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가스라이팅: 3M 경영진은 어떻게 인체 혈액에서 발견된 '영원한 화학 물질'이 안전하다고 과학자를 세뇌했나 (번역)
원문: Toxic Gaslighting: How 3M Executives Convinced a Scientist the Forever Chemicals She Found in Human Blood Were Safe (ProPublica)
수십 년 전, 크리스 핸슨은 3M의 PFAS 화합물이 인체 내부에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하지만 상사들은 그녀의 연구를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이제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식수 내 화학 물질 제거를 의무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녀는 3M이 자신과 세상을 상대로 숨겨왔던 추악한 비밀들과 마주하며 고뇌하고 있습니다.
Sharon Lerner | 2024.5.20
크리스 핸슨이 3M에서 화학자로 일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인상 좋은 선임 과학자인 상사 짐 존슨으로부터 기묘한 과제를 하나 받았습니다. 당시 3M은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을 발명하고 사포부터 주방용 스펀지까지 온갖 제품을 판매하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의 어느 날, 존슨은 핸슨에게 인체의 혈액이 화학 물질에 오염되었는지 테스트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3M의 주력 제품들에는 '불소계 화합물'이라 불리는 인공 화합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스카치 가드'라는 스프레이에서는 가죽과 섬유의 얼룩을 방지했고, '스카치 반'이라는 코팅제에서는 식품 포장재가 젖지 않게 막아주었습니다.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거품 소화제에도 쓰여 항공기 연료 화재를 진압하는 데 일조했죠.
존슨은 회사 제품에 쓰이는 불소계 화합물 중 하나인 PFOS(퍼플루오로옥탄술폰산)가 3M 공장 직원들의 몸에서 종종 발견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수치를 확인해 보려고 최근 외부 실험실에 혈액 분석을 맡겼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외부 실험실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교군으로 설정한 미국 적십자사의 혈액, 즉 일반인의 혈액은 화학 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아야 정상인데 그 안에서 자꾸 오염 물질이 발견된 것입니다. 존슨은 핸슨에게 실험실 측의 실수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침 미세 입자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던 핸슨에게 극미량의 화학 물질을 검출하는 일은 전공 분야나 다름없었습니다.
핸슨의 팀원들은 실험용 혈액 공급업체로부터 샘플을 받아 분석 준비를 마쳤습니다. 핸슨은 분자의 무게를 측정해 성분을 식별하는 오븐 크기의 장비인 질량 분석기를 가동했습니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핸슨이 샘플을 주입하자 화면에 그래프가 나타났습니다. 혈액 속에 PFOS로 추정되는 화합물이 존재한다는 신호였습니다.
'이건 좀 이상한데.' 핸슨은 생각했습니다. 3M에서 만든 화학 물질이 왜 회사와 전혀 관련 없는 일반인의 몸속에서 나오는 걸까요?
핸슨은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보고를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팀은 몇 주 동안 밤샘 테스트까지 불사하며 더 많은 혈액을 정밀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샘플에서 오염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더욱 정교한 방식인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를 동원하자, 적십자 혈액 속 물질이 PFOS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해졌습니다.
이제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때였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에 훤칠한 풍채를 가진 존슨은 평소 핸슨의 전문성을 존중해 주었고 대화할 때마다 웃음을 잃지 않는 호감 가는 상사였습니다. 그러나 핸슨의 보고를 들은 그의 반응은 평소와 달리 묘했습니다.
"이건 모든 판도를 뒤엎는 일이군."
그는 이 말만 남긴 채,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볼 틈도 주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사실 핸슨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화학 물질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스키 선수로 활동할 만큼 활동적이었던 그녀는 늘 자연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윌리엄스 대학 시절 화학 학사 논문을 쓸 때도 직접 카약을 타고 후식 강의 옛 전기 회사 부지를 돌며 가재를 채집해, 'PCB(폴리염화비페닐)'라 불리는 산업 오염 물질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연구는 해당 부지의 배수구에서 화학 물질이 유출되고 있음을 밝혀냈고, 이는 언론 보도로 이어져 매사추세츠주 환경보호국의 정화 작업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핸슨은 3M의 경영진 역시 그녀의 이번 발견에 대해 그때와 같은 세심함과 책임감을 보여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날 핸슨은 상사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사무실 근처를 맴돌았지만, 존슨은 끝내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 핸슨은 존슨이 윗선에 이 사실을 알렸다는 낌새를 챘습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존슨의 상사이자 희끗한 머리에 배가 불룩 나온 데일 베이컨이 그녀의 자리로 찾아와 "자네가 실수한 게 분명해"라고 넌지시 압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핸슨은 "그럴 리 없습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주 동안 핸슨의 팀은 3M과 거래하는 모든 공급처에서 새로운 혈액 샘플을 주문해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샘플에서 PFOS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실험이 한창 진행되던 중, 존슨은 갑작스럽게 조기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그가 짐을 싸서 떠나버리자 핸슨은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회사 생활이 워낙 낯설었던 탓에 주름 바지와 드레스 셔츠 같은 출근복조차 여전히 연극 의상처럼 어색하기만 했죠. 그동안 연구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존슨은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핸슨은 공장 직원들에게는 이 물질이 해롭지 않다던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지만, 정말 안전한지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PCB의 경우,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되어 뇌 손상을 포함한 각종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수년 동안 대량 생산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학 물질의 안전성을 가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동물과 가능하다면 인간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연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핸슨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3M은 이미 20년 전에 동물 실험을 마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실험 결과 PFOS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결과는 사내의 많은 이들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실시된 초기 실험에서 3M 과학자들은 쥐들에게 매일 PFOS를 먹였습니다. 체중 1kg당 약 10mg이라는 두 번째로 낮은 투여량부터 쥐들은 간 손상 징후를 보였고, 그중 절반이 죽었습니다. 투여량을 높이자 실험군인 쥐가 전멸했습니다. 곧이어 실시된 실험에서는 체중 1kg당 4.5mg이라는 비교적 적은 양으로도 몇 주 안에 원숭이를 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하면, 해당 물질은 현재 UN이 분류한 5단계 독성 등급 중 가장 위험한 수준에 해당합니다.) 이는 일반인이 섭취하는 양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으나, 표준적인 아스피린 한 알의 용량과 맞먹을 정도로 절대적인 수치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1979년, 회사의 내부 보고서는 PFOS가 "예상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다"고 판단하며 장기적인 연구를 권고했습니다. 그해 3M 경영진은 저명한 독성학자인 해럴드 호지에게 자문을 구하러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습니다. 그들은 호지에게 PFOS가 실험 동물을 병들게 하거나 죽였고 공장 직원들에게 간 이상을 일으켰다는 사실 등, 자신들이 알고 있던 정보의 극히 일부만 털어놓았습니다. '기밀' 표시가 된 3M의 문서에 따르면, 호지는 경영진에게 이 불소계 화합물이 생식 문제나 암을 유발하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검토한 후 그는 경영진 중 한 명에게 이 물질이 '인간의 몸' 안에도 존재하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하며, "만약 혈중 농도가 높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데다 반감기까지 길다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호지의 경고는 공식 회의록에서 누락되었고, 회사의 불소계 화합물 생산량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핸슨의 상사들은 그녀에게 PFOS의 독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존슨이 퇴사한 후 몇 주 동안, 핸슨은 자신이 예전과는 다른 차원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상사는 그녀가 쓰는 장비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에 그녀는 질량 분석기는 물론 실험실 전체를 청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대로였습니다. 또 다른 상사는 주사기나 봉투, 시험관이 혈액을 오염시켰을 수도 있으니 그것들을 반복해서 분석해 보라고 종용했습니다. (물론 오염원은 아니었습니다.) 핸슨이 보기에 관리자들은 PFOS 그 자체보다, 그녀의 분석 결과가 틀렸을 가능성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때때로 핸슨은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이제 겨우 28살인 데다 박사 학위를 딴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관리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끈질기게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3M은 자동차 한 대 값보다 비싼 질량 분석기를 세 대나 추가로 구입했고, 핸슨은 이를 이용해 더 많은 혈액 샘플을 테스트했습니다. 1997년 말, 새 상사인 베이컨은 그녀를 장비 제조사로 보내 그곳에서 테스트를 재현하게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주에 걸쳐 십여 곳이 넘는 혈액 은행에서 수백 명의 혈액을 분석했습니다. 모든 샘플에는 PFOS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화학 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1902년 설립 당시 3M의 정식 명칭은 미네소타 광업 제조 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였습니다. 초기 광업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회사는 사포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후 일상생활을 혁신하는 기발한 발명품들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한 직원은 당시 유행하던 투톤 컬러 차량을 도색하는 데 애를 먹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을 눈여겨보다가, 주름 종이와 가구용 접착제를 활용해 마스킹 테이프를 발명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교회 찬송가에 구절을 표시해둘 목적으로 포스트잇을 만들기도 했죠.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3M의 공식 사사(社史)에는 이처럼 '엉뚱한 연구가들도 포용하는 문화'를 자부심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소계 화합물의 뿌리는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탄소와 불소를 결합하는 최초의 안전한 공정 중 하나를 개발해냈습니다. 불소는 반응성이 워낙 강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학계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라 불릴 만큼 위험한 원소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3M은 맨해튼 프로젝트 출신 화학자들을 영입해 탄소와 불소가 결합된 사슬 구조의 화합물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물질은 기름과 물, 열에 모두 강한 특성 덕분에 활용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습니다. 또한 분해가 거의 되지 않는 엄청난 내구성 때문에 '영원한 화학 물질(forever chemicals)'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초, 3M은 불소계 화합물 중 하나인 PFOA를 듀폰사에 판매했고, 이는 테플론 코팅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한 3M 직원의 테니스화에 우연히 불소계 화합물 덩어리가 떨어졌는데, 어떤 얼룩도 남지 않는 데다 닦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방수 기능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3M은 스카치가드와 스카치반을 출시했습니다. 핸슨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무렵, 두 제품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는 스카치반 처리가 된 종이봉투에 감자튀김을 담아주었고, 핸슨의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스카치가드를 뿌려 관리하곤 했습니다.
핸슨은 3M 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네소타주 레이크 엘모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3M의 핵심 엔지니어로, 1979년에는 회사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만큼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그는 수세미인 '스카치 브라이트'와 끈적이지 않는 압박 붕대인 '코반'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때 그는 섬유를 컵 모양으로 성형해 브래지어를 만들려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비록 착용감이 너무 불편해 브래지어로는 실패했지만, 그와 동료들이 그 컵을 입에 대보면서 영감을 얻은 덕분에 오늘날 3M의 상징이 된 N95 마스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핸슨은 원래 아버지를 따라 3M에 입사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 내내 호숫가에서 거북이와 개구리를 잡으며 보냈던 그녀는 환경 보존 분야에서 일하기를 꿈꿨습니다.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처음 구한 직장도 태평양의 외딴 오지로 향하는 탐사선 위였죠. 하지만 배멀미가 너무 심해 몸무게가 9kg이나 빠질 정도로 고생한 끝에 결국 미네소타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1996년, 핸슨은 아버지의 권유로 3M의 환경 실험실에 지원했습니다.
PFOS 연구를 시작하면서 일부 동료들과의 관계는 눈에 띄게 나빠졌습니다. 1998년 어느 오후, 3M의 역학 조사관인 기어리 올슨이 혈액 샘플 몇 병을 들고 찾아와 테스트를 의뢰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핸슨이 그와 동료들 앞에서 PFOS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결과를 발표하자, 핸슨의 기억 속에 비친 올슨의 표정은 마치 승리자라도 된 듯 보였습니다. "그건 우리 집 말의 피야." 올슨이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맥도날드 음식을 먹었을 리도, 스카치가드 처리된 카펫 위를 달렸을 리도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핸슨은 그가 자신에게 모욕을 주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올슨은 이와 관련한 답변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핸슨이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PFOS가 대체 어떤 경로로 동물들의 몸속에 침투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그 해답은 실험용 쥐의 데이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쥐들의 혈액에서도 불소계 화합물이 검출된 것입니다. 조사 결과 어분(魚粉)이 많이 포함된 사료를 먹은 쥐일수록 PFOS 수치가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해당 화학 물질이 먹이사슬과 수질을 통해 퍼졌음을 시사했습니다. 수컷 쥐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수치가 높아져 체내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암컷 쥐의 수치는 때때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핸슨은 독성 보고서를 통해 그 이유를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미 쥐가 새끼에게 이 화학 물질을 물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PFOS 노출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스카치반과 스카치가드가 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PFOS 자체가 두 제품의 공식 성분은 아니었지만, 제품에 포함된 다른 불소계 화합물들이 체내에서 분해되면서 PFOS로 변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핸슨과 그녀의 팀은 결국 독수리, 닭, 토끼, 소, 돼지 등 온갖 동물에서 PFOS를 찾아냈습니다. 또한 3M이 생산한 물질을 포함해 14가지의 추가적인 불소계 화합물이 인체 혈액 속에 있다는 것도 밝혀냈는데, 그중 일부는 3M 공장의 폐수에서도 검출되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핸슨은 아버지 폴에게 선배 동료들이 자꾸 자신의 연구를 의심해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막 은퇴했던 폴은 회사의 최고 경영진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그들에게 직접 결과물을 가져가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입사한 신출내기에다 7만 5천 명의 직원 중 몇 안 되는 여성 과학자였던 핸슨에게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였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경영진을 만나보겠다고 나서자, 핸슨은 아빠가 나서는 모양새가 될까 봐 질색하며 말렸습니다.
핸슨은 PFOS가 검출되지 않은 혈액 샘플을 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동료들에게 자신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팀은 PFOS 생산 초기 단계의 과거 혈액 샘플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1969년에서 1971년 사이 미시간주 유방암 연구에서 채취된 혈액에서 화학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이어 80년대와 90년대 중국 농촌 지역에서 채집된 혈액으로 밤샘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3M 제품이 널리 쓰이지 않는 외딴 지역이라면 PFOS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실험실에 도착한 핸슨은 마침내 PFOS 흔적이 전혀 없는 샘플들을 마주했습니다. 혈액 분석을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벅찬 나머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 정도였습니다. 장비나 방법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회사가 만들어낸 인공 화학 물질 PFOS는 실제로 거의 모든 사람의 혈액 속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핸슨의 팀은 1957년과 1971년 스웨덴의 혈액 샘플에서도 이를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3M이 PFOS를 만들기 이전에 채집된 혈액을 분석하자 음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불소계 화합물은 회사가 관련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인체로 흘러 들어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3M의 스프레이와 코팅제, 그리고 공장에서 흘러나온 물질이 결국 우리 모두의 몸속에 스며든 것입니다.
그해 여름, 3M의 사내 사서가 핸슨의 사무실 우편함에 놀라운 기사 한 편을 넣어두었습니다. 1981년 3M 과학자들이 작성한 그 글에는 혈액 내 불소 함량을 측정하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그 시절부터 회사가 불소계 화합물 수치를 추적해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처드 뉴마크는 여전히 3M에 재직 중이었고, 이른바 '너디 빌딩(nerdy building)'이라 불리는 단층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핸슨은 곧장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사교적인 성품을 지닌 뉴마크는 핸슨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20여 년 전, 도널드 테이브스와 워런 가이라는 두 학술 과학자가 인간의 혈액에서 불소계 화합물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스카치가드가 원인이 아닐까 의심하며 3M 측에 문의해왔습니다. 뉴마크는 당시 본인의 실험을 통해 그들의 의구심이 사실임을, 즉 그 물질이 PFOS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3M의 법무팀은 실험실 측에 이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말라고 압박했습니다.
핸슨은 수첩에 이 모든 내용을 받아적으며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미 과거의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을 왜 그토록 많은 동료가 틀렸다며 몰아세웠던 걸까요? 면담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실험실로 달려가 베이컨을 찾았습니다. "그분도 다 알고 있었어요!" 핸슨이 외쳤습니다.
베이컨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핸슨에게 면담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오라고 지시하며, 절대 이메일로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훗날 베이컨은 핸슨의 기억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뉴마크 역시 전화 통화에서 핸슨이나 PFOS에 관한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80대 중반이라 아주 오래전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일축했습니다.)
몇 달 뒤인 1999년 초, 베이컨은 핸슨을 아주 특별한 회의에 초대했습니다. 3M의 최고경영자(CEO)인 리비오 데시모네에게 직접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핸슨은 운전할 때나 저녁을 차릴 때나 며칠 밤낮을 발표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회의 당일, 임원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긴장감에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비서가 안내한 회의실 안에는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긴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고, 상사인 베이컨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탁자 상석에는 백발의 풍채 좋은 사내, 데시모네 회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핸슨이 프로젝터에 첫 번째 투명 필름을 올리자마자 회의 참석자들의 날 선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런 연구를 했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결과를 보고했는지 추궁이 이어졌습니다. 임원들은 그녀의 성실함을 오히려 배신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그녀가 밝혀낸 데이터가 회사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핸슨은 70년대에 뉴마크가 했던 비슷한 연구를 언급하며 자신을 방어하려 애썼고, 대화의 흐름을 다시 연구 내용으로 돌려보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임원들이 그녀를 몰아세우는 사이, 핸슨은 데시모네 회장의 눈이 감겨 있고 턱이 셔츠 깃에 닿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회장은 회의 중에 잠이 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데시모네 회장은 2017년에 사망했으며, 회사 대변인은 이 회의에 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핸슨은 베이컨으로부터 직무가 변경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상사가 명시적으로 요청한 실험만 할 수 있었고, 데이터 역시 그 상사와만 공유해야 했습니다. 업무 시간의 대부분은 다른 직원들이 진행하는 연구의 샘플을 분석하는 데 할애해야 했으며,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녀의 팀원 중 여러 명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베이컨은 앞으로 3M의 다른 과학자가 PFOS 연구를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핸슨은 자신이 처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핸슨이 뒤로 밀려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연구 결과는 조용히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서류함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70년대 이후 연방법은 회사의 제품이 "건강이나 환경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될 경우 이를 EPA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1998년 5월, 3M 측은 핸슨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미국 전역의 혈액 샘플에서 PFOS가 검출되었다고 당국에 통보했습니다. 명백히 핸슨의 공로였지만 그녀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회사는 70년대에 실시했던 동물 실험 결과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직원들의 혈중 농도 수준에서는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년 뒤, 3M은 다시 한번 핸슨 몰래 EPA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핸슨의 팀이 인체 혈액에서 탐지한 14가지의 다른 불소계 화합물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사 제품이 인체 건강에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믿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1999년 여름, 핸슨의 부모님이 3M 과학자들을 위해 주최한 연례 야유회에서였습니다. 핸슨이 옥수수를 굽고 있을 때, 안경을 쓴 백발의 남성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스카치가드 개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핸슨이 동료들의 업적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비난하며, 타인의 커리어를 망치면서 권력욕이라도 채우고 싶은 거냐고 쏘아붙였습니다. 핸슨이 당황해 아무 대답도 못 하는 사이 그는 자리를 떴습니다.
이제 상사들 중 여러 명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핸슨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사내 행사에서 자신의 연구 포스터를 전시했을 때도 관심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맛을 잃은 그녀의 바지는 눈에 띄게 헐렁해졌습니다. 어두운 회사 주차장에서 화가 난 동료가 갑자기 나타나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차로 걸어가는 동안 남편과 통화를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핸슨이 최고경영자를 만난 지 1년 뒤, 3M은 환경보호국(EPA)의 압박에 못 이겨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PFOS와 관련된 모든 화학 제품군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것입니다. 2000년 5월, 3M 관계자들은 처음으로 언론을 통해 혈액 은행에서 해당 화학 물질을 검출했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임원은 이 발견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의 의료 총책임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건강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사에서 한 독성학 교수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진짜 문제는 이 물질이 체내에 쌓인다는 점"이라며,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화학 물질이란 없으며, 축적되는 성질을 가진 물질이 결국 독성을 띠지 않을 리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핸슨은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3M의 발표를 보며 자신의 연구가 마침내 회사의 행동을 끌어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소외감을 느끼던 환경 실험실을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출산 후 그녀는 3M의 의료 기기 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부서를 옮기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혈액을 채취해 PFOS 수치를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인체 혈액 샘플 중 가장 낮은 수치 중 하나였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새끼에게 화학 물질을 고스란히 물려주던 실험실의 쥐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핸슨의 말에 따르면, 이후 19년 동안 그녀는 한때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불소계 화합물이라는 주제를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크로스컨트리 스키 팀을 지도하는 데 전념했고, 3M 내에서도 불소계 화합물과는 무관한 여러 직무를 거쳤습니다. 2002년, 3M이 PFOS를 또 다른 불소계 화합물인 PFBS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핸슨은 그 물질 역시 환경에 영구히 남으리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과학 학술지나 신문에서 해당 화학 물질이 발달 장애, 면역 체계 이상, 간 질환 등과 연관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와도 애써 넘겨버렸습니다. (2006년, EPA는 3M이 불소계 화합물의 유해성을 즉각 공개하지 않는 등 유해 물질 관리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에 3M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150만 달러라는 소액의 과징금을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사이 '영원한 화학 물질'은 '과불화화합물(PFAS)'이라는 새로운 학술적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핸슨이 추적하던 특정 물질인 PFOS와 철자가 묘하게 비슷했죠. 조사 결과 3M 본사 주변 약 388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PFAS에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과학자들은 인근의 물고기에서 PFOS와 PFBS를 검출했고, 미네소타 주민 약 12만 5천 명이 마시는 물에서도 다양한 불소계 화합물을 발견했습니다. 핸슨의 남편 피터는 친구들이 PFAS에 대해 물을 때마다 핸슨이 화제를 돌리곤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그 화학 물질들은 안전하다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습니다.
2016년에 출간된 저서 ‘일터의 비밀(Secrecy at Work)’에서 경영학자 야나 코스타스와 크리스토퍼 그레이는 비밀을 간직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거나 해로운 일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일례로 영업비밀은 혁신을 촉진하고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근거로 연방법과 주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저자들은 방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인용해 정보가 은폐되는 다양한 방식을 설명합니다. 조직은 비밀을 잘게 쪼개어 파편화함으로써 어느 한 개인이 전체 그림을 짜 맞추지 못하게 '칸막이'를 칠 수 있습니다.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고 싶지 않은 관리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비밀을 공유하는 이들은 서로의 입단속에 의지하며 일종의 '부족'을 형성하는데, 이런 식이면 비밀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부칠 수도 있습니다. 코스타스와 그레이는 기업이 비윤리적인 행위나 어두운 진실을 감출 때 이러한 기술들이 악질적으로 변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내부 폭로나 소송, 언론 보도 같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꽁꽁 숨겨진 비밀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합니다. '영원한 화학 물질'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곳은 어느 가축 농장이었습니다. 1998년,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농부는 변호사 로버트 빌럿을 찾아가 듀폰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소들을 병들게 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소들은 입에서 거품을 물기 시작했고 이빨은 검게 변했으며, 결국 백여 마리가 넘는 소들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빌럿은 소송을 제기해 수만 장의 내부 문서를 확보했고, 이는 영원한 화학 물질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서를 통해 농장의 물속에 듀폰이 3M으로부터 사들인 불소계 화합물인 PFOA가 들어있다는 사실과, 두 회사 모두 이 물질의 독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합의로 마무리된 이 소송은 마크 러팔로가 빌럿 역을 맡은 영화 ‘다크 워터스’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빌럿은 미네소타 지역의 오염 문제로 3M을 고소했으나, 당시 판사가 건강상의 영향에 대한 논의를 금지한 탓에 배심원단은 결국 3M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마침내 2010년,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이 직접 3M이 환경을 훼손하고 식수를 오염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3M은 과실이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8억 5천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때 검찰청은 3M의 내부 기록 수천 건을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이 기록들은 제가 매체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를 통해 영원한 화학 물질에 관한 기획 기사를 보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제 보도의 초점은 3M과 듀폰이 PFAS를 계속 생산하면서도 정작 그 위험성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에 맞춰졌습니다. 은폐 의혹을 취재하면서 저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자사 제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누가,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회사는 어떻게 이 비밀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킬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수년 동안 3M 내부에서 저와 대화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2021년, 존 올리버가 자신의 코미디 뉴스 쇼 ‘라스트 위크 투나잇(Last Week Tonight)’에서 영원한 화학 물질을 다루었습니다. 제 보도 내용을 인용한 이 방송은 해당 물질이 암과 면역 체계 이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올리버는 특유의 풍자를 섞어 “지금 전 세계는 ‘악마의 오줌’에 푹 절어 있는 셈”이라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핸슨의 옛 스승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이 영상 링크를 보냈고, 핸슨은 식탁에 앉아 그 영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순간은 결국 그녀가 저를 찾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오보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착잡하네요.” 핸슨은 교수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교수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틀렸느냐고 되묻자, 그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PFOS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구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검색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2012년 미국 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아동의 체내 PFOS 수치가 높을수록 백신의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6년의 한 연구에서는 PFOS를 비롯한 불소계 화합물 수치가 높은 아이들이 열병을 앓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연구가 이 화학 물질을 아동의 감염성 질환, 음식 알레르기, 천식 발생률 증가와 연관 지었습니다. 성인의 경우에도 아주 낮은 농도의 PFOS조차 호르몬 체계와 생식 능력, 간 및 갑상선 기능, 콜레스테롤 수치, 그리고 태아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수십 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 3M이 PFOS의 대안으로 선택한 PFBS조차 동물의 발달과 생식 과정에서 이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미네소타 보건당국에 의해 밝혀진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읽으며 핸슨은 역설적이게도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라 해도, 적어도 독립적인 과학자들이 이 물질을 제대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회사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PFOS가 해롭지 않다는 회사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저에게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으며, 3M에서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오욕”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이 공개한 문서를 읽었을 때, 그녀는 회사가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에게는 얼마나 철저히 입을 닫았는지 확인하고 경악했습니다. 그 속에는 그녀가 직접 수행했던 연구 기록들은 물론, 뉴마크와 면담하고 작성했던 그 보고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26년간 몸담았던 3M에서 그녀의 직무가 사라졌고, 핸슨은 새로운 자리에 지원하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그녀는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회사 내부에서 목격한 일들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우리는 수십 차례에 걸친 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핸슨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그녀의 연구가 3M으로 하여금 유독 물질 생산을 중단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했지만, 한편으로는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침묵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2월, 핸슨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는 주방에 앉아 그녀의 남편이 갓 구운 빵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3M과 '영원한 화학 물질'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대표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살을 에듯 추운 날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우리는 뉴마크 외에 또 어떤 동료가 모든 사람의 피 속에 PFOS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에나!(holy buckets!)" 같은 미네소타 특유의 감탄사를 섞어 쓰곤 했습니다.
지난 8월, 두 번째로 그녀를 만났을 때 저는 과학자로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도록 훈련받은 그녀가 왜 PFOS는 무해하다는 회사의 주장을 더 비판적으로 보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뒤따른 어색한 침묵 속에서 저는 창밖의 벌새들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후 핸슨은 상사들이 언론에 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를 자신에게도 주입했다고 입을 뗐습니다. 공장 직원들이 멀쩡하니 그보다 노출 수치가 낮은 일반인들도 당연히 안전할 것이라는 논리였죠. 그녀의 전문 분야는 화학 물질의 검출이었지, 그 유해성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M의 의료 책임자라는 사람이 직접 '우리가 다 연구해 봤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하는데, 제가 감히 거기에 맞설 수는 없었죠." 그녀가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수입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저는 혹시 회사가 시민들을 독극물에 중독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가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니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핸슨은 그 말에 선뜻 동의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 진실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찼을지도 몰라요." 3M은 비밀을 철저히 파편화해 관리했고, 핸슨은 그중 아주 작은 조각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핸슨의 증언에 대해 회사 측에 상세한 질의를 보냈으나, 대변인은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을 피하며 핸슨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저는 70년대에 3M의 화학 물질이 인체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직전까지 갔던 학자들, 테이브스와 가이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올해로 97세가 된 테이브스는 로체스터 대학 시절 회사 관계자들이 자신의 실험실을 찾아왔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캐내고 싶어 했죠." 하지만 정보는 일방통행이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거라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3M은 테이브스나 당시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가이에게 자사 불소계 화합물이 인체 혈액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끝내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후속 연구를 더 밀어붙이지 못한 게 한이 되지만, 당시엔 연구비가 전혀 없었어요." 가이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는 결국 가족 부양을 위해 치과의사가 되었고 올해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테이브스 역시 연구직을 떠나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 진실을 쫓던 흔적은 그렇게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작년, 3M이 직면한 수천 건의 PFAS 관련 소송 기사를 읽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수질 오염 피해를 본 지자체들이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3M의 새로운 내부 문서들이 공개된 것입니다. 원고 측 법무팀을 통해 문서 몇 장을 입수했을 때, 저는 익숙한 이름 두 개를 발견했습니다. 1991년 작성된 문서에는 한 3M 과학자가 질량 분석기를 활용해 생체 시료 내 PFOS 측정 기술을 고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훗날 핸슨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장비였습니다. 그 문서의 작성자는 바로 짐 존슨이었고, 그는 이 보고서를 자신의 상사인 데일 베이컨에게 보고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순간 저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존슨은 핸슨의 첫 상사이자 그녀에게 PFOS 연구를 직접 지시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베이컨은 그녀의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결국 연구 중단까지 명령했던 사람입니다. (베이컨은 선서 증언에서 이미 80년대에 동료와 수다를 떨다 테이브스와 가이가 인체에서 PFOS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시인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이것입니다. 왜 존슨은 본인이 이미 연구했던 사안을 굳이 핸슨에게 다시 조사하라고 시켰으며, 왜 결과가 나오자 그토록 놀란 척 연기를 했던 것일까요?
현재 81세로 홀로 지내는 짐 존슨은 노스다코타의 연노란색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처음 그와 통화했을 때, 그는 이미 70년대부터 PFOS 연구를 시작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분야의 아주 기초적인 연구는 대부분 제가 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그는 이 물질의 화학 구조를 보자마자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 분해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20분 만에"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 직후 실시한 실험에서는 PFOS가 체내 단백질과 결합해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70년대 후반경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비공식 혈액 테스트에서도 PFOS를 찾아냈지만, 전혀 놀랍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처음에 존슨은 "몸무게 합이 200kg이 넘는 개들" 때문에 방문이 곤란하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마음을 돌렸습니다. 쌀쌀한 11월의 어느 날 제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잠시 집 밖에 서서 거실 창문에 침 묻은 코를 비벼대는 반려견 스노즐, 세이디, 정크야드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고는 근처 아이홉(IHOP)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청바지에 플라넬 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존슨은 키가 너무 커서 등받이가 높은 칸막이 좌석에 앉기조차 불편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일반 테이블에 앉아 무한 리필 커피 두 잔을 주문했습니다.
80년대 초, 존슨은 쥐들에게 스카치반의 성분을 먹이는 실험을 통해 PFOS가 간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이 물질이 인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를 보여주는 지표였습니다. 이것이 회사에 어떤 의미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무심하게 답했습니다. "한마디로 엿 된 거죠."
당시만 해도 존슨은 PFOS가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활용품에서 나온 인공 화합물이 인체에 들어있어서는 안 되기에, "분명히 나쁜 상황"임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치약이나 기저귀에 불소계 화합물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3M의 협력업체들은 토끼의 털을 밀고 회사의 불소계 화합물을 문질러 체내에서 PFOS가 검출되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토끼 간을 보내오면, 어김없이 그놈이 들어있었죠. 토끼 참 많이 죽였습니다." 존슨의 회고입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 멍청이들은 이미 식품 포장재에 그걸 때려 넣고 있었거든요."
존슨은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회사를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충직한 병사'였기 때문이라며 묘한 자부심을 내비쳤습니다. 일부 업무는 회사 법무팀으로부터 직접 지시받은 것이라 발설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제 상사나 그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는 또한 만약 자신이 PFOS 관련 소송에서 증언하게 되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며 껄껄 웃었습니다. "난 노인네라 갑자기 기억력이 심각하게 가물가물해질지도 모르거든요."
식당 창밖으로 주차장에 옅은 눈발이 흩날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존슨의 말에 따르면, 3M에는 굳이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대중의 혈액에서 PFOS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연구 내용을 포스터로 만들어 발표하며 환영받기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여러 임원을 설득해 PFOS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려 했지만, 그들에겐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불소계 화합물을 팔아치우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존슨은 부서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급인 수석 과학자로 은퇴했지만, 중요한 경영 결정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펄쩍 뛰면서 '이건 다 헛소리야!'라고 외칠 처지는 아니었죠. 잘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3M의 비밀 중 그가 가진 조각은 아는 것이자 모르는 것인 채로, 견고한 칸막이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존슨은 PFOS에 대해 속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료들과 논쟁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때가 된 거였죠." 그가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부 실험실에 의뢰해 3M 직원들의 혈액 수치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비교군으로 적십자사의 혈액 샘플을 함께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리고 그 결과가 결국 이 화합물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도미노의 첫 조각이 되리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기묘하게도 그는 그 실험실 책임자를 '자판기'에 비유했습니다. "돈을 넣은 만큼 결과물을 내놓은 것뿐입니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존슨은 자신이 오랫동안 회피해 왔던 임무, 즉 초기 실험 수준을 넘어 이 화학 물질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낱낱이 기록하는 일을 핸슨에게 맡겼습니다. 핸슨이 현장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정작 판을 짠 그는 조기 은퇴를 택해 유유히 사라진 셈입니다.
존슨은 핸슨 역시 마치 자판기처럼 묘사했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남겨준 도구를 가지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저는 핸슨이 그 과정에서 직장 생활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었으며, 그 경험이 자신의 커리어를 오염시켰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존슨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네 시간이 흐르자 무한 리필이라던 커피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존슨은 증거 기반의 과학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는 진화론이 틀렸다고 믿거나, 코로나19 백신이 '초고속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하지만 3M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그의 기억만큼은 핸슨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법정 문서에 기록된 회의나 실험에 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아주 또렷하게 당시 상황을 기억해 냈습니다.
존슨과의 대화 내용을 핸슨에게 전해주자, 그녀는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그 모든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니!" 그녀는 상담 예약이 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습니다. "지금 상담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비밀'이란 영웅적인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터뜨리는 단절되고 폭발적인 진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83년 영화 '실크우드'에서 플루토늄 공장 노동자인 카렌 실크우드는 회사의 부실한 안전 관리 실태를 담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챙깁니다. 하지만 이를 기자에게 전달하러 가던 길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죠. 또 다른 실화 영화인 2015년 작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제보자가 가톨릭교회 내 아동 성추행 조사를 돕기 위해 결정적인 서류 상자를 보스턴 글로브지에 전달합니다. 하지만 핸슨과 존슨을 만나며 저는 진실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며, 비밀을 지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때로는 진실을 밝히는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M 비밀의 조각 중 일부는 이제야 빛을 보고 있고, 어떤 조각들은 영원히 묻혀버릴지도 모릅니다.
1951년부터 2000년 사이, 3M은 최소 1억 파운드(약 4,500만 kg)에 달하는 PFOS와 그 분해 산물들을 생산했습니다. 이는 대략 타이타닉호의 무게와 맞먹는 양입니다. 3M 과학자들이 이 물질이 동물에게 유독하며 인체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70년대 후반 이후에도 회사는 매년 수백만 파운드씩 이를 찍어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그 생물학적 파장을 다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다만 수십 년 전 존슨이 알아냈던 것처럼, 체내 단백질이 PFOS와 결합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졌습니다. 이 물질은 우리 세포와 장기에 침투해 아주 미량으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기본적인 생체 기능을 방해합니다. 발병까지 수년이 걸리는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정작 진단을 받을 때쯤이면 체내 PFOS 수치가 떨어져 인과관계를 확실히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얼마 전 저는 70년대에 18세의 나이로 공군 소방대원이 되었던 브래드 크리시와 통화했습니다. 그는 1년에 몇 번씩 훈련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무장화와 우주복처럼 생긴 무거운 은색 방화복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횃불을 든 요원이 불붙은 헝겊 막대로 야외 구덩이에 부어놓은 항공유에 불을 지폈습니다. 30미터 높이로 치솟는 불길을 잡기 위해 크리시와 동료들은 '수성막포(AFFF)'라 불리는 소화 거품을 뿌렸습니다. 3M은 PFOS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영원한 화학 물질'로 이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크리시는 그 거품이 비누처럼 미끄럽고 거품이 잘 일었으며, 손등의 피부를 쩍쩍 갈라질 정도로 건조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독일 군 기지에서의 마지막 날을 축하하기 위해 동료들은 그에게 거품 한 양동이를 끼얹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공항에서 소방 거품을 다루며 일하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 징후들—간의 낭종, 갑상선 근처의 결절—이 혹시 그 거품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고콜레스테롤 혈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가 실험실의 쥐가 된 기분이었어요. 우리 모두 소모품이었던 거죠." 크리시가 말했습니다. "이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크리시와 그의 동료들을 자신도 모르게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피실험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PFOS는 갑상선암 위험을 높이며, 특히 공군 복무자들 사이에서는 고환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한 실험의 일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PFOS의 평균 수치는 낮아지는 추세지만, 거의 모든 사람의 혈액에서 최소 한 종류 이상의 '영원한 화학 물질'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환경 화학자 엘시 선더랜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정 오염 지역은 정화라도 할 수 있죠. 하지만 독성 물질을 전 지구적 규모로 퍼뜨려 모든 사람에게서 검출되게 만든다는 건, 인류 전체의 건강을 엄청난 규모로 훼손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모든 사람의 혈액이 오염되고 나면 비교 분석할 대조군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조차 불가능해집니다.
새로운 유해성 또한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임신 중 PFAS 노출이 아동의 발달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의 수많은 연구는 이 화학 물질을 당뇨 및 비만과 연관 지었습니다. 올해 한 연구에서는 낙태된 지 몇 주밖에 안 된 태아의 몸속에서 PFOS를 포함한 13가지 영원한 화학 물질을 발견했으며, 이를 간 손상 관련 바이오마커와 연결했습니다. 2018년 뉴욕대학교 연구팀은 단 두 종류의 화합물인 PFOA와 PFOS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부담, 장애, 의료비 등의 사회적 비용이 단 한 해에만 최대 62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습니다. 이는 현재 3M의 기업 가치를 상회하는 금액입니다.
PFAS가 면역 체계를 해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일조한 의사 필립 그랑장은, 이 물질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누구나(사실상 전 인류가)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본래 우리의 면역 체계는 이상 세포가 종양으로 변하기 전에 이를 찾아내 사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PFAS는 면역 체계를 교란하며, 특히 이 핵심적인 방어 기능까지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의 소송에서 전문가 증인으로 나섰던 그랑장은 수은을 비롯한 수많은 환경 오염 물질을 연구해 온 인물입니다. 그는 PFAS의 영향력이 너무나 파괴적이라, 그의 동료 중 한 명은 처음에 이 결과가 방사능 노출 때문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지난 4월,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과불화화합물(PFAS) 노출을 줄이기 위한 역사적인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EPA는 PFOS와 PFOA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며" 사실상 안전 수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또한 이 물질들을 슈퍼펀드법(Superfund law)에 따른 유해 물질로 지정하여, 정부가 오염 유발 기업에 정화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했습니다. 이와 함께 식수 내 6종의 PFAS 함유량에 대한 규제치도 마련했습니다. 몇 년 뒤 이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각 지역 수도 사업소는 수질 검사를 통해 PFOS나 PFOA 농도를 4ppt(1조 분의 4) 이하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올림픽 수영장 여러 개에 담긴 물에 단 한 방울이 섞인 정도의 극미량입니다. 하지만 3M이 지금까지 생산한 PFOS와 그 분해 산물들의 양은 지구상의 모든 민물을 이 기준치 이상으로 오염시키고도 남는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PFAS 변종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화합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천 종의 화합물이 생산되었고, 미 국방부조차 폭발물, 반도체, 세정액, 배터리 등을 제조할 때 여전히 많은 PFAS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PFAS는 눌어붙지 않는 조리 기구부터 기타 줄, 치실, 화장품, 손 소독제, 브레이크액, 스키 왁스, 낚싯줄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제품에서 발견됩니다.
이에 대해 3M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회사가 "선제적으로 PFAS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PFAS에 대한 회사의 접근 방식은 "과학 기술의 발전, 사회적·규제적 기대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준에 맞춰 진화해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이 물질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는 자료를 제시하며,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스마트폰 등 우리 삶을 연결하는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이 물질들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3M은 수질 오염 피해를 본 지자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오염 제거가 필요한 수도 시스템의 수에 따라 PFAS 여과 비용으로 최대 125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합의금은 문제의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국 수돗물의 최소 45%가 한 종류 이상의 '영원한 화학 물질'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를 모두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2022년, 3M은 2025년 말까지 PFAS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전 제품군에서 PFAS 사용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회사는 이 결정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3M의 입지를 다지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자평했습니다. 하지만 3M은 여전히 16,000개 이상의 자사 제품에 PFAS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 화학 물질의 직접 판매로만 매년 13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3M이 당국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대체재를 찾지 못할 경우 완전한 생산 중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M 대변인은 "PFAS 제조 중단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계속 정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3M과 소속 과학자들은 영원한 화학 물질을 생산하고 그 유해성을 은폐한 것에 대해 여전히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형사 처벌 또한 받지 않았습니다.
핸슨은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오늘날의 3M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을지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셨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핸슨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설명할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이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정작 본인이 만드는 데 기여한 N95 마스크가 이미 수백만 명의 감염을 막아주고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 말입니다. 2021년 1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핸슨은 그의 팔에 감긴 코반 붕대를 보았습니다. 그 붕대는 아버지가 처음 설계했던 목적 그대로, 그의 연약한 피부가 찢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보호해주고 있었습니다. 핸슨이 호스피스 간호사에게 "저건 저희 아버지가 발명하신 거예요"라고 말하자, 간호사는 정중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3M을 떠난 뒤 핸슨은 지역 자연보호 구역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산책로를 정비하고 자생 식물을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지난 8월, 그녀는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 자주 시간을 보내곤 하는 시냇가로 안내했습니다. 그녀는 이 물줄기에 송어 세 종이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동시에 이곳은 과거에 3M이 상류에 내다 버린 '영원한 화학 물질'로 오염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산책을 하는 내내 자주색 등골나물과 미역취꽃이 벽처럼 빽빽하게 피어 있어 시냇가 둑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나무 벤치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그 위에 올라가 시냇물을 내려다보자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곤충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핸슨이 왜 이곳을 즐겨 찾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오염된 시냇물을 예전으로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3M이 흘려보낸 화학 물질들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이곳에 머물 테니까요. 하지만 핸슨은 그저 남아있는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처음 왔을 때보다 이곳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