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이 셀럽에게: 우리는 대스타 인터뷰의 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걸까? (번역)
Jesse Hassenger 「Celebrity on celebrity: are we losing the art of the big star interview?」
초부유층 기업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쥐게 되면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부를 쫓는 사업가 출신의 인물이 미국 대통령 연임(두 번째 임기)에 성공했으니 이러한 여론은 더욱 들끓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널드 트럼프의 천적으로 자처하던 CNN은 이 특권층을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 기막힌 묘수를 찾아냈다. 바로 자사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해 기업인들끼리 서로 사업 이야기를 주고받는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1대1(1 on 1)'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대기업 수장을 상대하는 진짜 저널리스트의 등장을 뜻하지 않는다. 대기업 대표들이 그런 인터뷰에 응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신 최고경영자(CEO)들은 서로 합의한 '특권층 맞춤형' 질문을 던지며 유쾌하게 '압박 면접'을 진행한다. CNN 대변인은 이 대화가 "신선할 정도로 거침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체 누구에게 신선하다는 건지 딱 부러지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실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도 든다. 인터뷰, 특히 정치와 무관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카메라 앞에서의 인터뷰는 점차 '알맹이는 없고 칭찬만 가득한' 장으로 변질되어 왔다. 알맹이 없는 상호 찬양의 발상지는 단연 연예계다. 예컨대 잡지 보그(Vogue)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개봉에 맞춰 메릴 스트립과 안나 윈투어의 대담을 다룬 화려한 신작 기사를 내놓았을 때, 바이라인(기자 이름)에 이름을 올린 기자는 관찰자 중심의 저널리즘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이 대담의 '진행자'로 참여한 인물이 다름 아닌 그들의 연예인 동료 그레타 거윅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윈투어의 뒤를 이어 보그 편집장이 된 클로이 말리는 자신을 '법정 속기사'에 비유했는데, 정작 법정에서는 변호사와 판사가 모두 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은 쏙 빼놓았다. 최근 마크 제이콥스(드디어 이 소외된 거물에게도 기회가 왔다!)가 사브리나 카펜터를 인터뷰한 또 다른 기사에는 아예 기자 이름조차 없다. 제이콥스가 직접 녹음기를 챙겨와 녹취록을 따고 익명으로 소개글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 제3자가 동석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저널리스트는 눈에 띄어서도, 목소리를 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된 듯하다.
이런 흐름이 2020년대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잡지 인터뷰(Interview)는 노련한 전문 인터뷰어를 고용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대신, 연예인들을 짝지어 편하게 수다를 떨게 하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로 수년간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이 전략은 실제로 어느 정도 통했다. 기사나 영상에 등장하는 두 번째(보그의 경우는 세 번째) 인물마저 거물급 스타라는 점은 분명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마치 인터뷰 한 편 가격에 두 편을 보는 듯한 만족감을 준다. 수많은 영화 팬들이 매년 버라이어티(Variety)의 배우가 배우에게(Actors on Actors)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담 샌들러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이야기를 나누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어우러지며, 시드니 스위니가 에단 호크와 연기론을 논하는 식이다. 이 기발한 조합의 영상들은 당연히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인터뷰 전체를 다 보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예를 들어 언론 노출을 꺼리기로 유명한 아담 샌들러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잠시, 이들의 인터뷰가 결국 서로에 대한 덕담 품앗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날카로운 꼬리 질문을 던지는 훈련까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동료나 친구가 난처해할 만한 주제는 알아서 피해 간다. 이는 기성 인터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전 승인된 상투적 질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다. 연예인들은 매니저가 등판해 "그 질문은 빼주세요"라며 케이트 허드슨을 단속하는 식의 어색한 순간조차 겪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잘 안다. 상대방 역시 연예인이니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에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처음에는 대개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에야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가 주는 지나치게 장난스럽고 알맹이 없는 예능 방식을 쉽게 폄하하지만, 케케묵은 제이 레노식 유머에 지쳐있던 시절에는 팰런이 게스트들을 멍청한 콩트나 유치한 게임에 참여시켜 인간적인 매력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어차피 토크쇼 대화에서 대단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설을 날리던 데이비드 레터맨이 은퇴한 지 오래고, 현역 심야 토크쇼 최고의 인터뷰어인 그의 후계자 스티븐 콜베어마저 물러나려는 지금, 화면에는 대조를 이룰 만한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에이미 폴러의 인기 팟캐스트 굿 행(Good Hang) 역시 폴러가 여러 연예인 친구들과 격의 없이(그리고 겉보기에는 솔직하게) 수다를 떤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또한 안전하게 기획된 친밀감이자 서로를 치켜세우는 소통 방식일 뿐이다.
지미 팰런과 에이미 폴러가 모두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즉흥성을 가장한 친목 도모는 심야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다. 우리는 연예인들이 SNL 호스트로 출연해 망가지는 모습을 좋아하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은 철저히 게스트가 돋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제 SNL 출연진은 전문 인터뷰어 없이 진행되는 홍보 영상에 출연해 팰런 스타일의 퀴즈 게임을 하거나 요리 대결을 펼치며 시간을 때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모습이 조금이라도 흘러나오면 곧바로 논란이 된다.
전문 인터뷰어 앞에 서는 것을 꺼리는 또 다른 본질적인 이유는, 오늘날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조금이라도 솔직한 발언을 하면 즉시 대중의 표적이 되어 사이버 테러를 당하기 십상이다. 뮤지션 잭 화이트는 자신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가디언(The Guardian)지와 나눈 이야기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깎아내린 것으로 오해받자 해명 성명을 내야 했다. 연예인끼리 진행하는 인터뷰였다면 화이트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화제를 돌리고 스위프트를 찬양하는 분위기로 유도했을 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언론 기피자'라는 낙인도 피하면서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친목형 인터뷰를 선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글을 쓰는 비평가 입장에서 연예인 간의 인터뷰를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잘나가는 무리'에 끼지 못해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여 묘한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 실제로 어설픈 인터뷰어들을 보면 차라리 연예인들끼리 수다를 떨게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레드카펫이나 기자간담회장은 자질 부족인 인플루언서들이 던지는 알맹이 없고 무례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이에 비하면 아담 샌들러와 아리아나 그란데는 장인의 경지에 오른 인터뷰어다. 사실 대중문화 비평가인 나 역시 인터뷰의 대가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것은 에세이나 리뷰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방대한 준비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뼈아픈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멤버가 나를 바보로 생각할까 봐 밤새 전전긍긍하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 진심으로 능숙한 진짜 전문가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나 음악가가 전문 인터뷰어 덕분에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든 말든 대세에 큰 지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처럼 '우리끼리 해 먹는' 방식이 인터뷰를 넘어 문화 예술 본연의 영역으로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제작되는 팝스타의 전기 영화들은 콜맨 도밍고나 마일스 텔러 같은 배우들이 마이클 잭슨 유족 측의 입맛에 맞춰 연기하는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소피아 코폴라 같은 천재 감독이 생애 첫 다큐멘터리 주제로 삼은 인물은 다름 아닌 그의 친구 마크 제이콥스다. 더욱이 이러한 아첨과 굴종의 태도가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CEO처럼 대중의 삶에 직결된 영역으로 번질 때, '접근 권한'을 대가로 언론이 건네는 부드러운 면죄부는 최악의 거래가 된다. (적어도 배우 두 명이 25분 동안 서로를 치켜세울 때는 최소한의 시각적 스타성이라도 보장되지만, CEO 두 명에게는 그런 매력조차 기대할 수 없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늘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언론까지 나서서 그들의 독무대를 꾸며줄 필요는 없으며, 대중 역시 그것이 저널리즘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 The Guardian (2026.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