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 위의 뉴로퀴어링(번역)
Siobhan Unwin 「Is the ADHD myth unravelling?」
19세기 중반 잉글랜드의 시골 풍경은 그야말로 목가적인 휴양지였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 당신은 존경받는 문호이자 품위와 예법의 표상인 찰스 디킨스가 되어, 오늘도 여느 때처럼 평온하고 무탈한 하루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집 안에서 딸들을 찾던 당신의 눈에 덴마크에서 온 불청객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인어공주》와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명작 동화를 쓴 유명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입니다. 당초 예정보다 한참을 더 머물고 있는 그는, 잔디밭에 얼굴을 파묻은 채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신간에 대한 혹평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흔히 억압된 감정과 발목조차 꽁꽁 감추는 엄격한 통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표면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가정성의 척도로 통합니다. 하지만 지금 안데르센은 대문호조차 잔디밭에서 한 번 떼를 쓰고 무너지는 것만으로 이 점잖은 겉치레를 단숨에 찢어버릴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훗날 수많은 사람의 열광 속에서 19세기형 ‘재난적 양성애자(disaster bi)’라는 자의적 해석(헤드캐넌)을 얻게 되었습니다. ‘재난적 양성애자’라는 말은 고정된 정체성이나 진단명이라기보다는, 둑이 터지듯 넘쳐흐르는 장면들을 읽어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혼란스럽고, 지나치게 진지하며, 사회적 관계를 파탄 낼 정도로 지독하게 솔직한 인물상입니다. 〈브리저튼〉부터 〈솔트번〉에 이르는 현대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이들은 끝없이 고조되는 감정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느끼다가 마침내 무너져 내릴 때 모든 것을 멈춰 세웁니다.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서 이 표현은 감정의 온도가 너무 높고, 사적인 이야기를 과하게 털어놓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아수라장 속에서도 묘한 재치를 잃지 않는 인물들을 향한 다정한 애칭으로 쓰입니다. 온종일 인터넷을 달고 사는 이들에게 안데르센의 편지와 방랑,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은 답답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쌍한 디킨스에게는 ‘텀블러(Tumblr)’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오직 잔디밭뿐이었습니다.
1857년의 디킨스가 된 당신은 안데르센을 안심시키려 애씁니다. 다정한 이성을 발휘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려 합니다. 당신 역시 혹평의 쓰라림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1844년 발표한 소설 《마틴 처즐위트》에 쏟아졌던 비판은 여전히 뼈아픕니다). 하지만 달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데르센은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도, 잠깐 울고 마는 것도, 듣고 넘길 수 있는 수준도 아닙니다. 얼굴과 셔츠에 흙탕물을 잔뜩 묻힌 채 목청을 다해 쏟아내는 오열과 굵은 눈물방울. 그는 잔디밭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상황은 수습되지 않습니다. 감정의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시간은 한없이 늘어집니다.
디킨스의 딸 케이티는 덴마크에서 온 손님을 ‘비쩍 마르고 지루한 사람’이라 여겼던 자신의 평가와, 눈앞에서 통곡하는 이 광경 사이의 괴리를 메우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봅니다. 소설 속 감정의 위대한 조율사였으며 스스로를 ‘흉내 낼 수 없는 자(The Inimitable)’라 자부하던 디킨스는, 자신이 이 상황의 분위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안데르센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누군가는 그런 사람을 사랑했고, 누군가는 과연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으며, 어쩌면 우리 자신이 바로 안데르센일지도 모릅니다. 안데르센의 붕괴를 단순히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솔직했던 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잔디밭의 소동이 견딜 수 없게 다가오는 진짜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품위가 몸의 철저한 관리, 훈련된 남성성, 그리고 사적 내면과 공적 표현의 엄격한 분리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생활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규범과 각본은, 가장 취약한 이들이 얌전하게 굴기만 하면 붕괴를 피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각본이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구의 무너짐을 용인할 것인가? 그리고 침착함만을 강요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어버릴 것인가?
잔디밭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그와 유사한 상황들은 하나의 막다른 골목을 드러냅니다. 감정이 그것을 억누르려 고안된 사회적 각본을 넘어설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점입니다. 신체와 정신, 감정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실천인 ‘뉴로퀴어링(neuroqueering)’은 이 난관을 가시화하며, ‘뉴로퀴어적 과잉(neuroqueer excess)’은 규범 밖으로 넘쳐흐르는 감정들을 이해할 틀을 제공합니다.
안데르센과 디킨스를 뉴로퀴어적 과잉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것은 그들에게 뒤늦게 어떤 진단을 내리거나 범주화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이 범람하는 순간을 통해 규범이 어떻게 강제되고, 저항받으며, 깨어지는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뉴로퀴어링은 쟁취해야 할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동사이자 실천적 행위입니다. 디킨스의 잔디밭에서 이러한 규범은 결코 이론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알맞은 크기로 말하기, 신속하게 감정 추스르기, 신사답게 행동하기라는 구체적인 기대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디킨스는 난처한 집주인에 그치지 않고, 안데르센이 깨뜨려버린 빅토리아 시대의 규범을 집행하는 심판관 노릇을 한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뉴로퀴어적 접근은 만남의 조건을 뒤바꿉니다. 왜 안데르센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지 묻는 대신, 왜 디킨스가 선호하는 화법과 감정 표현, 회복 방식만이 자연스럽고 올바르며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취급받는지 되묻는 것입니다. 닉 워커와 M. 레미 여고 같은 학자들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어떻게 신체와 정신, 감정이 세상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을 통제하는지 탐구합니다. 퀴어 이론과 신경다양적 앎의 방식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작업은 용인되는 표현이란 모름지기 언어적으로 유창해야 하고, 감정의 크기가 적절해야 하며, 상호적이어야 하고, 알맞은 음량과 타이밍에 제시되어야 한다는 통념에 도전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뉴로퀴어적 과잉’이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과잉이란 단순히 화려함이나 병리적인 상태, 혹은 자기 조절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협소한 감정의 굴레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감정과 욕망, 신체성이 터져 나올 때 발생하는 일종의 ‘지나침(too muchness)’을 뜻합니다. 캠프(camp)나 퀴어적 일탈과 달리, 뉴로퀴어적 과잉은 공유된 코드나 반어법, 혹은 명확한 해독 가능성에 의존하지 않으며, 종종 아예 남들이 읽어낼 수 없는 상태로 남기도 합니다.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에게 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이해받고자 하는 요구입니다. 행동이나 옷차림, 태도에서 기존 규범을 벗어난 이들—이를테면 여성스러운 남성 같은 사람들—은 과도하게 눈에 띄며 감시의 대상이 됩니다. 이성애규범성이나 신경전형성(neuronormativity) 같은 규범은 전복되어 일종의 균열과 반란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뉴로퀴어적 과잉은 이러한 장면들을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으로 읽어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합니다.
안데르센이 대중 앞에서 보인 굴욕적이고 과도한 행동은 남성다운 절제와 침착함, 친밀함에 대한 1850년대 영국의 기대를 뒤흔들었습니다. 전혀 다른 역사적 시공간에서, 호주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리 바워리(Leigh Bowery) 역시 좋은 비교 대상이 됩니다. 1980년대 영국에서 에이즈(AIDS) 위기가 한창일 때 펼쳐진 그의 과감한 클럽 의상과 기행은, 훗날 퀴어의 신체에 부과된 또 다른 가혹한 요구—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처신하며, 통제 가능해야 하고, 살아남은 것에 조용히 감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뒤흔들었습니다. 체액에 대한 탐색, 출산 흉내, 기괴함과 화려함을 오가는 파격적인 의상 등을 선보였던 바워리의 퍼포먼스에 대해 제도권의 반발과 억압은 단호하고 가혹했습니다.
그가 운영하던 나이트클럽 ‘타부(Taboo)’는 1986년 6월 《메일 온 선데이》가 클럽 내 마약 투약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후 폐쇄되었습니다. 이후 1994년 11월 소호의 프리덤 바에서 열린 바워리의 퍼포먼스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구의회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5주 뒤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바워리의 과장된 미학—기형적인 실루엣, 부끄러움 없는 육체, 연극적인 불결함, 좋은 취향에 대한 완강한 거부—이었습니다. 그는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스스로를 순화시키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안데르센에게 질색하는 디킨스와 바워리에게 뒷걸음질 치는 영국의 모습을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뉴로퀴어적 과잉이 무엇을 위협하는지 분명해집니다. 각 시대는 품위, 생산성, 혹은 회복탄력성이라는 각본 안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감정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문화를 보여줍니다. ‘재난적 양성애자’라는 말은 그 오래된 공포, 즉 분위기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체에 붙인 현대적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점잖음, 에이즈 시대의 품위 정치(respectability politics), 그리고 오늘날 깔끔한 심리 치료적 정돈을 요구하는 세태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요구를 공유합니다. ‘과잉은 눈에 띄지 않거나, 아니면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들을 가로지르며 뉴로퀴어적 과잉을 추적하는 일은 규범이 어떻게 억압의 도구가 되는지, 그리고 잔디밭에서든, 대학에서든, 클럽 안에서든 어떤 신체와 감정을 길들이려 하는지 폭로하는 진단 도구가 되어줍니다.
디킨스는 단순히 이러한 규범을 집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 규범을 축으로 살아왔습니다. 안데르센이 잔디밭에서 벌인 소동에 그토록 질색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찰스 존 허펌 디킨스는 자신이 후대에 남길 유산을 집요하게 통제하려 했던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래 열등감은 늘 그를 괴롭혔고, 이후로 디킨스는 돈에 대해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문인으로서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는 소설 속 서사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편집해 교양 있는 신사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신사가 된다는 것은 돈 이상의 것을 요구했습니다. 집안의 혈통까지 꼼꼼히 따져 묻는 모순투성이 행동 규범을 엄격히 따라야 했습니다. 런던의 유력 클럽인 아테네움에 앉아 친조부모가 하인이나 하급 서비스직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떠벌리는 디킨스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흠결은 편의상 교묘하게 지워졌습니다.
디킨스 자신도 감정이 격렬한 사람이었지만, 첫사랑에게 버림받았던 트라우마를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자서전 초고를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 역시 지워졌습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신체를 통제하는 영국의 이른바 ‘포커페이스(stiff upper lip, 흔들림 없는 침착함)’라는 19세기 남성성 기준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통제에 집착하고 불편한 진실을 지워버리는 데 익숙했던 이 불안한 신사에게, 신문 혹평에 온몸으로 반응하며 잔디밭을 구르는 안데르센의 터무니없는 과잉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된 채 파르르 떨리는 안데르센의 입술은 신사답지 못한 감정 폭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디킨스의 본능적인 반응은 상황을 수습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의 가정 내 질서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안데르센에게 건넨 조언(아마도 달래려는 의도였겠지만)조차 억압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신문 기사 따위에 절대 마음 상하지 마시오…” 느끼기를 거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센과의 이 일화는 바로 이듬해 디킨스 본인에게 닥칠 대중의 공분을 예고하는 전조였습니다. 서사의 주도권을 쥐어야만 했던 디킨스는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불륜 소문이 파다해지자, 직접 나서서 진상을 바로잡기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그르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858년 6월, 디킨스는 《타임스》에 ‘개인 성명서’를 발표하여 그러한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인품과도 맞지 않는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학자 로버트 소여의 지적처럼, 대중은 디킨스의 행동 자체보다 사적인 치부를 공개적인 구경거리로 만든 그의 처신에 더 큰 거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킨스에게는 실제로 내연녀가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겨우 열여덟 살로, 딸 케이티와 동갑내기였던 여배우였습니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숨겼습니다. 아무리 많은 남성이 정부를 두던 시절이라 해도, 점잖은 신사 사회에서 공공연히 떠벌릴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빅토리아식 품격이라는 겉치레는 사적인 일을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묻어두길 요구했습니다. 대중은 속으로는 스캔들을 갈망하면서도 겉으로는 철저한 은폐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위선은 가정이 질서 유지의 기계이자 품위 있는 사회의 토대로 작동한다는 빅토리아 중산층의 가정적 환상을 지켜주었습니다. 결국 가정이라는 영역이 무너지면 영국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것이 뻔했으니까요!
빅토리아 시대의 이러한 불안과 상충하는 욕망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메아리칩니다. 2025년 7월 매사추세츠주에서 열린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 경기장 전광판 카메라는 한 여성을 껴안고 있는 남성을 비췄습니다. 데이터 기업 애스트로노머(Astronomer)의 당시 CEO 앤디 바이런과 최고인사책임자 크리스틴 캐벗이었습니다. 전광판에 자신들의 포옹이 송출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바이런은 황급히 숨었고 캐벗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무대 위의 크리스 마틴은 저들이 불륜 중이거나 지독하게 부끄러움을 타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번개처럼 퍼져나갔고, 네티즌 수사대들은 신상을 털고 사생활을 캐내며 몇 초간의 당황한 기색을 ‘불륜 의혹’이라는 전 세계적인 도덕극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결국 두 임원 모두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한 진짜 이유는 둘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되던 공적 표면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그 장면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규범 아래서도, 대중 앞에서 드러나는 고통과 당혹감은 ‘모든 것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는 허구를 지탱하는 아슬아슬한 각본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합니다.
다시 디킨스의 잔디밭에서 벌어진 안데르센의 소동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덴마크 작가의 무너짐에서 진짜 문제는 그가 감정에 압도당했다거나 심지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일이 일어난 ‘장소’였습니다. 감정의 표출은 사적인 공간에 머물러야 했고, 대외적인 공간에서는 절제가 요구되었습니다. 잔디밭은 이 두 영역을 잇는 가교입니다. 사적인 가정의 영역에 속하면서도 외부의 시선에 훤히 노출되어 있는, 집안 내부의 도덕적·감정적 절제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가꾸어진 공간이죠.
침실에서의 무너짐은 안타까울지언정 수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잔디밭에서의 무너짐은 그 경계를 단번에 박살 냅니다. 혼란 속에서 시선이 흔들립니다. 이 질서를 회복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집주인인 디킨스인가? 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디킨스 자신의 가정 역시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이듬해 아내와 별거하게 됩니다. 잔디밭에 주저앉아 통곡하던 안데르센의 모습은 어쩌면 찰스와 캐서린 디킨스 부부의 은밀한 비밀이 공공의 시선 속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보다 더 진보했고, 에이즈 위기가 극에 달했던 시절의 영국인들보다 더 자비롭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의범절 대신 ‘경계선’을, 억압 대신 ‘조절’을, 자제력 대신 ‘자기 돌봄’을 옹호한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어휘의 변화일 뿐, 구조의 변화가 아닙니다. 밑바탕에 깔린 요구는 여전히 소름 돋을 만큼 일관됩니다. 감정은 정밀하게 측정되어야 하고, 해독 가능해야 하며, 생산적이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 표현은 권장되지만, 오직 적절하고, 자기 성찰적이며, 문제 해결을 지향할 때만 허용됩니다. 고통은 몸으로 겪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로 풀어내야 하고,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가공되어야 합니다. 감정의 무너짐은 오직 사후에 통찰과 성장을 통해 깔끔하게 정돈될 때만 용납됩니다. 해결되지 않거나 해결할 수 없는 과잉은 여전히 인격적 결함으로 치부됩니다.
당신도 분명 이런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말을 듣는 사람. 일단 진정부터 하라는 말을 듣는 사람. ‘계집애 같거나’, ‘숙녀답지 못하거나’, ‘괴상한’ 행동을 삼가라는 요구를 받는 사람. 돌봄을 받고, 일자리를 얻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침착함이나 순종을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규범은 우리에게 해가 됩니다. 뉴로퀴어적 과잉은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고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값진 통찰을 줍니다. 돌봄과 소통, 소속을 위한 우리의 각본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파탄에 이르는지 똑똑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안데르센이나 바워리 같은 인물을 매력적인 급진주의자나 진정성의 아이콘, 혹은 예의범절에 맞선 용감한 투사로 치켜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잉은 그 자체로 미덕이 아닙니다. 그것은 파괴적이고, 지치게 만들며, 때로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안데르센, 바워리, 디킨스는 여기서 다 다룰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인물들입니다. 이 글의 분석에서 그 누구도 도덕적 귀감으로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들은 모범이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입니다.
그들은 신체, 정동, 욕망, 소통 방식이 한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스템이 실패할 때 어떤 삶이 버림받는지를 드러냅니다. 빅토리아식 통제 각본은 디킨스를 수치심에서 구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파멸적인 스캔들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습니다. 에이즈 시대의 품위 정치는 단순히 미학을 검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퀴어의 삶이 돌봄과 치료와 애도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또 어떤 이들이 도덕적 침묵 속에서 쓸쓸히 죽어가야 하는지를 가르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바워리의 과잉은 복종과 감사, 조신함을 먼저 요구하지 않고는 퀴어의 몸을 구조적으로 돌볼 줄 몰랐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 비명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체제 역시 도덕 대신 ‘심리 치료적 담론’의 외피를 둘렀을 뿐 결코 더 다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신경다양인과 퀴어들은 돌봄을 받기에 앞서 자기 조절, 감정의 가독성, 회복탄력성 서사, ‘적절한’ 표현을 요구하는 사회적 각본에 번번이 버림받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잔디밭 위의 안데르센처럼, 관리해야 할 골칫거리나 배제해야 할 괴짜가 되어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황급히 지나쳐버리는 존재가 됩니다.
디킨스 역시 건강한 감정의 출구가 없는 모순된 사회 체제 속에서 분투하다 실패한 인간에 속합니다. 안데르센을 대할 때 디킨스는 당대의 규범을 앞장서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바로 그 규범 때문에 디킨스 자신도 스캔들에 휩싸여 추락했고, 그의 실족은 압박감 속에서 터져 나온 인간적 균열로 이해받기보다는 대중적인 도덕극의 조롱거리로 소비되었습니다.
이 인물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영웅주의가 아니라 ‘폭로’입니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이 우연히 고장 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시스템은 늘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익숙한 궤적을 그리며 비슷한 사람들을 탈락시킵니다.
뉴로퀴어적 과잉은 우리에게 돌봄이 예의, 생산성, 혹은 깔끔한 감정의 각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과잉은 늘 윤리적이거나 교훈적이거나 다정하지만은 않으며, 때로는 견디기 힘들 만큼 버겁습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즉각적인 봉합과 격리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신경다양인과 퀴어들이 진정으로 절실했던 순간마다 그들을 돌봄의 사각지대에 내팽개쳐 왔습니다. 돌봄이란 방종이 아니며 훈육도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더 위태롭고 버거운 일입니다. 감정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쏟아져 내릴 때, 기꺼이 그 곁에 머물러주는 용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신경다양성과 퀴어성은 당사자가 아닌 외부자들의 시선으로 기록되어 왔으며, 그로 인해 실제 살아낸 이들의 귀중한 관점은 배제되었습니다. 최근 신경다양인 및 퀴어 연구자들이 보여준 선구적인 작업들은 이러한 간극을 메우고,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언어로 이해할 기회를 열어줍니다. 때로 ‘증언적 정의(testimonial justice)’라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자각은, 누가 말하고,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이 글에서 다룬 인물들과 공감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지나간 기회들을 애도하는 것을 포함해,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증언적 정의는 해석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교정하려 들기 전에 먼저 믿으며, 전달되는 내용을 고쳐 쓰기보다 온전히 따라갈 것을 요구합니다. 신경다양인과 퀴어가 결핍이라는 전제 없이 자신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과도하거나 모순되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을 억지로 다듬어내려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그 사람의 곁에 가만히 앉아, 그들이 고장 난 존재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기어이 ‘고쳐놓고야 말겠다’는 조급한 충동을 억누름으로써 그 넘쳐흐름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안데르센과 함께 잔디밭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가 남들의 입맛에 맞출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게 품어주고, 때로는 불편함 속에서 편안함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의 곁에 조용히 앉아 풀밭 위에서 호흡을 맞추는 일. 출산 흉내와 관장액이 난무하는 난해한 바워리의 예술과도 온전히 마주하는 일. 이러한 돌봄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며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또 다른 잔디밭의 풍경을 상상해 봅시다.
19세기 목가적인 시골의 어느 아침, 안데르센은 여전히 잔디밭에 쓰러져 끝없이 흐느끼고 있습니다. 디킨스가 된 당신은 점잔을 빼려는 본능을 억누르고, 안데르센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기꺼이 발을 담그기로 합니다.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 있지만, 당신은 조심스레 잔디밭으로 다가가 안데르센의 등을 토닥입니다. 옷에는 흙탕물이 묻어납니다. 당신의 친구는 눈물범벅이 된 엉망진창의 얼굴로 올려다보고, 당신의 첫 반응은 순간적인 거부감입니다. 그러나 그 본능적인 불쾌감을 밀어내며, 당신은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정말이지 최악의 서평이더군.”
그러자 안데르센이 대답합니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인데…”
그는 다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딸 케이티가 경악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뼈아프게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엔 그저 흉측한 광경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에 함께 머물며, 결코 그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그에게 훈계를 늘어놓지도, 억지로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지도, 그 순간 때문에 오랜 우정을 저버리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의 몸 아래로 잔디가 짓눌리고, 옷은 흙으로 물듭니다. 상황은 여전히 엉망진창입니다.
하지만 잔디밭 좀 망가지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 Aeon (202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