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태양을 조금만 피하기로 했다

올봄부터 아침, 점심, 저녁 식후 산책을 한다. 특별한 기상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세 번을 가능한 한 지키려고 한다. 처음에는 야간에 잠을 길게 못 자는 증상 때문에 주간에 해를 보는 것이 멜라토닌 생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것이었다. 어쨌든 수면 사이클에는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전보다 일찍 잠에 드는 것 같고, 중간에 깨는 일이 줄었다. 더불어 오랫동안 괴롭히던 관절염과 근육통이 크게 호전됐다. 건강이 호전된 원인이 잠인지 햇빛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잠을 잘 자는데 햇빛이 중요한 만큼 햇빛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만화가가 된 후로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이 없어졌다. 출퇴근 하지 않으니 하루 종일 집밖을 나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산책하더라도 주로 작업을 마친 저녁에 했기 때문에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나가는 일은 쉬는 날 이외엔 없었다. 그리고 쉬는 날 외출 시엔 반드시 선크림을 발랐다. 햇빛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피부 노화의 주범이라는 인식 때문에 주간에 나가려면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그리고 피부 트러블이 잘 생기는 편이라 염증으로 예민해진 피부에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놓는 것이 회복을 방해하지 않을까 싶어 찜찜하기도 했다. 산책을 시작하면서 선크림을 발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봄철에는 그래도 긴팔을 입기 때문에 산책하면서 햇빛을 받을 만한 맨살 부위가 얼굴밖에 없어서 나는 과감히 선크림을 바르는 걸 포기했다.

햇빛의 해악 대신 햇빛의 이점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진 글에도 눈이 간다. 최근 The Atlantic에 실린 글 Against Sunscreen Absolutism(선크림 신봉에 반대함)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기서도 자가면역질환을 비롯한 염증을 수반하는 알레르기 질환의 발생률이 햇빛 노출에 제한이 있는 고위도 지역일수록 증가하고 이에 햇빛 노출이 질병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나치게 햇빛을 피하려는 과도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피부가 늙는 건 어쩔 수 없겠지. 한국 사람들은 희고 젊어 보이는 외모가 너무 중요한 나머지 70 먹은 노인도 완전무장을 하고 산책을 하니까. 하지만 아파보니까 이제 늙지 않은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해졌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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