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용

능력주의는 허구이며, 그걸 믿는 건 당신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번역)

원문: Meritocracy doesn’t exist, and believing it does is bad for you —Fast company(2019.3.13)

by Clifton Mark

능력주의는 현대 사회의 주요한 이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은 돈, 권력, 직업, 대학 입시와 같은 삶의 보상이 오직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흔히 비유되는 '평평한 운동장'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그립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단순히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세습 귀족제와 극명히 대조되며, 개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훨씬 우월한 시스템으로 여겨집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부와 혜택은 외부적인 요인에 따른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오롯이 개인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인식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능력주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9년 영국 사회 태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4%가 성공에 있어 노력이 '필수적'이거나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2016년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69%가 개인이 지능과 능력으로 보상받는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응답자들은 운이나 부유한 가정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의 중요성은 훨씬 낮게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 두 나라에서 특히 강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생각입니다.

성공과 실패가 운이 아닌 능력에 달려 있다는 믿음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능력 자체가 상당 부분 운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끈기'라고 불리는 재능과 꾸준한 노력을 쏟을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성장 환경에 크게 좌우됩니다. 물론, 모든 성공 이야기에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한 사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그의 저서 『성공과 운』에서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이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프랭크 자신 또한 학자로서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희박한 가능성과 우연의 일치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운은 개인에게 특정한 능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입하기도 하고, 그 능력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제공하며 다시 한번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과 재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능력과 최종 결과 사이의 연결 고리가 생각보다 훨씬 약하고 간접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프랭크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특히 성공의 규모가 매우 크고, 그 성공이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을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빌 게이츠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부자가 되지 못한 프로그래머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 둘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운'입니다. 능력주의가 거짓이라는 점 외에도, 심리학 및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들은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경향이 사람들을 더 이기적이고, 자기 성찰에 소홀하며, 심지어 차별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능력주의는 단순히 틀린 믿음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 실험실에서 자주 사용되는 '최후통첩 게임'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게임에서 한 참가자(제안자)는 일정 금액의 돈을 받고 다른 참가자(응답자)에게 그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안합니다. 응답자는 이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으며, 거절 시에는 두 참가자 모두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수많은 실험 결과, 제안자들은 대개 비교적 공정한 분배를 제안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100달러를 나누는 상황에서 대부분 40달러에서 50달러 사이의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변형 연구에서는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믿는 것이 더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베이징 사범대학의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최후통첩 게임을 하기 전에 가짜 실력 게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이겼다'고 (실제로는 조작되었지만) 믿게 된 참가자들은 실력 게임을 경험하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몫을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다른 연구들 또한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경제학자 알도 루스티키니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의 알렉산더 보스트로크누토프는 실력 게임에 먼저 참여했던 피실험자들이 순전히 운에 기반한 게임에 참여했던 피실험자들보다 상금 재분배에 훨씬 더 반대하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실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 더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참가자에게서 나타났지만, 특히 '승자' 그룹에서 더욱 뚜렷하게 관찰되었습니다.

반대로, 감사에 대한 연구는 운의 역할을 인식하는 것이 관대함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로버트 프랭크는 한 연구를 인용하며, 이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에게 자신의 삶의 성공에 기여한 외부 요인(운, 타인의 도움)을 상기시키자, 내부 요인(노력, 기술)을 떠올리도록 요청받은 사람들보다 자선 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단순히 능력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행동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MIT의 경영학자 에밀리오 카스티야와 인디애나 대학의 사회학자 스티븐 베나드는 민간 기업에서 성과 기반 보상과 같은 능력주의적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능력주의를 핵심 가치로 명시적으로 내세운 회사에서, 관리자들이 동일한 성과 평가를 받은 여성 직원보다 남성 직원에게 더 높은 보상을 할당하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능력주의가 명시적인 가치로 채택되지 않은 회사에서는 이러한 성별에 따른 보상 편차가 사라졌습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공정성은 능력주의의 도덕적 매력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경쟁의 장'은 성별, 인종 등과 같은 부당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그러나 카스티야와 베나드의 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것이 없애고자 하는 바로 그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역설'이 능력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명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에게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게 되면, 자신의 행동에서 잠재적인 편견의 징후를 덜 주의 깊게 살피게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다른 어떤 이념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사회 질서 내에서 사람들의 현재 위치를 정당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고 싶어 하는 강력한 심리적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단순한 정당화 기제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개인에게 강한 아첨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성공이 오로지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모든 성취가 곧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덕성의 반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여러 분배 원칙 중에서도 가장 자기 만족적이고 자기 축하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것의 이념적 연금술은 물질적 소유를 칭찬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개인의 우월성으로 둔갑시킵니다. 이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생산적인 천재로 여기도록 부추깁니다. 이러한 효과는 사회 엘리트층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지만, 고등학교 졸업, 예술적 성공, 심지어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진 것과 같은 거의 모든 성취가 능력주의적인 관점에서 재능과 노력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적 실패는 개인적 결함의 징후로 간주되어 사회 계층의 최하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특정 개인이 얼마나 '자수성가'했는지,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특권'이 개인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은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히 누가 무엇을 갖느냐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성공이 자신의 내면적 자질에 대해 무엇을 믿게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능력주의라는 믿음 아래에서는 개인의 성공이 '운'의 결과라는 주장이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외부 요인의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곧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가 성공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도덕적 확신과 개인적인 아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믿음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적 이상으로서도 능력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능력주의는 거짓된 믿음이며, 그것을 맹신하는 것은 이기심, 차별, 그리고 불운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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