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패션으로 기록한 펫 숍 보이즈의 일대기 (번역)

원문: The Pet Shop Boys on their life in fashion (Financial Times)

1980년대부터 이어진 남성복 트렌드의 변천사를 비추는 팝 듀오의 스타일 아카이브

Mark C O’Flaherty | 2026.4.1

펫 숍 보이즈(Pet Shop Boys)의 데뷔 앨범 Please가 발매된 지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닐 테넌트와 크리스 로우는 활동 초기부터 자신들이 단순한 밴드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키보드 하나를 든 채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현대판 노엘 카워드(Noël Coward) 같았죠.

이들은 예술과 그래픽 디자인은 물론, 의상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까지 꿰뚫고 있었습니다. 특유의 무표정한 아이러니와 화려한 무대 의상, 그리고 데릭 저먼이나 에스 데블린 같은 거장들이 연출한 라이브 공연은 이들을 팝 음악계의 '길버트 앤 조지(Gilbert & George)'로 각인시켰습니다.1 이제 이들의 방대한 음악 세계는 지난 수십 년간 남성복의 변천사를 기록한 시각적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에릭 왓슨과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화보, 브루스 웨버가 연출한 뮤직비디오 스틸컷 등 그 기록의 정수를 담은 신간 Pet Shop Boys Volume: The Complete Visual Record가 출간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많은 레코드사가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소속 가수들에게 고티에나 웨스트우드 같은 명품 의상을 입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로우와 테넌트는 거리의 스타일을 연구하며 직접 옷을 골랐습니다. 화상 통화로 만난 테넌트는 "당시 우리는 '스포츠 캐주얼' 열풍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로우 역시 "그때 테니스를 즐겨 쳐서 세르조 타키니나 휠라를 자주 입었다"며 말을 보탰습니다. "어느 날 리버풀에서 기차를 탔는데, 저와 똑같은 옷을 입은 젊은 친구들이 가득하더군요. 누가 봐도 테니스 클럽 회원이 아니라 축구 훌리건들이었죠. 그 모습이 정말 멋졌습니다. 디아도라 운동화에 물 빠진 피오루치 청바지를 매치한 스타일이었는데, 제 눈엔 그보다 완벽한 패션은 없었습니다."

당시의 유산을 돌아볼 때, 패션 큐레이터들은 흔히 소수의 미술학도가 클럽에 가려고 분장 상자에서 꺼내 입은 기괴한 옷들에만 주목하곤 합니다. 반면, 경기장 관람석의 드레스 코드를 따랐던 수많은 10대의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습니다. 1987년 곡 'Rent'의 화보처럼, 지방에서 갓 상경한 10대 성 노동자의 차림새를 재현한 초기 펫 숍 보이즈의 작업들이 유독 중요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독특한 시도를 보여준 사례가 바로 1년 전 발표한 ‘Suburbia’의 B-사이드 곡인 ‘Paninaro’입니다. 이 곡은 당시 이탈리아의 미국식 패스트푸드점 앞에 모여 살다시피 했던 청년들에게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스톤 아일랜드와 몽클레르를 걸치고 베스파를 몰던 그들 말이죠. 흥미롭게도 이 곡이 나온 해에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로마 스페인 광장에 있는 본사 옆 맥도날드를 폐쇄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파니나로’ 유행은 시들해졌지만, 그 맥도날드는 가라바니보다도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로우는 "그 아이들이 정말 멋져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밀라노의 한 광장에 모여 있는 걸 봤는데, 영국의 스포츠 캐주얼 족과 느낌이 아주 비슷했거든요." ‘Paninaro’의 가사에는 펫 숍 보이즈 특유의 관찰력 넘치는 위트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녀들, 소년들, 예술, 즐거움... 아르마니, 아르마니, 아-아-아르마니.”

남성 캐주얼 패션과 스타일링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내기란 어렵지만, 그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파니나로 세대는 파스텔 톤과 화려한 색감의 패딩 조끼, 노란색 팀버랜드 부츠에 열광했고 청바지는 발목까지 롤업해 입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년 뒤, 그들은 그룬지 룩에 빠져들었죠. 로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디젤 청바지 디자인이 늘 똑같을 것 같지만, 몇 년 지나서 옛날 옷을 꺼내 입어보면 핏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도저히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펫 숍 보이즈의 지난 40년은 스트리트 패션뿐만 아니라 런웨이 패션의 결정적인 순간들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테넌트가 초기 뮤직비디오에서 입어 상징이 된 긴 검정 코트는 2024년 세상을 떠난 블리츠 클럽 시대2의 전위적인 디자이너 스티븐 리나드의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로우가 유독 애정했던 이세이 미야케의 1985년작 원형 선글라스는, 그가 ‘Suburbia’ 커버에서 도쿄의 신생 브랜드 포쉬 보이(Posh Boy)의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함께 매치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세이 미야케와 에디 슬리먼은 오랫동안 이들이 즐겨 찾은 브랜드였으며, 2018년에는 크리스 반 아셰가 이끄는 디올의 모델로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날, 테넌트는 이세이 미야케의 '옴므 플리세' 검정 상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1987년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였던 마이클 로버츠와 촬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그가 챙겨온 이세이 미야케의 공기 주입식 재킷을 크리스가 입었죠. 저도 그때부터 그곳에서 옷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칼라 없는 셔츠나 바람머신 앞에서 근사하게 펄럭이는 넉넉한 핏의 가벼운 코트 같은 것들 말이에요." 테넌트는 90년대 후반에 잠시 미야케의 옷을 멀리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IM 맨' 라인의 제품을 많이 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평평하게 접으면 마치 미니멀리즘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띠는 옷들이죠. 그는 "소재가 디자인을 주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미야케의 옷은 언제나 건축적이며 세월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죠. 게다가 폴리에스테르 소재라 투어 중에 호텔 욕실에서 간편하게 빨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로우 역시 의복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미치코 코시노의 공기 주입식 코트부터 맞춤 정장까지 가리지 않죠. 그는 "영국 새빌 로의 '킬구어'에서 정장을 맞춘 적이 있는데, 사실 옷 자체보다 그 제작 과정을 즐기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슈트는 지금도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 요긴하게 입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테넌트는 늘 슈트 스타일에 이끌려 왔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는 장 폴 고티에의 기보(Gibo) 라인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 무렵 뮈글러가 칼라 없는 절제된 재킷으로 변신을 꾀했을 때 그 스타일로 갈아탔죠. 하지만 조지 마이클과 보위가 그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저만의 개성이 사라진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최근에는 'IM 맨'에서 슈트를 두 벌 샀어요."

펫 숍 보이즈는 가레스 퓨나 제프리 브라이언트가 디자인한 파격적이고 난해한 컨셉의 의상을 입고 무대와 뮤직비디오를 누벼왔지만, 결코 유행에만 목을 매는 '패션 희생양'은 아니었습니다. 듀란 듀란이 안토니 프라이스의 세련된 슈트를 차려입고 요트 위를 항해하고, 데이비드 보위가 진지한 예술적 선언을 위해 알렉산더 맥퀸에게 낡은 유니언 잭 프록 코트를 주문 제작했다면, 펫 숍 보이즈에게는 보는 이의 무장해제를 유도하는 특유의 유쾌하고 다정한 '캠프(Camp)' 감성이 있었습니다.

로우는 곧 들려줄 일화가 생각난 듯 벌써 낄낄거리며 말을 꺼냈습니다. "한번은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디올 청바지를 입고 시상식에 간 적이 있었죠. 저희가 뉴 오더에게 상을 전달했는데, 버나드 섬너가 저를 돌아보더니 그러더군요. '야, 넌 청바지조차 가식적이다.'" 그러자 테넌트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사실 에디 슬리먼의 청바지는 늘 훌륭했거든요. 셀린느든 디올이든 생로랑이든, 그가 만든 청바지는 언제나 멋졌죠."

펫 숍 보이즈의 모자 컬렉션만 따로 모아 전시회를 열어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스텟슨 햇(Stetson)부터 미국 뉴웨이브 밴드 디보(Devo)를 연상시키는 만화 같은 원뿔형 모자, 크리스 로우가 즐겨 쓴 보이(BOY) 베이스볼 캡과 이세이 미야케의 은색 수영 모자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또한 1990년 'So Hard' 커버에서 쉐비뇽 코트를 입고 사과를 베어 물 때 썼던 격자무늬 버킷 햇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012년 'Leaving' 앨범 아트에 등장한 JW 앤더슨의 퀼팅 보닛, 그리고 1990년 'Was It Worth It' 뮤직비디오에서 화려한 클럽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썼던 겐조의 과감한 오렌지색 하이 탑 여성용 모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당시 런던에서 가장 힙하고 입장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클럽 '킹키 걸링키(Kinky Gerlinky)'의 운영자인 걸린드와 마이클 코스티프 부부는 이후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 '월드 아카이브'를 열기도 했는데, 이들이 제작한 카니발 스타일의 깃털 장식 모자는 2010년 베스트 앨범 Ultimate커버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로우와 테넌트는 언제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991년 투어 당시, 두 사람은 만화 에르제의 캐릭터 ‘톰슨과 톰슨(Thomson and Thompson)’에서 영감을 얻은 커플 룩을 선보였습니다. 테넌트는 “분홍색과 노란색 중절모를 썼었죠. 저희가 중절모를 활용한 건 영국적인 모티프를 반복해서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유럽적인 스타일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촬영할 때도 크리스는 베르사체 가죽 재킷을, 저는 로메오 질리를 입었거든요”라고 회상했습니다.

펫 숍 보이즈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1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테넌트와 로우는 여전히 새로운 곡을 녹음하고 있으며, 올여름에는 히트곡 투어인 ‘드림월드(Dreamworld)’ 공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비장의 스타일을 여럿 숨겨두고 있지만,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랄까요? 만약 죽음을 앞두고 평생 영혼이 되어 입고 떠돌아야 할 ‘고스트 아웃핏(Ghost Outfits)’을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로우가 열의에 차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한눈에 저라는 걸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아디다스 운동화에 디젤 청바지, 근사한 아디다스 스페지알 재킷을 입고 야구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겠습니다.” 테넌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 잘 만들어진 검정 슈트에 흰 셔츠를 입고 단추를 끝까지 채운 차림이 좋겠네요. 완벽하면서도 가장 저다운 모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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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버트 앤 조지(Gilbert & George): 이탈리아 출신의 길버트 프루쉬와 영국 출신의 조지 패스모어로 구성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듀오입니다. 길버트 앤 조지는 자신들의 신체 자체를 예술 작품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늘 똑같은 슈트를 차려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활동하는데, 이는 펫 숍 보이즈가 초기부터 고수해온 '무표정한 아이러니(Deadpan irony)'와 정제된 이미지 메이킹 전략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2. '블리츠 클럽 시대(The Blitz Club Era)'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런던의 '블리츠(Blitz)'라는 클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폭발적인 문화적 흐름을 뜻합니다. 블리츠 클럽은 '뉴 로맨틱스'라는 패션·음악 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70년대의 거친 펑크(Punk) 스타일에 반발하여, 극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Androgynous) 차림을 즐겼습니다. 해적 의상, 화려한 화장, 귀족적인 프록 코트 등이 대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