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플로리다 오렌지를 죽였나 (번역)
원문: Who Killed the Florida Orange? — Slate (2016.4.20)
By Alex Sammon
원래 그리 붐비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았던 회의장에 정적이 내려앉으며 2026 플로리다 시트러스 쇼의 막이 올랐다.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 될 겁니다.” 첫 연사가 발표를 시작했다. “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긴 하지만, 다행히 오늘은 비 소식이 없군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상황이 최악이라는 사실은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조차 없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그저 ‘쓰라린’ 정도가 아니었다. 오렌지 농가들은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어온 이들이었으나, 지금의 공기는 그보다 훨씬 무거웠다. 마치 종말 이후의 풍경 같았달까. 플로리다는 현재 2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지만, 사실 이 지독한 마른하늘은 만신창이가 된 재배업자들이 마주한 문제 목록에서 한참 뒤 순위에 불과했다.
2003년 당시, 거대 산업을 자랑하던 플로리다 오렌지 업계는 연간 2억 4,200만 상자(상자당 90파운드)의 과실을 생산했다. 그 대부분은 오렌지 주스로 가공되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그러나 25년이 채 지나기도 전인 현재, 미국 농무부(USDA)는 고작 1,200만 상자라는 처참한 수치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100년 만의 최저치이자, 이미 최악이었던 작년보다도 나쁜 기록이다. 즉, 전성기 대비 생산량이 95% 이상 증발한 셈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 수치조차 낙관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주 내 최대 무역 단체인 ‘플로리다 시트러스 뮤추얼’의 CEO 매트 조이너는 “1,200만 상자요? 회의적입니다”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업계 곳곳에서는 1,100만 상자도 장담할 수 없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과연 최종 집계가 1,000만 상자 미만, 즉 일곱 자리 숫자에 그칠 수 있을까? 한때 세계 시트러스의 수도였던 플로리다에서 이제 진짜 오렌지 상자를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차라리 1,800만 대에 달하는 이 주 자동차 번호판에 새겨진 오렌지 그림을 찾는 게 훨씬 빠를 정도다.
시트러스 연구개발재단(CRDF)의 운영책임자 릭 단츨러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올해는 그야말로 난장판(Dumpster fire)이었습니다." 그가 뱉은 말이다.
당면한 과제들만 나열해도 끝이 없다. 관세 부과와 그에 따른 보복 관세, 정부 셧다운, 그리고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 며칠간 이어진 유례없는 기록적 한파가 연약한 오렌지 나무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 모든 악재조차 더 거대한 비극에 비하면 곁다리에 불과했다. 이미 플로리다 내 시트러스 재배 농가의 약 4분의 3이 폐업했다. 기진맥진한 채 끝까지 살아남은 이 마지막 생존자들은 오직 하나, 진짜 재앙인 ‘그 병’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2005년, 플로리다 오렌지 농장에 새로운 역병의 징후가 나타났다. ‘황룡병(HLB)’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도 불리는 시트러스 그린병(Citrus Greening Disease)이다. 오렌지의 원산지가 중국이듯, 이 병 또한 중국에서 건너왔기에 붙은 이름이다.
이 병은 ‘아시아 귤나무이’가 잎을 갉아먹을 때 감염되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한다. (이 해충은 1998년 마이애미 항구 근처에서 처음 출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벼룩만큼 작은 귤나무이가 잎을 물면 병원균이 침투하고, 이는 나무 내부의 혈관계를 서서히 조여 질식시킨다. 병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며, 증상이 눈에 띄는 3~5년 뒤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플로리다 농부들에게 병충해는 낯선 손님이 아니다. 황룡병이 처음 번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저 수년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타 해충들보다 대단치 않을 것이라 여겼다. 농부들은 늘 하던 대로 대응했다. 살충제와 화학 물질을 들이부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식품의약국(FDA)이 인체 유해성을 우려해 경악할 정도로 강력한 약제들을 쏟아부었으나 소용없었다.
그린병은 멈추지 않고 퍼져나갔다. 업계 단체와 주 정부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해결책이라 믿었던 방법들은 매번 실패로 돌아갔고 병세는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리케인은 날개 달린 이 작은 벌레들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가 되었다. 강풍을 타고 주 전역으로 퍼진 귤나무이는 수십만 에이커의 농장을 초토화했다.
머지않아 곳곳의 나무들이 얼룩덜룩하게 변색된 잎을 띄우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는 말라 죽고 잎은 듬성듬성해졌다. 생존의 한계에 다다른 나무들은 채 익지도 않은 열매를 땅바닥으로 일찍 떨어뜨렸다. 이 병든 나무에서 간신히 버텨 수확된 극소수의 과실조차 모양이 뒤틀리고 맛은 썼으며, 한쪽 끝은 고집스럽게 초록색을 띠었다. 한마디로 맛이 끔찍했다. 착즙하고 가공하여 살균 과정을 거쳐도, 그 주스는 도저히 먹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플로리다 대학교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질병은 현재 ‘불치’ 판정을 받은 상태다.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가 게시되어 있다. “시트러스 그린병에 대한 치료법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감염된 나무는 결국 생산성을 잃게 되며, 고사에 이를 수도 있다.”
나는 수많은 농민과 업계 리더, 연구원들에게 현재 플로리다에 있는 나무 중 감염된 개체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한결같았다. 100퍼센트. 단 한 그루도 예외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시트러스 쇼는 이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이제 바닥을 쳤으니 버텨낼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희망적인 소식도 있었다. 옥시테트라사이클린(OTC)을 활용한 연구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클라미디아나 매독 치료에 쓰이는 이 강력한 항생제는 정확히 말해 완치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투여할 경우 그린병의 증상을 한 번에 몇 달씩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재배업자들은 감염된 나무 밑동에 구멍을 뚫고 이 약물을 주입하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사용된 지 이제 겨우 2, 3년 남짓이라 기껏해야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효과는 분명해 보였다. 잎은 다시 푸른빛을 되찾았고, 열매는 오렌지색으로 익어갔으며, 마침내 먹을 만한 주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오판은 있었다. 나무마다 임시 증기실을 씌워 온도를 섭씨 54도까지 끌어올렸던 ‘증기 요법’을 누가 잊겠는가. 한때는 무척 유망해 보였으나, 결국 박테리아가 뿌리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실패로 끝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며 농민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온 재배업자들이 무대에 올라 OTC 사용 경험을 공유했다. 분위기가 그리 고무적이지는 않았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토미 테이어는 “항생제 주사가 노령목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나무가 견디질 못하고 무너져 내려요”라고 토로했다.
전설적인 시트러스 가문인 ‘헌트 브라더스’의 다니엘 헌트는 2022년의 허리케인 이언을 언급하며 “대부분의 농장이 허리케인 이전만큼의 생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부 나무에 이중 주사 처방을 내린 결과 성과가 있었다며, “발렌시아 오렌지는 색깔도 예쁘고 아주 훌륭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테이어가 말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한파 때문에 지금은 그 열매들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지만 말입니다.”
패널 토론은 시트러스 산업에 종사하며 느낀 긍정적인 점을 하나씩 말해달라는 요청으로 마무리됐다. 헌트는 “유구한 역사”를 꼽으며, “인격 수양에는 참 도움이 되는군요”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이어 과학자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격려를 보냈다. OTC 임상 결과가 긍정적이며, 유전자 변형(GMO) 나무 연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미래의 나무’가 실험실에서 자라고 있으며 곧 보급될 것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GMO 묘목이 대량 식재될 준비가 될 때까지 OTC가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정한 상용화 일정은 가혹했다. 플로리다 대학교 식품농업과학연구소(IFAS)의 만줄 더트 연구원은 “현재 산업 현황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라고 우려했다. GMO 나무의 발견부터 상업적 생산까지 현실적인 소요 기간을 묻자 그는 “보통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5년이 걸리니… 10년에서 14년은 잡아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12년에서 18년이라는 더 긴 일정을 제시했다.
“그때까지 부디 폐업하지 않고 버티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발표자가 덧붙였다.
미 농무부(USDA)의 랜디 니츠는 “언젠가는 강연 제목에 ‘황룡병’과 ‘해결’이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가는 날이 올 겁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오후가 깊어 갔다. 점심시간에 만난 ‘농작물 재해 복구’ 그룹의 질리언 루니는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있었다. 플로리다 시트러스 산업의 현황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짧게 답했다. “아, 슬프네요.”
행사장 다른 부스의 표지판은 농부들에게 차라리 다른 작물을 키워보라고 권하는 듯했다. 한쪽에는 패션프루트의 장점을 나열하며 “왜 패션프루트를 재배해야 하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슈가애플”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 이후에도 비보는 계속됐다. 걱정거리는 그린병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에서 뿌리를 공격하는 선충이 있었고, 그린병이 상륙하기 전부터 기승을 부리던 시트러스 궤양병(이 또한 중국에서 유입됐다)도 여전했다. 이어 최근 새로 유입된 ‘시트러스 검은점무늬병’에 대한 세미나가 시작됐다.
미 농무부의 클라이브 복은 “이 병이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하지만 멕시코만 연안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경고했다.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어 있었다. 미닛메이드를 소유한 코카콜라 컴퍼니의 웨스턴 존슨은 “3, 4년 전만 해도 주스 원료의 80%를 플로리다산이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에 불과합니다”라고 밝혔다. 20세기 미국을 상징하던 전형적인 농작물이 우리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이 회의장 밖의 세상은, 심지어 플로리다 사람들조차 그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1.5온스들이 작은 병에 담긴 주스 시음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스박스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황룡병(HLB) 내성을 가진 오렌지 유사 하이브리드 품종으로 제조되었습니다. 이 주스는 시트러스의 미래를 대변하는 혁신입니다.” 라벨에는 “100% 미국산 주스”라는 문구가 당당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마셔보았다. 그리 좋은 맛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아침 식사 때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관습은 그리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많은 이들은 이를 지극히 미국적인 습관으로 여긴다.” 작가 존 맥피는 1966년 《뉴요커》에 발표한 유명한 에세이의 서두를 이렇게 뗐다. 2부에 걸쳐 총 4만 단어에 달했던 이 방대한 글은, 당시 오렌지 산업이 누렸던 위상과 규모에 걸맞은 일종의 사치스러운 헌사였다.
어쩌면 그 시절 사람들의 집중력은 지금보다 훨씬 길었는지도 모른다. 그 장황한 역사를 압축하자면 이렇다. 1500년대 플로리다 북부에 상륙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약탈을 일삼는 와중에도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그렇다, 여기서도 원산지는 중국이다.) 소규모에 불과했던 이 사업은 남북전쟁 이후 철도가 남쪽으로 뚫리고 과일이 북부로 팔려 나가면서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1894년과 1895년의 역사적인 대동해(大凍害)는 산업 전체를 몰살할 뻔했는데, 이는 업계가 겪은 고전적 재앙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련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배지는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했다. 개척자들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해수면 아래로 잠긴 적 없는 지역인 중부 ‘릿지(The Ridge)’ 지대에 다시 터를 잡았다.
추위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리자 성장의 화살표는 수직으로 치솟았다. 결정적인 변화는 기술과 함께 찾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최전방 병사들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타민 C 공급을 원했고, 그 연구 지원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냉동 농축 주스였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병사들은 담배에 중독되듯 주스 맛에 중독되어 있었다. 1950년 무렵, 플로리다는 연간 1억 상자 이상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1909년에 이미 오렌지꽃이 주화(州花)로 지정된 데 이어, 맥피의 대작이 발표된 이듬해인 1967년에는 오렌지가 주의 공식 과일이 되었다.
플로리다는 생과도 판매했지만, 진짜 노다지는 주스를 만들기 위해 과일을 짜는 ‘크러싱(Crushing)’ 사업에 있었다. 덕분에 ‘선샤인 스테이트’ 플로리다에서 시트러스 가문들은 일종의 왕족으로 군림했다. 잭 베리, 밥 폴, 헌트 형제, 라이크스 형제 같은 이들은 소국(小國)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며 대를 이어 거대한 제국을 일궜다. 그중에서도 벤 힐 그리핀 주니어의 위세는 독보적이었다. 심지어 언론 재벌 조셉 퓰리처의 손자인 피터 퓰리처조차 시트러스 제국 건설에 뛰어들었을 정도였다.
이들의 뒤를 이어 기업 세력이 등장했다. 트로피카나는 펩시코의 품에 안겼고, 미닛메이드는 코카콜라의 일원이 되었다.
시트러스 거물들의 이름은 플로리다 전역에 새겨졌다. 거리 표지판부터 골프 코스, 대학교 건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플로리다 대학교 스포츠 팀의 최대 후원자 명단인 ‘불 게이토(Bull Gators)’는 시트러스 가문들이 장악했다.
심지어 이들은 거대한 경기장까지 손에 넣었다. 9만 명을 수용하는 플로리다 대학교의 축구장, 이른바 ‘스왐프(The Swamp)’에는 여전히 벤 힐 그리핀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한 메이저리그 경기장 ‘트로피카나 필드’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2024년 허리케인 밀턴이 지붕을 날려버리기 전까지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핀은 스스로를 위해 '프로스트프루프(Frostproof, 내동해성)'라는 이름의 기업 도시까지 건설했다. 이는 1895년의 신화적인 대동해 속에서도 큰 피해 없이 살아남은 역사를 기리며 명명된 것으로, 영리하면서도 오만한 광고 전략이었다. 프로스트프루프는 이 산업이 얼마나 난공불락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시트러스의 거물 래트 맥시 또한 이곳에 기반을 닦았다.
맥피는 감탄하며 이렇게 썼다. "이 산업은 스스로 규제하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1970년대가 되자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 몬산토가 개발한 제초제 글리포세이트였다. 시트러스 업계는 이 약제를 초기부터 열정적으로 도입했다. 마치 물을 주듯 땅에 뿌려댔고, 오렌지 나무 외의 생명체는 흔적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살포를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더 많은 약을 뿌렸다. 재배 면적은 83만 2,000에이커까지 치솟았고 기록적인 수확량을 달성했다. 플로리다는 미국 전체 시트러스 생산량의 78%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왕이었다.
성장은 끝이 없어 보였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며 공정은 더욱 기계화되었다. 토양을 보호하던 피복 작물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단일 경작지가 채웠다. 혁신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냉동 농축액의 시대가 가고 '비농축(Not From Concentrate)'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했다. 더 이상 주스를 짜서 얼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학 물질이 토양을 망가뜨리고 나무의 면역 체계를 약화해 질병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거나 혹은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절이 너무 좋았으니까. 2000년, 중국과의 농산물 무역 협정이 체결되면서 플로리다산 생과가 중국 시장의 문을 열었다. 밥 크로포드 농업국장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0상자의 오렌지를 직접 들고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그들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2000년대 들어 무설탕, 저탄수화물 같은 다이어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어린이들의 주스 섭취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업계는 의료 전문가들을 대변인으로 내세우고 '주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겠다는 긴급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며 맞섰지만, 허사였다. 거대한 시트러스 영지들은 지저분한 이혼 소송과 상속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쪼개졌고, 그 과정은 타블로이드지의 자극적인 소재로 전락했다. 외래 병충해, 해외 자본,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침입자들이 온갖 탈을 쓰고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였다. 설상가상으로 기후 변화 이전에는 중부 '릿지' 지대까지 도달하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위력의 허리케인 어마, 이언, 밀턴이 차례로 농장을 직격했다.
오렌지 남작들은 미국의 아침 식탁을 잃었고, 플로리다라는 터전마저 잃었다. 누가 플로리다 오렌지를 죽였는가? 외부에서 온 침입자들 탓일까, 아니면 범인은 집 안에 있었던 것일까?
그가 아끼는 플로리다 시트러스 산업이 그러하듯, 릭 단츨러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일흔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주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겨 다른 단체로 흡수될 예정인 시트러스 연구개발재단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레이크 알프레드에 있는 플로리다 대학교 분교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시트러스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농장들을 구경시켜 달라고 청했다. "주택가만 실컷 보게 될 겁니다." 그가 경고하듯 말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요."
단츨러는 뼛속까지 플로리다 사람이다. 폴크 카운티 윈터헤이븐에서 3대째 터를 잡고 살아온 그는 말투에서부터 그 사실을 증명한다. 오렌지 이야기를 할 때면 ‘발렌시아(Valencia)’를 현지 특유의 억양을 담아 ‘벌렌처’라고 발음한다. 그의 아내는 4대째이며, 그의 부친은 한때 160에이커의 오렌지 농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 가문이 소유한 농장은 단 한 평도 없다.
플로리다 시트러스 산업의 몰락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모든 게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그가 말했다. "놀라운 건 정작 플로리다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이 비극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죠."
우리의 첫 목적지는 넓은 주차장을 갖춘 신축 식료품점이었다. "정말 환상적인 농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마트(Publix)로 변해버렸네요." 그가 무심하게 툭 던졌다. 길 건너편에는 평평하게 다져진 거대한 흙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도로 양옆이 온통 기막힌 농장이었습니다. 어릴 적 이 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도 않았을 때, 커다란 옥수수뱀 한 마리가 길을 건너 오렌지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걸 본 기억이 나요. 잡으려다 못 잡는 척했지만 사실 겁이 났던 건데—" 그가 말을 끊었다. "정말 대단한 농장들이었죠.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요."
다음 목적지는 주유소였다. "여기 서클 K 편의점이 들어서는 이 자리도 원래는 아주 훌륭한 농장이었습니다." 단츨러가 마치 대본이라도 있는 듯 말을 이었다.
"봄에 이곳을 지나갈 때면 향기가 어찌나 진동하는지 마치 향수 가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죠." 폴크 카운티를 가로지르며 그가 회상에 젖었다. 지금은 3월이었지만, 창문을 내려도 코끝을 스치는 건 매캐한 배기가스뿐이었다.
단츨러는 누구보다 시트러스 그린병을 잘 알았다. 수년간 매일 그 병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항생제(OTC) 처방이 일시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며, 치료된 나무가 4개월마다 재감염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비싼 보호막 아래에서 오렌지가 잘 자라고 있는 사례 등을 언급하며, 나무를 심을 사람만 남아 있다면 오렌지 산업에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 확신했다.
우리는 던디 지역으로 들어섰다. "자, 여기가 진짜 시트러스의 본고장이자 산업의 심장부였습니다. 플로리다에서 가장 좋은 농장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죠. 온갖 품종이 다 있어서 마치 종자 은행 같았어요. 재앙이 닥쳐도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죠." 단츨러가 설명했다.
"재앙은 이미 닥쳤는데 말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 종자 은행이라던 농장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허리케인 역시 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폭풍은 올드 플로리다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으나, 오렌지 재배지 근처에 상륙하는 일은 드물었다. 수십 년간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위협 없이 평온을 유지해 온 농장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기후가 뜨거워지면서 2017년 허리케인 어마가 '릿지' 지대를 강타했다. 시속 142마일의 강풍은 얕게 뿌리 내린 나무들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해 나무들은 외견상 큰 피해 없이 버텨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1년, 2년, 그리고 3년이 지나도 열매가 맺히지 않자 명확해졌다. 강풍의 충격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무의 뿌리 체계에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 뒤로 이언, 이달리아, 헐린, 그리고 밀턴이 차례로 반도를 훑고 지나갔다. "2021년, 우리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단츨러가 말했다. 다섯 개의 대형 폭풍이 오렌지 농장 위를 정면으로 관통했다.
우리는 텅 빈 공터와 버려진 농장, 바짝 말라 죽은 나무들, 그리고 토지 용도 변경을 위한 공청회 공고문을 지나쳤다. 한쪽에는 뽑혀 나간 나무 밑동과 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현지 표현으로는 '밀려났다(pushed)'라고 하는데, 조만간 불태워질 운명이었다. 또 다른 필지가 평탄화되는 작업 현장에는 '터커 페이빙(Tucker Paving)'이라는 도로 포장 업체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터커 씨의 아버님과 제 아버님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죠." 단츨러가 씁쓸하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다 제 친구들이에요.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세요."
단츨러는 그린병의 증상이 뚜렷해진 2005년이나, 어마가 덮친 2017년을 전환점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꼽은 결정적 시점은 2007년이었다. 또 다른 침입종이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 해, 바로 지금 우리의 드라이브 경로를 온통 점령하고 있는 '교외화(suburban sprawl)'의 시작이었다.
바람과 물이 농장에 가한 스트레스는 개발이 가한 압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대한 부지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버리는 태양광 농장들이 들어섰는데, 그 대부분은 과거 오렌지 농장이었다. 데이터 센터도 가세했다. 인근 세인트루시 카운티에는 1,400에이커의 옛 농장 부지 위에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135억 달러짜리 하이퍼스케일 데이터 센터 건립안이 제출되었다. 그 부지는 다름 아닌 '오렌지 애비뉴'와 '미닛메이드 로드'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 즉 스프롤 현상이었다.
이는 불가항력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플로리다는 환경에 대한 자각의 시기를 거쳤다. 30년 동안 주 정부는 습지 보호부터 지방 정부의 성장 관리 이니셔티브에 이르기까지 온갖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병행 요건 원칙(concurrency doctrine)'을 세워 상하수도와 학교 같은 기반 시설이 갖춰진 후에야 건축 허가를 내주는 엄격한 규제를 시행했다.
그러다 2007년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기억하다시피 당시 플로리다의 주택 개발업자들은 과도한 공급과 불투명한 자금 조달로 세계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는 데 일조했다. 바로 대침체(Great Recession)다. 침체된 경제와 빈사 상태의 부동산 시장을 살리는 데 급급했던 주 정부는 개발을 억제해 온 성장 관리 계획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지방 정부의 성장 계획을 감독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막던 주 정부 기구인 지역사회업무부(DCA)는 아예 폐지되었다.
그때부터는 정치의 영역이었다. 곧 재기한 개발업자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 수도 탈라하시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신흥 세력인 플로리다 공화당에 거액을 베팅하며 릭 스콧을 주지사 관저로 밀어 올렸다. 2011년, 스콧 주지사는 개발업자들을 견제하던 핵심 규제인 '병행 요건'을 무력화했다. 이후 개발업자들은 예일대 출신의 론 디샌티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시트러스 업계 역시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얻어낸 규제 완화는 산업의 쇠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불황과 그린병, 허리케인에 연달아 두들겨 맞은 그들은 결국 주 의회에 긴급 구제 금융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다. "개발 업계는 규제의 대부분을 철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실제로 거의 다 없애버렸죠." 단츨러가 말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달리고 있는 폴크 카운티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였으며, 개발업자들은 이곳에서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었다. 오렌지 나무는 반드시 모래 토양에 심어야 하는데, 플로리다 중부에는 어떤 지질학적 기적 덕분에 모래땅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기적이란 구체적으로 애팔래치아산맥이 수백만 년 동안 침식되면서 이곳에 모래를 퇴적시킨 것을 말한다.) 나무는 습지나 진흙탕 땅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모래 자체가 현재 시멘트 제조와 건설 자재, 고속도로 갓길 공사, 그리고 개발을 위해 습지를 메우는 용도로 엄청난 수요를 낳고 있었다. 단츨러가 가리킨 저 위쪽에는 농장을 통째로 갈아엎고 그 아래 매장된 모래를 캐내는 채취장이 보였다. “모래 시장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모래땅은 개발하기에 가장 수월한 부지이기도 하다. 습지는 여전히 환경 보호 차원에서 규제가 까다로워 매립 시 막대한 비용과 오랜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오렌지 나무 아래 숨겨진 모래 언덕들은 규제도 적고 즉시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농부들이 손해를 보며 무너지는 동안, 주택 개발업자들은 거절하기 힘든 파격적인 제안을 들고 나타나 농장을 사들였다. 그 자리는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 단지로 변해 '분양'의 물결에 휩쓸렸다. 점령당한 땅 위로는 DR 호튼, 레나 같은 대형 건설사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교차로마다 저렴한 주택을 광고하는 표지판이 즐비했다. '무보증금', '20만 달러 초반대'. 2026년이라는 시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한 가격이었다. 모델하우스 오픈과 독점 혜택을 알리는 장식물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단츨러가 또다시 "경이로웠던 곳"이라 회상한 또 다른 옛 농장을 지났다. 이제 그곳은 10에이커씩 쪼개져 팔리고 있었다. “전부 2007년 이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 개발의 진군 앞에 시트러스 산업의 전설들조차 탈영병이 되었다. 2024년 걸프 시트러스 재배자 협회가 문을 닫자, 5대째 가업을 잇던 웨인 시몬스 회장은 부동산 중개인으로 전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택 단지를 위해 조성된 매끄러운 신설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한때 그곳에 나무를 심었던 시트러스 가문의 이름이 도로명에 남아 있었지만, 정작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케이블 및 인터넷 포함'이라는 광고판만 눈에 띄었다.
“세상에, 이제 벤 힐 그리핀의 영지까지 들어왔군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단츨러가 감탄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나무는 없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모래와 모델하우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개발 프로젝트뿐이었다. “계약금 0원!” 개발업자는 약속했다. “취득 비용 지원과 파격적인 할부 금융 등 한시적 혜택을 누리세요!”
단지 입구에는 ‘시트러스 플레이스(Citrus Place)’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간판이 완성되어 있었다.
“시트러스 플레이스라고?!” 단츨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이건 정말 모욕적이군요.”
우리는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단츨러는 농장에서 즐기던 비둘기 사냥 이야기와 과거 시트러스 엘리트들의 개성 넘치는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이 주택가 숲 한가운데에도 여전히 시트러스의 미래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기어를 저단으로 변속하고 최근 자신이 심는 데 참여했던 시험 농장으로 차를 몰아넣었다. 나무들은 예전보다 키가 작고 잎도 무성하지 않았으며 그 어느 때보다 빽빽하게 심겨 있었지만, 나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린병이 창궐하기 전에는 농장 차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죠.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다니느라 차 양옆이 온통 긁혀 있었거든요.” 그가 내게 말했다.
오렌지 나무는 보통 50년에서 100년을 살았지만, 이 작은 신출내기들은 아마 12년에서 15년 정도를 버틸 것이다. 좁은 나무 사이 길로 들어서자 나뭇가지들이 사이드미러를 치고 때로는 차 문을 긁어댔다.
그런데 바로 옆 농장 부지에 뜬금없이 주택 한 채가 솟아올라 있었다. “저 집은 새로 지은 거네요.” 단츨러가 말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 걸까요?”
플로리다의 그 유명한 도시 '프로스트프루프(Frostproof)'는 한때 벤 힐 그리핀 제국의 심장부였다. 지금 이곳을 유령 도시라 부르는 건 조금 가혹할지도 모른다. 인구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3,000명의 주민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고, 신호등도 하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도시 전체를 압도하며, 남겨진 풍경 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시트러스 산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오렌지를 키우는 농장(Groves), 과일을 선별해 상자에 담는 선과장(Packinghouses), 그리고 주스를 만드는 가공 시설이다. 과거 그리핀과 프로스트프루프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의 대형 선과장은 약 70년 동안 생과를 상자에 담아 전국으로 보냈으나, 2017년 4월 영구적으로 문을 닫았다.
폐쇄된 곳은 그리핀 선과장뿐만이 아니다. 플로리다 시트러스 선과협회의 부회장 피터 체어스에 따르면, 4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플로리다의 선과장은 88곳에서 단 8곳으로 줄어들었다. 단 한 곳의 선과장만 문을 닫아도 지역 사회는 휘청거린다. 체어스는 헤인즈 시티의 사례를 들며, 1909년부터 지역 경제를 책임지던 최대 고용주인 선과장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체어스는 주스를 만드는 가공 시설의 붕괴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플로리다는 '주스의 주(州)'이기 때문이다. 선과장을 새로 짓는 건 가공 시설을 짓는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가공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1977년 플로리다에는 과일을 짜고 살균하며 생주스나 냉동 농축액을 만드는 공장이 53곳이나 있었다. 그러나 플로리다 시트러스 가공협회 이사 로빈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현재 남은 곳은 단 네 곳뿐이다. 쿠트랄레(브라질 기업, 미닛메이드 공급사), 피스 리버 시트러스, 플로리다 내추럴, 그리고 소규모 업체인 파라콘이 전부다.
전성기 시절 이 공장들은 3교대로 돌아가며 밤낮없이 수증기를 뿜어냈다. 이제는 1교대로 축소되었다. 그마저도 브라이언트는 "남아 있는 공장 중 단 한 곳만 가동해도 플로리다 전체 생산량을 다 처리할 수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올해 트로피카나는 사상 처음으로 플로리다에서 과일을 가공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미닛메이드는 냉동 농축 주스 생산을 중단했다.
그리핀 역시 프로스트프루프에 가공 공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또한 옛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붕괴가 오직 그린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쇠락의 전조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시트러스 산업은 월스트리트의 자본과 해외 자본에 문을 활짝 열었다. 플로리다 시트러스국에 따르면 1996년 해외 매수자들이 오번데일의 공장 두 곳을 인수하면서 하나의 흐름이 형성됐다. 이후 진행된 대다수의 공장 인수전에서 주인 자리는 미국 밖에 본사를 둔 이들에게 돌아갔다. 1998년, 개인 기업이던 시그램스가 트로피카나를 월스트리트의 총아인 상장사 펩시코에 매각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그리핀은 프로스트프루프의 가공 시설을 프록터앤갬블(P&G)에 팔았고, 이는 다시 미네소타에 본사를 둔 카길로 넘어갔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듯한 구글 지도는 17번 고속도로 근처의 이 상자 모양 공장을 여전히 '그리핀의 소유'라 표시하고 있었다. 내가 차를 몰고 갔을 때 정문은 열려 있었지만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음으로 보아 공장이 완전히 멈춘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마주친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인 마이크가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자라 수년간 일해왔다는 마이크가 말했다.
"오렌지는 끝났어요. 죽었다고요." 그가 말했다. "집을 짓고 있는 저 모든 곳이 원래는 오렌지 농장이었습니다."
그가 일하는 공장은 현재 피스 리버 소유지만, 더 이상 과일을 짜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냉장 창고일 뿐이었다. 이제 오렌지 주스는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그리고 주로 브라질에서 건너온다. 자몽 주스는 가끔 헝가리에서 오기도 한다. 주스들은 유조선에 실려 인근 매너티 항구로 들어온 뒤, 트럭에 실려 그의 뒤에 있는 공장 같은 저장 시설로 옮겨져 보관된다.
"지금 여긴 잃어버린 제국이에요." 마이크가 말했다. 그가 일하는 공장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묘지(Mausoleum)'였다.
사실 플로리다는 전역이 브라질산 주스의 보관소로 변해가고 있다. 브라질은 땅값도, 규제도, 화학 약품도 모두 싸기 때문이다.
"그쪽 노동력은 거의 노예 노동이나 다름없을걸요." 내가 대화를 나눈 한 현지 농부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폴크 카운티에 위치한 시트로수코(Citrosuco) 공장에는 성조기와 함께 브라질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곳과 쿠트랄레, 심지어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피스 리버의 시설조차 이제 ‘플로리다’라는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플로리다에서 포장되는 주스의 75%는 멕시코나 브라질산입니다.” 브라이언트가 말했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플로리다 주스는 “더 이상 예전 같은 품질이 아니다.”
하지만 시트러스 왕국 브라질 역시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그린병이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라고 브라이언트는 전했다. 펀데시트러스(Fundecitrus)에 따르면 2025년 브라질 시트러스 벨트의 오렌지 나무 감염률은 47.6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2억 900만 그루 중 1억 그루가 병들었다. 브라질은 연구자들이 이제와 ‘과도한 글리포세이트 사용’이라 부르는 플로리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고, 갑작스럽게 그와 유사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시트러스 그린병은 120년 전부터 전 세계에 존재해 왔으나, 지금까지 ‘멸종’ 수준의 파멸을 몰고 온 곳은 플로리다가 유일하다.)
피스 리버 공장 뒤편, 철조망 너머 드넓은 잔디밭 위에는 가공 인프라의 폐허가 널브러져 있었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혼합 탱크와 통들이 옆으로 쓰러진 채 플로리다의 뙤약볕 아래서 빛바래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또 다른 현대판 역병이 들이닥쳤다. 2024년, 수년간 트로피카나에서 적자를 보던 펩시코는 결국 장부에서 이 회사를 털어내기로 했다. 그들은 보유 지분 대부분을 경매에 부쳤고, 2025년 1월 구매자를 발표했다. ‘PAI 파트너스’라는 프랑스 사모펀드였다. (펩시코는 소수 지분만 유지했다.)
레버리지 금융 컨설팅사인 데트와이어(Debtwire)의 글로벌 신용 리서치 책임자 팀 하인즈는 “유럽 자본이 이 자산을 인수했다는 사실이 다소 놀라웠다”라고 평했다. PAI는 유럽 냉동 피자 시장의 선두주자인 ‘유러피언 피자 그룹’과 북미 반려동물 식품 제조사인 ‘알피아’ 등을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플로리다 시트러스의 고질병을 사모펀드 특유의 ‘마법’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PAI는 사명을 ‘트로피카나 브랜즈 그룹’으로 바꾸고 다른 고전하던 음료 브랜드들까지 한데 묶은 뒤, 회사를 부채로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가격을 올리고 포장 용량을 줄였다. “누구나 하는 방식이죠.” 브라이언트가 말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재앙이었다. 2024년, 트로피카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대유행의 상징이 되었다. 레딧과 페이스북 등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인즈가 내게 말했다. “부채는 산더미인데 자금은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었죠.” 2025년에 접어들자 PAI는 트로피카나의 파산 신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록 3,000만 달러의 긴급 대출로 잠시 숨통은 틔웠으나, 하인즈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PAI 측이 “초기 투자 가치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마이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오렌지를 찾아 프로스트프루프 주변을 샅샅이 돌았지만, 오렌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발렌시아 에이커(Valencia Acres)’라는 이름의 주택 단지 광고판에 붙은 ‘가격 인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본 풍경의 대부분은 ‘벤 힐 그리핀 초등학교’ 옆으로 길게 늘어선 이동식 주택 단지(Mobile-home parks)뿐이었다.
앨리코(Alico)의 조슈아 농장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거대한 시트러스 농장이자, 아마도 미국 전역을 통틀어 단일 면적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2025년 1월, 플로리다 최대의 재배업자이자 미국 최대의 시트러스 생산자인 앨리코는 공식 발표를 통해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그들의 오렌지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조슈아 농장은 이제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시트러스 묘지’가 되었다.
앨리코는 2025년 수확이 끝남과 동시에 53,000에이커에 달하는 시트러스 농장을 전면 폐기하기 시작했다. 플로리다 전체 시트러스 생산량의 35%가 단 한 장의 보도자료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이는 조슈아 농장에서 앨리코가 관리하던 모든 나무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앨리코의 사장 겸 CEO인 존 키어넌은 성명을 통해 "앨리코는 지난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플로리다를 대표하는 시트러스 생산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왔다"라며, "하지만 이제는 변화하는 환경적, 경제적 현실에 맞춰 마지못해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존 임대 계약 문제로 인해 외부 관리인들이 3,500여 에이커의 부지를 "2026년까지" 마지막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키어넌은 덧붙였다. 한때 6월까지 이어지던 수확기는 이제 4월 초면 끝이 난다. 즉, 지금 이곳에 매달린 오렌지들은 이 땅에서 생산되는 역사상 마지막 결실이 될 것이다.
앨리코의 부동산 부문 부사장 미치 허치크래프트가 이 ‘시트러스 시체 도시(citrus necropolis)’를 직접 안내해주기로 했다. 농장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곳보다 외진 곳에 있었다. 중부 릿지 지대보다 남쪽인 데소토 카운티에 위치한 이곳은 주변에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규모 또한 압도적이었다. 한쪽 면이 7마일에 달하고 다른 면도 그에 못지않은 거대한 사각형 부지가 지평선 너머까지 빽빽한 나무 행렬로 가득 차 있었다. 산 하나 없는 평평한 지형의 플로리다에서 지평선 끝까지 나무가 보인다는 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풍경이다. 경비원이 차단기를 올렸고, 우리는 그 안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농약 살포기들이 뜨고 내리던 옛 풀밭 활주로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다양한 단계로 썩어가는 죽은 나무와 죽어가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나무들은 검게 변해 쪼그라든 채 잎 하나 남지 않았고, 어떤 나무들 밑에는 아직 오렌지색조차 다 띠지 못한 과실들이 바닥에 떨어져 썩고 있었다. "순식간에 죽어 나갑니다." 허치크래프트가 말했다.
앨리코는 '종합 토지 회사로의 변모'를 꾀하며 전체 부지의 25%를 역시나 상업 및 주거용 단지로 전환하고 있었다. 이미 두 곳의 '마을' 건설이 시작된 상태였다. 1년 전, 회사는 9,000세대 규모의 '코르크스크루 그로브 이스트/웨스트 빌리지'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하일랜즈 카운티의 보닛 레이크, 폴크 카운티의 새들백 그로브, 헨드리 카운티의 플랜트 월드 부지에도 비슷한 계획이 잡혀 있었다.
주택 단지를 짓기엔 너무 외진 나머지 75%의 땅(조슈아 농장 같은 곳)은 다른 농업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밭작물을 심거나 가축을 방목한다는 뜻이다. 회사는 광물 채취와 석유 채굴 사업도 병행할 방침이다. 이미 수만 에이커에서 석유 생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허치크래프트는 앨리코가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나무를 다시 심고, 항생제(OTC)를 주입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 속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머지않아 그들은 이 땅을 완전히 갈아엎을 것이다. 포클레인이 끝없이 이어진 나무 사이 길을 훑으며 나무를 한 그루씩 뽑아내기 시작할 것이다. 병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얕은 뿌리는 그리 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뽑혀 나갈 터다. 그러고 나면 그 사체들을 쌓아 올려 불태우게 된다. 아직 장비들이 투입되지는 않았고, 날씨도 소각을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 "보통 4~5월 비가 내릴 때 태웁니다. 너무 건조하면 불길을 잡을 수 없으니까요. 요즘은 추위가 닥치고 바람도 많이 붑니다." 가뭄까지 겹친 탓이다.
우리는 수확용 트레일러인 거대한 플랫베드 앞에 멈춰 섰다. 텅 비어 있었다. 허치크래프트는 과거의 풍경을 그려보라고 했다. 인부들이 어깨에 가방을 메고 나무 사이를 누비며 오렌지를 따고, 그 가방을 줄 끝에 있는 대형 통에 비우던 모습 말이다. 그러면 트럭들이 그 통들을 실어 나르고, 최종적으로 거대한 플랫베드에 쏟아부어 가공 공장으로 보냈다. 과거 이 농장들은 에이커당 500상자를 쏟아냈지만, 마지막엔 90상자라도 건지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예전 같으면 수확 팀이 사방에 깔려 있었을 겁니다. 과일로 꽉 찬 트레일러들이 곳곳에 주차되어 있었겠죠."
지금 플랫베드는 텅 비었고 트럭도, 수확용 통도, 어깨가방도, 사람도 없었다.
농장 곳곳에 "서행—혼잡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지만, 우리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마주치지 못했다.
앨리코가 오렌지 생산 중단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그들은 트로피카나의 최대 공급처였다. 허치크래프트에 따르면 앨리코가 결별을 통보했을 때, 트로피카나 측은 별다른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나무 사이를 계속 지나갔다. '햄린(Hamlin)'이라 적힌 표지판 뒤로 수 마일 동안 흙먼지와 잡초, 죽은 나무뿐인 이랑들이 이어졌다. '발렌시아(Valencia)' 표지판 뒤도 마찬가지였다.
밀려오는 향수를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다했고 시대는 변했다. 시트러스는 "이 주를 이끌어온 직업이자 플로리다를 상징하는 산업"이었다고 허치크래프트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시트러스 자본으로 세워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전설적인 교정의 플로리다 서던 칼리지조차 이제 시트러스 경영학 전공을 운영하지 않는다. 오렌지 주스는 이제 탄산수와 에너지 드링크, 콤부차 등에 밀려 진열대 싸움에서조차 패배했다.
"플로리다는 언제나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는 곳이었죠." 허치크래프트가 말했다. 멀리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거리가 너무 멀어 확실치는 않았지만, 아마 죽은 나무들을 태우는 불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투어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조슈아 농장에서 유일하게 마주쳤던 또 다른 사람, 경비원이 있는 초소로 돌아갔다. 경비원 잭 건터가 문을 살짝 열었다. 그는 틀니를 끼고 성조기가 그려진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초소 안에서는 담배 냄새가 뿜어져 나왔고, 벽면은 니코틴으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건터는 13년 동안 이 농장에서 차량 통행을 관리해 왔다고 했다. 평생을 이 카운티에서 산 그가 바로 이곳에 남겨진 마지막 ‘오렌지 맨’이었다.
그에게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플로리다 오렌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물었다.
“화학 약품으로 자기들이 직접 죽인 거죠. 그건 팩트입니다.” 건터가 답했다. 플로리다를 취재하며 나는 훨씬 복잡한 내막을 접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론과 시트러스 낙원에 대한 향수, 그리고 상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화학 약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이 망할 놈의 땅에는 이제 풀 한 포기 안 자라요. 그대로 인용해도 좋습니다.” 건터가 말을 이었다. “난 1990년부터 알았어요. ‘약품을 저렇게 뿌려대다간 결국 끝이 나겠구먼’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정말 끝이 났네요.”
그러더니 그가 물었다. “들어와서 같이 TV나 보실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