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평균의 지루함

최근 시사회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90년대, 청춘, 여고생, 춤, 노래, 유머, 감동, 사랑, 교훈 등등 넣을 수 있는 긍정적인 코드는 다 들어있는 영화였다. 나는 지루했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일행은 나쁘지 않게 보았는지 영화가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흥행 성적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 영화가 잘 된다면 한국 관객이 무척 실망스러울 것이고, 앞으로 한국 상업 영화를 계속 볼 의지가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1.

Atlantic에서 기사 하나를 읽었다. 여러 이미지 생성 AI가 있음에도 결과물은 왜 하나 같이 다 똑같이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을 추적하는 글이었다. 똑같다는 건 이를테면 밝고 채도가 높은 색감, 극적인 조명, 잘생긴 인물, 케이크 장식처럼 매끈하면서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뽀샤시한 느낌들을 말한다. 글쓴이가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AI가 이러한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건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학습한 이미지(인터넷에 널린 사진들과 스톡포토의 경향)가 그렇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학습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입력한 텍스트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노이즈가 생성되는데, 이 노이즈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흐릿한 결과물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를 사용자가 평가하게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피드백이 AI 모델 자체에 반영된 것 같다고. 즉, AI는 그저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미지를 제공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기사를 읽으면서 첫 단락에 언급한 영화가 생각 났다. 대중이 선호하는 모든 요소를 겨냥해서 직조한 작품이 결과적으로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더 나아가 가짜 같은 것이 마치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볼 때의 무감함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 상업 영화는 수많은 관계자의 피드백을 거쳐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단점으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잘려 나가고 수정된다. 그렇게 평균에 수렴한 결과물에서는 어떤 개성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남아있다면 창작자든 누구든 어떤 소수가 싸워서 지켜낸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AI에는 그러한 책임자나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피드백했을 뿐이고, AI가 왜 그런 결과물을 내놓는지 알 길이 없다. AI는 그저 학습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수학적인 평균을 계산한 과정을 결과물로 내놓을 뿐이니까.

'평균화를 하니 흐릿한 형체가 되었다(Averaging, it turns out, looks like blur)'

기사 속에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 재직 중인 교수의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창작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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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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