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In Plain Sight (번역)

Yudhijit Bhattacharjee 「In Plain Sight」

명백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상황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표현

2000년 1월, 제나는 겨우 열 살 무렵 홀로 비행기에 올라 고향 기니를 떠나 텍사스주 댈러스로 향했다. 기내에서 승무원은 그녀에게 쿠키와 장난감을 건넸다. 공항에 도착하자 항공사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나왔고, 그곳에는 모하메드 투레와 드니즈 크로스-투레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모하메드는 제나가 기니에서 온 친척이며 자신들이 돌보게 될 아이라고 설명했다. 제나는 그 말을 믿었다. 이후 투레 가족은 그녀를 댈러스 인근 교외 도시 사우스레이크의 집으로 데려갔다. 커다란 앞마당과 뒤뜰 수영장이 딸린 2층 벽돌 저택이었다. 동네에는 참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밤이면 지붕 위로 도토리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제나는 그 집에서 16년을 살았다. 그 세월 동안 자신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믿음은 강물에 조금씩 깎여나가는 둑처럼 서서히 무너졌다. 집에는 아이가 다섯 더 있었다. 모하메드와 드니즈의 세 아들과 두 딸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녔지만 제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일과 요리를 도맡았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가족과 함께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드니즈와 모하메드는 다른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주었지만, 제나에게는 해지고 낡은 헌옷만 돌아갔다. 심지어 속옷조차 드니즈가 버린 것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자기 침대가 있었지만 제나는 바닥에 깐 매트리스에서 잤다.

그리고 폭행이 있었다. 제나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드니즈는 벨트나 전기 코드를 휘둘러 그녀를 때렸고, 제나의 몸에는 늘 멍이 가득했다. 어느 날은 드니즈가 그녀의 왼쪽 귀걸이를 잡아당겨 귓불이 찢어지기도 했다. 제나가 성장하면서 맞서기 시작하자—벨트나 코드를 빼앗으려 들자—드니즈는 모하메드까지 끌어들였다. 한 번은 모하메드가 제나를 바닥에 눌러 엎드리게 한 뒤 그녀의 등을 짓누르고 앉아, 드니즈가 마음껏 때리도록 했다.

제나가 스무 살을 넘겨서야 마침내 진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한 번도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투레 가족 집안의 무급 하인이었다. 드니즈는 사소한 실수만 있어도 제나에게 소리쳤다. 부엌 정리를 하다가 숟가락 하나를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넌 내 노예야.”
드니즈는 말했다.
“넌 여기서 일하라고 있는 거야!”

제나는 미국에 오기로 선택한 적도 없었고, 그 이전 삶의 중요한 결정들 역시 스스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 기니에서는 부유한 집안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데려와 집안일을 시키는 일이 흔하다. 제나는 기니 동부의 시골 마을 만디아나에서 자랐다. 부모는 농부였고, 가족은 창문도 없는 초가지붕 오두막에서 살았다. 마을의 ‘수석 사냥꾼’ 직함을 갖고 있던 아버지는 기니 초대 대통령 아메드 세쿠 투레 정권의 고위 관료였던 마르셀 크로스의 충복이었다. 그는 마을 선거운동을 도왔고, 필요할 때마다 수도 코나크리로 올라갔다.

제나가 여덟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녀를 차에 태워 400마일 넘게 떨어진 코나크리의 크로스 집안으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사흘 동안 제나를 숨겨두었지만 막지 못했다. 제나는 차에 실려 떠나던 날 어머니가 울고 있던 모습을 기억했다. 코나크리에 도착한 뒤 그녀는 자신이 시각장애가 있는 크로스 집안 딸을 돌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집에는 이미 일하는 여자아이 둘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빨래를 맡고 다른 한 명은 집안 허드렛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셀 크로스는 제나의 아버지에게 제나를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큰딸 드니즈와 그녀의 남편 모하메드와 함께 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바로 아메드 세쿠 투레의 아들이었다. 제나의 아버지는 이 결정에 반대할 처지가 아니었다. 훗날 그는 “딸을 크로스에게 맡긴 순간, 딸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까지 넘긴 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제나는 자기 삶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크로스는 그녀의 미국 임시 비자를 준비했고, 제나에게 남은 기억이라곤 비자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눈이 아팠다는 것뿐이었다.

제나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하는 단어는 분명 존재한다. 비록 그녀 주변 누구도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바로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흔히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리는 범죄다. 이는 사람을 성 착취나 노동 착취 목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미국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년 인신매매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 보이지 않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국가 인신매매 핫라인은 2007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21만 8천 명이 넘는 피해자를 확인했다. 많은 피해자가 불법 밀입국 형태로 미국에 들어오지만, 제나처럼 합법 비자를 들고 공항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찾으며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이나 2023년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처럼 아동 성매매를 다룬 작품들 덕분에 성 착취 인신매매는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인신매매 피해자의 77%는 강제 노동 피해자다. 미국 내 노동 착취 피해자 대부분은 호텔, 네일숍 같은 사업장에서 거의 무보수로 일하는 이민자들이다. 2024년 매사추세츠의 피자 체인 ‘스태시스 피자’ 업주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하루 14시간 넘게 일시키고, 도망치면 이민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 강제노동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조지아주의 바닥재 제조업체 웰메이드 인더스트리에 연방 및 지방 수사기관이 들이닥쳐 수십 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발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고임금을 약속받고 임시 취업비자로 입국했지만, 도착 직후 여권과 서류를 빼앗겼다. 또 다른 피해자들은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나 보모로 강제노동을 당한다. 이런 사례는 특히 드러나기 어렵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나의 역할은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았던 투레 부부의 막내 팀우를 돌보는 일이었다. 젖병을 먹이고 놀아주며, 드니즈가 저녁 준비를 마치면 부엌 정리를 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일은 끝없이 늘어났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아이들 침대를 정리하고 방을 치운 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다. 드니즈는 그녀를 장보내 보냈고, 글을 읽지 못했던 제나는 상품 포장 색깔과 로고만으로 물건을 구분하는 법을 익혔다. 훗날 한 이웃은 사우스레이크 같은 부유한 교외 동네에서 본 낯선 풍경을 기억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을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무거운 장바구니 여러 개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드니즈와 모하메드는 친구들에게 제나를 조카라 소개했다. 기니의 가난에서 구해온 아이라고 말하며, 손님들 앞에서는 그녀를 다정하게 대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잔인했다. 어느 날 드니즈는 제나를 뒷마당으로 끌고 나가 개 씻기듯 차가운 물을 뿌리며 “냄새난다”고 말했다. 더 은근한 모욕도 있었다. 제나가 처음 생리를 했을 때, 드니즈는 집에 있던 생리대를 허락 없이 썼다며 그녀를 심하게 꾸짖었다.

포옹과 스킨십이 흔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제나는 거의 누구에게도 다정한 손길을 받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를 만지는 순간은 대개 벌을 줄 때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못생겼다, 남자친구도 못 사귈 거라고 놀렸다. 유일한 온기는 막내딸 레마에게서 왔다. 레마는 어느 해 제나에게 생일카드를 건넸다. 반면 큰딸 사란은 늘 적대적이었다. 한동안 제나는 사란 방 옷장에 자기 옷 상자를 두었는데, 어느 날 문을 안 닫았다는 이유로 사란이 그 상자를 복도로 내던졌다. 제나는 결국 짐을 차고로 옮겼다.

드니즈는 가끔 벌이라며 제나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제나는 근처 공원의 지붕 달린 벤치에서 잠을 청했다. 2011년 11월, 드니즈가 아이들 학교 준비를 제대로 돕지 않았다며 화를 낸 뒤 제나는 일주일 동안 공원에서 지냈다. 밤이 너무 추워 공중화장실 손 건조기로 몸을 녹여야 했다. 결국 투레 가족은 그녀를 찾아냈다. 팀우가 달리기를 하다 공원에서 제나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제나는 돌아가길 거부했다.

“안 돌아갈 거라고 했어요.”

훗날 그녀는 그렇게 회상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갔다. 밖은 너무 추웠고 갈 곳도 없었다.

제나는 물리적으로 감금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 자체가 감옥이었다. 미국에 올 당시 그녀는 영어를 전혀 몰랐다. 말링케어와 프랑스어만 사용했다. 시간이 흐르며 집안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투레 가족 대화, 그리고 TV를 들으며 영어를 익혔다. 드니즈가 막내들에게 가르치려고 쓰던 Hooked on Phonics 교재를 몰래 레마 침대 밑에 숨겨두고 읽으며 독학했다. 드니즈가 책을 빼앗은 적도 있었지만, 제나는 다시 손에 넣어 플래시카드를 만들며 공부했다. 자전거도 혼자 배웠다. 자기 자전거는 없었지만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투레 아이들 자전거를 잠깐 타곤 했다.

수년 동안 제나는 투레 가족 외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00년대 중후반, 팀우와 레마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다른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였다. 학교 육상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사란의 동급생 앤서니 미한을 만났다. 흑인 게이 청소년이었던 미한은 따돌림에 익숙했고, 혼자 서 있는 제나에게서 비슷한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있는 사람 보면 말을 걸고 싶어져요. 저도 학교에서 괴롭힘당했거든요.”

그는 훗날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제나도 시간이 지나며 미한과 친구가 되었다. 이후 미한 가족이 투레 집 근처로 이사 오면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다. 제나는 동네 산책 정도는 허락받았고, 둘은 함께 달리기를 했다. 미한은 집안일과 마당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밤늦게 레마를 재운 뒤에는 둘이 함께 「카다시안 따라잡기」 같은 리얼리티 쇼를 보았다.

투레 집에 드나들며 미한은 제나가 얼마나 열악하게 대우받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매트리스엔 시트조차 없었다. 샤워 용품 바구니는 욕실이 아니라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는 특히 옷차림에 민감했다.

“사란은 매주 다른 헤어스타일로 학교에 왔어요. 레마도 새로 땋은 머리나 익스텐션을 하고 다녔고요.”

그는 말했다.

반면 제나의 머리는 늘 엉망이었다. 그녀가 받아본 유일한 ‘머리 손질’은 오래전 모하메드가 벌이라며 전기 이발기로 머리를 밀어버린 일이었다.

어느 날 미한은 물었다.

“왜 공짜로 일해?”
“집안일 하면 돈 받는 거 아니야? 레마도 받잖아. 넌 다 하는데 왜 못 받아?”

제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 원래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미한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드니즈가 자기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전했다. “제나가 기니에 남았으면 강간당하고 죽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제나는 무너져 울었다. 미한의 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순간, 그녀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제나는 도망가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녀는 불법체류 신분이었고, 여권도 투레 부부가 갖고 있었다. 미한은 말했다.

“도망치면 경찰한테 바로 잡혀갈 거야.”

그러면서 언젠가 성공하면 꼭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돈 벌고 변호사도 구할 수 있게 되면, 꼭 여기서 꺼내줄게.”

이후 제나는 메리 톰슨이라는 이웃과도 가까워졌다. 아이들 등하교 길에 함께 걷다가 친해진 것이다. 톰슨은 가끔 제나에게 아이 돌봄 일을 맡기고 돈을 주었다. 드니즈도 이를 허락했다. 제나는 그 돈으로 킨들을 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가끔 셀카나 자신이 만든 음식을 올리기도 했다. 톰슨이 이혼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엔 오히려 제나가 음식을 들고 찾아와 위로했다. 반대로 톰슨은 운동복과 나이키 운동화를 건넸다.

“이 집만이 제 삶의 유일한 빛이에요.”

제나는 어느 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그녀는 결국 한계에 도달했다.

제나가 완전히 무너진 그날 저녁도 처음에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2016년 어느 날, 드니즈는 미용실에 다녀온 뒤 저녁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을 보고 화를 냈다. 그녀는 모하메드에게 위층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제나를 부르라고 했다. 제나는 레마 방에서 나오며 저녁 재료를 이미 꺼내놨다고 말했다. 평소와 달리 반항적인 목소리였다. 그 말투에 드니즈가 발끈했다.

드니즈는 계단을 올라오며 계속 소리를 질렀고, 제나의 옷깃을 움켜쥔 뒤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제나는 몸을 뿌리치고 레마 방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레마에게 더는 맞고 살 수 없으니 집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드니즈는 다시 달려들어 제나를 때렸고, 결국 모하메드와 큰아들 아흐메드가 말려서야 손을 뗐다. 드니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아흐메드가 “폭력을 쓴 건 엄마인데 경찰 부르는 건 좋지 않다”고 하자, 이번엔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제나는 배낭을 챙긴 뒤 2층 욕실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틀 동안 다시 공원에서 잤다.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스타벅스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 킨들의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리 톰슨에게 연락했다. 이후 중학교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직접 전화를 걸었다. 톰슨은 받지 않았고, 제나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메리, 저 제나예요. 지금 중학교에 있는데… 혹시 저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

제나는 일주일 동안 톰슨 집에 머물렀다. 이후 또 다른 이웃인 마시드 골바라니의 집으로 옮겨 며칠 더 지냈다. 골바라니는 드니즈의 친구였는데, 제나에게서 투레 집안에서의 노예 같은 생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드니즈는 오래전 골바라니에게 제나가 부모를 잃은 조카이며, 기니에서 이미 고등학교를 마쳤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골바라니는 경찰 신고나 비영리단체 도움을 받자고 제안했지만, 제나는 상황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다시 투레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골바라니는 정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드니즈와 모하메드를 직접 마주해 따져 물었다. 하지만 드니즈는 적반하장이었다.

“제가 얘를 때렸다고요? 말도 안 돼요. 얘가 저보다 더 크고 힘도 센데요.”

제나는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거짓말을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였다.

골바라니가 돌아가자마자 드니즈는 다시 제나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직감한 제나는 주머니 속 아이팟 터치를 꺼냈다. 팀우에게 20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었다. 그녀는 몰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드니즈는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제나는 떠나고 싶지만, 그렇다면 기니로 돌려보내 달라고 말했다.

“돌려보내?”
드니즈가 비웃듯 말했다.
“우리가 널 왜 돌려보내?”

그녀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욕설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공원에서 살아!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강간당해도 신경 안 써.”

드니즈는 가족이 제나에게 아무 빚도 없으며, 원하면 언제든 나가도 된다고 말했다.

“비행기표만 2천 달러야. 여권 만드는 데도 천 달러 넘게 들어.”
“내가 너한테 그런 돈 쓰겠어? 내가 원할 때, 돈 있을 때나 하지.”

그날 이후 제나의 삶은 이전보다 더 지옥이 되었다. 드니즈는 그녀의 외출을 금지했고, 끊임없이 소리치며 “넌 하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제나는 또 다른 녹음 파일에 이런 말을 남겼다.

“너는 이 집에서 일해야 해.”
“그 일 하라고 여기 온 거야.”
“비행기 태워 보내기 전에 우리 집부터 깨끗이 해놔.”
“당장 시작해. 어디 갈 생각 하지 마.”

매일 이어지는 학대 끝에 제나는 이번에는 정말 도망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메리 톰슨에게 또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예전 드니즈와 친구였던 부동산 중개인 아르네타 샴스를 떠올렸다. 샴스는 돈 문제로 드니즈와 사이가 틀어진 뒤 마지막으로 투레 집에 들렀을 때 제나에게 전화번호를 건네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제나는 다시 페이스북 메신저를 켰다.

“샴스 아주머니,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내일 아침 7시나 8시에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샴스는 곧 답장을 보냈다.

“얘야, 전혀 귀찮지 않아.”

그날 오후 제나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동네 스타벅스에서 샴스를 만났다.

제나는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인지 털어놓았다. 밤마다 잠들기 전 “내일 아침엔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샴스는 예전 이웃 브리짓 아주포에게 연락했다. 아주포는 한때 투레 가족과 친했지만 지금은 휴스턴 근교 우들랜즈로 이사한 상태였다. 아주포는 제나가 “이대로면 자살할 것 같다”고 말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샴스와 아주포, 그리고 아주포의 스물여섯 살 딸 크리스틴은 제나를 빼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오스틴에 살던 크리스틴이 직접 차를 몰고 와 제나를 우들랜즈의 아주포 집으로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드니즈와 모하메드가 팀우를 오클라호마 대학에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비운 것이다. 사란과 레마는 집에 있었지만, 제나는 이번에는 꼭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과 오래전에 만료된 여권, 그리고 투레 집안에서 하인처럼 살았다는 증거들을 챙겼다. 아주포가 “증거가 될 만한 건 전부 가져오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이 사우스레이크에 도착하자 샴스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네 거리 끝에 회색 차가 기다리고 있어.”
“지금 나와도 안전하겠니?”

제나는 옆문을 통해 몰래 빠져나왔다. 등에 멘 배낭 안에는 여권이 있었고, 메리 톰슨이 챙겨준 더플백에는 세면도구와 현금 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제나가 차에 올라타자 크리스틴은 곧장 차를 몰기 시작했다.

샴스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짧았다.

“새 삶을 시작하게 돼서 정말 기뻐.”

2016년 가을, 미국 국무부 산하 외교안보국(D.S.S.)의 감독 특수요원 케이트 랭스턴은 처음으로 제나 이야기를 들었다. 휴스턴의 한 비영리단체가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이는 여성이 있다”고 제보한 것이다.

랭스턴은 마르고 눈빛이 날카로운 여성으로, 늘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오랫동안 국제 인신매매 사건을 수사해왔는데, 이런 범죄에는 비자 사기가 자주 얽혀 있어 국무부 수사관들이 특히 많이 관여했다.

랭스턴은 말할 때 몸짓이 크고 “대체 이게 뭐야?” 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2011년 처음 성매매 피해자를 조사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피해 여성은 인신매매범이 할라피뇨 고추를 잘라 변기에 넣고, 자신의 머리를 변기 안에 처박은 뒤 물속에 담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랭스턴은 그 여성 얼굴에 남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인터뷰가 끝나고 결심했어요.”
“이 사람들을 반드시 잡겠다고.”

인신매매는 개발도상국에서 더 흔하지만, 미국 내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 법무통계국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 기준 인신매매 혐의로 연방검찰에 넘겨진 사람은 2,300명을 넘었다. 2013년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기소 건수는 73% 늘었다. 2022년 확인된 사건 가운데 약 42%가 노동 착취였지만, 실제 비율은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 착취는 성매매보다 훨씬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랭스턴은 말했다.

“미국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착취 노동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요.”

그녀는 네일숍을 예로 들었다.

“50달러짜리 매니큐어를 받으면서도 다들 생각 안 하죠.”
“재료비, 전기세, 임대료 다 빼고 나면 노동자에게 얼마나 돌아가겠어요?”
“정상적인 임금이 지급되고 있다면 그 가격으론 절대 안 되거든요.”

가정 내 강제노동은 더 은밀하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 민권국은 여러 사례를 기소해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이민자인 경우가 많았다.

2022년에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여성 자히다 아만과 그녀의 두 아들이, 파키스탄 출신 며느리를 14년 동안 버지니아 자택에서 강제노동시키고 폭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25년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부부 볼라지·이시아카 볼라린와가 미국으로 데려온 여성 두 명에게 무급 가사노동과 육아를 강요한 혐의로 뉴저지 연방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런 사건들이 오래 숨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문화적 무지였다. 투레 가족 이웃 대부분은 기니나 기니 문화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제나 상황을 깊이 의심하지 않았다.

랭스턴의 동료 재커리 보언은 말했다.

“드니즈와 모하메드가 둘러댄 이야기들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거예요.”
“‘좀 심하게 대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카고, 아프리카에서 데려와 더 나은 삶을 준 거겠지’ 정도로 생각한 거죠.”

랭스턴과 보언이 처음 제나를 인터뷰했을 때 가장 놀란 점은 그녀의 순진함과 세상 물정 모르는 태도였다. 스무 살 중반 여성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화해보면 거의 사춘기 아이 같았어요.”

보언은 그렇게 말했다.

제나가 세운 귀국 계획만 봐도 그 순진함이 드러났다. 그녀는 뉴올리언스에만 가면 기니처럼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프리카 도시들에 흔한 ‘모터 파크’—장거리 버스를 탈 수 있는 교통 허브—같은 곳을 찾으면, 거기서 자기 마을까지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랭스턴과 보언은 처음부터 그녀 말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경험상 노동 착취 피해 주장 상당수는 실제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 분쟁 수준인 경우도 많았고, 특별 체류 비자를 받으려 꾸며낸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첫 인터뷰 중간쯤, 두 수사관의 의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나가 자기 생일을 한 번도 축하해본 적 없다고 말했어요.”

랭스턴은 회상했다.

“그 순간 둘 다 동시에 느꼈죠.”
‘이건 진짜다.’

하지만 여전히 증거가 필요했다. 제나가 강제노동 피해자였다는 객관적 기록 말이다. 관광비자 외에는 그녀 이름으로 남은 서류가 거의 없었다. 투레 집에서 보낸 16년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삶처럼 흔적이 없었다.

랭스턴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집 안에 숨어 살아온 유령 같은 사람의 삶을 대체 어떻게 증명하죠?”

수사관들은 우선 이웃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사람이 제나가 마당 일을 하거나 장을 봐 들고 오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이웃은 자기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제나를 “노예(slave)”라고 부르는 걸 듣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그런 표현이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웃은 어느 날 TV에서 인신매매 관련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혹시 제나도 피해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곧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 동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랭스턴은 그 말을 듣고 분노했다.

“우린 정말 충격받았어요.”
‘다들 알고 있었네. 그런데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네.’

그녀와 보언은 제나의 노예 같은 처지가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점에 놀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고도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받았다.

예외는 단 한 명이었다. 한 이웃이 FBI에 “제나가 사실상 계약노예(indentured servant)처럼 보인다”고 신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제보는 아동보호국으로 넘어갔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투레 가족은 이웃들에게 줄곧 제나를 친척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게 취급받았다”는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가장 분명한 차이는 교육이었다.

수사 결과, 브리짓 아주포는 2004년쯤 제나를 학교에 보내려고 직접 움직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주포는 드니즈에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불법”이라고 말했다. 드니즈는 제나에게 필요한 서류가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아주포는 서류 없이도 받아주는 학교까지 찾아냈다.

하지만 드니즈는 또 거부했다. 지금은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들 마르셀이 수학을 못해 아이스하키 팀에서 제외될 위기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아주포와 드니즈는 거래를 했다. 아주포의 큰아들이 마르셀의 수학을 3개월 동안 가르쳐주고, 성적이 올라 하키팀에 복귀하면 제나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주포는 말했다.

“마르셀은 시험을 통과했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고, 하키팀에도 복귀했어요.”
“전 이제 정말 제나가 학교에 가게 되는 줄 알았죠.”

그녀는 심지어 등하교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제나가 학교에 가기로 한 바로 전 금요일, 드니즈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통보했다.

제나가 사우스레이크에서 보낸 16년 동안, 투레 부부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반면 자기 아이들은 예방접종도 하고, 교정 치료도 받고, 안경도 맞췄다.

어느 날 제나는 부엌에서 넘어져 앞니 하나가 부러졌는데, 스스로 그 치아를 뽑아버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유일한 치과 진료는 모하메드가 농양 치료를 위해 치대 병원에 데려갔던 한 번뿐이었다.

수사관들은 그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제나는 병원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건물 분위기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래서 랭스턴과 보언은 댈러스 일대 치과대학들을 직접 돌며 확인했고, 결국 텍사스 A&M 치과대학이 그녀 기억과 일치한다는 걸 알아냈다.

행정 직원이 제나 이름을 검색했지만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모하메드의 휴대전화 번호로 조회하자 2014년 7월 환자 방문 기록 하나가 발견됐다. 이름 철자가 틀려 있었고 생년월일도 여권 정보와 달랐다. 진료비는 현금으로 결제돼 있었다.

보언은 말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에요.”
“그들은 일부러 존재를 숨기려 한 거죠.”

멀리 떨어진 대학 치과까지 데려가고, 이름을 일부러 틀리게 적고, 현금으로 계산한 행동 자체가 명백한 은폐 시도라는 뜻이었다.

수사 초기, 랭스턴은 사우스레이크 경찰 기록도 조회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 발생 약 2년 뒤, 그녀가 경찰서에서 다른 직원과 이야기하던 중 뜻밖의 말을 들었다.

“혹시 예전 데이터베이스도 확인해보셨나요?”
“요즘 직원들은 그 시스템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랭스턴은 깜짝 놀랐다.

오래된 시스템 안에는 2002년 4월 30일자 경찰 보고서가 남아 있었다. 작성자는 대럴 메이휴 경관이었다. 그는 투레 집 근처 공원에서 혼자 있던 어린 제나를 발견했었다. 당시 제나는 열두 살쯤이었다.

현재 학교 경찰로 일하는 메이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머리는 엉켜 있었고 옷도 지저분했어요.”
“아이가 극도로 불안해 보였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자 투레 부부는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제나를 기니에서 합법적으로 입양해 전쟁과 가난으로부터 구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이휴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를 얼마나 찾았느냐”는 질문에 모하메드가 자꾸 말을 피했기 때문이다.

메이휴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의 태도와 반응, 보호자들의 답변까지 모든 게 어딘가 이상했다.”

랭스턴에게 이 기록은 결정적이었다. 투레 부부가 제나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입양된 아이”라는 거짓말까지 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랭스턴은 메이휴를 칠리스 레스토랑에서 만나 당시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그분이 눈물을 글썽였어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는데 더 했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메이휴 역시 지금까지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인신매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정말 아무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죠.”

2018년 4월 25일 아침, 외교안보국 요원들과 현지 경찰은 사우스레이크 자택에서 모하메드와 드니즈를 체포했다.

집을 수색하던 랭스턴은 벽과 선반 곳곳에 걸린 수백 장의 가족사진을 봤다. 투레 가족과 친척들 사진은 넘쳐났지만, 제나는 단 한 장에도 없었다.

“사진 액자에도 없고, 냉장고에도 없고, 벽에도 없었어요.”

랭스턴은 말했다.

집 안에서 발견된 수천 장 사진 중 제나가 등장하는 건 40장도 되지 않았다. 그중 어린 시절 사진 하나에는 드니즈와 모하메드, 아이들이 정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제나는 한쪽 구석에서 마당일을 하다 말고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드니즈와 모하메드는 강제노동, 불법체류자 은닉, 강제노동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모하메드는 연방 수사관에게 “제나를 입양하려 했다”고 거짓 진술한 혐의도 추가됐다.

두 사람은 무죄를 주장했다.

2018년 7월 랭스턴은 사건 보강을 위해 기니 코나크리로 건너가 제나 가족들을 조사했다. 이후 재판 준비가 한창이던 가을, 기니 정부는 당시 미국 법무장관이던 제프 세션스 앞으로 공식 서한을 보냈다. 미국 수사관들이 허가 없이 기니에서 조사 활동을 벌여 자국 법을 위반했다는 항의였다.

워싱턴 D.C.의 외교안보국 관계자 존 프리먼은 상관과 함께 기니 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투레 사건 이야기를 꺼내며 물었다.

“어떻게 좀 해줄 수 없겠습니까?”

프리먼의 상관이 “그럴 수 없다”고 답하자, 동석한 다른 기니 관계자가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판사나 검사한테 전화라도 해줄 수 없는 겁니까?”

프리먼은 그 자리에서 분명히 말했다.

“이미 협상 기회는 끝났습니다.”

투레 부부 기소 소식은 기니 언론에서 크게 보도됐다. 재판 첫날, 코나크리에서는 모하메드와 드니즈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은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티셔츠 아래에는 프랑스어로 “투레 부부를 석방하라(Liberez le Couple Toure)”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편 텍사스 포트워스 법정에서 제나는 오랜 세월 자신을 학대했던 사람들과 다시 마주했다. 예전의 위축된 어린 하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차분하고 단단한 여성이 증언대에 앉아 있었다. 변호인단의 거센 반대신문 속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검찰 측 증인 가운데는 제나의 어머니 말라도도 있었다. 검찰은 그녀를 기니에서 미국으로 데려왔다. 제나와 어머니는 딸이 미국으로 떠난 뒤 20년 동안 단 한 번 전화로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제나는 늘 어머니 역시 자신을 기꺼이 떠나보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재판 둘째 날, 말라도는 통역을 통해 당시 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제나의 아버지가 딸을 코나크리로 데려가기 전, 사흘 동안 제나를 숨겨두었다고 말했다.

검사가 물었다.

“왜 딸을 숨기셨습니까?”

말라도는 대답했다.

“남의 노예가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변호인단은 정부가 기니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니에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아이를 친척이나 부유한 집안에 맡기는 문화가 흔하며, 제나 역시 자발적으로 투레 가족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논리였다.

드니즈 측 변호사 스콧 팔머는 제나가 집 안에 감금돼 있지 않았고 인터넷 사용도 허용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스타그램도 하고 동네에서 조깅도 하던 사람이 어떻게 강제노동 피해자라는 겁니까?”

그는 제나가 미국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인신매매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19년 1월 10일, 드니즈와 모하메드는 거의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해 두 사람은 각각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또 제나에게 약 3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기준, 법원 기록에 따르면 투레 부부가 실제로 지급한 돈은 4천 달러도 되지 않았다.

나는 2024년에 처음 제나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법적으로 이름을 바꾼 상태였고, 투레 가족 밑에서 보낸 16년과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떠올리기를 몹시 꺼렸다.

사우스레이크를 떠난 뒤 제나는 몇 달 동안 아주포 집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아주포의 도움을 받아 영어 읽기와 쓰기도 계속 배웠다. 이후 소매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운전도 익혔으며, 자기 아파트도 얻었다.

그녀는 말했다.

“GED(고등학교 학력 인증 시험)를 따고 싶어요.”
“그래도 제가 겪은 일 끝에 남는 게 하나쯤은 있었으면 해서요.”

기니에 있는 가족과는 사실상 관계가 끊긴 상태였다. 다만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큰 위안이었다. 적어도 버림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라도가 법정 증언을 마친 뒤, 외교안보국 분석관 한 명이 제나를 어머니가 묵는 호텔로 데려갔다. 오랜 세월과 환경 속에서 서로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모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분석관이 자리를 비켜주자 두 사람은 호텔 침대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말라도는 고향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꺼내 보여주었고, 제나는 처음으로 형제자매 사진을 보았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안 됐어요.”

제나는 말했다.

“우린 서로를 잘 몰라요.”

그녀는 앞으로도 어머니와 깊은 관계를 맺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어떤 ‘제나’를 상상하고 있는데… 저는 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스무 살 후반이 되어서야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교육도 다시 받아야 하고, 직업도 만들어야 하는 현실—보다 더 힘든 건 따로 있는 듯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빼앗긴 채 뒤늦게 어른이 되어가는 일 자체가 더 큰 용기와 회복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제나는 이제 친구 몇 명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너무 망설여져요.”
“제가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요.”
“아니면 그걸 이용하려 들까 봐 무섭고요.”

그녀의 불안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드니즈와 모하메드가 곧 출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모두 출소했다. 드니즈는 보호관찰 조건을 어기고 미국을 떠나 벨기에로 갔다. 2025년 2월, 모하메드는 기니로 돌아갔다. 아버지 이름을 딴 코나크리 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기니 외무장관의 환영을 받았다.

기니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수년간 미국에서 법적 문제와 수감을 겪었던” 모하메드와 드니즈가 자유를 되찾았으며, 이는 현 대통령 마마디 둠부야 장군의 “개인적 개입” 덕분이라고 발표했다.

기니 언론 역시 모하메드의 귀국을 “정의의 승리”처럼 다뤘다.

그럼에도 제나에게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케이트 랭스턴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12월, 랭스턴은 내게 제나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도 옮겼고 남자친구도 생겼다고 했다.

만약 앞으로도 삶이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제나는 언젠가 비로소 자기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하인이 아니라,
자기만의 가족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 The New Yorker (2026.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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