소를 섭외하지 못하거나, 혹은 배우가 대사의 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머릿속에 둔 완벽한 그림이 있는데, 그걸 구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거죠. 내 비전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걸 지켜봐야만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는 결국 연출이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프랭크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마치 이 무모하고 고된 과정에서 일종의 기묘한 희열을 느끼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연출의 묘미란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찍힌 결과물은 애초에 쓴 글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그 차이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더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땅에는 신이 없다>와 <퀸스 갬빗>을 촬영했으며 스필버그, 소더버그, 핀처와도 협업한 바 있는 촬영감독 스티븐 메이즐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 상당수는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권위적인 페르소나를 두르곤 하죠.” 하지만 프랭크는 그런 신비주의라는 갑옷을 걸치지 않은 채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메이즐러는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나 비판을 기꺼이 수용하고 자신의 불확실성마저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는 남다른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콧의 방패는 방패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평했다.

소더버그와 함께한 편집 수업 이후, 프랭크는 <그 땅에는 신이 없다>를 통해 비로소 감독으로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자 넷플릭스는 <퀸스 갬빗> 제작에 동의했다. 제작자 중 한 명인 윌리엄 호버그가 내게 귀띔했듯, 이 작품은 상업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었다. “어린 소녀, 체스, 50년대, 고아원, 약물 중독이라니. 보통은 거절하기 마련이죠.” 실제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같은 거장이나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전 연출 데뷔작으로 이 작품을 점찍었던 배우 히스 레저 등 쟁쟁한 영화인들이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프랭크는 이 이야기를 장편 영화로 만들 경우 분량의 한계 때문에 <베스트 키드>식의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주인공 베스 하먼이 큰 대회에서 승리하느냐보다는, 자신의 첫 영화 <꼬마 천재 테이트>에서 탐구했고 스스로의 삶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해 온 주제인 ‘완성된 경지에 도달할 때 마주하는 위험’과 ‘천재성의 대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땅에는 신이 없다> 때와 마찬가지로 프랭크는 모든 대본을 완성하기도 전에 넷플릭스로부터 제작 승인을 받아냈다. 기업 입장에서는 꽤나 위험한 결정이었지만, 경영진은 아마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스콧 프랭크’를 부르면 된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프랭크는 드라마 <바빌론 베를린>에서 보여준 독일 프로덕션 디자이너 울리 하니쉬의 작업에 매료된 나머지, 반드시 그와 협업하겠다는 일념으로 베를린 현지 촬영을 강행했다. 주인공 베스 하먼 역은 안야 테일러 조이가 맡아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한 연기를 선보였다. 광활한 풍광 속 인물들을 롱숏으로 담아냈던 <그 땅에는 신이 없다>와 달리, <퀸스 갬빗>은 테일러 조이의 얼굴을 비추는 클로즈업이 주를 이룬다. 극의 핵심적인 드라마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소더버그는 프랭크의 초기 가편집본을 본 뒤 "이거 정말 대박 나겠는데"라고 단언했다.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던 2020년 10월에 공개된 <퀸스 갬빗>은 스트리밍 시작 첫 달 만에 6,200만 명의 넷플릭스 가입자가 시청하며 전 세계 6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시리즈는 국제적인 체스 세트 판매 붐을 일으켰고, 넷플릭스는 자체적인 <퀸스 갬빗> 보드게임까지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에서 합창단 교사 역을 맡았던 레베카 루트는 "기대와 달리... 체스가 아니더라고요"라며 무미건조하게 덧붙였다.) 이 시리즈는 에미상 18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프랭크는 감독상을 거머쥐었으며 작가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영광스러운 승리의 밤이었던 에미상 시상식 당일, 작은 소동이 일었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곱슬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프랭크는 감독상을 받으러 무대에 오르며 감사 인사를 전할 명단이 빼곡히 적힌 두 장짜리 소감문을 들고 나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 소감이 길어지자, 퇴장을 재촉하는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프랭크는 손을 내저으며 "정말인가요?"라고 되묻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음, 이 놀라운 배우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사실 제 도움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들이죠. 그리고 이 모든—진심입니다, 음악 좀 멈춰주세요." 프랭크를 잘 아는 이들은 이 서툰 표현 뒤에 숨은 그의 겸손함, 즉 동료들을 빛내주고 싶어 하는 진심을 읽어냈다. 하지만 가상 인물에게는 그토록 간결하고 우아한 대사를 입혀주던 대가가 이토록 큰 무대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트위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인디펜던트지는 "2021년 에미상에서 역사상 최악의 수상 소감이 나왔다"고 선언했다. 몇 달 뒤, 드라마 <레저베이션 독스>의 공동 제작자 스털링 하조는 고담 어워즈 수상 소감 중 "그 체스 두는 드라마였나 뭐였나"라며 프랭크를 저격했다. "제발 말 좀 길게 하지 마세요!"

뉴욕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어느 날, 토니 길로이는 시나리오 작가가 나이가 들어서도 업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존재감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길로이는 자신과 프랭크가 젊었을 적, 윌리엄 골드먼이나 시드니 폴락 감독 같은 거장들의 ‘대리 아들’ 노릇을 하며 그들로부터 수많은 지혜를 흡수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할리우드가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다는 점 역시 그들이 수혜를 입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와 길로이는 자신들의 스승이 점차 감을 잃어가는 과정 또한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길로이의 말에 따르면 골드먼은 “수정 작업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자신의 뛰어난 기량과 자만심에 매몰되어 첫 직관이 언제나 옳다고 믿어버리는 함정에 빠지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프랭크와 길로이는 폴락 감독의 유작이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영화 <인터프리터>에 대해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코드네임 콘도르>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명작을 내놓으며 수십 년간 성공 가도를 달렸던 폴락에게는 그만의 “작업 방식”이 있었다고 프랭크는 회상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어느 순간부터 먹히지 않기 시작했죠.” 갑자기 폴락은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프랭크는 그에게 “지금과는 다른 것, 규모가 작고, 결국 두 주인공이 맺어지며 끝나는 뻔한 로맨스가 아닌 무언가”를 시도해 보라고 강권했다. 심지어 자신의 스릴러 <룩아웃>의 연출을 맡기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폴락은 끝내 변하지 못했다. 프랭크에게 그 교훈은 명확했다. 과거의 방식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뿐이다.

지난봄,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헬스키친의 한 극장에서 프랭크를 만났다. 그는 밴드 ‘더 킬러스’의 음악을 소재로 한 새로운 오페라 프로젝트 리허설에 한창이었다. 더 킬러스의 곡들을 엮어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 ‘더스트랜드’의 건국 신화를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투영해 풀어내는 일종의 뮤지컬 영화 기획이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브레히트의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모티프로 삼았어요. 요즘 더 킬러스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방금 새 앨범을 냈지 뭡니까. 설계를 전부 다시 해야 할 판이에요.” 그는 지난 일주일간 밴드의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 그리고 뮤지컬 ‘해밀턴’의 연출가 토마스 카일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카일이 직접 섭외한 실력파 브로드웨이 보컬 군단도 힘을 보탰다.

지인과 가족으로 구성된 소수의 관객이 자리를 잡자 카일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음악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줄거리를 설명해 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카일은 무대 구석에 놓인 접이식 탁자에 프랭크, 플라워스와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피아노가 ‘엔터루드(Enterlude)’의 아름답게 하강하는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반원형으로 둘러선 배우들은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여기 머무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비록 단 하루뿐일지라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 기사를 집필하는 동안 프랭크는 ‘내 작업물(My Stuff)’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 내게 보내주었다. 거기에는 그가 현재 진행 중인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명단을 바꿔가며 나열되어 있었다. 목록 중 일부는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그가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들이었다. 1990년대부터 선댄스 시나리오 작가 랩의 고문으로 활동해 온 그는, 훗날 거물급으로 성장한 수많은 영화인과 교류하며 힘을 보탰다. <미니의 19세 일기>와 <나를 용서해 줄래요?>를 연출하고 프랭크가 <퀸스 갬빗>에서 베스 하먼의 어머니 역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던 마리엘 헬러, 그리고 최근작 <애프터썬>을 연출한 샬럿 웰스 등이 대표적이다. 1993년, 폴 토마스 앤더슨이 자신의 첫 장편 영화인 <리노의 도박사>를 집필하던 시절에도 이 캠프를 찾았다. 당시 프랭크는 그에게 <피의 수확>을 비롯한 도서 목록을 건네며 이렇게 조언했다. “영화는 그만 보고 책을 읽기 시작하게.” 앤더슨은 그때를 회상하며 내게 말했다.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최고의 조언이었다.”

<퀸스 갬빗>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넷플릭스는 프랭크가 내놓은 다음 세 가지 프로젝트를 모두 거절했다. 그중 하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1938년 작 소설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각색한 작품이었다. 프랭크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메건 애벗과 공동으로 대본을 집필 중이다. 소재 자체가 까다로운데, 흔히 <롤리타>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이 소설은 17세 소녀에게 매료된 중년 미술 비평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랭크는 이 작품을 필름 누아르로 풀어내길 원했고, 장르 문학으로 전향하기 전 학계에 몸담았던 애벗은 누아르 속 여성 캐릭터 연구의 권위자다. 애벗은 내게 "그간 팜파탈이 홀대받는 캐릭터로 전락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라며, "진정 위대한 누아르는 늘 그 지점을 비틀곤 한다. 스콧은 여성의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길 원했다"라고 전했다. 영화 제작이 성사된다면 안야 테일러 조이가 이 팜파탈 역을 맡을 예정이다.

내년 1월에는 AMC를 통해 <무슈 스페이드>가 방영을 시작한다. 그 무렵 프랭크는 스코틀랜드에서 넷플릭스가 마침내 승인한 프로젝트인 <디파트먼트 Q>를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덴마크 작가 유시 아들레르 올센의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다. 프랭크는 자신의 소설 <쉐이커>의 후속작인 <페이커>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부패한 자금 관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그는 "아무도 읽지 않은 소설의 속편이라니, 이게 바로 내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주는 것 말이다"라며 농담 섞인 소회를 밝혔다. 또한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피의 수확> 판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그는, 애벗과 함께 A24를 위한 시나리오 집필에 착수할 계획이다.

밴드가 여덟 아홉 곡의 더 킬러스 노래를 연달아 연주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프랭크는 무대에서 내려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지 않나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에요.” 그는 한껏 고양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오페라나 그와 비슷한 장르를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기에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글자 그대로 ‘리브레토(가극 대본) 쓰는 법’을 구글에 검색해 봤을 정도니까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 기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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