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트럼프 시대 속 자신의 역할을 고심하는 버락 오바마 (번역)

Barack Obama Considers His Role in the Age of Trump — The New Yorker (2026.5.4)

By Peter Slevin

버락 오바마는 임기 마지막 날들, 자신의 참모들과 민주당, 그리고 수백만 명의 지지자들을 위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이 국가적 재앙은 아닐 것이라며 주변을 설득하려 애썼다. 비록 스스로조차 온전히 확신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그는 과거에도 미국이 노예제와 내전, 대공황, 짐 크로 법체제 하의 인종차별, 그리고 숱한 암살 사건들을 견뎌냈음을 상기시켰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견고한 국가 제도와 시민들의 회복 탄력성이라는 축복을 받은 나라라고 역설했다. 당시 '가드레일(민주주의의 안전장치)'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오바마는 트럼프가 자신의 업적을 전부 지우지는 못할 것이라 보았고, "기껏해야 15% 정도나 되돌려지겠지"라고 말하곤 했다.

이러한 침착함은 지극히 오바마스러웠다. 그의 매력은 중도좌파적 이념만큼이나 고유의 성품과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트럼프의 저속한 비난, 특히 출생 의혹을 제기한 '버서(birther)론'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인종차별적 폭거라고 믿었으나, 이제는 그 멸시조차 꾹 눌러 담으려 노력했다. 권력의 질서 있는 이양을 보장하는 것 역시 그가 내세운 '위로의 수사학' 중 일부였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취임식을 앞두고 관례에 따라 집무실에서 트럼프를 만난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인이 얼마나 무지하고 배움에 의지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오바마는 주변에 당시 상황을 전하며, 트럼프가 북한이나 러시아 같은 잠재적인 국가 안보 위기에는 무관심해 보였고 대신 선거 유세 인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자랑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고 회상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법(ACA)과 이란 핵 합의를 포함한 자신의 핵심 성과들을 보존해달라고 설득했다. 트럼프는 검토해보겠다고 답했고, 오바마는 그 말이 진심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오바마는 그리스를 방문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는 한편, 선거 캠프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치러진 이 모든 일정은 소모적인 연기의 연속이었다. 오바마는 이 긴장감을 해소하고 숨통을 틔우고자 백악관에서 일련의 활기찬 고별 행사들을 마련했다. 오바마 부부의 친구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동쪽 방(East Room)에서 참모들을 위해 어쿠스틱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Tougher Than the Rest'를 버락과 미셸에게 헌정했고, 미국의 포용성을 찬양하는 노래인 'Land of Hope and Dreams'를 부르며 공연을 마쳤다. 회고록 집필을 고민하던 오바마는 자신이 아끼는 작가들인 제이디 스미스, 주노 디아스, 바바라 킹솔버, 콜슨 화이트헤드, 데이브 에거스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주노 디아스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적었다. "나를 놀라게 한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 나라가 결국 길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꺼지지 않는 낙관주의와 불굴의 신념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가장 활기 넘쳤던 고별 행사는 1월 6일 백악관에서 열린 댄스 파티였다. 살을 에듯 추운 밤이었고, 사람들은 보안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밖에서 몸을 떨며 차례를 기다렸다. 인파 속에는 후원자와 충직한 참모들뿐만 아니라 배리 딜러, 오프라 윈프리, 존 레전드와 크리시 타이겐, 폴 매카트니, 조지 클루니,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매직 존슨 같은 엔터테인먼트 거물과 음악가, 배우, 운동선수들이 즐비했다. 퀘스트러브가 음악 감독을 맡았고 스티비 원더와 솔란지가 무대에 올랐다. 미셸 오바마가 앞장서서 대열을 이끈 가운데 '일렉트릭 슬라이드'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이 틀 무렵에는 치킨과 와플이 제공되었다.

새벽 4시 33분, 챈스 더 래퍼는 자신의 SNS에 올린 영상에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웃음과 사랑, 포옹이 가득했습니다. 역사적이었고, 흑인다웠으며, 아름다운 밤이었죠." 그러나 파티장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자명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물러난 자리를 그에게 경멸만을 쏟아붓던 인물이 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땀에 흠뻑 젖은 채 플로어를 나오던 자넬 모네는 왜 그렇게 오래 춤을 췄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조만간 이 집에 다시 초대받을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몇 년 뒤, 전 법무장관 에릭 홀더의 부인이자 워싱턴의 의사인 샤론 말론은 그날 밤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그 백악관에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밤이었죠." 그녀는 덧붙였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즐기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열흘 전,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 인생이 시작된 시카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이 어쩌다 지금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그는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이 냉소와 양극화를 불러왔고, 이것이 결국 트럼프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린 동력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오바마는 서로 다른 인종과 민족 집단이 신뢰를 바탕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모두 더 노력해야 합니다. 동료 시민들 또한 우리만큼이나 이 나라를 사랑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닥쳐올 투쟁을 향한 약속으로 연설을 끝맺었다. "남은 생애 동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 곁을 지키겠습니다."

몇 주 전, 필자는 오바마를 만나 지난 10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그간의 사건들이 고별 연설에서 보여준 확신을 뒤흔들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를 포함해 오바마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보면, 그가 자신의 역할과 그 가능성, 그리고 한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7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하던 당시 오바마 부부는 사열대에 앉아 있었다. 미셸 오바마는 주변을 가득 메운 백인 남성들의 얼굴에 주목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억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훗날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 무대에는 다양성이라곤 없었다. 미국의 광범위한 실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새 대통령이 '미국의 참상(American carnage)'이라는 어두운 취임사를 마치자—조지 W. 부시가 "참 기괴한 소리군"이라고 평했을 만큼 기이한 연설이었다—오바마 부부는 헬기를 타고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이동해 휴양지인 팜스프링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 미셸은 30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오열했다. 2018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 애썼던 8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에게 말했어요. 정말 힘들었다고. 우리가 해낸 일이 너무나도 고된 과정이었고, 지난 8년 내내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요." 그들이 느꼈던 압박감 중 상당 부분은 물리적 폭력의 위협에서 기인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비밀경호국은 오바마 가족이 이전 대통령 가족보다 세 배나 많은 위협에 노출되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2011년 어느 날 밤에는 한 괴한이 백악관을 향해 일곱 발의 총탄을 발사했고, 그중 한 발은 오바마 부부가 자주 머물던 트루먼 테라스의 방탄유리에 박히기도 했다.

트럼프의 승리가 불러온 파장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자신의 행정부가 일궈낸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며 백악관을 떠났다. 경제 회복과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건강보험 개혁법(ACA), 파리 기후 협약, 동성혼 합법화, 이란 핵 합의, 그리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까지 그 면면은 화려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로운 삶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는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아무런 제지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정체를 들키지 않고 동네 식료품점에 들르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오바마는 대통령직 수행 중 가장 힘든 부분으로 '유폐된 삶'을 꼽았다. "익명성을 잃는다는 건 뼈아픈 일이며, 결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직책의 압박에서 벗어나 대중적 지지가 높았던 전임 대통령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소설가 존 업다이크는 일찍이 이 잡지에 기고한 짧고 비꼬는 듯한 수필에서, 미국의 대통령직이란 "전직 대통령이라는 축복받은 상태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바마 역시 어떤 날에는 이 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그는 백악관을 떠나기 전부터 친구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농담을 자주 던지곤 했다.

전직 대통령의 삶에는 오바마가 따르거나 혹은 경계해야 할 수많은 선례가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가 수익성 좋은 위스키 증류소를 차렸다. 토머스 제퍼슨은 버지니아 대학교를 세우고 기틀을 닦았다. "인생에서 전직 대통령보다 더 한심한 존재는 없다"고 일갈했던 존 퀸시 애덤스는 다시 하원의원으로 돌아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삶의 만족을 찾았다. 빚더미에 올라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율리시스 S. 그랜트는 자신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이었던 마크 트웨인에게 회고록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구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연방 대법원장에 올랐으며, 허버트 후버는 행정부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한편 여유로운 여가를 즐겼다. (그는 낚시 회고록인 '낚시의 즐거움'에 "물고기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적기도 했다.) 가장 이상적인 전직 대통령의 표본은 단연 지미 카터였다. 그는 빈민 주택 건설부터 아프리카의 기니벌레병 퇴치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그는 언젠가 "내가 대통령일 때보다 퇴임 후에 더 정치를 잘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처음 오바마가 세운 계획은 정치권의 난맥상에서 멀리 떨어져 휴식을 취하며 미셸, 그리고 두 딸 말리아, 사샤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퇴임 초기 오바마 부부는 늦잠을 자고, 독서와 운동을 즐기며 여행을 다녔다. 버락 오바마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정생활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마크 마론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아내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기에 이를 갚으려 노력해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내 역량을 가장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이 열망을 채워줄 새로운 목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오바마는 이후 시카고에 풀뿌리 조직 활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담은 대통령 센터를 건립했다. 올해 봄 '준틴스(흑인 노예 해방 기념일)'에 맞춰 개관할 예정인 이 센터는 오바마 재단의 본부 역할을 하게 된다. 퇴임 후 오바마가 가장 공을 들여온 차세대 리더 양성 및 네트워킹 사업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정치권 내에서 그는 젊은 민주당 정치인들의 멘토이자 고문으로 활동하며, 선거철마다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그는 막대한 부를 쌓는 일에도 착수했다. 2017년 3월, 오바마 부부는 출판사 펭귄 랜덤 하우스와 6,500만 달러에 달하는 공동 집필 계약을 맺었다. 이전에도 책을 쓴 경험이 있었지만, 대통령 회고록을 집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뎠다. 첫 번째 권인 '약속의 땅'은 2020년에야 출간되었으며(이 잡지에 발췌록이 실리기도 했다), 오바마는 올해 하반기에 두 번째 권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내게 밝혔다. 반면 미셸은 훨씬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발간된 회고록 '비커밍'은 1,700만 부 넘게 팔리며 출판사 선인세를 훌쩍 뛰어넘는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북 콘서트는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를 포함해 약 30곳의 대형 경기장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1만 4,000명의 관객이 오프라 윈프리와 대담하는 그녀를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이후로도 부부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이제 오바마 부부는 납세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지난 9년간 그들이 정확히 얼마를 벌었는지, 혹은 기부액이 얼마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도서 인세와 강연료, 넷플릭스·스포티파이·오더블 등과의 계약금을 합치면 그 수입은 분명 억 달러 단위에 달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도 상당한 수준으로 불어났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거주하던 시카고 집은 여전히 소유 중이며, 퇴임 직후에는 워싱턴 D.C. 칼로라마 지역의 저택을 810만 달러에 매입했다. 6년 전에는 보스턴 셀틱스 구단주로부터 마사스 빈야드 해안의 저택을 1,175만 달러에 사들였고, 하와이 오아후섬 해변에도 집을 지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슬림 입국 금지나 이민자 가족 격리 같은 강경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오바마를 지지하던 핵심층 사이에서조차 전직 대통령의 호화로운 휴가를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영국 재벌 리처드 브랜슨은 카리브해의 개인 섬에서 오바마에게 카이트서핑을 가르쳐주는 사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코미디언 존 올리버는 "카이트서핑 사진은 좀 자제해달라. 그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다행이지만, 지금 미국은 불타고 있다"고 꼬집었다. 몇 달 뒤, 오바마 부부가 타히티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 오프라 윈프리, 톰 랭크스와 함께 데이비드 게펜의 요트를 탄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오바마 부부의 행보는 타블로이드지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마사스 빈야드에서의 여름 골프 라운딩, 스티븐 스필버그의 요트를 타고 즐긴 이탈리아 리비에라 유람, 그리고 회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해외 강연(VIP 패키지 가격은 2,000달러를 상회했다) 등이 연일 보도되었다. 2023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공연 중에는 미셸이 탬버린을 들고 무대에 올라 'Glory Days' 연주에 합류하기도 했다. 무대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버락은 "내 아내 정말 멋지지 않느냐"며 치켜세웠다.

그사이 미국의 앞날은 어두워졌다. 트럼프 집권 1기 동안 이어진 일상의 파행과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 뒤늦은 조 바이든의 2024년 대선 중도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의 다급했던 100일 캠페인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이어진 트럼프 2기는 그 행보가 워낙 급진적이라 집권 1기 당시 참모진이었던 비서실장과 합참의장조차 그를 '파시스트'라 부를 정도였다. 상황이 악화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묻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바마의 첫 대선 캠페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불붙었다. 정작 오바마가 당선되자 부시는 품격 있는 환영 인사를 건넸고, 퇴임 후에는 침묵을 지키는 삶을 택했다. 도서관 건립 기금을 모으고 그림을 배우며 철저히 입을 닫았다. 당시 부시는 "그는 나의 침묵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전임 대통령은 탭댄스를 추듯 무대 뒤로 사라져 현직 대통령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시는 정치적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부부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현대 대통령 단임사에서 정적이었던 이들이 서로 속내를 털어놓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밤,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아이젠하워는 직접 집무실을 방문해 존슨이 의회 비상 회기에서 발표해야 할 내용을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주었다. 리처드 닉슨은 빌 클린턴에게 러시아 지도부에 관한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트루먼은 일찍이 "정적이었던 이들과 나누는 대화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유서 깊은 대통령의 관례조차 무너졌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한 뒤 오바마에게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고, 오바마 역시 자신의 대통령 센터 개관식에 트럼프를 초대하지 않았다.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당분간 조용히 지내고 싶다. 내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듣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직 "국가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는 순간"에만 입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워싱턴주의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트럼프 1기 당시 "그는 왜 현장에 나오지 않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자주 품었다고 털어놓았다. 퇴임 후 휴식을 원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황이 점점 험악해지자 주변 지인들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비판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데 넷플릭스 사업이나 하고 하와이에서 즐기고만 있을 건가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가 인종 문제에 대해 연설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교회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는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이 가혹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북극성과 같은 이정표를 제시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과거 오바마의 참모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애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바마의 두 차례 대선 캠페인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코넬 벨처는 오바마가 "어둠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 세력이 공화당이라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반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벨처는 2026년 중간선거의 승패가 단순히 먹고사는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가치관과 인격, 그리고 다인종 연합을 끌어내는 통합의 힘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는 "지금 이 시대는 오바마가 더 크고 막중한 역할을 맡아주길 갈망하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에게는 '제다이의 귀환'이 절실하다."

이런 갈망을 쏟아내는 것은 비단 논평가들만이 아니다. 지난해 뉴저지 선거 유세 현장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들었던 부동산 관리인 잭 칸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그를 자주 보기 어렵습니다. 더 자주 대중 앞에 서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신념을 잃지 말라고, 서로 단결해서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자고 말해줘야 합니다."

오바마의 인기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의 96%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가정학연구소(Institute for Family Studies)가 젊은 남성 2,000명을 대상으로 정치, 연예, 종교, 기술 분야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을 때도 오바마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하버드 정치연구소의 여론조사 전문가 존 델라 볼페가 운영하는 민간 조사 기관의 결과도 맥을 같이 한다. 청년층 내 오바마의 호감도는 64%에 달한 반면, 그를 매우 싫어한다는 응답은 고작 11%에 불과했다. 델라 볼페는 오바마의 위상이 "지금 트럼프나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이 처한 상황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러 진영에서 누리는 인기와는 별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새로운 리더를 세우려 애쓰는 현시점에 오바마가 당의 상징으로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미네소타주의 티나 스미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반문한다. "잿더미를 헤치고 나타난 오바마가 우리를 다시 미래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과연 현실적일까요? 그런 일이 재현되리라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에 대한 향수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가 몸담은 정치 현장에서는 우리가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녀는 오바마의 적극적인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작가 H. L. 멩켄의 격언을 떠올렸다고 한다. '모든 복잡한 문제에는 명쾌하고 그럴듯하지만, 결국은 틀린 쉬운 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민주당 주류보다 진보적인 워킹패밀리당(Working Families Party)의 모리스 미첼 전국대표는 오바마를 '부유하고 유명한 유명인'으로 치부하면서도, 그가 여전히 유권자 상당수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미첼은 오바마가 진보 연합을 확장하는 데 더 강력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는 "지금은 파시즘에 맞서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할 때"라며 "오바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판을 뒤흔드는 저항적인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지 워싱턴이 표현했듯, 과거 대통령들은 퇴임 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는 데 전념했다. 오바마의 정치적 비상을 도왔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오바마는 그 어떤 전임자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트럼프가 폭주한다고 느끼며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를 돌아보며 '오바마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는 지금도 자신에게 맞는 정확한 해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 새로 건립된 대통령 센터에서 오바마를 만났다. 예순네 살이 된 그의 짧은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중년 후반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스포츠의 즐거움이 운동의 의무로 바뀌는 서글픈 변화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센터 내부에는 농구 코트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는 고백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질까 봐 풀코트 경기는 은퇴했습니다. 집무실을 떠날 때 '그동안 운이 좋았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대화 도중 오바마는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에 대해 더 이상 환상을 품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업적을 아주 조금만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거나, 정치적 규범이 승리할 것이라던 초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트럼프는 법무부를 동원해 정적을 탄압했고, 펜타곤을 정치화했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며 폭격 위협을 가하는 등 정치적 품격의 모든 정의를 비웃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해 그는 자신에게 고함을 치는 방해꾼을 향해 이렇게 응수한 바 있다. "선생님, 전 현재 미국 대통령이 아닙니다. 저한테 소리쳐봐야 소용없어요." 때때로 그는 자신을 영화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에 비유하곤 한다. 패밀리의 사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실패하는 그 인물 말이다. "이제 좀 벗어났나 싶으면, 그들이 다시 나를 끌어당깁니다."

오바마에게 다른 역할을 더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매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가 트럼프 백악관에서 쏟아지는 온갖 망언과 잘못된 정책에 맞서 훨씬 더 자주 목소리를 낸다면, 자신의 발언이 지닌 파급력은 금세 희석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오바마는 "내가 존 스튜어트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맹렬히 비난하고 뜯어내는 식으로 활동한다면—물론 존이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그건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평론가에 불과하다"고 내게 말했다. 사실 그는 대중이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환경이 워낙 척박하다 보니 제가 무엇을 하는지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사람들은 어쩌다 제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중간선거 때나 게리맨더링 반대 운동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타나고 평소에는 매일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무모한 행보는 오바마를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정치판으로 끌어들였다. 퇴임 후 그는 매 선거철마다 전국을 돌며 유세에 참여했다. 모금 행사를 주최하고 수십 편의 영상 광고와 자동 녹음 전화(robocall) 메시지를 녹음했다. 트럼프에 맞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그는 강연 횟수나 기성 언론 노출 빈도로만 영향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다른 경로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택했다. 자유주의적 가치를 고양하는 메시지를 담은 넷플릭스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수많은 팟캐스트 진행자나 인플루언서들을 만났다. 그의 수석 보좌관인 에릭 슐츠는 이를 두고 "예상치 못한 장소에 나타나는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일례로 오바마는 틱톡에서 연간 수십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2,2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27세의 우루과이계 미국인 카를로스 에두아르도 에스피나와 대담을 나눴다. 또한 온몸에 문신을 새긴 젊은 이발사이자 인플루언서인 '빅블렌즈(VicBlends)' 빅터 폰타네즈와도 자리를 함께했다. 2024년 폰타네즈가 오바마의 머리를 깎으며 진행한 인터뷰는 틱톡에서만 2,4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산 미나즈와 나눈 대화 역시 유튜브에서 85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다.

오바마의 오랜 전략가인 데이비드 플러프는 "앞으로 선거의 향방을 결정할 이들은 정치 정보를 직접 찾아다니지 않고 우연히 접한다"고 분석했다. "오바마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흥미로운 영상 클립으로 이를 접하게 된다. 지루한 정치 연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자신의 시간을 아주 세심하게 나누어 쓴다. 그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아내 미셸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아내는 남편이 일을 좀 줄이고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남은 생을 즐기기를 원한다." 유세 현장에 나와달라는 압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문제로 집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도 하고 아내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그런 요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다. 대중은 나를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역사적으로 비교하며 보지 않기 때문이다. 퇴임 후 네 번의 선거 주기 내내 당의 핵심 대리인으로 뛴 전직 대통령이 전례가 없다는 사실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답게, 오바마는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했다. "사람들이 제게 '더 많은 역할'을 바란다는 건 좋은 신호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우리가 우려하는 것만큼 결정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때로 그 화살이 저를 향하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잠깐, 우리가 이런 나라가 아니었잖아? 지금의 모습도 진짜 우리다운 게 아냐'라고 느끼고 있으니까요."

오바마는 설명을 덧붙였다. "조지 부시가 당선됐을 당시 표 차이는 매우 근소했습니다. 그때는 일종의 시대정신 같은 게 있었다고 봅니다. '클린턴 시대를 거쳤으니 이제는 좀 보수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식의 변화를 원했던 거죠. 제가 당선됐을 때도 대중의 태도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과거 갈등의 소지가 컸던 수많은 쟁점에서 사람들이 훨씬 진보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퇴임한 2016년과 지금 사이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진보 진영의 과도한 의욕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적어도 대중이 트위터상의 좌파가 원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사람들이 갑자기 '동성혼을 반대한다'거나 '인종 차별이 정당하다'고 말하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

오바마와 트럼프는 이따금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25년 1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예우를 갖춰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여전히 오바마 부부에게 경멸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트럼프는 오바마를 '이방인'으로 낙인찍으려는 듯 굳이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고 풀네임을 부르곤 한다. 지난해 트럼프는 오바마가 '반역죄'를 저질렀다며, 그가 2016년 대선을 방해하려고 정보기관을 조작했다는 음모론을 늘어놓았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를 두고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라 칭했고, 툴시 가바드 국가정보국장은 "수년에 걸친 쿠데타"라고 비난을 보탰다. 심지어 트럼프는 오바마가 FBI에 체포되는 가짜 영상을 올리며 미소 짓기도 했다. 이런 파렴치한 공세에 평소 침착하던 오바마 측도 이례적으로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 측 대변인은 "평소라면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헛소리와 가짜 뉴스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지만, 이번 주장은 대꾸할 가치가 있을 만큼 터무니없다"며 "이 기괴한 주장은 조작된 것이며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는 치졸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최근에는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계정에 오바마 부부를 유인원으로 묘사한 인종차별적 영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레빗 대변인은 비판 여론을 "가짜 분노"라고 몰아세웠다.

"개인적으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오바마가 내게 말했다. "다만 제 아내와 아이들이 이런 진흙탕 싸움에 끌려 들어갈 때는 화가 납니다. 그들은 이런 삶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대일지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가족만큼은 예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면 결코 상대방의 가족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지 않을 겁니다." 오바마는 자신에 대한 비방보다 트럼프가 게시한 AI 생성 영상들을 더 우려했다. 전쟁을 "비디오 게임"처럼 다루거나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 식의 영상들 말이다. 오바마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뭐, 저를 공격하는 거야 공정한 게임의 일부죠. 저도 당신만큼 덩치가 크니 마음껏 건드려도 상관없습니다."

오바마는 자신을 향한 모욕을 언급할 때조차 의도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미국이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람들은 흔히 '마가(MAGA)' 운동이나 트럼프의 권력 장악을 오바마 재임 시절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하곤 한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국민의 60%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며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경계했다. "동력을 얻은 우익 세력이 공화당을 장악하고 연방 정부까지 손에 넣는다면, 국가에 얼마나 신속하고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의회가 트럼프에게 굴종하는 모습과 현 행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처사에 "경악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는 투표와 선거, 그리고 민주주의를 믿는다. 설령 완벽하게 실행하지 못할 때조차 최소한 민주적인 척이라도 하려 노력한다"며 "형사 사법 체계나 군대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지난 15년간 오바마가 트럼프를 두고 하지 않은 말은 거의 없다. 오바마 부부는 2020년과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황금 시간대 연사로 나서 트럼프에 대한 혐오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오바마의 출생지 거짓말로 정치적 거물이 된 인물, 그리고 집권 후 자신들이 지키려 애썼던 수많은 가치를 황폐화한 인물에 대한 분노였다. 특히 미셸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2024년 전당대회에서 그녀는 트럼프를 향해 날 선 질문을 던졌다. "지금 그가 탐내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바로 그가 말하던 '흑인들의 일자리(Black jobs)' 중 하나라는 사실을 누가 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연설을 이어갔다. "이건 그가 늘 써먹던 사기 수법이다. 민생을 개선할 진정한 대안이나 해결책 대신 추잡하고 여성 혐오적이며 인종차별적인 거짓말에만 매달리고 있다."

같은 대회에서 버락 오바마는 오늘날의 공화당을 '개인 숭배 집단'이라 규정했다. 그는 트럼프가 "9년 전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순간부터 자기 문제만 징징대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유치한 별명을 붙이고, 해괴한 음모론을 늘어놓으며, 집회 인파 규모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한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오바마는 양손을 좁게 모으는 동작을 취하며 트럼프의 남성성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오바마는 트럼프가 공직을 이용해 자신과 가족의 배를 불리고 매일같이 기괴한 행태를 일삼는 모습을 불신 섞인 눈으로 지켜봤다. 오바마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냈고 현재는 그의 고문으로 활동 중인 벤 로즈는, 오바마가 종종 늦은 밤 친구들에게 "트럼프가 저지른 멍청한 짓거리"에 대해 문자나 이메일을 보낸다고 전했다. 로즈는 "오바마를 미치게 만드는 건 이중잣대"라고 설명했다. "'만약 내가 카타르 전용기를 탔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이다. 이건 단순히 질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미친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가 이런 일 중 단 하나라도 저질렀다면, 그 즉시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다."

오바마는 로즈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자신이 트럼프와 붙었다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로즈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저 저 친구와 링 위에서 제대로 한판 붙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하곤 한다"며 그의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물론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이를 곱씹어봐야 실익도 없다. 2022년 미셸 오바마가 스티븐 콜베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말이다. "이성도, 계획도, 방향도 없는 분노는 그저 또 다른 분노를 낳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분노 속에서 살아왔다."

대중 사이에는 버락 오바마를 향한 광범위한 애정만큼이나 위험하고 막연한 분노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엄중한 경계를 요구한다.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는 역대 그 어떤 후보보다도 이른 시점에 비밀경호국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전직 영부인으로서 상시 경호를 받던 힐러리 클린턴을 제외하면 전례 없는 일이었다. 2024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트럼프가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뒤, 오바마 경호팀은 그가 참석하는 모든 선거 유세를 반드시 실내에서 개최하도록 조치했다. 청중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런 철저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올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 밖 보안 검문소를 뚫고 돌진한 무장 괴한을 막지는 못했다. 모든 전직 대통령 부부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부부 역시 자택과 모든 여행지에서 24시간 밀착 경호를 받는다.

과거 오바마 경호팀에서 근무했던 조너선 와크로는 경호 업무를 두고 "생활을 가장 심하게 침해하는 요소"라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호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위협 환경은 정해진 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대칭적이고 매우 역동적이죠." 실제로 2023년, 경찰은 워싱턴 D.C.에 있는 오바마 자택 인근에서 테일러 타란토를 체포했다. 그는 1월 6일 의회 난입 사건의 피고인이었으나 트럼프에 의해 사면된 인물로, 검거 당시 총기와 수백 발의 탄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구금 기간을 형기로 인정받는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오바마의 친구이자 전 교육부 장관인 안 덩컨은 이렇게 한탄했다. "누군가 내일 당장 미친 짓을 저지르려 할까요? 비극적이게도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오바마의 외부 일정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지난 가을, 그는 현재 뉴저지 주지사가 된 미키 셰릴의 뉴어크 유세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타이 셔츠 차림에 소매를 걷어붙인 편안한 모습으로 단상에 오른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실책들을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트럼프가 법무부를 상대로 요구한 2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지급금 문제부터, 복면을 쓴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들이 표시 없는 승합차에서 내려 미국 시민을 포함한 "거리의 사람들을 잡아가는" 행태까지 거침없이 쏟아냈다. 공화당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악마화하는 대목에 이르자 오바마는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나요? DEI 때문이겠군요. 아내에게 쫓겨났다고요? 그것도 DEI 탓이겠네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청중 사이에서 환호와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오바마는 "인정하겠습니다. 상황이 제 예상보다도 더 나쁘군요. 하지만 여러분, 제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말했었죠."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오바마는 "이제 분위기를 조금 진정시켜 보겠다"며 화제를 돌렸다. 그는 미국의 정치사를 훑으며 노예로 살아야 했던 흑인들, 투표권조차 없던 여성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를 상기시켰다. 미국은 건국 당시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한쪽에는 "누가 결정하고 누가 복종하는지, 누구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누구에게 봉사의 의무가 지워지는지를 가르는 서열 구조"가 존재한다. 그는 "이 이야기는 공포와 무력으로 통제되며, 우리 집단이 승리하려면 반드시 다른 집단이 패배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세뇌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의 세계관이자 '마가(MAGA)' 세력이 갈망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그들은 자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그러고 있다"고 일갈했다. 연설을 마친 그는 연단을 가볍게 두드린 뒤, 스프링스틴의 '희망과 꿈의 땅(Land of Hope and Dreams)'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울타리 쪽으로 향했다.

같은 날, 오바마는 뉴욕 시장 당선을 눈앞에 둔 조란 맘다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출신인 맘다니는 과거 오바마를 "지독하게 사악하고" 정직하지 못한 인물이라며 맹비난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맘다니는 이후 해당 발언을 "철없던 대학 시절의 멍청한 트윗"이라며 철회했고, 지금은 오바마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두 사람은 브롱크스의 영유아 교육 센터를 함께 방문해 '버스의 바퀴(The Wheels on the Bus)'를 합창하며, 무상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시장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선거 유세 기간이 아님에도 정치인과 동행하는 것은 오바마에게 꽤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맘다니의 능력과 젊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의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서민 물가와 같은 민생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맘다니 같은 인물이 훨씬 나은 대변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전직 대통령인 본인은 더 이상 그런 현실적인 고통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지금 나의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 다음 세대 지도자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최고의 리더란 시대정신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8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오바마는 특정 후보를 조기에 지지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멘토링 활동은 주로 의회 선거 후보들에게 집중되어 왔다. 애리조나주의 야사민 안사리 하원의원은 지난 가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안사리에게 동료 의원들을 독려해 로사 델라우로 의원 자택에서 열리는 모임에 꼭 참석시키라는 당부였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가 연설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안사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열여섯 살이었던 그녀는 당시 TV를 보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사리는 "그의 당선 수락 연설을 수백 번도 넘게 돌려봤다. 그 연설이 내 인생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회상했다.

의원 35명이 그 자리에 모였다. 오바마는 그들 앞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도 때로는 낙담합니다. 기운이 다 빠져 지치기도 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죠.” 그는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했던 2004년 대선 직후, 민주당이 지금과 비슷한 곤경에 처했던 20년 전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불과 4년 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민주당은 상원을 장악했으며, 펠로시는 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이 되었다. 그는 의원들에게 냉소와 패배주의에 저항하라고 독려했다. 안사리 의원은 당시 오바마가 전한 메시지가 “계속 나아가라.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트럼프 이후의 세상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텍사스주 하원의원을 지내고 상원의원 선거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베토 오로크는 연이은 낙선으로 좌절했을 때 오바마와의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로크는 2000년 하원 경선에서 바비 러쉬에게 31%포인트 차로 대패했던 오바마가 자신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로크는 “지금은 현대 미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라며, “이토록 위태로운 상황에서 오바마가 이 싸움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진흙탕 싸움을 즐기는 트럼프와 오바마가 매번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았다. “대대적이고 공개적인 대결 구도를 만드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바마의 조언은 때로 국경을 넘기도 한다. 그는 키어 스타머가 영국 총리로 당선되기 전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노동당 동료 데이비드 라미는 노동자 계층 출신인 스타머에게 오바마의 조언이 유용할 것이라 판단했다. 현재 부총리가 된 라미는 “자신의 겸손한 배경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라고 격려한 이가 바로 오바마였다”고 전했다. “오바마는 그에게 정치적 중원을 공략하고, 메시지를 단순화하며, 어떻게 동력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라미에 따르면 오바마는 다른 나라의 진보 성향 야당 지도자들과도 유사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의 상식 밖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묻는 대학 총장, 기업 경영진, 대형 로펌 파트너들의 전화도 오바마에게 쏟아진다. 그는 대개 이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난처한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저항할 방법을 찾으라고 권고한다. 오바마는 지난해 마크 마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몇몇 사람이 떨치고 일어나 타인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라며, “우리 모두에게는 신념을 지킬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가를 치르지 않는 신념은 그저 유행에 불과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퇴임 이후 오바마는 평소 관심 있던 정책 현안들을 깊숙이 파고드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에릭 홀더 전 법무장관과 함께 '국가 민주 선거구 획정 위원회(NDRC)'를 설립하고, 각 주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오바마는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모으고 수많은 광고를 제작하는 한편, 이례적으로 수십 명의 주 의원 후보를 직접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던 지난해 여름,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트럼프의 요청에 따라 하원 장악력을 유지하고자 공화당에 유리한 선거구 5곳을 신설하도록 주 의회를 압박했다. 펠로시에 따르면, 평소 비당파적인 선거구 획정을 지지해 온 오바마였음에도 이번만큼은 반격을 결심하는 데 "나노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오바마는 "양대 정당 중 한 곳이 게임의 룰을 조작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방관할 수는 없다"며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곧이어 오바마는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구 5곳을 새로 획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주민 발안 50호(Proposition 50)'의 상징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는 광고에 출연해 "발안 50호만이 공화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당시 전략가들은 오바마와 다른 민주당 거물들의 인지도를 비교 분석했는데,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캠페인 수석 고문을 맡았던 애디수 데미시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회상했다. "오바마의 호감도는 89 대 10이었고, 응답자의 75%가 매우 호감이라고 답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도 93 대 7 정도일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이 법안은 두 배 가까운 득표 차로 가뿐히 통과했다. 지난달 버지니아주에서도 오바마의 영향력은 빛을 발했다. 유권자들은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선거구를 다시 그리도록 승인했고, 이로 인해 공화당은 최대 4석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약 4,000만 달러를 투입해 이번 캠페인을 이끈 진보 단체 '하우스 머조리티 포워드'의 마이클 스미스 대표는 "오바마가 없었다면 이 승리는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다가올 중간선거에서도 누군가 등판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야 할 순간마다 전직 대통령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오바마는 인공지능(AI)의 과학적 원리와 그 파급력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 벤 로즈는 오바마가 이 주제에 "말 그대로 수백 수천 시간을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AI의 잠재력과 위험성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기 전부터 백악관 시절 이미 이 문제에 주목했던 오바마는, 구글과 트위터 임원을 지낸 제이슨 골드먼의 조언을 받으며 실리콘밸리 전문가 및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과 꾸준히 교류해 왔다.

골드먼은 오바마를 두고 "일종의 괴짜(geek) 기질이 있다"고 평했다. "그가 가장 행복해 보일 때가 언제냐면,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묵직한 난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때"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오바마는 물밑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2023년 AI 행정명령을 성안하는 데 일조했다. 이 명령은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특정 안전 테스트를 거치고 그 결과를 정부와 공유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오바마는 "이 새로운 도구의 힘을 활용하려는 이들은 선택해야 한다. 문제가 터질 때까지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인가"라고 썼다. 하지만 트럼프는 취임 첫날 바이든의 이 행정명령을 폐기했다.

나와의 대화에서 오바마는 입법가와 연구자들을 도와 AI 아젠다를 수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 만큼, 단순히 기술 거물들을 비난하는 식의 반사적인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신 이 기술이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똑똑하고 집행 가능한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명확한 아젠다를 세우지 못한다면, 이미 고개를 든 포퓰리즘적 충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나갈 것이다. 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목도해 온 반민주적인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바마는 ‘이야기의 힘’ 또한 자신의 의제를 진전시킬 핵심 수단으로 여긴다. 재임 2기 1년 차였던 2013년, 그는 대중문화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관용과 다양성, 역경 극복의 가치와 이상을 전파하며 전 세계의 문화를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열광하며 선거 자금을 대준 거물급 인사들과 사적인 만남을 이어가며 꾸준히 유대감을 쌓았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헐리우드 제작사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미셸이 중시하는 가치를 담은 영화나 오디오·영상 시리즈를 확보하고 제작함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확산하는 동시에 업계에서 수익성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부부는 스티비 원더의 곡 제목을 따 회사 이름을 '하이어 그라운드(Higher Ground)'라 짓고, 넷플릭스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최근 오바마는 내년에 계약이 만료되면 회사를 독립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이어 그라운드가 선보인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미국에 도착한 마지막 노예선 클로틸다호의 유산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디센던트'부터, 올해 피바디상을 받은 나이지리아 아프로비트의 선구자 펠라 쿠티에 관한 팟캐스트 시리즈까지 망라한다. 2020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는 장애인 인권 운동의 기폭제가 된 캣츠킬 산맥의 장애 청소년 여름 캠프를 조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바마는 자신의 업무 시간 중 10% 정도를 하이어 그라운드에 할애한다. 직접 대본을 읽거나 편집본을 본 뒤 감독에게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초기 단계부터 그가 공을 들인 대표작은 스터즈 터클의 1974년 구술사에서 영감을 얻은 넷플릭스 4부작 시리즈 '워킹: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다. 터클이 미국인들의 직업관을 심층 인터뷰했던 원작처럼, 이 시리즈는 미시시피의 재가 요양보호사, 펜실베이니아의 배달 기사, 캘리포니아의 로봇 공학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제작진은 당시 신예였던 캐롤라인 서 감독을 영입했는데, 그녀는 오바마의 적극적인 참여와 진지한 태도를 보고 연출을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서 감독은 "그는 사람들을 정형화하거나 진부한 설정을 따르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가 그런 나태함에 빠지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전했다. 또한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직설적이었지만 늘 침착함을 유지했으며, 영상 제작이 우리의 생업이라는 사실을 깊이 존중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는 2008년 이후 더 이상 시카고에 거주하지 않지만, 자신의 정치 여정이 시작된 이 도시와의 끈끈한 유대를 증명하는 데 여전히 공을 들이고 있다. 퇴임 후 가장 야심 차게 추진해 온, 그리고 스스로 가장 영속적인 업적이 되리라 확신하는 ‘오바마 재단’의 본거지도 바로 시카고 사우스사이드다. 이곳은 그가 청년 시절 지역사회 활동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지낸 상징적인 장소다. 재단의 핵심 사업인 ‘마이 브라더스 키퍼(My Brother’s Keeper)’는 유색인종 청년들에게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트레이본 마틴을 살해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 이후, 흑인 소년과 청년들을 보호하려는 오바마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2016년 당시 "어떤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유색인종 소년과 청년들에게는 그 벽이 더욱 높다"고 역설한 바 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전국 55개 지역에서 수만 명의 청년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는 뉴어크에서 '마이 브라더스 키퍼'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브라질을 다녀온 여덟 명의 청년과 만났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오바마는 그들이 "남들보다 훨씬 힘겨운 패를 쥐고 인생을 시작했다"고 다독이며, 방황했던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가감 없이 공유했다. "나도 약에 취해보고 술에 취해보기도 했다"고 고백한 그는 "한동안 내 관심사는 오직 농구와 여자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삶의 목표를 찾았는지 들려준 뒤,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로 대화를 끝맺었다.

지난 12월, 오바마는 재단의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시카고로 모여든 수십 명의 대학생 앞에 섰다. 이튿날에는 흑인 여성 비행사 베시 콜먼의 이름을 딴 사우스사이드의 공공 도서관을 찾아 '마이 브라더스 키퍼' 문해력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어린아이들을 만났다. 산타 모자를 쓴 오바마는 흔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대신, 실력으로 인종차별을 정면 돌파한 콜먼의 의지를 담은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베시는 말했어요. '그래요? 어디 두고 봐요! 반드시 흑인 여성 조종사가 나올 거예요.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될 거라고요!'"

2018년 시작된 '리더스 프로그램(Leaders Program)'은 오바마가 진보적 변화를 위해 던진 장기적인 승부수다. 수백만 달러가 투입되는 이 훈련 및 네트워킹 프로젝트를 거쳐 간 전 세계 인재는 이미 1,500명을 넘어섰다. 그중 한 명인 슬로베니아 활동가 니카 코바치는 낙태를 위해 해외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여성들의 여행 및 의료 비용을 유럽연합이 지원하도록 이끌어낸 캠페인의 주역이다. 팬데믹 기간 중 온라인으로 첫 세션을 이수했다는 코바치는 "훈련 강도는 매우 높지만, 동시에 '내가 거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캠페인은 백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내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과정에서 오바마 재단 동문들이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그녀는 "거리에서 공격을 받거나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걸게 되는 이들이 바로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조만간 완공될 오바마 대통령 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약 19만 4,000평방미터(19에이커)에 달하는 이 거대한 부지는 건립비만 약 8억 5,00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설계한 유서 깊은 공원 부지에 자리를 잡았으며, 박물관과 놀이터는 물론 인공 눈썰매장까지 갖췄다. 이곳을 ‘도서관’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오바마 재임 시절의 기록물들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재단 측은 전체 기록의 약 95%가 디지털 형태로 생성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센터 안에는 시카고 공공 도서관의 분관이 들어서며, 오바마 부부의 관심사와 시카고의 역사를 담은 서적 3,500여 권이 시민들을 맞이한다.

재단 관계자는 이 센터가 지역 사회를 향해 활짝 열려 있으며, “오바마 부부의 인생 철학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내부에는 요리 교실, 팟캐스트 제작실, ‘행동하는 민주주의 랩’이라 불리는 대형 강의실과 녹음 스튜디오가 들어선다. 마야 린과 리처드 헌트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며, 캠퍼스 곳곳에는 존 루이스, 해리엇 터브먼, 엘리 위젤의 이름이 새겨졌다. 또한 2013년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한 공원에서 총격으로 숨진 15세 소녀 하디야 펜들턴을 기리는 공간도 마련되었다. 미셸 오바마는 소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하디야 펜들턴은 바로 나였고, 나 또한 그녀였다”는 절절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 처음 방문한 센터 현장에서는 수백 명의 노동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흙을 나르고 배선을 설치하는가 하면, 농구 코트의 바닥판을 정교하게 맞추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회색 물결무늬가 새겨진 뉴햄프셔산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약 68미터(225피트) 높이의 건축물이었다. 일부 구경꾼들이 ‘오바말리스크’라는 별명을 붙인 이 건물 내부에는 미국의 고통스러운 인종 차별사를 바탕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8년을 기록한 전시실이 들어선다. 백악관 시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관람객들이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설계된 꼭대기 층의 거대한 창문은 남쪽과 서쪽을 향해 있다. 이는 시카고의 흑인 거주 지역을 기리는 오바마의 세심한 배려다.

건물 정상부에는 높이 약 1.5미터의 콘크리트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2015년 ‘피의 일요일’ 50주년을 맞아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오바마가 했던 연설 중 103단어를 발췌한 것이다. 당시 존 루이스를 비롯한 인권 운동가들은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아래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견뎌냈다. 백악관 수석 연설비서관 코디 키넌과 함께 써 내려간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정복과 노예제, 계급과 지배라는 날 것 그대로의 역사를 인정했다. 동시에 경찰의 몽둥이와 군견에 맞섰던 인권 운동가, 열차 승무원, 랍비, 목사, 대학생들이 보여준 영웅적인 비전에 경의를 표했다. 당시 오바마는 이렇게 선언했다. “미국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우리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력한 단어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국민’, ‘우리는 승리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믿음 말입니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빌리 치엔과 토드 윌리엄스가 처음부터 이 거대한 회색 탑을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필라델피아의 반즈 재단과 피닉스 미술관의 나직한 증축 건물을 설계한 이들의 작업은 흔히 '정적임'으로 정의되곤 한다. 이들은 단일 건물이 아닌 캠퍼스 형태의 구성을 제안해 오바마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바마가 백악관에 머물던 시절부터 시작된 연쇄 회의에서, 그는 건축가들에게 훨씬 더 웅장한 규모를 요구했다. 윌리엄스는 오바마가 "우리의 판돈을 더 키워야 한다"고 압박했다며, 반복되는 요구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번은 그가 내 설계도 위에 강한 선을 그으며 내가 충분히 대담하지 못하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가시처럼 박히기도 했지만, 결국 프로젝트를 진전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어느 시점에서 오바마는 건축가들에게 근대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품들을 참고해 보라고 권했다. 독창적인 형태와 질감으로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언급하자 윌리엄스는 "대체 그게 무슨 뜻이지?"라며 의아해했다. 건축가들은 그 의중을 파악하려 애쓴 끝에, 그것이 단순히 건축물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일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라는 제안임을 깨달았다. 윌리엄스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는 우리가 이전에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원했고,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오바마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실험한 끝에 몇 주 뒤 25가지의 시안을 가져갔고, 최종적으로 하나가 낙점되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그 이후에도 수정을 요구했다. 윌리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센터는 "우리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비전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물"인 셈이다.

대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화제는 이란과의 전쟁과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 약화된 미국의 동맹 관계로 옮겨갔다. 오바마는 "국제 질서에 가해진 타격을 복구하는 일은 국내 정치를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된 여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질서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평했다.

오바마는 마셜 플랜, 나토(NATO), 세계은행, 브레튼우즈 체제 등 전후의 여러 협정들이 "그 모든 결함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평화롭고, 건강하며, 부유하고, 평등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강조했다. 인권 존중의 가치가 확산된 배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우리는 단지 힘을 과시하기 위해 휘두르지 않겠다. 공물을 요구하거나 약자를 괴롭히지 않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더 큰 합의의 일부가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트럼프는 파리 기후 협약과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무분별한 관세 부과와 그린란드 매입 추진 같은 돌출 행동으로 이 모든 질서를 뒤흔들었다. 오바마는 미국의 우방들이 “이제 더는 우리를 국제 질서의 중심축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다보스 포럼에서 '중견국'들이 결집해 트럼프의 오만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한 연설을 언급하며, 이를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이 비극적인 이유는 “미국을 대체할 국가가 여전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이 인권을 말하지 않으면 인권은 국제 사회의 주요 의제에서 사라진다. 미국이 기후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은 겉으로만 동조할 뿐 실질적인 해결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리더십은 여전히 막중한 의미를 갖지만, 이제는 강요가 아닌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이란을 향해 굴복하지 않으면 "오늘 밤 한 문명이 멸망할 것이며, 다시는 재건되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발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물었다. 오바마는 숨을 고르더니 비방에 휘말리는 대신 품격을 지키며 답했다. "미국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리더십은 국경 안팎을 막론하고 인간의 존엄과 품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리더십에 부여된 책임의 일부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핵심 가치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즉 독재 치하에서도 고통받는 무고한 시민이 존재하며 우리가 그들을 살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오만과 순전한 이기주의를 경계하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세상은 매우 끔찍한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현재 이란 정권과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 그토록 맹비난했던 여러 절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바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트럼프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이란과의 무력 충돌을 주장하는 동일한 논리를 폈었다고 회상했다. "제 예측이 정확했다고 봅니다." 오바마가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에게 최선인지, 그리고 미국에 이로운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저와 네타냐후 총리 사이의 견해 차이는 이미 충분히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하며 낙담한 지지자들에게 "임기를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더 낙관한다"고 말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지금의 그는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확신이 흔들렸음을 인정하지만, 정치를 대하는 그의 본질적인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굴곡질지언정 끊임없이 나아가는 진보의 길에 대한 그의 믿음을 형상화한 박물관을 함께 걸으며,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남편을 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우리가 지금 장기전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변화란 고통스럽고 더디게 찾아오는 것임을 제게 일깨워주곤 합니다."

요즘 오바마는 젊은 세대와 대화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들 앞에서 그는 상황이 최악이라는 비관론을 반박하는 어른의 역할을 자처한다. 전직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남북전쟁은 정말 끔찍했어. 짐 크로우 법(인종차별법) 시대는 정말 가혹했지.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 증조부모님들은 우리가 겪는 일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련을 이겨내셨어.'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생 선배로서 훈수를 두려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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