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Boy Erased(2018)

미국 남부 보수적 기독교 벨트 아칸소주의 10대 게이 소년 Jared가 자신을 성폭행한 동기 Henry로 인해 부모님에게 아웃팅을 당하게 되고, 그 일로 동성애 전환 치료 시설에 입소하는 얘기. 이제는 서방에서도 커밍아웃 스토리를 식상하게 여기기도 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자는 말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으니 나도 식상하지 않다고는 못 하겠다. 그래도 커밍아웃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 있으니...커밍아웃은 끝이 없다는 사실. 커밍아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성애자의 세상에서 성소수자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힌 이상 죽을 때까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해야 한다. 그러므로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져 퀴어가 다수를 차지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는 한 나는 끊임없이 계속 해야 하는 커밍아웃처럼 커밍아웃 스토리도 끊임없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Jared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인데, Jared가 자식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그것에 관해서 더는 묻지 않는 것이, 그에 관한 대화를 피하려고 드는 것이 상처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내 경우에도 그랬으니까.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그와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내게서 어떤 부분을 삭제해 버린 것 마냥. 그게 사람을 점점 체념하게 만든다.

Gary는 입소자 중에서 체념한 사람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가 Jared에게 충고로 했던 대사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냥 네 역할을 연기해, 그런 체 하면서 일단 그들을 안심시켜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을 생각해,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어. Jared는 Gary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되려 진실을 말하고 싸운 후 시설을 나온다. 그리고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는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로 정면으로 맞선다.

과연 최후의 나는 누가 될까. 영혼 없는 역할극을 수행하다가 가족과 의절하는 Gary인가, 아니면 더 이상 연기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만나지 말자며 속마음을 거침없이 내보이는 Jared일까, 아니면 우울하게 순응하며 머물러 있는 Sarah일까, 초자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정신 나간 Jon일까, 아니면 생을 포기하는 Cameron일까. 나는 왜 중년이 되어서도 이런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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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화 #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