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장전된 총 (번역)

Patrick Radden Keefe 「A Loaded Gun」

앨라배마 대학교 헌츠빌 캠퍼스의 신경생물학자 에이미 비숍은 학과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회의실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2010년 2월 12일 오후 3시, 생물학과 교수와 직원 13명은 과학기술 셸비 센터 3층에 있는 창문 없는 회의실로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식물생물학자인 고피 포딜라 학과장이 인쇄된 회의 안건을 돌렸다. 비숍은 문가에 있는 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가방 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다.

마흔다섯 살의 비숍은 긴 단발머리가 창백하고 길쭉한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짧게 잘라 내린 앞머리 바로 아래로 작은 파란 눈이 보였다. 평소 학과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그녀였지만, 이날은 유독 침묵을 지키며 깊은 수심에 잠긴 듯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1년 전 학과는 비숍의 종신재직권(테뉴어) 신청을 거부했고, 이 결정을 뒤집으려 길고 처절하게 매달린 그녀의 이의 신청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직장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포딜라 학과장이 준비한 안건 대부분은 다음 학기 계획이었으니, 비숍이 초연한 태도를 보인 데는 그 자리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던 셈이다.

생화학자 데브라 모리어티는 탁자 건너편에서 비숍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모리어티는 비숍이 겪는 종신재직권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2003년 비숍이 조교수로 캠퍼스에 온 이후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아왔다. 가족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다. 비숍에게는 네 자녀가 있었고(맏이인 릴리는 헌츠빌 캠퍼스 학생이었다), 모리어티는 최근 손주를 보았다. 모리어티는 비숍의 종신재직권 심사에서 반대 표를 던졌고 비숍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늘 원만했다. 비숍은 모리어티에게 직업적 절망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언젠가 비숍은 "내 인생은 끝났다"고 말했고, 모리어티는 다른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모리어티는 "그저 학교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모리어티는 회의가 끝나면 비숍에게 새 직장은 잘 알아보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50분 동안 비숍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회의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9mm 루거 반자동 권총을 꺼내 포딜라 학과장의 머리를 겨누어 쐈다.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그녀는 다시 방아쇠를 당겨 학과 행정직원인 스테파니 몬티치올로를 맞췄다. 이어 비숍은 몸을 돌려 세포생물학자 에이드리얼 존슨에게 총을 쏘았다. 비명이 터지고 사람들이 몸을 숨겼지만, 비숍이 유일한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모리어티는 비숍이 턱에 힘을 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네 번째 동료인 마리아 래글랜드 데이비스에게 총구를 겨누고 격발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상황을 온전히 인지했다.

모리어티는 탁자 밑으로 몸을 던졌다. 머리 위로 총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비숍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위를 올려다보고 울부짖었다. "에이미, 제발 이러지 마! 내 딸을 생각해 줘! 내 손주를 생각하라고!" 비숍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총구를 모리어티에게 돌렸다.

찰칵. 모리어티는 공포에 질린 채 총구를 응시했다. 찰칵. 총이 걸렸다. 모리어티는 비숍을 지나쳐 복도로 기어 나갔고, 비숍은 연신 방아쇠를 당기며 그녀를 뒤쫓았다. 비숍이 고장 난 총을 고치려 하는 사이, 모리어티는 간신히 회의실로 다시 뛰어들었고 다른 동료가 문을 가로막아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후 검사는 당시 회의실 내부를 두고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묘사했다. 6명이 총에 맞았고, 그중 3명이 숨졌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비숍은 아래층 여자 화장실로 내려가 총을 물로 씻어낸 뒤, 피 묻은 격자무늬 재킷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한 실험실로 들어가 학생에게 휴대전화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자주 자신을 데리러 오던 남편 짐에게 전화해 "다 끝났어"라고 말했다. 그녀가 건물 뒤편 하역장을 통해 셸비 센터를 벗어날 때, 보안관 대리에게 체포되었다.

위성 안테나를 단 뉴스 취재 차량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2010년 즈음, 미국의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겨우 2월이었지만, 그해에만 벌써 3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한 총격 사건이 15건이나 터진 뒤였다. 하지만 에이미 비숍 사건은 달랐다. 일반적인 총기 난사 범인의 특성과는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비숍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뛰어난 성취를 거둔 인물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까지 마쳤다. 결혼 생활도 평탄해 보였다. 범죄 전력은 물론이고 약물을 남용한 기록도 전혀 없었다.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부터 지난 12월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총기 범죄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가 거치는 관례가 있다. 바로 범인들이 왜 그런 잔혹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동안 우리가 놓친 징후가 없었는지 샅샅이 뒤지는 일이다. 헌츠빌 총격 사건이 발생한 후, 에이미 비숍의 국선 변호인인 로이 밀러는 "이 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추리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숍이 현장에 범행 목격자 9명을 생생히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체 왜 그랬는가'였다. 사건 직후 언론은 비숍이 교수 임용 과정에서 겪은 직업적 불만에 초점을 맞췄다.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은 "종신 교수 직위가 살고 죽는 문제인가?"라는 헤드라인을 뽑기도 했다. 하지만 밀러 변호사는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 주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 있다"며 "문제는 이런 이들을 미리 알아채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비숍이 구금된 다음 날 아침, 헌츠빌 보안관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폴 프레이저로, 자신을 매사추세츠주 브레인트리의 경찰청장이라고 소개했다.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브레인트리는 비숍이 자란 고향이었다. 프레이저 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붙잡고 계신 그 여성 말입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연락했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1986년에 자기 남동생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브레인트리 홀리스가 46번지에 있는 비숍 가문의 집은 탁 트인 지붕형 포치가 멋스러운, 박공지붕 형태의 빅토리아풍 주택이다. 19세기 한 치과의사가 지은 집으로, 그는 마당에 있는 별채에서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앞마당에는 거대한 자줏빛 너도밤나무 한 그루가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울퉁불퉁 굳은살이 박인 듯한 나뭇가지들은 아이들이 타고 올라가 놀아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 에이미의 남동생 세스가 어릴 적, 이 나무에 기어올라 갔다가 겁에 질려 내려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 주디는 아이가 무사히 땅을 밟을 때까지 밑에서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지목하며 내려오는 방법을 차근차근 일러주곤 했다.

뉴햄프셔주 엑서터의 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집안 출신인 주디(결혼 전 성은 샌본)는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제화 공장을 운영했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는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예술학교에서 남편 샘을 만났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정반대였다. 본명이 소티르 파파조글로스인 샘은 서머빌의 그리스인 밀집 지역에서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그는 1954년 공군에 입대했고, 나중에 이름을 샘 비숍으로 개명했다. 주디는 곱슬거리는 금발 머리에 쾌활하고 호탕한 유머 감각을 지닌 사교적인 여성인 반면, 샘은 옛날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이 묻어나는 말수 적고 덩치 큰 사내였다. 주디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이를 쫓아다녔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붙잡혀 있더라고요"라며 웃곤 했다.

1964년 부부는 아이오와시티로 이주했다. 샘은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건물 관리인으로 일했다. 이듬해 주디는 에이미를 낳았다. 에이미는 영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는데, 인형들을 마치 끝없는 행진을 벌이듯 정교하게 배열해 두곤 했다. 이후 가족은 다시 매사추세츠로 돌아왔고, 샘은 노스이스터스 대학교 미술학부에서 강사 자리를 얻었다. 이들은 1968년 브레인트리에 정착했고, 그해 말 남동생 세스가 태어났다.

브레인트리는 블루힐스 자락에 자리 잡은 보스턴 남부의 중산층 교외 도시 단지다. 전후 시기 이곳은 보스턴의 거친 도심을 탈출한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가정의 교두보가 되었다.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도체스터에서 자란 나는, 브레인트리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스턴 특유의 향수를 담아 'O.F.D.(Originally From Dorchester, 원래 도체스터 출신)'라 농담조로 부르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곳을 벗어났다는 사실에도 자부심을 품는 묘한 정서였다.)

브레인트리는 다소 배타적인 동네로 보일 수 있었지만, 주디의 상냥함은 이웃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았다. 그녀는 지역 자치 기구인 타운 미팅에 참여하고 지역 신문에 시사 만평을 기고하는 등 지역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비숍가의 별채를 빌려 살며 가족과 가깝게 지냈던 간호사 뎁 코사릭은 나에게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주디는 온 동네의 대변인 같았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다들 주디에게 전화를 걸었죠."

에이미는 천식을 앓았기에 어린 시절 수시로 응급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녀가 일찍부터 과학에 매료된 것은 이 아픔이 남긴 부산물이었다. 스스로 병을 고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에이미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하자, 세스도 부모님에게 자신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두 남매 사이에 경쟁심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에이미에게 승부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그들을 알던 이들은 비숍가의 남매가 무척 돈독했다고 입을 모은다. 브레인트리에서 에이미와 절친하게 지냈던 캐슬린 올덤은 "에이미는 남동생을 끔찍이 아꼈다"고 말했다. "둘 다 음악을 사랑했고 과학을 좋아했어요. 에이미는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어린 동생이 있다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죠."

최근 에이미는 자신이 수감되어 있는 앨라배마 교도소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남동생과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거듭 강조하며,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해변으로 여행을 떠났던 일이나 뉴햄프셔주 위니페소키 호숫가에 있던 할머니의 여름 별장에서 함께 보낸 시간을 추억했다. 그녀는 "세스와 나는 서로를 정말 사랑했다"고 말했다.

남매는 서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만, 특히 자신들이 주변 환경과 겉돈다고 느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동맹군이 되기도 한다. 주디의 한 친구는 나에게 "브레인트리는 운동을 엄청 좋아하는 동네거든요." 주디의 한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껑충한 키에 학구적인 비숍가의 아이들은 별종처럼 보였을 것이다. 여름날 저녁 남매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면 날카로운 아르페지오 선율이 울려 퍼졌고, 이웃들은 호기심과 시샘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디의 친구는 "에이미는 다소 외톨이 같았다"고 회상하며, "하지만 브레인트리 같은 동네에서 똑똑한 아이들은 대개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세스 역시 수줍음이 많았지만 에이미만큼 쌀쌀맞지는 않았다. 뎁 코사릭은 "세스는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아이였던 반면, 에이미는 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부류였다"고 기억한다. 세스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무섭게 몰두했다. 그의 단짝 친구인 폴 애그뉴는 나에게 "세스는 물건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걸 좋아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기차에 대한 공동의 집착에서 싹텄다. 그들은 세스의 집 다락방에 설치된 모형 철도를 함께 만지작거렸고, 대형 기관차를 가까이서 보려고 '무단침입 금지' 표지판을 피해 지역 콘레일 철도 차량기지에 몰래 숨어들기도 했다. 세스는 자전거를 타고 브레인트리 너머까지 대담하게 나아갔다. 펜과 지도를 들고 주변 지역을 탐험하는 야심 찬 경로를 직접 짰다. 가끔 주디가 집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을 운전하다가 저 멀리 홀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실루엣을 발견하고 다가가 보면, 어김없이 그녀의 아들이었다.

이제는 40대가 된 세스의 옛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한 명 이상이 세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스가 지녔던 장난기 넘치는 활력과 당찬 면모를 증언했다. 한번은 중학교 시절, 세스가 바이올린을 들고 가다가 식당에서 동급생들에게 둘러싸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바이올린을 가리키며 어디 한번 켜보라며 조롱 섞인 야유를 보냈다. 세스는 묵묵히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활을 치켜들더니,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했다. 괴롭히던 아이들이 기가 죽어 침묵할 때까지 연주는 이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애그뉴는 "세스가 녀석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았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세스는 활달하고 체구가 작은 한 학년 후배 멜리사 타트로와 교제를 시작했다. 보스턴으로 이주해 노스이스터스 대학교에 다니던 에이미는 이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멜리사는 나에게 "에이미가 저를 수준 이하로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멜리사는 세스의 가족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하나의 단위'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1985년 어느 날 밤, 비숍 가족이 샘의 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을 때 1층 열린 창문 사이로 커튼이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도둑들이 집안을 샅샅이 뒤져 주디의 결혼반지와 세스와 에이미의 출생을 기념해 만든 은잔 한 쌍을 비롯한 귀중품들을 훔쳐 간 뒤였다. 범인들은 아이들의 침대에서 벗겨낸 베갯잇에 장물들을 담아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다. 주디는 지역 신문에 기고문을 보내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돌려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샘은 인근 칸톤에 있는 스포츠 용품점으로 차를 몰아 12게이지 산탄총을 구입했다. 주디와 에이미는 집안에 총을 두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샘은 침실 옷장에 실탄이 든 상자를 화장대 위에 둔 채 장전을 하지 않은 총을 보관했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난 1986년 12월 6일, 브레인트리 경찰서에 주디 비숍의 절박한 911 신고 전화가 접수되었다. 그녀는 딸이 아들을 쐈다고 울부짖었다. 직후 그녀는 경찰에 자신이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것은 끔찍한 사고였다.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사건부터 12월에 발생한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에 이르기까지, 총기 폭력으로 인한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미국 사회가 거치는 관례 중 하나는 범인들이 그토록 잔혹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과거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징후가 있었는지 찾아내는 일이다. 헌츠빌 사건 이후 에이미 비숍의 국선 변호인 로이 밀러는 "이 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야 하는 미스터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비숍은 자신의 범죄 현장에 살아있는 증인 9명을 남겨두었다. 문제는 '왜' 그랬느냐였다. 사건 직후 언론은 처음에 비숍의 직업적 불만에 초점을 맞췄다.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헤드라인은 "종신재직권은 생사의 문제인가?"라고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밀러 변호사는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다고 시사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그들을 식별해 내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비숍이 구금된 다음 날 아침, 헌츠빌 보안관 사무실로 폴 프레이저라는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비숍이 자란 보스턴 교외 도시인 매사추세츠주 브레인트리의 경찰서장이었다. 프레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구금하고 있는 그 여자 말입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 전화했습니다. 그 여자는 지난 1986년에 자기 남동생을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브레인트리 홀리스가 46번지에 있는 비숍 가문의 집은 탁 트인 지붕형 포치가 멋스러운, 박공지붕 형태의 빅토리아풍 주택이다. 19세기 한 치과의사가 지은 집으로, 그는 마당에 있는 별채에서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앞마당에는 거대한 자줏빛 너도밤나무 한 그루가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울퉁불퉁 굳은살이 박인 듯한 나뭇가지들은 아이들이 타고 올라가 놀아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 에이미의 남동생 세스가 어릴 적, 이 나무에 기어올라갔다가 겁에 질려 내려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 주디는 아이가 무사히 땅을 밟을 때까지 밑에서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지목하며 내려오는 방법을 차근차근 일러주곤 했다.

뉴햄프셔주 엑서터의 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집안 출신인 주디(결혼 전 성은 샌본)는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제화 공장을 운영했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는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예술학교에서 남편 샘을 만났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정반대였다. 본명이 소티르 파파조글로스인 샘은 서머빌의 그리스인 밀집 지역에서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그는 1954년 공군에 입대했고, 나중에 이름을 샘 비숍으로 개명했다. 주디는 곱슬거리는 금발 머리에 쾌활하고 호탕한 유머 감각을 지닌 사교적인 여성인 반면, 샘은 옛날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이 묻어나는 말수 적고 덩치 큰 사내였다. 주디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이를 쫓아다녔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붙잡혀 있더라고요"라며 웃곤 했다.

1964년, 두 사람은 아이오와시티로 이주했다. 샘은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며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 공부를 이어갔다. 이듬해 주디는 에이미를 낳았다. 에이미는 똑 부러지고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는데, 장난감을 마치 끊임없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처럼 정교하게 늘어놓곤 했다. 이후 가족은 다시 매사추세츠주로 돌아왔고, 샘은 노스이스턴 대학교 미술학부의 교수 자리를 얻었다. 이들은 1968년 브레인트리에 터를 잡았고, 그해 말 남동생 세스가 태어났다.

브레인트리는 보스턴 바로 남쪽, 블루힐스 자락에 위치한 중산층 교외 도시이다. 전후 시절 이곳은 보스턴의 낙후된 지역에서 벗어나려는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가정들의 새로운 정착지가 되었다. (내가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도체스터에서 자랄 때, 브레인트리를 비롯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O.F.D.(원래 도체스터 출신, Originally from Dorchester)'라 부르며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거기에는 보스턴 특유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곳을 벗어났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는 묘한 감정이었다.)

브레인트리는 이방인에게 다소 배타적인 동네였지만, 주디의 싹싹하고 친근한 성격은 이웃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녀는 지역 의회인 '타운 미팅(Town Meeting)'에 참여하고 지역 신문에 시사 만평을 그리는 등 지역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비숍 부부의 마당 별채를 빌려 살며 가족과 가깝게 지냈던 간호사 데브 코새릭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디는 그 마을의 대변인 같았어요. 궁금한 게 생기면 다들 주디에게 전화를 걸었죠."

에이미는 천식을 앓아 어린 시절 병원 응급실을 내집처럼 드나들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매료된 것도 이 병 때문이었다. 스스로 병을 고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에이미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하자, 세스도 부모님에게 자신도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이 남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에이미에게 승부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남매를 잘 알던 이들은 비숍가 아이들이 무척 우애 깊었다고 입을 모은다. 브레인트리 시절 에이미의 절친한 친구였던 캐슬린 올덤은 "에이미는 남동생을 끔찍이 아꼈어요"라고 회상했다. "둘 다 음악과 과학을 사랑했죠. 에이미는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어린 동생이 있다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어요."

최근 에이미는 자신이 수감되어 있는 알라바마 교도소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남동생과는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강조하며, 그녀는 동생과 함께 바닷가로 놀러 갔던 일이며 뉴해프셔주 위니페소키 호숫가에 있던 할머니의 여름 별장에서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에이미는 말했다. "세스와 저는 서로를 정말 사랑했어요."

형제자매는 라이벌이 되기도 쉽지만, 특히 자신들이 속한 환경과 겉돈다고 느낄 때는 둘도 없는 동지가 되기도 한다. 주디의 한 친구는 내게 "브레인트리는 운동 좋아하는 아이들이 주류인 동네"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늘씬하고 공부하기 좋아하는 비숍가 남매는 유별나 보일 법했다. 여름날 저녁마다 남매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면, 그 날카로운 아르페지오 선율을 들은 이웃들은 호기심과 시샘이 뒤섞인 시선을 보내곤 했다. 주디의 친구는 "에이미는 다소 외톨이처럼 지냈다"고 회상하며, "하지만 브레인트리 같은 동네에서 똑똑한 아이라면 대개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세스 역시 수줍음이 많았지만 누나처럼 냉담하진 않았다. 데브 코새릭은 "세스는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의자를 당겨 앉으며 살갑게 굴었죠. 반면 에이미는 바람처럼 슥 지나쳐 버리는 편이었어요"라고 기억했다. 세스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단짝 친구 폴 애그뉴는 내게 "세스는 물건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기차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에서 싹텄다. 그들은 세스가 다락방에 만들어 놓은 모형 철도를 함께 만지작거렸고, '무단 침입 금지' 표지판을 몰래 지나 지역 콘레일(Conrail) 철도 차량기지로 숨어들기도 했다. 거대한 기관차를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세스는 자전거를 타고 브레인트리 너머까지 가기도 했는데, 펜과 지도 한 장으로 주변 지역을 누비는 야심 찬 탐험 경로를 그렸다. 가끔 주디가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을 운전해 가다 보면 저 멀리 홀로 페달을 밟고 있는 자전거 운전자가 보였는데, 다가가서 보면 어김없이 아들이었다.

이제는 40대가 된 세스의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친구들은 세스가 장난기 넘치면서도 활력이 가득했고 늘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중학교 시절 한 번은 구내식당에서 반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가던 세스를 에워싸고, 어디 한번 켜보라며 조롱 섞인 시비를 건 적이 있었다. 세스는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활을 치켜들더니, 보란 듯이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했다. 그 연주에 압도된 괴롭힘꾼들은 이내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모습을 지켜본 애그뉴는 "세스가 녀석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세스는 활달하고 아담한 한 학년 후배 멜리사 태트로와 교제를 시작했다. 노스이스턴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보스턴으로 이사했던 에이미는 이들의 관계가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멜리사는 내게 "언니가 저를 급이 맞지 않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멜리사가 보기에 비숍가 가족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견고한 성' 같았다.

1985년의 어느 날 밤, 샘의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귀가한 비숍 가족은 1층 열린 창문 사이로 커튼이 세차게 휘날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도둑이 집안을 샅샅이 뒤져 주디의 결혼반지와 세스, 에이미의 출생 기념 은잔을 비롯한 귀중품들을 훔쳐 간 뒤였다. 범인들은 아이들 침대에서 벗겨낸 베갯잇에 물건들을 쑤셔 담아 달아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다. 주디는 지역 신문에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글을 기고했다. 샘은 인근 캔턴으로 차를 몰고 가서 한 스포츠용품점에 들러 12구경 산탄총을 구입했다. 주디와 에이미는 집안에 총을 두는 것에 반대했지만, 샘은 총알을 빼둔 채 안방 옷장에 총을 보관했고 화장대 위에는 총알 상자를 놓아두었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난 1986년 12월 6일, 브레인트리 경찰서에 주디 비숍의 절박한 911 신고 전화가 접수되었다. 그녀는 딸이 아들을 총으로 쐈다고 말했다. 직후 주디는 경찰에 자신이 그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며, 그것은 완전히 사고였다고 진술했다.

브레인트리 경찰서장 존 빈센트 폴리오(John Vincent Polio)는 주디 비숍과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1950년 경찰에 입문해 1962년 최고위직인 서장 자리에 오른 그는 영리하고 통제력이 강하며 독특한 성격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번쩍이는 대머리에 늘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한 그는 핀스트라이프 정장에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개혁가이자 도덕주의자를 자처하며 포르노 극장과 불법 도박장을 폐쇄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과속으로 적발된 지역 유력 인사들이 경찰서에 청탁해 범칙금을 무마하던 '딱지 떼기' 관행을 금지하는 등, 소도시 특유의 끈끈한 이권 주고받기를 근절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과 경찰은 공생 관계"라며, "상어에 붙어먹는 빨판상어 같은 존재들"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폴리오 서장은 특히 경찰 내부의 부패를 척결하는 데 단호했다. 1974년에는 부하 직원 두 명이 지역 음식점인 '마이타이(Mai Tai)'를 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가 직접 출동해 이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설령 청렴한 직원일지라도 매우 엄격하게 대했다. 폴리오를 잘 알던 한 지역 주민은 내게 "그를 좋아하는 직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당시 서의 젊은 경찰 중 한 명이 바로 폴 프레이저(Paul Frazier)였다. 그는 훗날 서장 자리까지 올랐고, 알라바마 당국에 세스 비숍의 사망 사건을 제보한 장본인이다. 지난여름 그를 만났을 때, 프레이저는 "폴리오 서장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폴리오가 아무리 사면초가에 몰린 기분으로 지냈다 한들, 프레이저는 "그가 이 마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사람이었다는 데 내 돈 모두를 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경찰서 뒤쪽 구석에 있는 프레이저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있었지만, 비숍 사건에 대해 기꺼이 입을 열어주었다. 프레이저는 미소를 지으며 "여기가 예전 폴리오 서장의 방이었다"고 말한 뒤, "하지만 그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나름 독학파였던 폴리오는 거칠고 결이 살아있는 갈색 석조로 지어진 이 아담한 경찰서 청사 설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집무실 커튼을 늘 굳게 닫아둔 채 책상 위 전등 하나가 뿜어내는 황색 불빛 아래 앉아 방문객들을 매섭게 노려보곤 했는데, 프레이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FBI 국장이었던 J. 에드거 후버 같았다"고 한다.

1986년 12월 6일 아침, 주디 비숍은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가족들이 위층에서 잠든 사이, 그녀는 여느 날처럼 집을 나서 이웃 도시 퀸시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돌보는 늙은 거세마가 한 마리 있었다. 그녀는 대개 그곳에서 말에게 운동을 시키고 마구간을 청소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주디가 몇 시에 정확히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훗날 중요한 쟁점이 되었지만, 그녀가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건 오후 2시 직후에는 확실히 집안에 있었다.

경찰서는 비숍의 집에서 2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경찰들이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했다. 주디는 옷에 피가 묻은 채 현관문 앞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경찰들을 주방으로 안내했다. 주방 바닥은 붉은 피로 흥건했고, 세스는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 과다출혈로 죽어가고 있었다. 당시 21세였던 에이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구급대원들이 아들을 살리려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주디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세스가 막 식료품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주방에서 아들과 함께 있는데 에이미가 샘의 산탄총을 들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주디는 경찰에게 "에이미가 저한테 '엄마, 총에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데 어떻게 빼는지 모르겠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총구는 절대 사람을 향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에이미가 남동생에게 총을 보여주려고 무기를 돌리는 순간 "총이 발사되었다"는 게 주디의 주장이었다. 주방은 좁았고 에이미는 동생과 아주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에, 세스는 지근거리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세스가 쓰러지자 에이미는 그대로 달아났다고 주디는 경찰에 전했다.

경찰은 즉시 수배령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미는 동네의 한 자동차 정비소 근처에서 붙잡혔다. 그녀는 곧장 경찰서로 연행되어 제임스 설리번(James Sullivan) 경감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날 아침, 어머니가 마구간으로 떠난 후 아버지와 남동생마저 외출하면서 에이미는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설리번 경감은 조서에 "피의자는 집에 '도둑'이 들까 봐 걱정되어 산탄총에 탄약을 장전했다고 진술했다"고 적었다. 과거 세스가 총알을 장전하는 법은 가르쳐 주었지만, 빼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환 몇 발을 장전했다가 이를 다시 빼내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실수로 총이 발사되었고, 화장대 거울이 산산조각 나며 침실 벽에 구멍이 뚫렸다고 했다. 그러다 세스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총알 빼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그 순간 "몸을 돌리다 총이 발사되었다"고 설리번은 기록했다. 그는 이어 "동생을 고의로 쐈느냐는 질문에 피의자는 절대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에이미는 경찰에게 그날 아침 가족 간의 '말다툼'이 있은 후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고 진술했다. 훗날 샘 역시 경찰 조사에서 이를 인정하며, 에이미가 한 어떤 '말 한마디' 때문에 "딸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전 11시 반쯤 집을 나서 인근 쇼핑몰인 사우스쇼어 플라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경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홀리스가는 이미 구급차와 경찰차의 비상등 불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샘은 급히 병원으로 향했고, 오후 3시 8분 세스의 사망 선고가 내려질 때 그 자리를 지켰다. 세스의 나이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이동식 침대에 실린 세스의 마른 몸이 샘의 곁을 지나갈 때, 세스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듯했다. 샘은 나중에 당시를 회상하며 "의사들은 아이가 숨졌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나를 바라보았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에이미는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주디와 샘은 딸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이후 작성된 보고서에는 "에이미 비숍의 감정 상태가 지극히 불안정하여 브레인트리 경찰서에 머무는 동안 정상적인 조사가 불가능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에이미는 "추후 추가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부모의 신원보증 하에 석방"되었다.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이웃 몇 명이 주방 바닥에 흥건했던 세스의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내 주었다. 상심에 잠긴 가족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마당 별채를 빌려 쓰던 간호사 데브 코새릭은 저녁 식사 시간쯤 집에 도착해 주방에 있던 주디와 합류했다. 에이미는 위층으로 올라가 부모님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샘은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사추세츠의 한 작은 마을에서 경찰관으로 일했던 할아버지 덕에 수사 절차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코새릭은 에이미가 이렇게 빨리 풀려난 것에 내심 놀랐다. 주디가 그 끔찍했던 순간을 털어놓는 동안, 코새릭은 주방 가전제품 여기저기에 여전히 피와 살점이 점점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여기 계시면 안 돼요"라며 주디를 다정하게 다독여 주방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주디의 친구인 빈센트 마르티노(Vincent Martino)는 지역 신문에 이렇게 기고했다. "젊은 이가 세상을 떠나면... 지역 사회 전체가 잠시 숨을 멈추고 깊은 탄식을 내뱉게 된다." 세스가 사망한 후 이웃들은 비숍가의 집을 찾아와 중국 음식을 건네거나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올 소울즈 교회(Church of All Souls)에서 열린 세스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관은 뚜껑이 열린 상태였고, 샘과 주디는 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에이미의 친구 캐슬린 올덤은 "에이미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법의학관은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세스의 사망 원인을 사고사로 규정했다. 총격 사건 이틀 후, 폴리오 서장은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오발 사고로 볼 수 있는 모든 정황이 가리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종 수사 책임은 지방 검찰청에 있었다. 사건 발생 11일 후, 지검 소속 주 경찰관 브라이언 하우(Brian Howe)는 브레인트리 경찰 두 명과 함께 홀리스가의 비숍 자택을 방문해 가족들을 면담했다. 1987년 3월 30일 자로 작성된 하우의 최종 수사 보고서는 세스의 사망이 "총기 오발로 인한 사고"라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에이미는 나와의 통화에서 남동생의 죽음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분명 사고였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몇 달 동안 그녀는 밤마다 부모님의 침대로 파고들었다. 낮에는 친구들이 밖으로 가자며 반강제로 이끌어야 겨우 집을 나섰다. 오늘날 같았으면 형제자매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했거나 그 원인을 제공한 청소년은 반드시 심리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세스가 죽은 후 그 어떤 상담이나 정신과 진단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신의학을 그리 신뢰하지 않은 탓도 있었고, 에이미 본인 역시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은 채 집에만 틀어박혀 마음을 추스르려 했다"고 회상했다. "기분이 너무나 끔찍했다. 그 비참한 기분을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비숍 부부는 이사를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바람에 에이미는 동생이 숨을 거둔 바로 그 주방에서 계속 밥을 먹어야 했고, 부모님이 독립 전쟁 번호가 박힌 벽지와 "S-E-T-H"라는 글자가 투박하게 새겨진 수제 나무 명패를 그대로 남겨둔 동생의 방 앞을 매일같이 지나쳐야 했다.

에이미는 다시 노스이스턴 대학교로 돌아갔지만 한동안 브레인트리 자택에서 통학했다. 수업이 끝나면 캠퍼스에 있는 아버지의 연구실로 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차를 기다리곤 했다. 샘의 오랜 비서이자 가족의 친구였던 에일린 샤키(Eileen Sharkey)는 에이미가 학업에 무섭게 몰두하며 슬픔을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녀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반면 샘은 점점 더 말수가 적어지고 침울해졌다. 샤키는 "주디는 오직 남편이 버텨낼 수 있도록 돕고, 딸을 구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다"고 전했다. "가족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주디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 후로도 가끔 주디는 운전을 하다가 저 멀리 앞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년을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며 '어쩌면 모든 게 다 끔찍한 착각이었을지도 몰라'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차를 가까이 대고 확인해 보면, 그 소년은 결코 그녀의 아들이 아니었다.

에이미는 노스이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하버드 대학교 유전학 박사 과정에 입학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갔지만, 남동생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다. 대학 동창인 브라이언 로치는 "그냥 다들 묵시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 얘긴 절대 꺼내면 안 된다는 걸요"라고 전했다.

세스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이들 중에는 노스이스턴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짐 앤더슨(Jim Anderson)도 있었다. 에이미와는 교내 '던전앤드래곤(Dungeons & Dragons)' 같은 TRPG(역할수행게임)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두 사람은 몇 년간의 연애 끝에 1989년, 바로 그 세스의 장례식이 열렸던 교회에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지 샘 비숍은 딸에게 상실감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조언하곤 했다. 이에 에이미는 1991년 첫딸 릴리를 낳았고, 이어 테아와 페드라까지 세 딸의 어머니가 되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 에이미는 다소 예민하긴 해도 자식 사랑이 지극한 엄마였다. 유기농 식품만 먹였고,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우게 했으며, 학교 수업이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진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에이미에게 하버드 박사 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노스이스턴 시절만큼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논문을 수정 보완한 끝에 1993년 마침내 학위를 취득했고, 여러 곳을 거치며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 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 에이미와 짐, 아이들은 홀리스가의 별채에서 살았는데, 에이미가 아이를 맡길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 어머니 주디뿐이었기에 서로에게 편리한 구조였다. 그러나 1996년, 샘과 주디는 집을 처분하고 북쪽으로 약 56킬로미터 떨어진 입스위치로 이사했다. 샘은 "그 집에 유령이 너무 많아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2001년, 에이미는 막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세스라고 지었다. 주변 친구들 중 그 이름에 담긴 사연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친구 게일 닥터는 당시를 회상했다. "임무 수행하듯 아기 이름을 고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자신이 죽인 남동생의 이름을 아기에게 물려주려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출산 전 나와 아기 이름에 대해 온갖 수다를 떨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에이미의 아들은 거짓말처럼 죽은 남동생의 서른세 번째 생일이 될 뻔한 날에 태어났다.

대학 시절 시를 쓰기도 했던 에이미는 이후 소설 창작에 손을 댔다. 지역 작가 모임을 통해 게일 닥터와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에이미는 마이클 크라이튼 스타일의 어두운 스릴러 소설 세 권을 집필했지만, 끝내 출간되지는 못했다. 에이미 본인의 삶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그리스계 혈통에 과학자로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며, 어린 시절 알던 아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들이었다. 에이미의 소설에서 '출산과 육아'는 종종 상징적인 구원의 도구로 등장한다. 한 주인공은 자신의 아기가 죽은 소년 '루크'를 닮아갈까 봐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소설 속에서 에이미는 이렇게 적었다. "그녀는 아이의 유년 시절을 버텨낼 수 있을지 자문했다. 루크를 꼭 닮은 자신의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눈물 흘리지 않고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에이미는 나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삶과 소설 사이에 "일부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허구로 각색하려 노력했다"며 선을 그었다.)

에이미는 작가 모임 내에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출판 계약을 따내기 위해 문학 에이전트와 긴밀히 작업 중이라고 과시하는가 하면, 어머니 쪽 가문을 통해 소설가 존 어빙과 먼 친척 관계라는 말을 흘리기 좋아했다. 워크숍 특유의 완곡하고 건설적인 비평을 견디지 못했던 그녀는 종종 퉁명스럽고 깎아내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플롯을 보면 "없애(kill it)"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박사 학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터라, 하버드 출신이라는 간판이 주는 우월감은 그녀의 소설 속 단골 주제(leitmotif)였다. (모임 회원들은 에이미가 대학원 시절 함량 미달의 박사 과정생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버드 시절 그녀의 대학원 생활을 잘 아는 한 인물은 내게 이렇게 귀띔했다. "그 동네 공공연한 비밀 1호였죠. 에이미는 애초에 학위를 받으면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비록 날카롭고 오만한 구석이 있었지만, 에이미는 때로 따뜻하고 사려 깊은 친구가 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직설적이면서도 뼈 있는 유머 감각을 기억했다. 게일 닥터는 에이미의 감정 기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녀를 '미친 에이미'라고 부르곤 했다. 닥터는 "사람마다 감정의 주파수가 다르기 마련인데, 에이미는 유독 고주파로 진동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닥터의 딸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에이미는 최신 치료법에 관한 스크랩 자료를 보내주는가 하면, 때로는 닥터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대학 시절 세스의 죽음을 겪은 후 종교를 갖게 된 에이미는 지역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하버드 출신의 전도유망한 과학자 치고는 이례적인 행보로 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 샘은 신앙을 버린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고, 어머니 주디는 유니테리언(Unitarian) 신자였는데, 샘은 아내의 교회를 두고 "종교라기보다는 토론 동호회에 가깝다"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러나 에이미의 소설들을 보면 죄 사함과 구원이라는 개념에 깊이 집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소설 <보스턴의 부활절>의 주인공은 "주 예수 이름을 아무리 부른들 자신의 죄가 씻길 수 있을지" 고뇌한다. 또 다른 소설 <화성인 실험>의 주인공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친구가 건넨 한마디, "네가 무슨 짓을 했든 예수님은 널 사랑하셔"라는 말에서 비로소 안식을 찾는다. (에이미는 내게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으며, 현재 교도소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고 전했다.)

2002년의 어느 토요일 아침, 에이미와 짐, 그리고 아이들은 매사추세츠주 피바디에 있는 복잡한 아이홉(IHOP) 매장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아들 세스를 앉힐 유아용 보조 의자를 요청하자, 종업원은 마지막 의자가 방금 다른 손님에게 지급되었다고 안내했다. 이에 에이미는 "우리가 먼저 왔잖아요!"라고 항의하더니, 문제의 손님(아이들과 함께 막 식사를 하려던 한 여성)에게 다가가 욕설을 섞어가며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경찰 조서에 따르면 그녀는 "내가 바로 에이미 비숍 박사야!"라고 몇 번이고 비명을 질러댔다고 한다. 매장 매니저가 에이미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하자 그녀는 순순히 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가는 길에 유아용 의자를 가져간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에이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이후 고소가 취하되면서 전과 기록에는 남지 않았다.

당시 에이미는 여전히 박사후연구원 신분이었다. 그녀를 잘 아는 이들은 에이미가 여성에게 배타적이고 치열한 학계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네 명의 어린 자녀를 키워야 하는 육아 부담 사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고 말했다. 가정에 대한 갈망과 엘리트 직장인으로서의 의무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녀의 소설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소설 속 한 오만한 과학자는 여주인공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우리는 졸업장에 박힌 이름 덕에 각자 분야에서 리더로 대접받을 터인데, 당신은 저 뚱뚱하고 미련한 가정주부들처럼 기저귀나 갈고 코 흘리는 가시내들 코나 닦아주며 아기 입에 초록색 이유식이나 떠먹이고 싶단 말인가?"

가족을 잘 아는 몇몇 이들은 사실상 에이미가 집안의 유일한 가장이었다고 지적했다. 남편 짐은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고 직장 생활도 불규칙적이었으며, 그나마 얻은 연구실 일자리도 대부분 에이미의 주선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소설 <보스턴의 부활절>에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자기 분야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전자제품 매장(Radio Shack)을 전전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잭과 결혼하는데, 그녀는 남편을 두고 "야망 결핍증"에 걸린 "침대만 좋아하는 무기력한 루저"라고 묘사한다. 실제로 에이미는 알라바마 학계 동료에게 남편이 "일을 하기엔 너무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버드 박사후연구원 올리비아 화이트가 치명적인 레트로바이러스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내용의 세 번째 소설 <아마존의 열기>에서, 에이미는 알라바마 대학교 헌츠빌 캠퍼스(UAH)를 '남부의 MIT'로 묘사했다. 2003년 에이미가 이 대학교의 정년 트랙(tenure-track) 교수 자리를 얻어 가족이 이주했을 때만 해도, 이 이사는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다. 그녀와 짐은 자동 세포 배양기 개발에 착수했고, 대학 총장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치가 "생물학 및 의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논문 집필보다 특허 출원에만 매달린 탓에 출판 실적이 형편없었다. 실적 부족이 정년 보장(tenure) 심사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거듭된 경고를 그녀는 귀담아듣지 않은 듯했다. 강의실에서의 평가 역시 처참했다. 그녀는 가끔 학생들에게 "너희는 하버드 애들만큼 똑똑하지 않다"며 대놓고 무시하곤 했다.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 여러 명을 독단적으로 내쫓기도 했고, 다른 학생들은 지도교수 변경을 요청하며 탈출했다.

매사추세츠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은 에이미의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나, 헌츠빌에서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결국 고향 지인들의 전화와 이메일마저 모두 끊어버렸다. 그녀의 행동은 갈수록 충동적이고 기괴해졌다. 2001년, 그녀는 돈만 내면 게재해 주는 부실 학술지로 널리 통하는 <국제 일반 의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General Medicine)>에 논문을 발표하며 남편 짐과 세 딸(릴리, 테아, 페드라)의 이름을 공동 저자로 올렸다. 훗날 남편 짐은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연구를 진행하며 가족 모두를 참여시킬 계획이었다. 마치 퀴리 부부처럼 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해 봄, 에이미의 정년 보장 심사는 최종 탈락했다. 심사위원회 위원 중 최소 한 명은 그녀가 "정상이 아니다"라며 우려를 표했고,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Chronicle of Higher Education)>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를 만난 지 5분 만에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고 밝혔다. 에이미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의 제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분자생물학자 더글러스 프래셔(Douglas Prasher)의 사례에 무섭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프래셔는 1992년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정년 보장이 불확실해지자 연구 지원금이 끊겼고, 결국 학계를 떠난 인물이었다. 그 후 2008년, 그와 공동 연구를 했던 과학자 두 명이 프래셔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정작 당사자인 프래셔는 당시 헌츠빌 지역에서 도요타 대리점의 고객용 셔틀버스를 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에이미는 남편에게 자신도 그와 같은 신세가 될까 봐 두렵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어린 시절부터 에이미는 두드러기나 습진으로 발현되는 심한 알레르기 질환을 앓아왔다. 알라바마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전 몇 달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환각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고 그녀는 내게 털어놓았다. 세스가 숨진 직후부터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증상은 알레르기 발작과 겹치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했다. 환청에 대해 그녀는 "어떨 때는 무섭고, 어떨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어느 날 에이미는 차를 몰고 대학 본관 앞에 주차한 뒤, 차 안에서 총장실로 전화를 걸어 심사 결과에 대해 담판을 짓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윌리엄스 총장은 면담을 거부했고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지도 말라는 경고가 돌아왔다. 에이미가 수감 중 작성해 최근 법정 문서에 인용된 진술서에 따르면, 그녀는 창밖으로 윌리엄스 총장과 비스타스프 카바리(Vistasp Karbhari) 교학부총장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에이미는 동료 교수 데브라 모리어티에게 전화를 걸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내가 무슨 건물에 걸어 들어가서 사람이라도 쏴 죽일 것처럼 굴더라고요."

참극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 에이미는 남편과 함께 마을 외곽에 있는 실내 사격장인 '래리스 피스톨 앤 폰(Larry's Pistol & Pawn)'을 찾아 사격 연습을 했다. 이들이 챙겨간 9mm 루거 권총은 10여 년 전 짐이 매사추세츠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무기였다. 매사추세츠주의 까다로운 총기 면허 대기 기간을 피하고자, 짐의 친구가 뉴햄프셔주에서 대신 총을 구입해 넘겨준 것이었다. 짐이 에이미에게 총기를 맡기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는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다만 에이미는 가끔 친구들에게 남편을 자신을 조종하는 '스벵가리(Svengali, 최면술사)' 같은 존재로 묘사하곤 했다. 당시 부부를 알던 이들은 에이미가 학계에서 무시당하거나 모욕을 느껴 격분할 때마다, 짐이 아내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분노에 기름을 붓는 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부부와 절친했던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미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어요. 타인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했죠. 짐은 바로 그 심리를 이용해 에이미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겁니다."

짐이 주디 비숍에게 전화를 걸어 에이미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짐, 혹시 집안에 총을 두었었니?"

에이미 비숍이 헌츠빌에서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사추세츠주 당국은 그녀의 남동생 죽음과 관련된 수십 년 전의 서류들을 공개했다. 빛바랜 수십 장의 종이 위에 일부는 수기로, 일부는 타자로 기록된 당시의 경찰 최초 조서에는, 1987년 주 경찰이 이 사건을 오발 사고로 결론지었던 수사 보고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담겨 있었다.

세스가 바닥에 쓰러지고 에이미가 주방을 뛰쳐나갔을 때, 그녀는 산탄총을 챙겨 뒷문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홀리스가를 가로지른 에이미는 숲을 통과해 '데이브 딩거 포드(Dave Dinger Ford)'라는 자동차 대리점의 정비소로 이어지는 막다른 골목에 모습을 드러냈다. 토요일이라 정비소 문은 닫혀 있었지만, 비번이었던 정비사 몇 명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비사들의 진술에 따르면, 에이미는 산탄총을 든 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차가 필요하다며 열쇠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정비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에이미가 대리점 건물 밖에 서 있을 때 로널드 솔리미니(Ronald Solimini) 경관이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청바지 재킷을 입고 산탄총을 든 젊은 여성을 찾아보라는 비숍 자택의 지령을 받고 수색 중이었다.

솔리미니 경관은 조서에 에이미가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가 보였다"면서도 "양손으로 산탄총을 꽉 쥐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솔리미니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에이미는 무기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건네며 주의를 끄는 사이, 또 다른 경관인 팀 머피(Tim Murphy)가 38구경 권총을 뽑아 든 채 에이미의 뒤쪽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솔리미니는 머피가 에이미의 뒤쪽 불과 몇 걸음 앞까지 살금살금 다가갈 때까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마침내 머피가 외쳤다. "총 내려놔! 총 내려놔! 총 내려놔!" 머피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이미는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경관들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총을 압수했다.

얼마 전 어느 날 오후, 나는 총기에 해박한 친구를 찾아가 에이미 비숍이 당시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모델인 12구경 모스버그(Mossberg) 산탄총에 탄약을 장전하고 발사해 보며 한 시간을 보냈다. 펌프 액션(pump-action) 방식의 산탄총은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듯 장전 손잡이를 '철컥' 소리가 나도록 뒤로 당겼다 앞으로 밀면서 장전한다. 에이미가 들고 있던 모스버그 총에는 최대 다섯 발까지 탄약이 들어갔다. 산탄총 탄약은 황동과 플라스틱으로 된 원통형 구조로, 그 안에 화약과 작은 쇠구슬(산탄)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산탄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가지만, 탄약의 껍데기인 탄피는 총 내부에 그대로 남는다. 이렇게 격발된 빈 탄피가 약실에 남아있을 때 장전 손잡이를 당기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한 번의 동작으로 쓰여진 탄피가 총 옆면으로 튕겨 나가고 새 탄약이 약실로 밀려 들어간다.

내가 산탄총의 장전 손잡이를 당겨 격발하고 다시 당기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당시 경찰 조서에 적힌 한 가지 디테일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홀리스가의 자택을 수색하던 경관들은 에이미의 침대 위에서 25발짜리 판지 탄약 상자를 발견했다. 그중 네 발이 비어 있었다. 에이미는 한 발을 자신의 침실에서 쐈다. (경찰은 침실 바닥에서 격발된 탄피를 회수했다.) 두 번째 탄환은 세스의 목숨을 앗아갔다. 세 번째 탄환은 에이미의 재킷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경찰이 에이미에게서 빼앗은 산탄총을 검사했을 때, 네 번째 탄환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약실 안에서 언제든 발사될 준비를 마친 채 장전되어 있었다. 펌프 액션 산탄총을 한 번 쏘고 나서 다음 탄환을 약실에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장전 손잡이를 다시 한번 펌프질하는 것뿐이다. 즉, 에이미는 세스를 쏘고 체포되기 전 어느 시점에든 장전 손잡이를 당겨 남동생을 죽인 빈 탄피를 밖으로 뱉어내고, 그 자리에 새 탄약을 채워 넣었음이 분명하다.

에이미는 브레인트리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피의자 신원 확인과 조사를 받는 입건실로 인도되었다. 장전된 무기를 사람에게 겨누는 것만으로도 중범죄인 폭행 혐의가 적용되며, 경찰관 앞에서 총을 휘두르는 행위는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에이미 비숍을 그냥 풀어주었을까?

알라바마 총기 참사가 발생한 직후, 폴 프레이저 브레인트리 경찰서장은 세간을 뒤흔들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기자회견에 나선 그는 책임의 소재를 단호하고 명확하게 지목했다. 당시 한 경감이 에이미를 입건해 절차를 밟던 중, 경찰서장으로부터 그녀를 석방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한 기자가 프레이저에게 당시의 서장이 누구였느냐고 물었다.
프레이저는 답했다. "존 폴리오였습니다."

프레이저는 내게 "전부 폴리오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에이미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어머니 주디 비숍이 서에 도착했다. 그때 이미 서방으로 복귀해 있던 로널드 솔리미니 경관의 말에 따르면, 주디는 "존 V는 어디 있느냐"고 고함을 지르며 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고 한다.

내가 프레이저에게 주디가 어떻게 서장의 이름까지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지 묻자, 그는 "주디가 서장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답했다. 프레이저는 1980년대 중반 주디가 지역 대의기구인 '타운 미팅(Town Meeting)'의 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상기시켰다. 당시 60대 초반이었던 폴리오 서장은 65세로 정해진 경찰 공무원 정년을 연장하기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물밑 작업'을 벌이던 중이었다.

프레이저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청렴결백하기로 이름 높았던 폴리오 서장은 결국 권력을 이용한 최악의 정경유착을 저지른 셈이다. 프레이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내 경찰들이 에이미를 그냥 풀어준 결정을 두고 수군거렸다고 전했다. 경찰서 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 부정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주차 딱지 대리 해결 같은 소소한 부패마저 엄단하던 폴리오의 대의명분은 빛을 바랬다. 프레이저는 당시 서내 분위기가 "'살인 사건도 봐주는 마당에 딱지 하나 못 봐줄 게 뭐냐'는 식이었다"며, "결국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법 집행을 가로막은 명백한 사법 방해이자 불의였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새로운 정황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폴리오는 87세의 나이로 여전히 브레인트리에 살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볼이 쑥 들어간 병약한 노인이었다. 머리에는 '#1 최고의 할아버지'라고 적힌 흰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노인은 기자들을 집 안으로 흔쾌히 들여보냈다.

폴리오는 당시 기억을 더듬으며, 세스와 에이미가 집에서 산탄총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오발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오는 "어머니 주디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의 주장은 전적으로 오발 사고라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무언가 은폐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또한 에이미를 기소도 하지 않고 석방하라는 결정을 내린 주체가 자신이라는 책임을 끝내 부인했다. 그는 "나는 누구에게도 그녀를 풀어주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브레인트리가 속한 노퍽 카운티의 당시 지방검사였으며 이후 7선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빌 데러헌트(Bill Delahunt)는 내게 만약 딩거 포드 자동차 정비소에서 벌어진 대치 상황을 당시 알았더라면 에이미를 폭행 및 협박 혐의로 기소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정신 감정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랬다면 그녀의 인생 행로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데러헌트는 세스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론지은 최종 수사 보고서에서 경찰과의 대치 상황을 누락한 주 경찰관 브라이언 하우(Brian Howe)를 책망했다.

하지만 은퇴 후 조지아주에 살고 있는 하우를 찾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총격 사건 이후의 소동을 보고서에 싣지 않은 이유가 단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브레인트리 경찰서 측에 당시 최초 조서를 요청했으나 넘겨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러헌트 전 검사는 하우가 더 철저히 수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하면서도, 결국 최종 책임은 브레인트리 경찰서, 특히 폴리오 서장에게 있다고 못 박았다. 데러헌트는 "폴리오의 승인(imprimatur)이 없었다면 서내 그 누구도 감히 에이미를 풀어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이 밝혀진 증거들은 에이미 비숍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알라바마 총격 사건 직후 언론은 그녀를 학계의 극심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른 일종의 돌연변이, 즉 '괴짜 교수' 정도로 묘사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훨씬 더 악독하고 낯익은 존재, 바로 '악의 씨앗(the bad seed)' 같은 인물로 그려졌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세스의 죽음은 그동안 무시되어 온 수많은 경고 신호의 첫 장에 불과했다. 아이홉(IHOP) 매장 소동 외에도 1993년 에이미 부부가 주류·담배·화기 및 폭발물 단속국(ATF)의 조사를 받았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에이미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 박사후연구원 시절의 지도교수 폴 로젠버그(Paul Rosenberg)가 어느 날 의심스러운 우편물을 받은 것이다. 당시 한창 활동하던 연쇄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Unabomber)'를 의식한 로젠버그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6인치 파이프 폭탄 두 개에 연결된 기폭 장치가 작동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았고 에이미 부부 역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었다. 당시 두 사람은 홀리스가의 별채에 살고 있었는데, 당국이 그곳을 압수수색하는 모습을 샘과 주디가 지켜보기도 했다. 수사 과정에서 에이미와 짐이 주변 친구들에게 파이프 폭탄 제조법을 언급했다는 진술도 확보되었다. 게다가 에이미는 대학 동창인 브라이언 로치에게 폭발물 원료로 쓰일 수 있는 과망간산칼륨 10파운드(약 4.5킬로그램)를 기괴한 생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로치는 내게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주: 미국의 유명한 공포 소설이자 영화인 <더 배드 씨드(The Bad Seed)>에 대한 언어유희.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천사 같지만 실제로는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알라바마 총격 사건이 터지고 몇 주 동안, 과거 동료들과 이웃들이 잇따라 나서며 에이미와 벌였던 갖가지 육탄전에 대해 폭로했다. 대부분 사소한 말다툼이 원인이었다. 에이미의 시아버지인 지미 앤더슨 시니어(Jimmy Anderson, Sr.)는 한 기자에게 "그 애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알라바마 대학교의 한 이사는 <헌츠빌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사람들이 그녀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계속 은폐하고 넘어간 탓에,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에이미의 변호인인 로이 밀러(Roy Miller)조차 그녀의 폭력성에는 뚜렷한 패턴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여자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며 "그녀가 걸어온 과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언급했다.

에이미 비숍의 과거가 이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정되면서, 대중의 눈에 비친 주디 비숍의 이미지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겼던 어머니는 비뚤어진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마저 기만한 교활한 공모자로 탈바꿈했다. 이 새로운 프레임 속에서 주디는 영화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의 조안 크로포드 역과 겹쳐 보였다. 딸이 저지른 살인을 비롯한 온갖 악행을 은폐하려다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맹목적이고 집착 어린 모성의 대명사였다.

에우리피데스는 모성을 두고 "강력한 주문"이라 표현한 바 있다. 자식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은 때로 경외심마저 자아낸다. 몇 년 전 퀘벡 북부의 한 겨울날, 북극곰 한 마리가 마을로 내려와 일곱 살짜리 이누이트 아이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700파운드(약 320킬로그램)에 달하는 맹수에게 맨몸으로 달려들었고, 사냥꾼이 도착해 곰을 사살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버텨냈다.

물론 자식을 확실한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과 형사 처벌을 받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든 그렇지 않든, 자식의 잘못을 덮어주고 싶은 충동만큼은 세상의 모든 부모가 공감할 것이다. 몇 년 전, 애틀랜타의 한 초등학교 교사 실라 마이클(Sheila Michael)은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뺑소니 사고에 자신의 22세 딸이 연루된 사실을 숨겨준 죄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사고를 낸 운전자를 잡기 위해 대대적인 지명수배가 내려진 와중에도, 마이클은 정비사를 설득해 가족 차량의 파손 흔적을 지우려 했다. 법정에서 딸은 자수하고 싶어 했으나 마이클이 이를 만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판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당신은 단지 자식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의 죽음을 목격했던 주디 비숍 역시 그날 똑같은 계산을 돌렸던 것일까?

미제 사건은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수사하기가 까다롭기 마련인데, 세스 비숍 총격 사건은 애초에 범죄로 취급조차 되지 않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항을 겪었다. 브레인트리 경찰도, 주 경찰도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증거물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탄도 검사 직후에는 범행에 쓰인 모스버그 산탄총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현장 사진 몇 장이 형식적으로 남아있을 뿐, 비숍 자택에 대한 전면적인 감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유족을 위로하러 온 이웃들이 바닥의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내는 바람에 현장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또 다른 걸림돌도 있었다. 2010년 시점에서 딩거 포드 정비소 대치 소동과 관련해 에이미에게 적용할 수 있는 모든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한참 지난 뒤였다. 공소시효가 없는 유일한 범죄는 살인뿐이었지만, 검찰이 에이미의 유죄를 입증하려면 그녀가 남동생을 '고의로' 살해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사관들은 범행 현장 사진을 면밀히 검토하다가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했다. 에이미의 방을 찍은 사진 중 한 장에 타블로이드 연예지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Enquirer)>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직원이 의회도서관에서 해당 호를 찾아 주문했고, 수사관들은 잡지 지면의 상당 부분이 드라마 <달라스>의 배우 패트릭 더피(Patrick Duffy)의 부모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86년 11월 18일, 두 명의 젊은 괴한이 몬태나주에서 더피의 부모가 운영하던 바에 침입해 그들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범인들은 12구경 산탄총을 사용한 뒤, 도주 차량을 훔치려 총기를 휘두르며 달아났다. 범행 당일 에이미의 심리 상태를 유추하기에는 다소 빈약한 근거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수사관들은 에이미가 이 기사를 일종의 '범행 지침서'로 삼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당시 지방검사였던 윌리엄 키팅(William Keating)은 현장 사진 속 잡지가 에이미의 범행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스턴 글로브>에 전했다.

2010년 4월, 지역 당국은 세스의 죽음에 대한 사법 검인 절차(inquest)를 착수했다. 퀸시에 있는 붉은 벽돌 조의 법정에 20명의 증인이 출석했다. 딩거 정비소에서 에이미와 맞닥뜨렸던 정비사 톰 페티그루(Tom Pettigrew)는 그녀가 산탄총을 겨누며 "손 들어!"라고 소리쳤던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솔리미니 경관은 주디 비숍이 서장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던 순간이 얼마나 기이했는지 회상했다. 그는 "그 누구도 서장님을 '존'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사건 당일 경찰서에 있었던 케네스 브레이디(Kenneth Brady) 경사 역시 주디가 서장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에이미를 신문했던 제임스 설리번(James Sullivan) 경감은 실제로 조서의 혐의란에 '살인'과 '위험한 무기를 이용한 폭행'을 적어 넣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후 에이미를 석방하라는 지시가 내려지면서 그녀는 끝내 기소되지 않았다.

최근 기자와 만난 설리번 경감의 말에 따르면, 에이미에 대한 신문은 규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입건실로 들이닥친 주디 비숍 때문에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당시 근무 중이던 한 경정이 설리번에게 다가와 주디 비숍이 폴리오 서장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이번 총격은 오발 사고라고 설명했고 서장도 그 말을 믿었다고 전했다.

설리번은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는 경정에게 강력히 항의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은 죄가 없다 한다고 해서 다 풀어줄 거면, 대체 범인을 잡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폴리오 서장의 명령이니 "닥치고 따르라"는 것뿐이었다.

법정에서 브레이디 경사는 에이미와 어머니가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껴안았던 모습을 증언했다. "비숍 부인은 오늘 아들을 잃었는데 딸까지 잃을 수는 없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이어 증언대에 선 아버지 샘 비숍은 사건 직전 에이미와 벌인 '말다툼'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는 "끔찍한 갈등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서진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1985년 여름에 겪은 강도 사건이 에이미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 때문에 딸이 총을 꺼내 장전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샘은 "딸아이는 그 오래된 빅토리아풍 저택에 앉아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며 "그 공포에 휩쓸려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뿐"이라고 변호했다. 그는 판사에게 비숍 가족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세스와 에이미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세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 할로윈 무렵에 촬영된 사진 속에서, 남매는 신문지가 잔뜩 깔린 식탁에 앉아 작은 호박을 깎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아침 6시쯤 집을 나서서 오후 2시까지 밖에 있었어요.” 증언대에 선 주디가 말을 이었다. “내가 차를 몰고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세스가 바로 내 뒤를 따라 차를 대더군요.” 주디는 아들의 장보기를 도우려 식료품을 집 안으로 함께 나렀다. 그때 에이미가 2층에서 내려와 산탄총의 총알을 빼는 것 좀 도와달라고 청했다. 주디의 기억은 이랬다. 세스가 총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에이미가 몸을 돌렸고, 그 짧은 찰나에 ‘총이 발사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에이미는 한 손으로 총열을, 다른 한 손으로 개머리판을 잡고 있었다. “애는 방아쇠에 손조차 대지 않았어요.”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총격 사건을 눈앞에서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기에, 증언대에 선 주디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아, 안 돼요, 엄마”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던 목소리를 생생히 증언했다. “피가 그냥, 정말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주디가 울먹였다. “신발이 피로 흥건히 젖었고 머리카락까지 피범벅이 되었죠.” 그녀는 “그날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증언을 끝맺었다.

주디는 존 폴리오 서장과 그 어떤 친분도 없었다고 부인하며, 경찰서에서 그를 찾은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폴리오와 그의 아내 지니 역시 증언대에 올라 주디와 서장이 사적으로 전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최근 브레인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니 폴리오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당시 경찰서 직원들은 까맣게 몰랐지만, 사건 당일 서장이 실제로 서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폴리오는 부하 직원들이 자신의 출퇴근 여부를 알지 못하도록 개인 차고와 바로 연결되는 단독 출입구를 집무실에 만들어 두었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일정을 최대한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내 업무의 일부”라며, “경찰들의 생리를 잘 알기에, ‘언제든 아버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니는 자신 또한 그날 경찰서에 있었다고 말했다. 1999년 폴리오와 결혼하기 전, 그녀는 서장의 비서로 일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테드 부커(Ted Buker) 경정이 서장실에서 폴리오를 발견하고 이렇게 보고했다. “서장님, 타운 미팅 의원인 주디 비숍 아시지요? 그 집 딸 에이미가 남동생을 쐈답니다. 어머니 말로는 오발 사고라더군요.” 지니의 말로는 당시 부커 경정이 딩거 포드 정비소에서 있었던 소동은 언급하지 않은 채, 사건을 주 경찰과 지방검찰청으로 넘기겠다고만 보고했다. 지니가 기억하는 남편의 답변은 단호했다. “그렇게 진행하게.” 폴리오는 주디 비숍과 대면한 적도 없었고, 에이미를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보고를 했던 테드 부커 경정은 현재 고인이 되었다.)

지니는 단단하고 매서운 눈빛을 지닌 왜소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브레인트리 경찰서의 퇴직 간부들이 남편에게 오명을 씌우려 조직적으로 음해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폴리오는 2010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지니는 남편이 결백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쇠약해져 숨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폴리오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장례를 치렀지만, 유족들은 조문객을 맞이할 빈소를 마련하면서 폴 프레이저 서장에게만은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사법 검인 절차가 끝난 후 사건은 대배심으로 넘어갔고, 마침내 2010년 6월 16일 에이미 비숍은 남동생에 대한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샘과 주디 부부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알라바마에서 벌어진 참극에 대해서는 감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부부는 서명에 적었다. “하지만 23년 전 우리 아들 세스에게 일어난 일만큼은 명백한 사고였음을 확신합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기소 발표가 난 지 이틀 뒤, 알라바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에이미는 일회용 면도기에서 칼날을 빼내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내가 이 자살 기도 사건에 대해 묻자, 에이미는 세스가 죽은 직후에도 한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에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시도했지만, 2010년의 자신은 해부생리학(anatomy and physiology)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요골 동맥(radial artery)을 따라 세로 방향으로 깊게 그었어요.” 에이미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는 감방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순찰 중이던 교도관에게 극적으로 발견되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녀의 변호인 로이 밀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불과 4분만 늦었어도 그대로 숨졌을 겁니다.”

지난가을 어느 날 아침, 나는 보스턴에서 차를 몰고 세찬 바닷바람이 부는 해안 마을 입스위치로 향했다.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서서 도로 안쪽에 자리 잡은 회색 판벽집 앞에 차를 세웠다. 샘 비숍이 문앞에서 나를 맞이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 주디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하며 취재를 이어왔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자주 떨렸고 눈물로 잠기곤 했다. 이메일도 수시로 주고받았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혹은 그 고통을 함께 버텨내기 위함인지 주디와 샘 부부는 여전히 끈끈했다. 두 사람은 이메일 계정을 같이 쓰고 있어서, 나로서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키가 1인치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주디가 높은 선반에서 사진첩을 꺼내려 끙끙대며 말했다. 거실은 보가 그대로 드러난 높은 천장에 두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가짜 그래피티가 그려진 커다란 '마크 에코(Marc Eckō)'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풍성함을 유지하고 있는 머리칼은 어느새 투명한 빛을 띠는 백발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늙어간다는 건 말이죠, 뼈저린 각오 없이는 못 할 일이에요."

우리는 함께 사진첩을 넘겼다. 사진첩 속에는 아이들의 생일파티 모습, 세스와 에이미가 뒷마당에서 발사나무로 만든 모형 비행기를 날리는 모습, 그리고 세스가 고교 졸업파티(prom)를 가기 전 빨간색 카마로에 앉아 활짝 웃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다 세스의 사진은 뚝 끊겼다. 주디가 다음 장을 넘기자 말린 꽃 한 송이와 샘의 어머니가 그리스어로 쓴 시, 그리고 세스의 추도식 때 쓰인 빛바랜 안내장이 나타났다.

부부의 친구인 아일린 샤키(Eileen Sharkey)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비숍 부부가 겪은 일은 그야말로 그리스 비극입니다. 한 아이가 실수로 다른 아이를 파멸로 몰고 갔고, 결국 그 아이마저 무너졌어요. 그리고 부모는 세스의 죽음 이후 간신히 건져 올린 유일한 희망, 즉 에이미가 평범한 삶을 살려던 그 모든 노력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과정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주디가 점심으로 준비한 참치 샌드위치를 식탁에서 함께 먹을 때, 샘이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알라바마 총격 사건이 터진 후 몇 주 동안 방송사 취재진이 집 밖에 야외 촬영용 조명(klieg lights)을 설치하고 창문 안으로 내리쬐는 바람에, 한밤중인데도 한낮처럼 환했다고 했다. 부부는 에이미가 알라바마에서 저지른 참혹한 범죄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화제를 길게 끌지도 않았다. "에이미는 정말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뿐이에요." 주디가 말했다. 하지만 부부는 매사추세츠주 당국이 이번 기회를 틈타 사적인 보복과 뒤끝 작렬하는 식의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어떻게든 폴리오 서장을 엮어서 묻어버리려고 혈안이 된 거죠." 주디는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이들이 자기 아들의 죽음을 다 안다는 듯 떠드는 행태에 깊은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단 말입니다!"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 그 일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비숍 부부는 프레이저 서장이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프레이저는 주디 비숍과 폴리오 서장 사이에 거대한 음모가 있었던 것처럼 몰아갔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일 아침에 말다툼을 벌인 당사자가 에이미와 세스였다고 잘못 발표했다. 주디는 자신이 브레인트리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프레이저의 뉘앙스에 코방귀를 꼈다. 타운 미팅 의원을 지내긴 했으나, 그 기구는 무려 240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솔리미니 경관이 사법 검인 절차에서 주디가 폴리오 서장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면담을 요구했다고 진술한 것 역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가슴에 대못이 박힌 사람들입니다.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주디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들이 저지른 짓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지옥 불에나 떨어지라죠."

"여보, 거기까지 해요." 샘이 부드럽게 만류했다. 그는 초조한 듯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더니 밑줄과 주석이 빽빽하게 적힌 당시 경찰 최초 조서의 사본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미군 보고서 중에서 12구경 모스버그 산탄총의 군용 모델을 총구 방향으로 떨어뜨릴 경우 간혹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사법 검인 절차에서 이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 법원은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고 샘은 주장했다. (실제로 세스의 사후에 총기를 검사했던 경관은 증언 당시 이 보고서를 언급하긴 했다. 다만, 그는 직접 총기에 '충격 테스트'를 실시했으나 오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샘은 당시 홀리스가 자택의 주방이 몹시 좁은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탁에서 일어나 에이미가 세스에게 보여주려고 산탄총을 휘둘렀을 당시의 모습을 몸짓으로 흉내 냈다. "내 생각엔 에이미가 총을 어디다 부딪쳤던 것 같아요." 샘은 총의 개머리판이 찬장이나 조리대에 부딪히면서 오발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했다.

사건 당일 가족 간에 벌어진 '말다툼'에 대해 묻자, 샘은 그날 오전 10시쯤 잠에서 깨어났지만 11시 반이 넘어서야 1층으로 내려왔다고 답했다. "복도에서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세스와 에이미에게 물건들을 똑바로 치우라며 야단을 쳤다고 했다. "아이들이 받아치더군요, 특히 에이미가요." 하지만 다툼은 이내 좋게 해결되었다고 샘은 거듭 강조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에이미의 성격에 대해 묻자 주디가 한마디 거들었다. "애가 지 아빠 성질을 똑 닮았거든요."
내가 "에이미와 샘이 자주 부딪히는 편이었나요?"라고 묻자, 주디는 남편을 흘긋 바라보며 킥킥댔다. 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숍 부부가 보기에 딩거 포드 정비소에서 벌어진 소동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었다. "애가 큰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샘이 항변했다. 다만 에이미가 집을 나선 뒤 왜 다시 장전 손잡이를 당겼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어쨌든 주디의 말마저 사실이라면, 에이미가 도주 차량을 찾고 있었다 하더라도 굳이 산탄총을 휘두르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주디의 차가 진입로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고, 차 키는 주방 문옆에 빤히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비숍 부부를 가장 분노케 하는 점은, 1986년 당시 에이미를 석방한 결정을 두고 그토록 괴로워했다는 프레이저를 비롯한 경찰 간부들이, 2010년 알라바마에서 참극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부부의 지적도 일리가 있는 것이, 그 수년간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수십 건의 미제 사건들이 재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존 폴리오 서장이 현직에 있을 때는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닫았을 수 있다 쳐도, 그는 이미 1987년에 퇴임한 상태였다. "25년 동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다들 정답이라도 안다는 듯 떠들어대는 겁니까?" 샘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내가 프레이저에게 왜 브레인트리 경찰이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좋은 질문입니다"라며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그저 그 사건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라고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에이미의 부모는 그녀가 교도소에서 자살을 기도한 원인이 전적으로 매사추세츠주에서 내려진 기소 처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전에도 에이미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주디는 단호하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왜, 손을 벤 적이 있잖아……." 샘이 말문을 열었다.
주디가 곧바로 말을 가로채며 정정했다. 당시 에이미는 "호박을 깎고 있었고", 그러다 "실수로 여기를 찌른 것"이라며 자신의 손목을 톡톡 쳤다. "자살 시도가 절대 아니었어요." 부부는 에이미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상처를 꿰매주었다.
샘이 덧붙였다.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보려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애가 직접 말했어요."
주디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절대 자살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걸걸하고 느릿한 서부 알라바마 특유의 억양을 쓰는 로이 밀러(Roy Miller) 변호사는 헌츠빌 일대에서 거의 40년 가까이 법조인으로 활동해 왔다. 법원 지정으로 에이미 비숍의 변호를 맡게 된 그는 지난 18개월 동안 심신상실로 인한 무죄(insanity defense)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당초 에이미는 사형 선고를 원했다. (밀러는 내게 “그 여자는 죽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사형이 아니라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유력했는데, 이 경우 헌츠빌 감옥에 수감 중인 에이미는 알라바마 중부에 있는 줄리아 투트와일러(Julia Tutwiler) 여성 교도소로 이감될 가능성이 컸다. 이곳은 악명 높기로 소문난 거친 곳이다. 지난해 법무부에 접수된 고발장에 따르면, 이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이 수감자에게 저지르는 심각한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했다. 밀러에게 투트와일러 교도소에 대해 묻자 “한마디로 원시 시대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에이미 역시 지인에게 “그 좁디좁은 창살 상자 속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샘과 주디 부부는 에이미를 설득했다. 본인이 원해서 사형 선고를 받더라도, 강력 사건은 재판과 항소 절차가 워낙 길고 지루하게 늘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집행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에이미는 심신상실에 따른 무죄를 주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변호인단은 에이미의 정신 감정을 위해 내로라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을 대거 고용했지만, 재판 과정을 풀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알라바마의 배심원들은 심신상실 주장에 유독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기소를 맡은 롭 브루사드(Rob Broussard) 검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현행범으로 붙잡히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정신병자 행세를 하더군요. 대중도 심신상실 주장이라는 게 얼마나 실속 없는 헛소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에이미는 이른바 ‘UAH(알라바마 대학교 헌츠빌 캠퍼스) 사건’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지만, 총격 당시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범행 직후 경찰이 그녀를 순찰차 뒷좌석으로 거칠게 밀어 넣을 때도, 에이미는 “그런 일 없어요. 그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단 말이에요”라고 소리쳤다. 이 기억상실 증세가 진짜인지, 아니면 형량을 줄이려는 연극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그녀는 내게 남동생 세스를 실수로 쐈던 기억은 나지만, 딩거 포드 정비소에서 벌어진 소동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동생을 쏜 직후 왜 산탄총의 장전 손잡이를 다시 당겼느냐고 묻자, “그 기억은 정말 통째로 날아갔다”고 답했다. 나는 기억이 끊겼다는 시점들이 교묘하게도 가장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순간들과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에이미는 “원래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맞받아쳤다.

알라바마 총격 사건을 더욱 꼬이게 만든 것은 그녀가 쏜 동료 중 학과장이었던 고피 포딜라(Gopi Podila)를 포함한 여러 명이 사실 에이미의 정교수 임용(tenure) 심사 때 찬성표를 던졌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번 참극을 단순한 보복 범죄로만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에이미의 부모와 지인들은 세스의 죽음을 마치 기계처럼 ‘오발 사고’라고만 되풀이했는데, 이는 어떻게든 사건을 포장하려는 여론몰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알라바마 사건을 언급할 때도 그들은 마치 에이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은연중에 수동태 문장을 쓰곤 했다. 한 번은 그녀의 친구인 브라이언 로치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 역시 이 사건을 ‘알라바마에서 있었던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했다.

에이미는 현재 조현병 진단을 받고 항정신병 약물인 할돌(Haldol)을 복용 중이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로이 밀러 변호사의 말은 달랐다. 공식적으로 그렇게 명확한 진단이 내려진 적은 없으며, 설령 그렇다 한들 에이미가 극심한 망상에 시달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관철하기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누가 봐도 사회에 잘 적응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별 탈 없이 네 아이를 키워낸 평범한 어머니였다.

주디에게 에이미가 종종 환청을 듣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묻자, 그녀는 “전혀 몰랐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에이미 성격상 부모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이미는 감옥 안에서도 특유의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밀러 변호사에게 매일 질 낮은 수감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휘력이 떨어지고 지능지수까지 낮아지는 기분이라며 불평 섞인 농담을 던졌다. 밀러는 “그 친구가 유머 감각 하나는 기가 막히다”며, 다만 그 유머가 때로 화를 자초한다고 혀를 찼다. “하루는 진짜 시골 촌구석에서 온 이가 다 빠진 뚱뚱한 아주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답니다.” 그 룸메이트에게는 틀니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걸 창틀 위에 얹어두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교도관이 이를 발견하고 에이미와 룸메이트에게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에이미는 교도관을 향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힌트 하나 드릴까요?”
밀러는 헛기침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그 일로 교도관에게 아주 탈탈 털렸다더라”고 전했다.

에이미는 구치소 내부가 “워낙 거칠고 험악하다”면서 “거기서 여자 수감자 한 명, 아니 사실 세 명을 때려눕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는 세 번 모두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상대편 수감자가 배식판으로 그녀를 사정없이 내리쳤다는 것이다.

에이미의 재판은 2012년 9월 24일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재판을 불과 2주 앞두고 밀러 변호사는 검찰 측에 유죄 협상(plea deal)을 제안했다. 검찰이 사형 구형을 철회해 준다면 에이미가 1급 살인 혐의를 전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되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밀러는 내게 재판까지 가봤자 배심원들에게 심신상실 무죄를 받아낼 확률은 ‘단 1%’에 불과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그동안 진행했던 일련의 정신 감정 결과마저 애매하게 나오는 바람에, 변호인단 입장에서도 에이미가 범행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할 결정적 카드가 없었다.

검찰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9월의 어느 날 오후, 나는 에이미의 유죄 인정 절차를 참관하기 위해 헌츠빌 시내에 있는 매디슨 카운티 법원을 찾았다. 지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살인범을 직접 보기 위해 수십 명의 경찰관이 몰려들었고, 법정 안은 방청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가족들에게 법정 출입을 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상태였다. 그녀가 교도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들어오자 모든 이가 고개를 길게 빼고 쳐다보았다. 에이미는 빨간색 죄수복 바지 밑으로 흰 양말에 플립플롭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마치 썰매 방울처럼 짤랑거렸다. 몰라보게 살이 빠진 그녀는 눈이 휑하게 꺼져 있었고, 창백한 팔뚝은 마치 나무 막대기처럼 앙상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콧구멍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꼿꼿이 들고 특유의 불안하면서도 도도한 눈빛으로 법정 안을 매섭게 훑어보았다.

알라바마주 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할 때는 검찰이 법정에서 그동안 확보한 증거 요약본을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 검찰이 범행 정황을 낱낱이 낭독하는 동안 에이미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무참히 살해당한 동료 교수들의 현장 사진이 화면에 띄워지자, 그녀는 마치 야단맞는 초등학생처럼 어두운 갈색 머리칼을 테이블 위로 쏟아내며 두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재판장이 에이미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상소권을 모두 포기하는 것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번 재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가냘픈 목소리로 “네”라는 한마디였다. 그녀는 곧바로 투트와일러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이제 대중의 관심은 에이미가 매사추세츠주에서 남동생 살인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될 것인가에 쏠렸다. 만약 재판이 열린다면 비숍 가족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세스의 죽음이라는 해묵은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것은 물론, 딩거 포드 정비소에서 벌인 소동과 당시 석방 경위를 둘러싼 뼈아픈 질문들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검찰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기소를 결정하는 것과 실제 유죄를 받아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법조인들은 대배심에서 기소장을 받아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1급 살인 혐의로 유죄를 이끌어내려면 무려 4분의 1세기 전인 25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실체를 법정에서 증명해야 했다. 증인석에 세울 만한 이들은 대부분 기억력이 가물가물한 노인이 되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범행에 쓰인 산탄총을 비롯해 당시의 직접적인 증거물 역시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게다가 유일한 현장 목목자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어머니였는데, 그녀가 변호인단 측의 핵심 증인으로 나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범행 동기를 입증하는 것도 난제였다. 생전 남매 사이에 해묵은 감정이 있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내가 취재한 주변 인물 중 이를 법정에서 직접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검찰 역시 똑같은 한계에 부딪힐 게 자명했다. 폴 프레이저 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사건 당일 아침 에이미와 세스가 말다툼을 벌였다고 단언했으나, 그 외 모든 정황 증거는 당시 다툼이 에이미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벌어진 일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이미가 알라바마 법정에서 최종 유죄를 인정한 지 며칠 뒤, 매사추세츠주 노퍽 카운티 지방검찰청은 성명을 발표했다. 에이미에 대한 범인 인도(extradition)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매사추세츠주에는 사형제가 없는 데다 에이미가 이미 알라바마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니, 자신들이 구형하려던 형량이 이미 집행 중인 셈이라는 실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때 사건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에이미의 국선 변호를 맡은 래리 팁턴(Larry Tipton) 변호사를 통해, 에이미 본인이 남동생의 죽음과 관련해 정식 재판을 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그녀는 늘 남동생의 죽음이 오발 사고였다고 주장해 왔기에, 검찰이 기소를 취하하는 과정에서 마치 은근슬쩍 죄를 덮고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 듯했다. 팁턴 변호사는 “에이미는 재판을 통해 자신이 남동생을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는 결백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에이미 역시 내게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는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부모님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 잔인한 과거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폭력이 우리 삶의 궤도를 불시에 뒤흔들 때, 우리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납득해 보려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뒤엉킨 증거 조각들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다. 에이미 비숍이 남동생을 살해했다고 결론 내린 이들도, 그렇지 않다고 믿는 이들도 모두 같은 비극적 사실을 앞에 두고 복잡한 사건들을 취합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어느 쪽 이야기 공식도 완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남동생을 냉혹하게 살해하기 전 타블로이드 잡지에서 범행 영감을 얻은 악마 같은 누이로 에이미를 묘사하는 해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며, 존 폴리오 서장과 주디 비숍의 정경유착이 수십 년간 진실을 묻어버렸다는 냉소적인 서사 역시 작위적이다. 브레인트리에서 수개월간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내린 결론은, 당시 은폐 행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다만 그것은 검은 음모가 아니라 '인정'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특히 작은 마을에서는 이웃의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당연한 도리로 통하곤 한다. 에이미의 친구 캐슬린 올덤은 내게 "난 언제나 오발 사고라고 믿어왔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취재 중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세간의 정서를 대변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늘 말해왔죠. 만약 사고가 아니었대도, 난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고요." 브레인트리의 일부 경찰관들은 비숍 가족과 아는 사이였다. 주디는 타운 미팅 활동을 통해 젊은 경관들의 부모와 친분을 맺고 있었다. 홀리스가 자택에서 벌어진 이 당혹스러운 비극을 수습하는 가장 자비로운 방법은 그저 덮고 넘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온정주의적인 묵인이자 현실 도피는 수십 년 후, 알라바마에서 계산조차 할 수 없는 참혹한 대가로 돌아왔다.

비숍 부부와 지니 폴리오가 내세우는 반론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프레이저 서장과 동료들이 아무리 존 폴리오를 증오했다 한들, 단지 고인을 음해하려고 증거를 조작하고 없는 의혹까지 지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0년 브레인트리 당국이 이 고통스러운 사건을 그토록 악착같이 다시 파헤친 데는 훨씬 더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 그곳 공직자들에게 이번 사법 검인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낡은 구시대적 행정을 타파할 기회였던 것이다. 조 설리번 브레인트리 시장은 내게 "이것은 단지 23년 전에 일어난 총격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라며, "지금의 브레인트리가 어떤 곳인지를 증명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비숍 부부에게 아무리 연민을 느낀다 해도, 사건이 발생한 토요일 행적에 대한 그들의 주장에는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비숍 가족을 잘 알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인물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지난 20년간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1980년대에 주디 비숍에게는 사란 길리스(Saran Gillies)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지역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여성이었다. 세스가 총에 맞던 당일, 길리스는 주디의 집으로 차를 마시러 갈 예정이었으나 주디가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하했다. 주디는 길리스에게 "집에 아주 난리가 났어"라며 "상황이 심각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화를 받은 직후 길리스는 방금 언급한 익명의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전했다. 남편 샘이 "화가 잔뜩 나서" 집을 나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리스는 세스 비숍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란과 나는 퍼즐을 맞춰보았죠."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두 사람은 에이미가 장을 보고 돌아온 세스의 인기척을 듣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줄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두 여성이 가슴속에만 묻어둔 가설은, 에이미가 애초에 남동생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산탄총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며 겨냥했던 진짜 타깃은, 어쩌면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이다.

물론 이것 역시 안개 속에 가려진 사건을 두고 흘러나온 또 하나의 추측성 서사일 뿐이며, 길리스는 이미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가설은 세스와 에이미가 아니라, 샘과 에이미 사이의 다툼이 왜 뚱딴지같이 세스의 죽음으로 이어졌는지를 매끄럽게 설명해 준다. 또한 비숍 부부가 주장해 온 시간대의 치명적인 모순도 풀린다. 사법 검인 법정과 나와의 인터뷰에서 주디는 줄곧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마구간에 있었고, 세스가 식료품을 사 가지고 돌아온 바로 그 타이밍에 자신도 귀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 주 경찰 브라이언 하우가 비숍 가족을 조사했을 때, 에이미는 산탄총을 들고 내려왔을 당시 이미 어머니가 집에 온 지 "꽤 된 상태"로 느꼈다고 진술했다. 같은 조사에서 샘 비숍 역시 하우를 비롯한 경관들에게 주디가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올 줄 알았다고 답했다. 주디 본인의 최초 조서에도 "점심거리가 있나 보려고 집에 잠시 들렀다"고 적혀 있다. 주디는 집에 도착했을 때 세스가 있었고, 세스가 "[우리] 다 같이 점심 먹게 먹을 것 좀 사 오겠다며 가게로 나갔다"고 진술했었다.

총격 직후에 이루어진 이 진술들에 따르면, 주디는 세스가 장을 보고 돌아온 후가 아니라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샘과 주디 부부가 이 시간대를 필사적으로 부정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에이미가 총을 꺼낸 근본적인 원인이 '집에 홀로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쌓인 공포' 때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 검인 절차에서 문제의 12구경 모스버그 산탄총을 검사한 총기 전문가는 이 총을 발사하려면 통상 5파운드(약 2.3킬로그램)의 압력으로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증언했다. 검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에이미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라가 있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이상 오발 사고가 날 확률은 없다는 뜻입니까?"
전문가는 "그녀의 손에서 총을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라면 가능합니다"라며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정황들이 에이미가 아버지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그저 샘에게 화가 나 시위를 하려고 총을 휘둘렀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열네 살 무렵,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사소한 말다툼이었고 원인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머물고 있었고 아버지는 매일 해변과 평행하게 긴 구간을 수영하곤 하셨다. 그날 아버지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물수제비를 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모래사장에서 계속 돌을 집어 들어 파도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한 기색으로 비틀거리며 물 밖으로 걸어 나오셨다. 아버지를 맞추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를 겁주어 내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충격을 받으신 것 외에 아버지가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최근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의외의 대답으로 나를 놀라게 하셨다. "얘야, 네 아버지는 지난 세월 동안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단다."

사란 길리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단서가 있을까 싶어 에이미가 쓴 소설들을 다시 정독하다가 소름 끼치는 대목을 발견했다. 그녀의 처녀작 <화성 실험(The Martian Experiment)>에서 주인공 애비게일 화이트는 어린 시절의 한 사건에 평생 시달린다. 소설 초반, 애비게일은 학교 친구 케티, 그리고 케티의 남동생 루크와 놀고 있다. 두 소녀가 말다툼을 벌이던 중 케티가 애비게일에게 돌을 던진다. 분노에 휩싸인 애비게일은 바닥에 떨어진 주먹만 한 돌을 발견하고는 "케티가 겁을 먹고 피하길 바라며" 공중으로 돌을 "날려 보낸다." 돌은 케티를 비껴갔지만, 엉뚱하게도 옆에 있던 어린 남동생 루크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만다.

에이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는 장난감 병정처럼 뒤로 픽 쓰러졌다. 무엇에 맞았는지 알지도 못한 채였다." 애비게일은 큰 충격을 받는다. "케티를 겁주려 던진 돌이 루크에게 어떤 끔찍한 비극을 불러왔는지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다." 루크는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 숨을 거두었고, 그의 부모는 아이가 뇌동맥류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이 대목은 세스의 죽음을 둘러싼 가장 유력한 가설과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젊은 여성이 누군가를 겁줄 목적으로 위험한 무기를 휘둘렀다가, 전혀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 말이다. 애비게일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할머니에게 자수하려 한다. 그녀는 할머니를 그리스식 표현인 '야야(Yaya)'라고 부르는데, 이는 에이미가 실제 자신의 외할머니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애비게일이 "내가 루크를 죽였어요"라고 고백하자, 야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아이는 하나님 곁으로 갔단다. 네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얼마 후, 애비게일의 아버지는 딸이 자고 있는 줄 알고 방으로 들어와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 한 번의 입맞춤으로 그녀는 모든 결정이 끝났으며 번복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가족들은 딸의 살인 용의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에이미에게 사건 당일의 이 색다른 가설을 제시하자,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다툼이 결코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부인하며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신이 커피 한 주전자를 다 마셔버렸고, 샘은 "커피를 새로 끓여야 하잖아"라며 짜증을 낸 게 전부라는 것이다. 에이미는 "엄마가 왜 우리가 싸웠다고 친구에게 전화했는지 모르겠네요. 우린 안 싸웠거든요"라며, "우리 가족은 늘 화목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은 저서 <부모와 다른 아이들(Far from the Tree)>에서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다루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위대한 모성애와 의도적인 현실 도피(willful blindness) 사이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부모의 현실 부정은 자식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당사자인 아이에게는 극심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솔로몬은 경고한다. 아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부모는 깨어진 일상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으며 진실을 대면하길 거부하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거부 행위가 오히려 상황을 더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의 악행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 아이는 심한 "소외감과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는 것이 솔로몬의 시각이다. 에이미 비숍 역시 자신의 또 다른 소설 <아마존의 열병(Amazon Fever)>에서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의도적인 장님"으로 묘사하며, 그러한 방관이 어찌 보면 그를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지 자문한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아버지 샘의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에이미가 겨냥한 진짜 타깃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보았을까? 그리고 샘과 주디 부부는 이 가능성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나는 주디에게 이 가설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한편으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내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제보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집안에서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이제 단 두 명뿐이에요. 그리고 주디는 이미 그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그 가여운 여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 뿐이죠."
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브레인트리에서 사람들을 취재할 때, 그들은 내게 자식이 있느냐고 자주 묻곤 했다. 마치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야 비로소 이 비극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주디의 오랜 친구인 뎁 코사릭은 내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난 그날 그 집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샘과 주디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그들이 내게 거짓말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그리고 말이죠,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 역시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성경책을 수십 권 쌓아놓고 맹세하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보탰을 거예요."

추수감사절 전날, 나는 다시 비숍 부부의 집을 찾았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아침,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가오는 12월 6일, 부부는 뉴햄프셔주에 있는 세스의 묘소를 찾을 계획이었다. 매년 거르지 않는 성묘길이었고, 수년 전까지는 에이미도 늘 동행했었다. 에이미는 남동생의 무덤 앞에서 자신의 삶과 아이들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곤 했다. 수감 중인 지금도 그녀는 종종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세스가 교도소 감방으로 찾아와 침대 머리에 앉아 말을 건넨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에이미는 아주 최근까지도 남동생을 "현재형으로만 말하거나, 아예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에이미가 매사추세츠주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청한 요구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전적으로 지방검사의 권한인데, 검찰 측은 재판을 진행할 의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알라바마주법원의 유죄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한 상태다.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고 상소권까지 포기했으면서 항소를 제기한 이 돌발 행동에 부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 역시 승소 확률은 거의 없다. 에이미는 내게 "교도소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헌츠빌에 살고 있는 남편 짐이 아이들의 양육권을 갖고 있으며, 에이미는 가능한 한 자주 아이들과 전화통화를 나눈다. 딸 페드라는 한창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데, 에이미는 딸에게 하버드 대학교에 지원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샘이 끓여온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내가 주디에게 12월 6일 당일의 행적을 다시 묻자, 그녀는 오전 내내 마구간에 있었고 세스가 식료품을 사서 돌아온 오후 2시쯤에야 귀가했다는 주장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했다.

나는 당시 경찰 최초 조서에 세스가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다고 진술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주디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건 공식 진술서가 아니었습니다." 샘이 거들었다. 브라이언 하우를 비롯한 세 명의 경관이 부부를 면담한 뒤, 저마다 적은 메모를 토대로 종합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 요약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어쨌든 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경관들에게 주디가 오전 11시 반이나 정오쯤 올 것이라 말한 이유는 단지 아내가 평소 마구간에서 돌아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에요." 주디가 말을 이었다. "마구간을 나서서 진입로에 차를 대는데, 바로 내 뒤로 세스의 차가 들어왔어요."
"우리는 누군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정신적 여유 따위는 없었습니다." 샘이 당황한 기색으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러야 했고, 자식을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딸아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요. 경찰들이 질문을 던졌지만 우리는 시간 따위는 신경도 쓰지 못했습니다. 경관 세 명이 자기들 편한 대로 듣고 적은 거요."

나는 주디에게 그날 사란 길리스와 차를 마시기로 약속했다가, 샘과 에이미의 싸움 때문에 약속을 깨뜨린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네?" 그녀가 기가 막힌다는 듯 반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는 길리스를 잘 아는 인물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그 사람들 미쳤나 봐요!" 주디가 목소리를 높이며 부르짖었다.

이어서 나는 비숍 부부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돌을 던졌던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혹시 에이미가 샘에게 화가 난 상태에서," 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총을 들고 내려와 시위를 하려고 휘두르다가 다툼이 벌어졌고, 그러다—"
"절대 아닙니다." 주디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식탁에서 일어나 벽난로 옆에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길리스가 사실도 아닌 일을 왜 지인에게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말했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사란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어요." 주디가 말했다. "누군가 거짓말을 지어낸 겁니다."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일을 떠들어대는 인간들 중에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샘이 주디를 다독였다. "여보, 이제 다 끝난 일이야."

"안 끝났어요." 주디가 받아쳤다.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가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에이미는 정말 착하디착한 아이였어요. 우리는 평생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단 말입니다." 주디가 내게 하소연했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직접 본 사실뿐이에요. 난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어요." 그녀가 강조했다. "내가 직접 봤다고요."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결국 견디다 못한 내가 먼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 The New Yorker (2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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